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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4대 문명발상지 왜 사막화되고 있을까  

[논농사의 4가지 비밀] 논과 콩으로 홍수와 사막화를 막다   


<레디앙>은 앞으로 경기도 안산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안철환씨의 이야기를 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안씨는 현재 전국귀농운동본부 도시농업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레디앙의 글을 정리한 것 입니다] 


올 봄엔 매일 잠자기 전 지리부도를 보는 게 취미였다. 세계 사람들은 농사를 어떻게 짓고 있는가도 궁금했고, 경작지와 자연녹지, 도시의 문명지역이 어떤 차이점을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싶었다. 그러다 몇 가지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질문① 인류의 4대 문명지는 왜 사막화되고 있을까?



하나는 이른바 인류의 4대 문명 발상지들은 한결같이 사막지역이거나 현재도 사막화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집트 문명 발상지인 나일강 주변이 그렇고,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상지인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 주변도 그렇고, 인도의 인더스 강과 중국의 황허 중상류 지역이 그렇다. 


참으로 이상하고 궁금한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곰곰이 살펴보니 이 지역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바로 밀 농사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밀 농사라.... 그런데 밀과 사막이 무슨 상관이 있지?”


그러다 바로 육식이 떠올랐다. 서양 사람들은 빵과 고기가 주식이지 않은가. 답은 거기에 있었다. 빵을 주식으로 하지만 모자라는 단백질을 육식으로 보충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지리부도를 꼼꼼이 뒤져보니 사막화의 주원인이 방목과 목축이라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밀농사 지역의 기후는 겨울이 습하고 비교적 따뜻하다. 그래서 겨울 작물인 밀이 잘 자란다. 우리는 여름이 다습하여 벼가 잘 자라는 것과 반대다. 


밀농사 지역은 반면 여름이 건조하면서 시원한 편이다. 더운 지역이라도 건조하기 때문에 밀농사 지역의 여름엔 목초지가 발달한다. 목축이 잘 되는 것은 이 때문이며 밀과 육식, 빵과 고기가 서양 사람들의 주식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질문② 왜 논 농사지역은 사막화가 되지 않을까?


필리핀 다락논


두 번째로 궁금한 점은 논 농사 지역인 동아시아는 밀 농사 지역과 달리 열대우림 다음으로 녹화가 잘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처음 농사를 지으면서 기뻤던 것은 자연과 함께 자연 속에서 산다는 것이었는데, 반면 반자연적인 도시문명도 따지고 보면 농경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농사에 대한 태생적 회의감도 떨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회의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동아시아의 논 농사 지역을 보고 깨닫게 되었다. 


논의 저수 능력과 지표 보호 능력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 논 전체 담수량이 소양강 호의 7∼8배가 된다 하지 않는가. 논이 있음으로써 홍수를 막아주고 홍수로 인한 지표의 유실도 막아준다. 말하자면 논이 사막화를 막는 파수꾼이라는 점이다. 


또한 논은 지하수를 지켜주어 산 계곡물이 마르는 것을 밑에서부터 막아주니 산의 숲까지 지켜준다. 예컨대 내가 농사짓고 있는 우리 농장 입구에 KTX 지하 구간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터널로 일대 지하수 맥이 끊기자 그 많던 물이 계곡에서 말랐다는 사실이다. 


논은 사막화를 막는 파수꾼 


논이 대부분이었던 우리 마을에서도 논은 다 없어지고 밭으로 바꾸거나 공장 부지로 바뀌어버렸다. 이처럼 서울이나 도시 주변엔 이미 많은 논들이 사라진지 오래다. 게다가 이상 기후로 집중 호우도 잦으니 더 홍수 피해가 커진다. 


이번 강원도 피해 지역을 보면 대부분 관광지역으로 개발된 곳이거나 논농사가 발달하지 않은 지역이다. 필리핀이나 남중국 산골짝에 발달한 산 다락논 지역처럼 산꼭대기까지 논이 만들어져 있었다면 그렇게 홍수 피해를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논 농사지역인 동아시아 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지역보다 남다른 농경문화를 발달시켜왔는데, 그 핵심엔 콩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양 사람들은 밀을 먹으며 모자라는 단백질을 고기로 보충했다면 우리는 쌀을 먹으며 모자라는 단백질을 콩으로 보충했다. 밥에 콩 넣어 먹는 민족은 우리 밖에 없단다. 또 콩은 만주와 우리나라가 원산지다. 


