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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지렁이 - 에이미 스튜어트 Amy Stewart

by 성공의문 2012. 3. 8.


원제 The Earth Moved : On the Remarkable Achievements of Earthworms (2004년)
지렁이, 소리 없이 땅을 일구는 일꾼 
에이미 스튜어트 (지은이) | 이한중 (옮긴이) | 달팽이 | 2005-04-30

 
생명을 무엇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생명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 중에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지구상의 생명은 순환이다. 끊임없이 순환하기 때문에 생명은 지속가능한 것이다. 순환이 되지 않으면 생명은 함께 공멸한다. 그러기에 지구상의 생명들을 따로 구분하여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특히 특정 종을 만물의 영장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차별적 표현을 하는 것은 전혀 무의미한 말이다. 생명은 모두 나름의 존재 의의를 가지고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생명은 끊임없이 종의 경계를 넘어서 순환하여야만 지속가능할 수 있다. 순환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이루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만 다시 그것을 바탕으로 순환의 고리가 이어진다. 가령 초원에는 기린도 있고 코끼리도 있고 사자도 있다. 그 각각의 생명들이 온전히 제 삶을 영위하는 것은 중요한 일다. 그리고 그 종들이 시간의 흐름을 초월하여 생존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새끼들이 그가 머물던 그 곳에 번성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가 되면 죽고 그 개체는 순환의 고리 속으로 스며들어가야 한다. 지금 살고 있는 기린이나 코끼리 또 사자가 순환의 흐름 속으로 녹아들어가지 못하고 온전히 남아 있게 된다면 지구는 사체가 쌓여 있는 행성이 되고 말 것이다. 

죽은 커다란 사체는 작은 육식동물들을 살리고 그리고 그 나머지는 곤충을 비롯한 수많은 생명들에 의해서 분해되어 다시 순환의 고리 속으로 스며든다. 이렇게 생명의 순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눈에 두드러져 보이는 커다란 동물들이 아니다. 생명의 순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생명체들이다. 이러한 작은 생명체들이 있기 때문에 생명은 끝없이 순환할 수 있는 것이고 인간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들 또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울창한 숲이 있다. 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이 시간이 흘러 늙어서 죽은 후에 썩지 않고 그곳에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 숲은 죽은 고목만 가득한 숲이 되고 다른 나무들은 자리를 잡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흰개미를 비롯한 많은 곤충과 곰팡이들이 이 나무를 갉아 먹고 썩게 만들어서 흙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기 때문에 다음 세대의 나무들이 그것을 자양분으로 하여 성장을 할 수 있게 된다. 진드기나, 개미, 거미, 노래기, 전갈, 딱정벌레, 쥐며느리, 톡토기, 바퀴벌레와 같이 숲 속의 벌레들은 낙엽이나 나무껍질 부스러기 등의 유기물을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생명의 순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눈에 띄는 거대한 덩치의 생명들이 아니라 소위 우리가 미물이라고 표현하는 그 작은 생명체들이다. 그 생명체들 중에 하나로 지렁이가 있다. 지렁이의 역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에이미 스튜어트는 수천 마리의 지렁이를 키우고 관찰하여 『지렁이, 소리 없이 땅을 일구는 일꾼』라는 책으로 엮었다. 

도시의 아파트에서 살다보면 지렁이를 접할 일이 흔하지 않다. 그런데도 비가 많이 온 다음날 아침에 길을 나서면 도로 곳곳에 많은 지렁이들이 나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어디에 있다가 나왔을까 싶은 그 큼직한 지렁이들은 햇살이 따가와지면서 흙 속으로 들어가는 것들도 있지만 간혹 햇살을 피할 곳을 찾지 못해 말라 죽기도 한다. 왜 비온 다음 날 지렁이들은 땅 위로 나와서 죽음을 당하는 것일까? 이런 간단한 의문이 이 책을 읽으면서 풀렸다. 지렁이는 땅 속에 굴을 파고 다니면서 산다. 땅 속의 좁은 굴에서 살다보니 공기가 희박하다. 그런 환경에서는 사람과 같이 폐로 호흡을 하는 방식은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지렁이는 온 몸으로 피부 호흡을 한다. 그런데 땅이 물에 잠기면 피부 호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물을 피해서 땅 위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익사하고 만다. 땅 속에 사는 지렁이가 물에 빠져 익사를 한다니? 당연히 지렁이도 호흡을 하는 생명이기에 물에 빠지면 익사를 한다. 그런데 지렁이가 익사를 한다는 것도 새삼스러워 보인다. 그만큼 지렁이를 비롯한 많은 작은 생명들에 대하여 우리는 모르고 살고 있다. 

