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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개하는 글은 1994년 일본NHK 프로듀서 河邑厚德 씨가 《모모》의 작가 미하엘 엔데의 생애 마지막 무렵의 생활을 취재하고 그와 나눈 대담기록을 토대로 해서 정리한 책 《엔데의 유언―근원에서부터 돈을 묻는다》(일본방송출판협회, 2004)의 제1장을 발췌, 번역한 것이다. - (Michael Andreas Helmuth Ende)



돈을 근원적으로 묻는다


미하엘 엔데


1994년 2월 6일,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주도(州都)인 뮌헨의 자택에서 엔데는 두시간 넘게 끝없이 이야기를 했다. 이때 이미 엔데의 육체는 암으로 손상되어가고 있었다. 이듬해 8월에 엔데의 부고를 접했을 때, 우리는 무거운 과제를 떠맡은 느낌이었다. 이 테마를 엔데 없이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도,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엔데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 무렵 냉전 후의 세계에서 사건들이 급격히 일어났다. 1994년 말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의 통화위기, 97년의 아시아 그리고 러시아의 금융위기, 98년의 세계시장 도박화의 장본인인 헤지펀드의 파탄 등등. 일본도 거품경제 이후 사회 모습이 빗나가고, 관민 모두에게서 도덕적 위반행위가 줄줄이 계속되고 있다. 사회에서는 벌거벗은 생존경쟁논리가 활개를 치고, 실업자와 자살자가 전후 최악의 비율로 증가하고 있다. 바닥 없는 늪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 지방이나 지역공동체에서 자본주의의 폭주에 대항하는 움직임의 싹도 자라고 있다. 지역통화나 ‘사회적 은행’ 등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돈’이라는 병에 걸려있다고 지적한 엔데의 예언은 들어맞고 있다. 1995년 5월, 꽤 시간이 걸렸지만 이 녹화테이프를 토대로 한편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것은 《엔데의 유언―근원에서부터 돈을 묻는다》라는 제목으로 방송되었다.



3차대전은 시작되었다


엔데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미 제3차 세계대전은 시작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것은 영토나 종교를 둘러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손들을 파멸로 이끄는 시간전쟁”이라는 것이었다.


자손을 희생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말을 비유로서 이해하고자 하였다. 지금 우리는 20세기가 산출한 미해결의 문제가 산적한 채로, 21세기로 들어가고 있다. 상징적인 사례는 환경호르몬과 핵폐기물이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이것들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것은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후세에 해결을 미룬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거품 붕괴 후의 경제재건 명목으로 거액의 적자국채가 남발되고, 그 부채상환의 짐은 자손이 지지 않으면 안된다. 세계적으로도, 종교나 민족의 대립이 격화하고 있지만, 그때그때의 대응으로 시종할 뿐, 근원적인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엔데는 이런 현실을 ‘시간전쟁’이라고 불렀다. 엔데는 누구보다도 일찍이 온갖 문제의 핵심으로서, 자본주의경제가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금융시스템에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판타지 작가인 엔데는 의표를 찌르는 우화나 이야기의 힘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독자들이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엔데는 말했다.


― 판타지라는 것은 현실로부터 도피하거나, 동화의 세계에서 공상적인 모험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판타지에 의해서 우리는 아직 보이지 않는, 장래에 일어날 일을 눈앞에 떠올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종의 예언적 능력에 의해 지금부터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거기서 새로운 기준을 얻습니다.

엔데는 사람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위기에는 대처할 수 있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위기에는 무력한 존재라고 말한다. 더욱이 엔데는 예전에는 과거의 문화나 역사를 배움으로써 현대의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까를 터득했지만,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돈’의 문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에 대한 규범이 과거에는 아무것도 없다 ― 따라서 미래를 상정하고,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를 예언적으로 직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것은, 인간에게 부여된 상상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제해결을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서부터 생각한다. 그것이 엔데가 의지하는 판타지의 힘이다. 우리는 《끝없는 이야기》의 허무나 《모모》의 시간도둑에 대한 상상력이 갖는 설득력을 다시 한번 검토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지금 다시 엔데의 책을 읽어보면, 그의 ‘돈’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미 《모모》 속에서도 흐르고 있고, 엔데 자신이 온갖 기회에 이 문제를 되풀이해서 말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980년경에 엔데는 취리히에서 열린 재계인사들의 모임에 초대되었다. 200명 정도의 경영자가 모여서 하루 종일 경제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연간 몇퍼센트의 성장이 어떻든 필요하다 따위의 논의로 시간을 보냈다. 저녁이 되어서, 엔데는 그들 앞에서 《모모》의 한구절을 낭독했다. ‘회색의 남자들’에 관한 대목이었다. 듣기를 끝낸 최고경영자들은 난감한 얼굴로 묵묵히 있었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낭독 부분의 문학적 가치에 대하여 토론이 시작되었다. 높은 분들이 아무리 해도 토론이 잘 안되었다. 그래서 엔데는 “여러분은 오늘 미래에 대해서 논의하셨는데, 과감하게 100년 후의 사회가 어떻게 되면 좋을지 자유로이 말해보시라”고 제안했다. 또 오래 침묵이 계속되었다. 이윽고 어떤 사람이 “그러한 이야기가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전혀 난센스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사실의 영역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사실이라는 것은 곧 적어도 연간 3퍼센트의 성장이 안되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고, 경제적으로 파멸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엔데는 이 회의에 참석한 체험으로부터, 이러한 피상적인 사고에 붙들려 있는 것은 경영자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경험을 나중에 친구에게 말했다.


“참석한 경영자들을 자극하여 창조력을 위한 질주를 하게 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나는 다만 참석자 중의 한사람이라도 설령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도, 자신의 아이들이나 손자들을 위해서, 어떤 미래상을 그리는지를 알고 싶었다.”



성장을 강제하는 ‘돈’


엔데는 공업국의 생산과 소비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 일종의 성장 강박증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독일어에 ‘개가 묻힌 곳’이라는 관용구가 있다. 문제의 핵심이라는 의미이지만, 엔데는 성장에의 강제는 자본주의국가가 공통하게 갖고 있는 ‘돈’의 문제, 즉 돈의 발행, 관리, 운영, 보증 등을 포함하는 금융구조 전체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 돈을 테마로 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에, 나는 화폐의 역사로부터 시작할 것을 제안합니다. 화폐는 원래 금화나 은화와 같이 그것 자체에 가치가 있었지요.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에 베네치아에서 시작된 근대적인 의미의 은행을 거쳐 지폐발행의 역사가 흘러서 오늘날에는 돈은 추상적인 크기에 불과한 것이 되었습니다. 지폐조차도 점점 모습을 감추고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것은 컴퓨터의 단위, 완전히 추상적인 수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경제문제는 지폐의 발명과 함께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지폐는 물적 가치를 갖고 있지는 않고, 가치의 상징일 뿐이지요. 지폐 발명으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지폐가 마음대로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인데, 금괴라면 마음대로 양을 증가시킬 수 없습니다. 금은이 부족한 왕은 군대에 급료를 지불하지 못하고 약소화되었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로마제국의 멸망도 이것이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금은 모두 페르시아에 지불되고, 페르시아인은 부자들이 되었지만, 로마제국은 마침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지폐 발명과 함께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지요.