서양은 고기로 우리는 콩으로 단백질 보충


중요한 것은 목축은 흙을 황폐화시키지만 콩은 흙을 비옥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농사의 으뜸은 쌀과 콩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반대는 당연히 밀과 목축이다. 콩을 남은 자투리 땅인 논 둑에다 심었던 것은 우리 조상들의 훌륭한 농경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풍경이었다.


게다가 우리 조상들은 논농사의 북방한계선을 더 위로 올린 장본인들이다. 조선말 일제 식민 초기에 만주로 이주한 조선 사람들이 논농사가 되지 않는 만주에서 논을 만든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만주는 가문 지역이라 한전(旱田) 작물인 옥수수 감자 수수 정도나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날씨도 춥고 비도 적게 오는 지역이니 고온다습한 기후에서나 가능한 벼를 어떻게 재배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조선민족 특유의 부지런함과 근성으로 가능했다. 


조선에서 거의 피난오다시피 도망 나온 만주의 조선족들에겐 농사지을 땅 한 평 얻기 힘들었다. 이런 이들에게 눈에 띈 곳이 바로 늪지대였다. 옥수수 감자 같은 작물이나 재배하는 만주 사람들에겐 쓸모 없는 버려진 땅이지만 조선 사람들에게는 논을 만들 수 있는 훌륭한 땅이었다. 게다가 늪이란 일종의 수렁논이라 가뭄도 덜 타니 더없이 훌륭한 논으로 만들 수 있었다. 


원래 우리민족은 쌀을 제일 중요시했기 때문에 밭보다 논을 더 귀하게 여겼다. 땅이 생기면 밭보다는 논을 만들려 했고 밭에서 키우는 채소작물은 집 앞 텃밭이나 채마밭 정도면 충분했다. 지금처럼 밭 위주로 농사짓는 것과는 현격히 달랐다. 현미잡곡밥 큰그릇에 반찬이라고는 김치와 된장찌개 정도였던 옛날 밥상 문화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원래는 다양한 곡식을 넣은 현미잡곡밥으로 기본 영양을 섭취하고 반찬은 말 그대로 밥이라는 주인공에 보조적인 역할이나 하는 의미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 밥상에는 육식의 비중이 커지면서 육식을 보조하는 반찬이 중요해져 종류도 다양해진 반면 밥은 백미공기밥으로 작아지면서 그저 탄수화물 채워주는 보조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쨌든 그런 우리 조선민족이 만주에서 버려진 늪지대 땅을 논으로 개간하여 쌀이라는 맛있는 곡식을 만주에 퍼뜨리자 만주 사람들은 조선 사람들을 아주 고마워했다고 한다. 춥고 가문 지역이지만 한여름에는 한반도만큼 더워 짧은 순간 벼가 자랄 수 있었고 긴 추위에 견딜 수 있는 종자를 육종하여 만주에 맞는 벼종자를 만들어 썼다고 한다. 그런 우리 민족의 근면과 근성은 연해주까지 퍼져서 더 북쪽으로 벼농사를 퍼뜨렸으니 가히 우리 민족이 동아시아에서도 으뜸가는 농부라고 나는 자부하곤 한다.



질문③ 왜 백인들은 동아시아에 정착하지 못했을까?


북미초원


세 번째로 의문을 가진 것은, 유럽의 백인들이 식민개척 시대를 거치면서 식민 독립 이후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정착하였지만 유독 동아시아 지역에서만큼은 정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너무나 나에게 궁금증을 자극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백인들은 신대륙 발견 이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식민지를 개척하고 그곳의 토착민을 수탈할 뿐만 아니라 멸종까지 시켜가며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갔다. 그렇게 해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까지 명성을 날렸으며 그 외 다양한 곳에서 백인들은 뿌리를 내렸다. 


아프리카, 호주, 뉴질랜드, 북미, 중미, 남미, 등 안 뻗친 데가 없으며 게다가 북중남미에서는 기존의 인디언을 멸종시키면서 새로운 인종을 탄생시키기까지 했다. 


그런데 유독 식민지 해방 시대 이후 동아시아 지역에선 백인들이 뿌리를 내린 곳이 하나도 없다. 필리핀, 인도, 인도차이나반도, 인도네시아 등 백인들이 한때 식민지를 개척했던 지역에서 모두 백인들은 떠나갔다. 왜 그랬을까?


