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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막장 드라마의 공통점이 뭡니까? 클라이맥스에 가면 출생 비밀이 밝혀지죠. 대한민국 헌법 출생 비밀이 그거예요.”

지난 16일 SBS 스페셜 ‘헌법의 탄생’ 편에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지적이다.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당시 여당은 박근혜라는 권력자의 문제보다 대통령제의 문제가 더 큰 것처럼 주장했다. 개헌 이슈를 던지며 국면을 전환하려 했지만 이는 실패했다. 이승만 이래 권력을 연장하려는 권력집단은 모두 개헌을 말했고, 그들이 말하는 헌법에 국민의 삶은 빠졌다. 어느덧 한 세대가 지난 1987년 체제 역시 마찬가지다. 


▲ SBS 스페셜 '헌법의 탄생' 편 화면 갈무리

SBS 스페셜 취재진은 현행 헌법이 만들어질 당시를 추적했다. 1986년 유럽 순방을 마친 전두환은 갑자기 의원내각제 개헌안 마련을 명령했다. 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이 다수당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정권을 연장해보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마땅치 않자 1987년 4월13일 대통령을 간선제로 뽑는 당시 헌법을 유지하겠다는 ‘호헌 조치’ 입장을 밝혔다.  

전두환 정권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고 두 달 만에 수도 서울은 직선제를 바라는 시민들로 가득 찼다. 6월29일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개헌을 말했고 전두환이 이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개헌이 이루어졌다. 국민의 강렬한 요구 직후에 진행된 개헌이었기에 시민들은 희망을 품었지만 일각에서는 ‘6·29는 속이구’라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 막강했던 군부가 왜 시민들 뜻을 받아들일까?

당시 최영철, 이용희, 박용만, 이중재 등 전두환·노태우 측과 김대중 측, 김영삼 측 여야 대표 8인이 모여 새 헌법안에 대해 협상을 진행했다. 87년 6월까지 시민들이 권력을 견제하며 들고 일어났지만 그 결과물인 헌법은 권력자들끼리 정하는 꼴이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이 원하는 대로 헌법은 개정됐다.


▲ SBS 스페셜 '헌법의 탄생' 편 화면 갈무리

“김영삼, 김대중이나 우리 당 노태우 대표나 협상 안건에 관해서 세세한 걸 따지질 않더라고. 빨리 빨리 끝내라는 거야 대통령 하고 싶어서 그러는지 시시한 거 가지고 다투지 말래. 노태우 대표는 상당히 직선제 꺼려했어. 그러나 우리는 직선제 자신 있었다. 왜냐하면 6·29 선언 안에 DJ 사면복권한다는 게 들어가 있어. 신의 한수야, 그야말로.” (8인 회담 민정당 대표 이한동) 

“말이 개헌협상이지 정치협상이니까. 그 당시에는 첫째가 직선제고 둘째가 두 사람이 서로 한 번씩 가져와야 되겠다하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8인 회담 민주당 대표 이용희, DJ계)  

“노태우 당 대표에게 ‘직선제 해도 대통령이 될 테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라는 얘기를 내가 많이 했죠. 내가 그때 여론조사를 담당하고 있을 때인데 1노 3김 대입해도 노태우 씨가 38% 안에서 당선이 되게 돼있어요.” (당시 민정당 여론조사 담당 김종인) 


▲ SBS 스페셜 '헌법의 탄생' 편 화면 갈무리

오로지 대통령 임기만 중요한 논점이었다. 4년 중임제나 7년 단임제 따위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다음 대통령 할 사람이 너무 많이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5년 단임으로 합의를 봤고, 심지어 전두환은 5년 단임 직선제 개헌을 자신의 업적이라고 자화자찬했다. 민정당 측은 전두환의 지시로 전두환 퇴임 후 국가원로자문회의를 통해 정치 자문을 할 수 있는 제도를 헌법 안에 넣어 협상에 임했다. 


▲ SBS 스페셜 '헌법의 탄생' 편 화면 갈무리

87년 헌법을 더 꼼꼼하게 챙겼던 건 당시 야당 쪽이 아니라 전두환·노태우 쪽이었다. 헌법 협상지원반을 만들었고, 현경대 의원이 팀장이 돼 직선제였던 제3공화국(박정희 정권) 헌법을 참고해서 협상에 임했다. 군인·공무원 등이 국가에 배상청구를 금지하게 한 국가배상법이 3공화국에서 위헌 결정이 났는데 이 조항이 유신헌법에 헌법으로 들어왔고, 87년 헌법에도 포함됐다. 야당에서는 문제제기조차 없었고 1차에 바로 합의해줬다.  

군인 국가배상 금지법 뿐 아니라 대통령의 긴급명령권, 공무원 노조 금지,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권 등 87년 헌법에는 헌법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유신 헌법 조항들이 많이 있다.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바쳤고, 100만이 들고 일어나 바꾸자던 헌법은 여야 대표들이 정치협상을 벌여 49일 만에 완성했다.  

역사작가 심용환은 “유신시대는 끝났지만 헌정 질서 상으로 봤었을 때 박정희 시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며 “대통령이 하는 기본적인 행정 절차조차도 박정희 시대 때 아주 강고하게 설계됐다는 거, 지금 우리는 박정희 세계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은 대한민국 역사상 한 번도 헌법을 만져보지 못했다.


▲ SBS 스페셜 '헌법의 탄생' 편 화면 갈무리

헌법이 쉽게 권력자들의 기득권 연장 수단으로 이용됐듯 헌법 제정을 기리는 제헌절 역시 권력의 입맛대로 휴일 여부가 결정되고 있다. 1948년 7월17일 헌법이 제정된 뒤 바로 국경일이 됐고 1950년부터 법정공휴일이었지만 1990년 노태우 정부가 공휴일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5년 제헌절과 식목일을 법정공휴일에서 제외하기로 했고 2008년부터 시행돼 현재까지 5대 국경일(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중 유일하게 제헌절은 공휴일이 아니다.

헌법 주인은 여전히 권력이다. 권력이 던진 개헌이 다시 논의되고 있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SBS 인터뷰에서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킨다면 왜 그걸 국회로만 분산시키느냐, 왜 국민에게 가는 건 없느냐”며 “누구를 위한 권력분산이고, 어디를 향한 권력분산인가”라고 물었다. 박근혜 하나 없애자고 든 촛불은 아니었다. 권력자 교체 그 이상의 사회 ‘질서’를 바꾸는 선택을 고민할 때다. -출처: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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