지폐의 가치는 무엇에 의해 담보되는 것인가. 금본위제 시대에는 발행된 지폐는 물질적인 가치를 가진 금과의 관련에서 보증되었다. 그러나 국제통화 달러는 1971년의 닉슨독트린으로 금과의 연계가 단절되고, 달러를 보증하는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는 시대로 들어갔다. 각국의 통화와 달러가 상품으로서 거래되는 머니게임의 시대가 된 것이다. 경제학자 베르나르 리에테르는 이러한 상태를 “닻을 잃어버린 달러가 세계를 표류하고 있다”라고 적확히 표현하고 있다.


― 지폐를 발명한 것은 확실히 중국인들이었습니다. 마르코 폴로라고 기억하지만, 인쇄된 지폐를 중국으로부터 베네치아로 가지고 돌아왔고, 그 후 서서히 은행이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이 중국의 지폐는 마음대로 인쇄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큰 도장이 찍혀진 일종의 증서였어요. 그러나 중국인이 인쇄된 지폐를 발명하였습니다. 그 후 지폐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 은행권으로 되었습니다. 이 은행권이라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것입니다. 나는 10명의 법률가에게 편지를 보내서, 법률적 견지에서 은행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법적 권리’인가, 국가가 그것을 보증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돈’은 경제영역에 속하지 않고, 법적 단위가 됩니다. ‘법적 권리’라면 상업행위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경제영역에 속한다면 그것은 상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명의 법률가로부터는 10가지 답변이 왔습니다. 즉 법적으로 보아서 은행권이 무엇이라는 것을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정의는 한번도 내려진 적이 없어요. 우리는 그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주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와 만나고, 자료를 수집하는 가운데, 엔데는 스위스의 경제학자 빈스방거에 주목했다. 빈스방거는 무한의 진보라는 환상을 만들어낸 근대경제는 중세의 연금술이 성공한 것이라는 특이한 관점을 갖고 있다. 그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리는 책으로 인식하고, 거기에는 근대경제의 매력과 위험이 암시되어 있다고 말한다.(《돈과 마술―파우스트와 근대경제》)


《파우스트》의 제4막에서, 악마의 힘을 빌려 청춘을 되찾은 파우스트는 처녀 크레트헨과의 미(美)의 편력을 끝내고, 지금으로 말하면 개발사업에 뛰어든다.


파우스트: 지배권과 소유권을 획득하는 것이다! 사업이 전부다. 명성은 아무것도 아니다. 

메피스토: 그럼, 당신의 뜻대로 해보시지요. 

파우스트: 내 눈은 저 광대한 대양으로 향해있다. … 왕과 같은 바다를 해안으로부터 밀어내어, 불모의 넓은 개펄을 메우고, 파도를 바다 멀리 내쫓는 것이다….



― 지폐발행이 무엇을 가져왔을까요? 하나의 예가 빈스방거의 책에 나옵니다. 확실히 러시아의 바이칼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호반의 사람들은 지폐가 그 지방에 도입되기 전에는 좋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날의 성과에 따라 고기잡이는 달라도 어쨌든 물고기를 잡아서 집이나 이웃 사람들의 식탁에 올렸습니다. 매일 팔 수 있는 만큼의 양을 잡은 것이죠. 그랬는데 지금은 바이칼호에서 이른바 마지막 한마리까지 다 잡아버렸어요.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가 하면, 어느 날 지폐가 도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함께 은행의 대부도 이루어졌어요. 어부들은 물론 대부금으로 큰 배를 샀고, 나아가서 효율이 높은 어로기술을 채용하였습니다. 냉동창고가 세워지고, 잡은 물고기는 더 멀리까지 운반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대안(對岸)의 어부들도 경쟁적으로 큰 배를 사고, 더 효율 높은 어로기술을 사용하여, 물고기를 빨리, 많이 잡는 데 열심이었어요. 대부금을 이자를 붙여서 상환하기 위해서만이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오늘날에는 호수에 고기의 씨가 말랐습니다. 경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방보다 더 빨리, 더 많이 고기를 잡지 않으면 안되는 거지요. 그러나 호수는 누구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물고기가 한마리도 없는 상태가 되어도 아무도 책임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근대경제, 그중에서도 화폐경제가 자연자원과 조화를 이루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엔데는 악마적인 원리에 대해서 말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영성을 부정하고, 인간이란 어디까지나 물질로 되어있다는 논리를 깔고 있는 원리라는 것이다. 인간의 고뇌는 늘 한편으로는 정신적 존재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물질적 존재라는 점에서 기인하며, 이 긴장관계가 끊임없는 고뇌를 가져다준다. 고뇌는 인간이 영성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악마는 어떤 시대에도 인간에게 “모든 것을 잊어버려라. 고뇌 따위는 필요없다. 현세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라”라고 호소한다. 모든 게 물질적인 존재라면 사람에게는 고뇌도 환희도 없을 것이다.


엔데는 경제는 사람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사회적 행위인 이상, 거기에는 선악이나 도덕의 규범이 포함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의 경제활동은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 경제활동의 전제조건이어야 할 자연자원을 파괴하고 마는 경제시스템의 모순에 엔데는 눈을 돌린다.


― 내가 읽은 온갖 경제이론에서는, 원료를 그것이 작업과정에 들어갔을 때 비로소 경제적 요인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지하에서 잠자고 있는 원유는 아직 경제적 요인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열대우림은 그것만으로는 아직 경제적 요인이 아닙니다. 벌채되고, 목재로 되어 비로소 경제적 요인이 되는 거지요. 여기서 물어야 할 것은 우리는 어디까지나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서 자신의 밭을 황폐하게 만들고, 토양을 불모지로 만드는 농부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의 자연자원이 자원의 단계에서 이미 경제적 요인이며, 양육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현재 큰 이익을 얻고 있는 것은 비양심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단기적 이익을 위해서 토지를 파괴하는 저 농부와 같은 행동을 함으로써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4년에 한번은 밭을 쉬게 하고,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며, 자연의 수리(水利)를 활용하는 책임감 있는 농부는 경제적으로 불리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비양심적인 행동이 포상을 받고, 양심적으로 행동하면 경제적으로 망한다는 게 지금의 경제시스템인 것입니다. 이 경제시스템은 그 자체가 비윤리적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그 원인은 오늘날의 화폐, 즉 마음대로 증가시킬 수 있는 지폐가 아직도 일이나 물적 가치의 등가물이라고 보는 착각에 있습니다.