보통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동아시아지역의 뿌리깊은 역사와 독자적 문명의 존재 때문일 것 같지만 나는 뭔가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특별한 연관을 찾지 못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것은 아마도 논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만 맴돌았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컬럼버스가 인도로 착각하고 북미 대륙에 들어섰을 때 그들은 그곳에서 광활하게 끝없이 펼쳐진 목초지에 황홀해했다. 그들은 원래 향료를 구할 목적으로 인도를 찾아 떠난 것이지만 향료보다 더 대단한 보물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인구와 수요가 늘어 자신들의 목초를 황폐화시키는 유럽의 소들을 신대륙으로 옮기는 소 식민프로젝트를 감행했다.


인디언들의 식량이자 북미의 초원을 지키는 버펄로라는 야생종들은 대대적으로 멸종되었고, 북미의 목초를 지켰던 인디언들도 그와 함께 학살되거나 백인들이 옮겨온 병에 걸려 죽거나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쫓겨나거나 잘해야 백인들의 소들을 지키는 카우보이로 전락했다.


목초를 찾아 식민지를 개척했던 백인들은 북미만이 아니라 중남미, 호주, 캐나다, 아프리카 등 어디든지 전 세계를 휩쓸고 다녔다. 그리고 좁은 유럽의 땅에서 벗어나 소와 함께 전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으며 그렇게 해서 늘어난 10억 이상의 백인들은 아마 중국 다음가는 인구수를 갖게 되었다.


바로 해답은 목초에 있었다. 논 지대는 소를 목축해야 하는 입장에서 볼 때 하등 쓸데없는 땅인 것이다. 이른바 고온다습이라는 몬순기후에서는 목초지가 형성될 수 없다. 여름이 건조하고 적당히 따뜻해야 목초가 잘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④ 동아시아 논농사지역에 행복지수가 높을까?


네 번째로는 가난할수록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이 대부분 동아시아의 논 농사지역에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가난한데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처음엔 어렵지만 즐거웠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막연하게 끄덕거렸지만 곰곰이 생각할수록 단지 가난한 게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다 떠오른 것이 논농사 지역일수록 공동체 문화가 발달한다는 사실이다. 농사 중에 가장 협동노동을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논이기 때문이다. 모내기에서부터 김매기를 거쳐 수확기까지 중요한 철마다 집중적으로 노동이 투여되어야 가능한 게 논농사다. 두레라는 우리의 고유 공동체 문화도 바로 논농사에서 나왔다. 


두레로 노동을 함께 할 때는 내논, 네논 따로 구별이 없었다. 누구의 논이든 상관없이 열심히 일을 했다. 더구나 몸이 불편하여 노동이 힘든 집의 논은 우선 순위로 먼저 일을 해 주었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품앗이가 조금은 계산적인 원리라면 두레만큼은 철저히 이타적인 원리로 이뤄지는 공동체였던 것이다.


가난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들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지역에는 근대화, 세계화가 덜 되어 아직도 공동체 문화가 상당히 남아있기 때문인 것이다. 


태국으로 이민 간 선배 한 분이 그 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매점매석이 뭔질 몰라 물건 가격이 올라도 전에 사놓은 물건이라면 오르기 전 가격으로 판다는 얘길 해 준 적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매점매석을 말하면 참 이상한 사람 다 본다는 식으로 쳐다보는 그들의 순박한 표정에서 그 선배는 왜 그들이 행복하게 사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얘기해주었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철저히 서양화, 개방화, 신자유주의화가 진행되면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서 공동체적인 요소가 사라졌다. 신뢰와 양보, 희생의 정신 대신에 경쟁과 돈의 원리가 주도하면서 우리에게 어느덧 행복이라는 삶의 질은 멀어져 간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논들이 없어져 가듯이 말이다.


출처 : 병지방 자연학교  |  글쓴이 : 딸깍발이 원글보기


[ UNEP의 사막 방지 회의에서 세계 45개 지역의 사막화 현상을 조사한 결과, 이상 기후나 기상 조건의 변화로 인한 자연적인 원인에 의해 사막화가 된 경우는 13% 정도이고, 나머지 87%는 인류의 인위적인 영향에 의한 사막화가 이루어졌다고 추정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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