지렁이는 줄지렁이와 붉은큰지렁이, 희색지렁이가 있는데 비오는 날 땅위에서 눈에 많이 띄는 지렁이는 붉은큰지렁이다. 지렁이는 밭 흙 4천 평방미터에 100만 마리 이상이 살 수 있으며 일년에 18톤의 거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들이 주로 하는 일은 낙엽 등 식물의 잔해를 먹어서 분해시키고, 흙의 거친 입자를 부드럽고 작게 만들며, 창자분비물로 흙을 적시는 것이다. 지렁이는 땅의 성분을 바꾸고, 물을 흡수하고 저장하는 능력을 향상시키고, 영양분과 미생물을 늘어나게 해준다. 이것은 앨리스 아웃워터이 쓴『물의 자연사』에서 프레리도그가 아메라카 대륙에서 했던 역할과 같은 것이다. 이 동물들은 땅에 무수한 구멍과 굴들을 만들어서 빗물이 강으로 바로 흘러 내리지 않고 땅 속으로 스며드는 역할을 한다. 이런 식으로 지렁이는 흙을 농사짓기 알맞게 해준다. 나일 강에 사는 지렁이는 4천 평방미터당 1천 톤에 달하는 똥을 내놓을 수 있다. 지렁이 한 마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아 보인다. 하지만 수 만마리의 지렁이가 하는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 지렁이의 힘이란 개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역량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는 이집트 농경지의 비옥함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지렁이는 한 해에 어느 정도를 이동할까? 비가 많이 온 날 보도로 나온 지렁이는 의외로 많은 거리를 이동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땅 속에 사는 지렁이는 일년 동안 몇 미터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정확히 얼마만큼의 거리를 이동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지렁이를 연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 속에 있는 물고기나 하늘의 새들은 학자들이 다가가서 관찰을 할 수 있지만 그들은 흙 속에 있기 때문이다. 지렁이를 실험실의 유리관에 넣어 관찰을 하는 경우 바뀐 환경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 연구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아직도 지렁이에 대해서는 많은 것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지렁이는 토양을 개선하는 데 탁월한 역할을 한다. 19세기 유럽에서 뉴질랜드로 이주한 정착민들은 목초지에다 들지렁이들을 1평방미터 당 25마리 꼴로 섞어 넣자 땅속에 새로 들어온 지렁이의 패턴을 따라 땅위의 푸른 식물들이 건강하게 자라게 되었다. 지렁이를 도입한 지 처음 몇해 안에 농지와 목초지의 생산성은 70퍼센트나 늘어났다. 줄지렁이는 탄산칼슘을 분비하는 샘을 가지고 있어서 먹이 속의 칼슘 성분을 처리하여 그 여분을 똥으로 배설한다. 칼슘은 식물의 생장에 필수적인 것으로 식물이 질소를 받아들이게 해준다. 질소는 잎의 생장을 촉진해주며, 단백질 합성과 식물의 기타 필수적인 기능을 도와준다. 붉은큰지렁이는 굴 속에 살다가 밤이면 지면으로 올라와 낙엽을 땅으로 끌어들어가 먹는다. 그리고 식물의 성장에 유익한 많은 분변토를 만들어 놓는다. 지렁이 굴의 내벽에는 박테리아와 균류가 풍부하다. 이는 지렁이가 배설하는 특별한 점액질, 그리고 지렁이가 흙속을 돌아다닐 때 남기는 자취가 섞인 결과다. 

하지만 지렁이가 모든 토양에 유익한 것은 아니다. 미네소타 연구팀이 알아낸 바로는 지렁이는 단 한 철에 숲에 떨어진 낙엽을 몽땅 먹어치울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먹어치우기도 한다. 작은 식물들과 어린 나물들은 촉촉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나며 서서히 썩어가는 숲의 바닥층에서 잘 자란다. 이 썩은 나뭇잎 층은 여러 해에 걸쳐 만들어진다. 이 속에는 여러 분해 단계의 온갖 낙엽과 다른 유기물들이 들어 있다. 토착식물들 중 상당수는 환경의 영향을 받아 발아를 하는 씨앗을 생산해 낸다. 씨앗 하나가 발아하는 데 2~3년이 걸릴 수 있으며, 이 폭신폭신한 썩은 나뭇잎 층에 의존하는 복잡한 순환을 거치게 된다. 숲에서 그런 역할을 해주던 바닥층이 지렁이에 의해 사라지게 되면서 대부분의 작은 식물들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지렁이는 퇴비더미에 있으면 아주 좋다. 농사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한다. 흙을 섞어주기도 하고, 영양분을 보태주기도 한다. 그러나 지렁이가 없이 진화해온 숲에는 지렁이가 토착식물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지렁이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지렁이를 이용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고 실제로 실용적으로 이용하는 곳들도 있다. 그 중에 한 곳이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이나 유제품 공장이나 축산 농장에서 나오는 동물 배설물을 처리하는 일이다. 미국의 메리 아펠로프씨는 지렁이를 이용해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을 정리하여 『지렁이가 우리집 음식물쓰레기를 먹네』라는 책자를 만들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난지하수처리사업소에서는 지렁이를 이용해 오니를 처리하고 있다. 

『종의 기원』을 쓴 다윈은 만년에 지렁이를 관찰하고 연구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이러한 연구로 1881년 『지렁이의 활동에 의한 부식토 형성』을 출간하였다. 그 책에서 다윈은 지렁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그들이 주로 하는 일은 흙의 거친 입자를 더 부드럽게 체질하듯 걸러내고, 식물의 부스러기를 흙 전체와 섞고, 창자 분비물로 흙을 흠뻑 적셔버리는 것이다. … 이런 사실들을 고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 앞으로 나처럼 자연에서 지렁이가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는 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생명은 순환이다. 지구상의 생명들은 살아가는 과정도 그러하지만 마지막 죽는 순간도 다른 생명을 살리는 과정이 된다.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하다는 우리 인간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명들의 지속가능한 순환을 위하여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해를 그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