― 중요한 것은 빵가게에서 빵을 사기 위한 구입대금으로서의 돈과 주식거래소에서 취급하는 자본으로서의 돈은 두개의 이질적인 돈이라는 인식입니다. 대규모 자본으로서의 돈은 통상 매니저가 관리를 하여 최대 이윤을 올리도록 투자합니다. 그리하여 자본은 증가하고, 성장합니다. 특히 선진국의 자본은 멈출 곳을 모르는 것처럼 계속 증가하며, 그리고 세계의 4/5는 갈수록 가난해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성장은 무(無)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서 희생이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것은, 다시 한번 화폐를 실제의 노동이나 물적 가치의 등가물로 되돌려놓기 위해서는 지금의 화폐시스템의 어떤 것을 변화시켜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가 이 행성에서 앞으로도 생존할 수 있는가 어떤가를 결정하는 문제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지금 금융시스템을 다시 묻는다


이러한 말은 논리적인 엔데의 발언이기 때문에 각별한 무거움을 지닌다. 통상 우리들 주위에 넘치게 존재하는 경제학이나 경제에 관한 정보 속에서는 현행 금융시스템의 근본을 물어보는 일은 매우 드문 것으로 느껴진다.


― 우리가 언제나 듣는 제안은 시스템 자체는 변경할 수 없고, 그것을 조금 수정하든가, 시스템이 가져오는 결과를 사후적으로 보완한다든가 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언젠가 한계를 드러냅니다. 따라서 시스템 자체가 파멸을 초래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그 병의 핵심적인 원인이 무엇인가를 묻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할 때 항상 부딪치는 게 이 금융시스템입니다.

과거의 고도문명 가운데서 우리들의 화폐시스템과 전혀 다른 화폐를 가지고 있었던 예는 확실히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잉카문명에서는 전혀 다른 화폐시스템이 있었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가치척도 위에 성립한 문명이었습니다. 이것이 금융시스템의 변혁을 생각할 때에 직면하는 문제의 하나입니다. 현대인이 물질적인 풍요만이 인생을 가치있게 한다고 생각하는 한, 그 밖의 것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문제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시스템의 변혁으로, 여기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또하나의 측면은 정신적 변혁으로, 이것은 정말로 필요합니다. 외적인 가치 이외의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쪽이 시스템의 변혁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언젠가 나는 이 문제로 당시 독일 사회민주당 당수였던 포겔 씨의 개인적 회합에 초대된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을 사회민주당의 경제평의회 멤버로 모시고 싶다. 지금 당신이 한 이야기는 우리들도 알고 있고, 우리들도 생각하고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자본경제의 변혁을 당 강령으로 채택한다면 큰일이 날 것이다. 아무도, 노동자들도, 사회민주당에 표를 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약점입니다. 민주주의에서는 언제나 이성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근시안적인 이익관념이 승리를 가져다주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지중해나 알프스에서의 휴가가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누구도 표를 주지 않습니다. 이 경제시스템의 변혁이 어려운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당 강령을 통해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정치를 통해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1920년대에 생각했던 것처럼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나 무력 혁명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경제인 자신이 이 문제를 이해하는 것 이외의 길은 없습니다. 은행에 거대한 자본이 축적되더라도 자연자원이 파괴된다면 아무런 쓸모도 없으니까요. 경제활동을 하는 경제인이 공동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엔데는 금융시스템은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변혁도 당연히 가능하며, 동시에 과거의 여러가지 시도 속에 미래에 대한 힌트가 있다고 주장했다. 엔데는 실비오 게젤의 이름을 들었다. 그의 사상은 돈도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세월이 가면 최후에는 사라져버려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얼핏 진기한 생각인 듯이 보이지만, 이 이론은 실제로 실천되어 큰 성과를 거둔 적이 있다.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항했던 경제학자 케인즈도 게젤을 평가한 바가 있다. 케인즈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6)에는 “실비오 게젤은 부당하게 오해되고 있다. 우리는 장래의 사람들이 맑스의 사상보다도 게젤의 사상으로부터 한층 많은 것을 배울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 제1차 세계대전 후 레테공화국 시대 바이에른에 실비오 게젤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게젤은 ‘돈은 노화(老化)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테제를 말했습니다. 돈으로 산 것은 감자든 구두든 다 소비됩니다. 감자는 먹어서 소비되고, 구두는 걸어다니는 동안 닳아버립니다. 그러나 그 구입에 사용된 돈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물건으로서의 돈과 소비물자와의 사이에 부당경쟁이 이루어지는 셈이라고 게젤은 말하는 것입니다. 돈 자체는 물건입니다. 한편으로, 본래 의미에서의 물건은 경제과정 속에서 소비되고, 없어집니다. 그래서 게젤은 돈도 경제과정의 끝에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치 골수에서 만들어진 혈액이 몸을 순환하고 그 역할을 다한 후에 노화되어 배설되는 것과 같이 말이죠. 돈은 경제라는 유기적 조직을 순환하는 혈액과 같은 것입니다.


이 게젤의 이론을 실천하여 성공한 예가 있습니다. 1929년의 세계 대공황 후 오스트리아의 뵈르글이라는 도시에서입니다. 이 시는 부채를 껴안고, 실업자도 많은 상태에 있었어요. 그래서 뵈르글의 시장이었던 운터구겐베르거는 현행 화폐 이외에 노화하는 화폐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간단히 말하면 매월 1퍼센트씩 화폐가치가 감소하도록 고안된 시스템입니다. 뵈르글 시민들은 매월 1퍼센트분의 스탬프를 사서 노화하는 돈에 첨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돈은 가지고 있어도 불어나기는커녕 오히려 감가(減價)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것을 즉시 사용했습니다. 즉 가두어놓는 게 아니라 경제의 수레바퀴 속에 되돌리는 것입니다. 돈은 소지자가 바뀌면 바뀔수록 구매력이 커지게 됩니다. 하루에 두번 소지자가 바뀌는 마르크는 하루에 한번밖에 소지자가 바뀌지 않는 마르크보다 구매력이 큽니다. 2년 후에 뵈르글에서는 실업자의 모습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돈을 빌리더라도 이자를 지불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모두가 돈을 빌려서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시의 부채도 없어졌어요. 그런데 오스트리아 국가가 개입을 해서 이 돈은 금지되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비오 게젤 신봉자들이 현행 화폐시스템 속에 2차적으로 도입이 가능한 증거로서 흔히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돈은 시간과 함께 가치가 감소하기 때문에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처음에는 생각했지만, 모두가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게젤 이론의 사회적 실천은 1932년 독일 국경에 가까운 뵈르글에서 행해졌다. 당시 인구 5,000명이 채 안되는 이 도시는 400명에 이르는 실업자와 1억3,000만실링의 부채를 껴안고 있었고, 재정은 파탄상태였다. 그래서 시는 긴급구제 계획으로서 통상 화폐와는 다른 ‘노동증명서’라는 새로운 돈을 발행하여 시의 공공사업의 지불에 충당하였다. 그 결과, 새로운 고용이 생겨나서 실업자는 일자리를 얻고, 경제는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저축하지 않고 신속하게 유통되는 돈이 경제활동을 몇배나 크게 한 것이다. 주변 도시들에서도 뵈르글의 성공을 보고, 노화하는 돈의 채택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정부는 지폐발행은 국가의 독점적 권리라고 주장하면서 시장 운터구겐베르거를 국가반역죄로 기소하고, 이 돈을 회수하였다.


무릇 돈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둘러싸고 엔데의 사색은 계속되었다.


― 나는 새 작품 〈하메룬의 죽음의 무도〉에서 돈이 마치 신성한 것처럼 숭배되고 있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거기서 누군가가 “돈은 신이다”라고까지 말합니다. 확실히 돈에는 신이 지닌 특질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돈은 사람을 결합시키기도 하지만 분열시키기도 합니다. 돈은 돌을 빵으로 변화시킬 수도, 빵을 돌로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돈은 기적을 일으킵니다. 돈의 증식은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게다가 돈에는 불멸이라는 성질까지 있습니다.


모든 종교에 공통한 것은 현세의 존재를 피안의 본래 존재에 이르는 일시적인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종교적인 것을 갖고 있지 않은 문화는 없습니다. 오래된 문화도시를 보십시오. 그 중심에는 늘 신전(神殿)이나 사원이나 교회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대도시 중심에는 은행 건물이 우뚝 솟아있습니다. 옛날의 영원 관념에서는 시간을 초월한 존재가 있다고 믿었고, 그것이 본래의 존재였습니다. 신전은 그것을 관리했습니다. 즉 현세와 영원의 접속점이었습니다. 돈은 또 영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실제의 물건이나 재화는 소멸하는 것에 반해서 돈은 불멸입니다. 오늘날의 돈의 영원성과, 그 주제넘음은 본래의 영원성을 서서히 추방하려고 합니다. 배금주의는 일종의 우상숭배라고 말해도 틀림이 없습니다.


〈요한묵시록〉에는 바빌론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거기서 바빌론은 생물임과 동시에 큰 도시이기도 합니다. 즉 문명입니다. 바빌론은 성서에는 매음행위의 어머니라고 씌어있습니다. 사제는 그것을 성적인 방향으로 해석하지만, 나는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매음행위라는 것은 본래 섬겨야 할 것이 매매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성애(性愛)라는 것은 강제되거나 매매될 게 아니라 서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바빌론은 매매해서는 안될 것이 매매되고 있는 것과 동의어입니다. 여기서 현대세계를 조망해보면, 우리는 바빌론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예술에서 종교까지 매매의 관점으로 볼 수 없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요한묵시록〉에는 바빌론은 바로 멸망한다고 적혀있습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망한다고요.


내가 볼 때, 현대의 돈이 가진 본래의 문제는 돈 자체가 상품으로서 매매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본래, 등가 대상(代償)이어야 할 돈이 그 자체가 상품이 되었다는 것, 이것이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그 점에 있어서, 화폐라는 것 속에 화폐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것이 들어간 게 아닌가 ― 이것이 핵심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내 생각이고, 경제학자는 다른 의견일지 모르지요.

화폐의 기괴한 자기증식은 무언가의 희생을 동반하는 흑마술(黑魔術)이라고 보는 엔데의 새 작품은 독일 중세의 하메룬의 피리 부는 남자에 관한 전설을 현대식으로 읽은 오페라이다.


엔데의 ‘돈’에 관한 문화사·사상사적인 고찰은 계속되었다.


― 역사상 존재해온 국가는 2개의 권력그룹으로 집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단(祭壇)과 왕좌(王座)가 그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국가에는 늘 제사계급이 있고, 왕이라는 계급이 있었습니다. 정신세계의 관리자가 사제이고,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귀족계급이 현세의 지배자였습니다. 이 200년간에 종래의 이 두 요소와는 성질이 다른 또하나의 요소가 추가되었습니다. 그것이 경제생활입니다. 공업화가 시작됨으로써 제3의 권력이 추가된 것이지요. 이 권력은 제단이나 왕좌와는 전혀 다른 원리를 갖고 있습니다.


매년 3퍼센트의 확대를 전제로 성립하는, 이른바 성장의 강제는 예전의 두 권력그룹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원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말이 허락된다면, 2항대립 대신에 3항대립으로 생각하는 것에 아직 익숙해 있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엔데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이다. 엔데의 서재에는 몇십권이나 되는 슈타이너 전집이 있고, 그는 그것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슈타이너는 사회라는 유기체를 3개의 분절로 나누어서 보는 사회삼층론(社會三層論)을 세웠다. 사회 전체를 정신과 법과 경제라는 세가지의 기능으로 나누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생활에서는 자유가, 법생활에서는 평등이, 경제에서는 상호부조의 힘이 기본이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능은 프랑스혁명의 슬로건이었던 자유, 평등, 우애에 대응한, 근대시민사회의 이상이기도 하다. 이 세가지 영역이 기본원리에 따라 기능하면서 상호균형을 이루고 있는 사회가 건전한 것이다. 사회삼층론에서는 경제생활을 경쟁이 아니라, 우애라는 원리를 근본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있다.


― 인간은 세가지의 서로 다른 사회적 차원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국가·법 아래의 생활에 속해있습니다. 생산하고, 소비하는 점에서는 경제생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술관도 음악회도 문화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에 모두가 문화생활도 영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 ‘삶의 영역’은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차원에 속해있습니다. 오늘의 정치나 사회가 껴안고 있는 큰 문제는 이 세가지가 뒤섞여버림으로써 서로 다른 차원의 이상(理想)이 혼란스럽게 된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사명은 세가지의 이상 전부를 한꺼번에 실현하는 게 아닙니다. 국가는 법률을 만들어 적용해야 하는 조직입니다. 따라서 평등의 이상, 그것도 법 앞에서의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국가는 정신이나 경제의 차원에 참견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최대 과오는 국가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의 차원에서는 자유의 이상이 무제한으로 보장되어야 합니다. 정신은 가능한 한 속박되지 않도록 되어야 하며, 개인 각자에 따라 독자적인 형태로 형성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경제생활의 이상은 우애입니다. 감히 나는 우애야말로 근대경제에 내재되어 있는 공준(公準)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산과 수요의 자유로운 게임을 적용한다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이 되고, 경제적으로 약자가 항상 손해를 보게 됩니다. 경제생활은 본질적으로 사회연대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돈은 어떤 차원에 속하는가. 돈이 국가가 보증하는 법적 권리라면 국가에 속한 것으로 매매될 수 없습니다. 또 돈이 경제생활에 속한 것이라면 그것은 상품이지만 우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형태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본의 자기증식을 허락하는 금융구조가 우애의 이상을 파괴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엔데의 발언에서 우리는 큰 거리감을 느낄지 모른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문화도 경제도 관이 지배하고 통제하고 있다. 경제재건이라고 하여 사기업인 금융기관에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고 있다. 문화활동이나 정신활동도 권력의 영향에 의해서 방향이 결정되고 있다. 그러나 엔데의 말은 미래사회의 존립방식을 생각하는 데 구체적인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수결은 정치적 차원의 원리이다. 문화나 정신활동은 민주주의와는 별도의 원리인 자유가 가장 중요한 영역이다. 예술은 다수결로 측정되지 않는다. 특히 돈을 생각하는 데에, 경제생활을 관통하는 게 우애의 원리라는 생각은 경청할만하다. 지금 많은 지역통화나 ‘사회적 은행’에서는 사람의 생활을 돕고 상호지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여러가지로 추구되고 있다. 거기에서 돈이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끈이 될 가능성을 볼 수 있다.


경제평론가 우치하시 가츠토(內橋克人)는 ‘다원적 경제사회’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즉 이윤추구와 경쟁을 기본원리로 하는 기업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 전부를 제공할 수 없으므로 그것과는 별도의, 연대와 협동을 행동원리로 하는 경제적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경쟁섹터와 공생섹터가 병존할 수 있는 다원적 경제사회야말로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글로벌리즘이나 규제완화에 의한 자유경쟁이 전부라고 하는 논조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인터뷰의 마지막에 엔데는 새로운 사회와 경제의 이상을 내걸었던 맑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맑스의 근본적인 생각은 정의입니다. 이 이념은 인류가 존속하는 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맑스 시대에는 열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노동을 강요당하는 것이 일상 다반사였습니다. 탄갱 속에서 매일 일하고 일요일에만 나와서 해를 보게 되는 아이들도 있어서 ‘일요일 아이’라고 불렀습니다. 같은 시대에 상류계급 사람들은 살롱에서 문화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살롱을 덥혀주는 석탄이 아이들의 혹독한 노동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저 훌륭한 신사숙녀들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맑스가 주목한 것은 당시의 그와 같은 사회적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을 비판한 것은 정당한 것입니다. 맑스의 공적으로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과 그의 사상의 문제점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맑스는 개개의 자본가를 국가라는 유일한 자본가에 의해 대체한다면 자본주의가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은 맑스가 가지고 있었던 헤겔적 세계관에 의한 것일 겁니다. 헤겔은 국가를 신(神)과 같이 우러러보았으니까요. 맑스의 자본론을 읽으면, 거기서 맑스가 일종의 기묘한 환상적인 자세로 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선 세계혁명이 일어난다. 이것은 일으키는 게 아니라, 자연히 일어난다고 맑스는 생각했습니다. 세계혁명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일어나고, 거기에서 새로운 인간이 태어난다라고 맑스는 쓰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인간이 무계급사회를 건설합니다. 이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려고는 하지 않고, 맑스는 어디까지나 지평선의 일출을 환시(幻視)하듯이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냥 환상일 뿐, 실제로는 새로운 인간은 태어나지 않고, 태어난 것은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관료주의였습니다.


맑스의 최대 오류는 자본주의를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았던 점입니다. 맑스가 하려고 했던 것은 자본주의를 국가에 위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우리가 과거 70년간 쌍둥이처럼 가지고 있었던 것은 민간자본주의와 국가자본주의였습니다. 어느 것이든 모두 자본주의이며, 그 밖의 다른 시스템은 아니었습니다. 사회주의가 붕괴한 원인은 여기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엔데는 마지막으로 예언적인 말을 하였다. 낙관적인 게 아니었다.


― 이 시스템의 필연적인 결과를 확실히 볼 수 있게 되기 전에 이성과 이해로써 이 자본주의시스템이 개혁되리라는 환상을 나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역사상 흔히 그래왔듯이 이성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지 않는 경우, 결국 재난이 일어납니다. 인간이 야기한 재난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 재난은 우리의 자손들이 이 행성 위에서 살아가는 것을 어렵게 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저주하게 되겠지요. 그건 당연합니다. 내가 작가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자손들이 우리들과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새로운 사고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개별적인 문제였던 것들이 점차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근대 자연과학의 문제로부터 사회심리, 종교, 문화, 경제 등, 문제는 모두 관련되어 있습니다. 무엇인가 하나의 문제를 다루려고 하면 다른 문제가 부상하여, 모든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곤란하지만, 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성이 함락될 때와 같이, 어떤 성벽의 문으로부터 밖을 보더라도 거기에는 적군이 이미 둘러싸고 있습니다.


돈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당연히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돈에 관한 사색은 《모모》에서 시작되었다


엔데가 사망했을 때, 독일 대통령 로만 헤르초크는 “현재의 독일인으로서 엔데의 책과 함께 성장한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라고 했다. 이 말에는 전후 독일의 국민적 작가가 된 엔데에 대한 깊은 애정이 넘치고 있다.


1973년에 발표된 엔데의 작품 《모모》는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으로 600만부가 발행되었다. 엔데의 작품은 아동문학이라는 틀을 넘어 폭넓은 연령층의 독자들에게 읽혀왔다.


《모모》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어느 큰 거리의 오래된 원형극장에 한 여자아이가 어딘가로부터 나타나 여기서 살고자 한다. 모모라는 이름의 이 소녀는 가만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 그 사람들이 자기자신을 되찾게 하는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있다.


가난해도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앞에, 어느 날, ‘회색의 남자들’이 나타난다. 시간저축은행으로부터 왔다는 이 회색의 남자들은 실은 사람들에게서 시간을 뺏아가려는 ‘시간도둑’들이었다. 시간을 절약해서 시간저축은행에 시간을 예치해두면 이자가 이자를 낳아서 인생의 몇십배나 되는 시간을 만들 수 있다고 하는, 회색의 남자들의 교묘한 말에 넘어가서 사람들은 여유가 없는 생활에 쫓기게 된다. 그리고 시간과 함께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는 인생의 의미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모모는 도둑맞은 시간을 사람들이 되찾을 수 있도록 예지의 상징인 불가사의한 존재,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와 함께 회색의 남자들과의 결사적인 싸움에 도전한다.


일해도 일해도 어째서 여유롭게 되지 않는가. 물질적인 풍요로움과는 반대로 갈수록 마음속에 퍼지는 공허감…. 엔데의 《모모》는 시간의 진정한 의미, 여유롭게 사는 것의 중요함을 강력하게 호소하여 세계의 많은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엔데 자신은 어떤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은 《모모》에 대해서 칭찬을 하지만, 피상적인 이해밖에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두가 칭찬하는 내용은, 내가 《모모》를 통해서 현대사회에서 누구라도 바빠서 ‘시간’이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에 주의를 환기했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사람들의 스트레스 상태, 세상의 경황없이 분주한 상황을 경고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로서는 조금 다른 것을 말하고자 하였습니다.

엔데가 《모모》에서 말하고자 한 ‘조금 다른 것’은 무엇이었을까.


독일의 경제학자 베르너 온켄은 《모모》의 우화 이면에 현대의 경제시스템에 대한 엔데의 문제제기가 묘사되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그것을 엔데에게 편지로 적어 보낸 최초의 인물이다. 1986년, 엔데의 《모모》를 읽은 온켄은 거기에는 ‘시간과 함께 가치가 감소되는’ 실비오 게젤의 자유화폐이론과 루돌프 슈타이너가 제창한 ‘노화하는 돈’이라는 아이디어가 묘사되어 있다고 느끼고, 그것을 〈경제학자를 위한 《모모》〉라는 논문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엔데 본인에게 서신으로 자기 생각이 바른지 어떤지 물었다. 엔데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친애하는 온켄 씨! 편지와 에세이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책을 이 정도로 잘 이해해주시고, 특히 신비주의와 경제적인 배경에 대해서 이해해주셔서 매우 기쁩니다. 노화하는 돈이라는 개념이 내 책의 배경에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은 당신이 처음입니다. 바로 이 슈타이너와 게젤의 생각을 이 수년간 나는 집중적으로 학습했습니다. 동시에 돈의 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들의 문화에 관한 모든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경제학자를 위한 《모모》’


온켄은 《모모》에서 무엇을 읽어냈던가. 온켄의 논문 〈경제학자를 위한 《모모》〉의 일부를 소개한다.


마이스터 호라와 모모, 이 두사람의 대화에는 이론을 수집하는 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경제문제에 관한 심원한 진리가 감추어져 있다. 모모는 마이스터 호라에게 “회색의 남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회색 얼굴을 하고 있는가요”라고 묻는다. 마이스터 호라는 대답한다. “죽어있기 때문에, 생명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야. 너도 알 거야. 그들은 인간의 시간을 도둑질해서 살고 있어. 그러나 이 시간은 진짜 주인으로부터 떨어지면 문자 그대로 죽어버리는 거야. 인간이란 하나하나가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어. 그리고 이 시간은 진실로 자신의 것인 동안에만 살아있는 시간인 거야.” “그럼 회색의 남자는 인간이 아닌가요?” “진짜 인간일 리는 없어.”


회색의 남자들은 부정한 화폐시스템의 수익자에 불과하다. 그 화폐시스템은 본래 인간에게 갖추어져 있는 게 아니라, 자연계의 밖에 있는 것으로, 화폐를 ‘동결’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만일 시간을 도둑질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되나요?” “그러면 원래의 무(無)로 돌아가 소멸되고 말아.”


달리 말하면, 자연에 적합한 화폐시스템이 실현되어 회색의 금리생활자들이 이자를 통해서 인간으로부터 시간을 도둑질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면, 그들은 인간존재로서가 아니라 부정한 시스템의 수익자로서 ‘안락사’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인간에 대한 화폐의 권력과, 화폐를 인간의 봉사자가 되게 만든 어린 소녀, 모모에 대해서 쓴 미하엘 엔데의 판타지소설은 완성된 미를 갖춘 문학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은 미약한 세력이지만, 사회의 건전화(健全化)를 추구하는 경제학자 그룹에 대해서 문학가의 나라로부터 제공된 이 힘찬 지원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기대를 품게 한다. 경제학자 나라의 정신적 경지(耕地)는 판타지에 찬 이 동화를 읽음으로써 서서히 경작되어 자연의 섭리에 맞는 화폐라는 이념이 ‘오늘의 나라’에 있어서도 결국 훌륭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온켄이 게젤의 이론에 주목한 것은 1980년대였다. 에콜로지운동의 고조 속에서 태어난 녹색당은 게젤의 이론을 연구,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창설되었다. 그 중심이 되었던 게오르그 오토는 게젤의 화폐이론과 토지제도개혁을 녹색당의 기본노선의 하나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 후 당의 확대와 함께 분열, 오토는 당으로부터 이탈했지만, 이 때문에 다시 한번 게젤의 이론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온켄도 이러한 에콜로지운동의 흐름 속에서 게젤의 이론과 만났다. 당시, 온켄은 교사를 지망하고 있었는데, 게젤 이론을 통해서 경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신고전파 경제학과 맑스주의를 넘은 제3의 길로서 게젤의 이론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싶었다. 그러나 게젤의 이론은 당시 대학에서도 연구되지 않는 잊혀진 경제사상이었다. 온켄은 흩어져 있던 게젤의 저작을 열심히 모았다. 그것이 10년의 세월을 거쳐서 ‘게젤 전집’이라는 형태로 결실되었다. 1990년대로 들어와서 독일에서는 ‘교환링’이라고 불리우는 지역통화가 시민들 사이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온켄은 이러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게젤의 이론이 계승되어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엔데의 작품은 상식이 된 가치관이나 시스템을 계속 묻는 것으로써 새로운 의식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 지금 글로벌화나 시장원리주의라는 이름하에 맹렬한 속도로 사회가 변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도 그것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잃었기 때문에 게젤 이론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확대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에 직면해서 이 사상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중앙정치적인 규모에서 변혁을 이루어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소규모의 ‘교환링’ 등 풀뿌리운동을 통해서 사람들의 가치의식을 변혁시키는 것이 오늘날의 최대 과제가 아닐까요.

엔데는 변혁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의지처가 되어있다. (김형수 옮김)


(이 글은《녹색평론》제114호 2010년 9-10월호에 실린 글로서 <돈을 근원적으로 묻는다>에 있는 내용을 옮겨온 것 입니다. 아직 지적 재산권에서 자유로운 문서는 아니지만, 좋은 내용이 멀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원저작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싣습니다. – 2011년 1월 4일 CET, 직지지기 김민수.)


출처: http://www.jikji.org/%EB%8F%88%EC%9D%84%20%EA%B7%BC%EC%9B%90%EC%A0%81%EC%9C%BC%EB%A1%9C%20%EB%AC%BB%EB%8A%94%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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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호 평전- 사회변혁을 꿈꾼 민중경제학자의 삶

조용래 (지은이) | 인물과사상사




‘경제민주화 주장’ 유인호 교수, 평전으로 기리다

20주기 기념 추모집도 발간… 민중경제학자의 삶 재조명


“어느 날 목사님들이 모여 ‘유 교수는 자본주의가 망한다고 얘기한 지 20년이 지났는데 아직 망하지 않은 걸 보니 거짓말 아니냐’고 농을 걸었습니다. 교수님은 되레 ‘목사님들은 예수 재림을 20년 가까이 주장하고 있는데 내가 한 것이 무슨 대수냐’는 위트를 보여줬어요. 자본주의 위기가 세계적 규모로 퍼지고, 종주국인 미국에서조차 이대로는 안 된다고 하니 교수님의 예언에 가까워진 셈입니다.”


김병태 건국대 명예교수는 민중경제학자 일곡 유인호 전 중앙대 교수(1929~1992)를 이렇게 회상했다. 지난 5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는 유 교수의 20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330㎡(약 100평) 규모의 행사장은 앉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가득 들어찼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함세웅 신부, 박형규 목사, 한승헌 변호사,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김세균 서울대 교수 등 많은 이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추모식에 이어 고인의 삶과 사상을 집대성한 <유인호 평전>과 지인들의 추모사를 엮은 <진보를 향한 발걸음>(각 인물과사상사)의 출판기념회도 함께 열렸다.


무엇이 오랜 세월을 지나고도 그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일까.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경제민주화를 처음으로 제기한 학자가 바로 유 교수였다. 재벌을 비롯한 소수 1%의 정치·경제적 장악력이 강해졌고, 중소상공인·자영업자·노동자·농민의 생활이 어려움을 더해가고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평전을 집필한 조용래 박사는 “한국경제는 유 교수가 본격적으로 주장을 펴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 줄곧 제기해 온 문제군(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유 교수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당면 과제로 경제민주주의 실현을 꼽았다. 1980년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뒤 ‘서울의 봄’이 일어나자 유 교수는 유신헌법을 폐기하고 새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경제 기본권 7가지 규정’을 제기했다. 여기에는 ‘국가 권력은 경제력 집중을 막을 제도적 장치를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그의 사상은 ‘박정희 신화’를 만들어낸 고도성장의 허상을 지적하는 데서 비롯됐다. 유 교수에게 당시의 성장은 자본과 기술, 시장을 외국에 의존한 ‘종속적’인 성장에 불과했다. 수출과 국민총생산(GNP)이라는 숫자 증대에만 매달리면서 재벌을 비롯한 일부의 배만 불리고 대다수를 피폐하게 만드는 허깨비뿐인 성장이었다. 대신 유 교수는 “진정한 의미에서 생활경제의 풍부함”(김종걸 한양대 교수)을 이야기했다. 그는 ‘민중’ ‘민족’ ‘민주’의 경제학자로 불렸다. 대다수 민중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민중경제’, 세계화 시대에도 강력한 국내 자본을 육성하는 ‘민족 경제’가 돼야 하고, 그 모든 것을 추진하는 데 ‘민주적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961년 5·16 쿠데타가 벌어진 뒤 박정희 군부세력은 정유공장을 세우기로 하고 당시 동국대에 재직하던 32살의 유 교수에게 계획안을 맡겼다. 유 교수는 외자를 일절 배제하고 순수한 민족자본으로 건설할 것을 주장했으나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안에 밀려 채택되지 못했다. 훗날 1970년대 유신경제가 수출은 16억달러에서 150억달러로 늘었지만, 외채를 220억달러나 도입해야 했으며 무역적자도 136억달러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유 교수의 혜안을 보여준다.


유 교수는 ‘국내 자원 활용 주도형’ 경제 발전을 주창했다. 그는 ‘자본주의적 기업농’ 육성책에 반대해 ‘농업 협업화를 통한 농민들의 연합’을 주장했다. 농민들이 일정한 토지와 농기구를 공동 소유하고 생산의 결과를 나눠가지는 방법이다. 유 교수는 새마을 운동을 농업 협업화의 방향으로 전개하자고 박정희 정부에 건의했으나 정치적 목적을 우선한 집권세력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는 재벌을 소규모 기업들로 해체하기보다 재벌의 소유를 ‘총수’로부터 ‘사회’로 귀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을 국유화시켜 관료들에게 맡기는 방법이 아니다. 농업 협업화처럼, 공장도 구성원들에게 운영을 맡기는 소유의 민주화를 뜻한다. 리쓰메이칸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공부한 유 교수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구소련식의 계획경제가 아니었다. 

계급이 사라진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 이루는 사회에 가까웠다.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일곡은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명료하게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고 표현한다.

 

   

▲ 1974년 10월 한 일간지에 ‘연료정책의 모순’이라는 칼럼을 쓰기 위해 연탄공장을 찾은 유인호 교수. 유 교수는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 인물과사상사 제공


유 교수는 자신의 최대 연구과제가 “나와, 겨레와, 인류의 가난과 슬픔과 비참을 극복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했다. 그는 실천하는 지식인이기도 했다. 1980년에는 민주화를 촉구하는 ‘134인 시국선언’을 주도했다가 신군부가 만들어낸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추모집에서 “민중을 위한 스스로의 학문적 신념을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 고행의 길을 살다 간 용기있는 사람”이라며 “그 발자취가 역사의 한 구석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 글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졸업생 황경상 기자가 경향신문에 보도한 기사를 전재한 것입니다.

출처: http://www.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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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의미하는 economy라는 단어는 원래 '집안 살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oikko nomos'라는 그리스 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러한 경제학은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사용하여 같은 자원으로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낼지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 사람들은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가

1.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우리가 무엇을 얻고자 하면, 대개 그 대가로 무엇인가를 포기해야한다. 의사 결정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대신 다른 어떤 목표를 포기해야한다.
여기서 생각해야할 점이 어떻게 희소자원으로부터 최대의 효과를 얻는 지(효율성), 희소자원의 활용에서 얻어지는 이득을 사회구성원에게 공정하게 분대하는지(공평성) 생각해보아야 한다.

2. 선택의 대가는 그것을 얻기위해 포기한 그 무엇이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기 때문에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대안을 선택할 경우의 득과 실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어떤 선택의 대가는 그리 분명하지 않다.
한마디로 우리는 선택할 때 기회비용(어떤 선택을 위해 포기했던 다른 선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고려하여 선택을 해야 한다.

3. 합리적 판단은 한계적으로 이루어진다.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사람들이 합기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한다. 합리작인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활용하여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이미 하고 있는 행동이나 가지고 있는 현재의 계획을 조금씩 바꾸어 적응한다. 이것을 한계적 변화라고 부른다. 여기서 한계적 변화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의 맨 끝부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뜻한다. 합리적인 사람은 한계적 변화의 이득과 비용을 비교해서 현재 진행중인 행동을 바꿀 것인지 판단을 내릴 것이다.

4. 사람들은 경제적 유인에 반응한다.
경제적 유인이란 사람이 행동하도록 만드는 그 무엇을 의미한다. 합리적인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하고자 할 때 그 행동에 따른 이익과 비용을 비교해서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경제적 유인에 반응한다.


- 사람들은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5. 자유거래는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한다.

6. 일반적으로 시장이 경제활동을 조직하는 좋은 수단이다

7. 경우에 따라 정부가 시장성과를 개선할 수 있다.
시장의 보이지 안는 손이 그렇게 위대하다면, 정부가 왜 필요한가?
특히 중요한 것은 재산권이 보장될 때만 시장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정부는 재산권을 보장하고 치안 유지를 통해 그것을 지켜준다. 또, 환경오염등의 외부효과를 제어하여 경제적 후생을 증가시키기 위해 정부가 필요하다.

- 나라 경제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8. 한 나라의 생활수준은 그 나라의 생산능력에 달려있다.

9. 통화량이 지나치게 증가하면 물가는 상승한다.

10. 단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과 실업 사이에 상충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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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용인 2008.11.18 07:15 신고

    잘보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


뉴딜 경제학.

Everybody’s talking new New Deal these days — and, predictably, the FDR-haters are out in force, with all the usual claims about FDR having actually made the Great Depression worse. (To the right, way back when, FDR was “That Man.” Now Obama is “that one.” Interesting.)
요즘 모든 사람들이 뉴딜이란 이야기를 한다-그리고, 예상대로,프랭클린 댈라노 루즈벨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루즈벨트가 실제로는 대공황을 더 심하게 만들었다는 통상적인 주장에 총력을 기울인다.
(우파들에게는, 역사를 되돌아가 보면,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그 남자"였고, 지금 오바마도 "그 남자" 라고 불린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Eric Rauchway is all over this. Basically, the anti-FDR argument on the data is based on (a) considering people employed by the WPA “unemployed” (even though they were getting paid, and building public works that are in use to this day) plus (b) always focusing on 1938 — the year in which the economy suffered a serious setback from the progress of the previous four years.
에릭 라우치웨이는 이 모든 것을 끝장냈다.
기본적으로, 자료에 의한 안티루즈벨트 투쟁은 1935년에 만들어진 사업진흥청에 고용된 사람들이 "비고용상태"(이 시대에 하던대로 공공사업을 일으켜서,그들이 급료를 받고있었음에도 불구하고)였다는 것을 고려하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

Let me offer two pictures, beyond what Eric provides, to clarify things.
두개의 그림을 제시하겠다, 에릭이 제시하는 것을 넘어서, 문제를 명확히 하기위해.

First, here’s real GDP (in logs) from 1929 to 1941, plus the trend. (That’s to bypass the employment nonsense). You can see that the economy made up a lot of the output gap before the 1938 setback, but by no means all.
첫째로, 여기 1929년부터 1941년까지의 진짜 국민총생산(기록들에 나온대로),거기에 추세선을
추가한다.(그것은 고용 넌센스를 우회하기 위해서다.)
당신은 경제가 무슨일이 있어도,1938년의 후퇴 이전까지 아주 많은 산출량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Incomplete recovery
불완전한 회복
Now, you might say that the incomplete recovery shows that “pump-priming”, Keynesian fiscal policy doesn’t work. Except that the New Deal didn’t pursue Keynesian policies. Properly measured, that is, by using the cyclically adjusted deficit, fiscal policy was only modestly expansionary, at least compared with the depth of the slump. Here’s the Cary Brown estimates, from Brad DeLong:
이제, 당신은 케인즈의 재정정책은 효과가 없는,마중물을 붓는 식의 불완전한 회복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것이다.
뉴딜은 결국, 부채슬럼프와 비교되는, 조심스러운 확장성의 순환적인 적자 조절을 이용한 것이며,케인즈 정책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맞는 말이다.
여기 캐리 브라운의 판단이 있다.그의 자료로 부터.


Limited fiscal force
한정된 재정압박

Net stimulus of around 3 percent of GDP — not much, when you’ve got a 42 percent output gap. FDR might have been more of a Keynesian if Keynesian economics had existed — The General Theory wasn’t published until 1936.
국민총생산의 3%정도를 가지고, 경제망을 자극해서42%의 산출량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그리 많은 투자량이 아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만약 케인즈 경제학이 존재하긴 했는지 몰라도, 케인즈보다 훨씬더 능력있었다.-케인즈의 '일반이론'은 1936년에는 출판 되지도 않았었다.

Note in particular that in 1937-38 FDR was persuaded to do the “responsible” thing and cut back — and that’s what led to the bad year in 1938, which to the WSJ crowd defines the New Deal.
책임있는 예산삭감을 하기 위해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1937년에서 38년의 기간에 설득했던 것을 자세히 주목하라-그리고 그것은 월스트리트 저널 무리들이 규정한 뉴딜인- 38년의 경기 후퇴를 초래한다.

Implications for Obama: be inspired by FDR, but don’t imitate him slavishly. In particular, your economic policy should be bolder, not more cautious.
오바마를 위한 함축:
프랭클린 루즈벨트에게 영감을 받아라,
그러나 그를 맹목적으로 모방하는 이미테이션은 되지 말아라.
자세히 말하면,
당신의 경제정책은 더욱 대담해야한다,더 조심성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역자 요약:
폴 크루그먼은 뉴딜정책이 실패라는 사실이 거짓이라는 것을
자료를 통해 반박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오바마가 프랭클린 루즈벨트 보다 더 무거운 짐을 졌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지금의 이 위기가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겪었던 '대공황' 보다
더 심한 것이 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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