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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막스 베버

by 성공의문 2008. 12. 26.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인문사회과학총서 1
막스 베버 (지은이), 박성수 (옮긴이) | 문예출판사
1904년에서 1905년에 걸쳐 쓰여진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20세기에 출현한 정신과학의 업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에 속한다. 이 책은 서구 학문의 경험적 실증적 연구의 축적 위에서 태어났으며, 따라서 이 책을 대하게 될 독자들은 서구 학문의 귀중한 보고의 하나에 입문하는 셈이다. 사회과학 역사과학 학습의 길잡이가 되며, 정신적 사상적 기초가 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다.


- 이하 리뷰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전망에 대해 맑스는 한 번이라도 상상해 보았을까? 전자본주의가 자본가와 노동자의 생산수단의 소유 문제에서 출발한다면 후기 자본주의는 자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자생력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자본주의의 기본 토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자본가의 형태가 고전적인 의미에서와 같이 한정적으로 논의하기는 쉽지 않게 되었다. 물론 노동의 관점과 시각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노동력으로 생활을 영위하면서 또 다른 자본을 소유하고 생산계급이면서도 자본가적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합리적 사고 방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21세기의 자본주의 경제를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는 경제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안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달라지지 않는다고 해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탄생한 20세기 초반과 비교한다면 현재의 상황에서 이 책은 무의미해 보인다. 그러나 베버의 사상이 현재적 의미를 갖는 부분은 경제와 자본주의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종교적 의미에서 바라본 자본주의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가 무엇인지, 칼뱅과 루터 그리고 가톨릭에서 말하는 노동과 직업의 소명 의식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로 이 책을 읽어야 했던 나는 이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구절과 구절의 의미는 물론 번역의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원전의 의미를 철저하게 그대로 옮겨 놓는 것이 번역이 아니라면 긴 문장을 나누고 다듬어 기본적인 이해가 가능해야 한다. 얄팍한 배경지식과 무식의 소치로 돌리기엔 번역된 문자이 주는 고통도 상당하다.

자본주의의 발달을 노동에 대한 직업 소명의식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탁월하다. 맑스가 이미 <자본론>을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해 놓은 시대의 저작이라면 1905년에 발표된 이 논문도 시대 상황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근대의 출발선 언저리에서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변화를 바라보는 막스 베버의 자본주의에 대한 관심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수많은 논쟁의 여지를 가지고 있는 종교의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바라보았던 베버의 진정한 의도는 찾을 수가 없다. 시대를 초월한 반론과 수많은 쟁점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연구를 유발했다. 청교도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노동과 자연스런 부의 축적을 자본주의와 연관지으려는 베버의 태도는 자본주의에 대한 오독으로 보여지기까지 한다. 기독교적 금욕주의에서 근대적 자본주의가 잉태했다는 베버의 주장이 여전히 타당한가?

노동과 직업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는 많이 달라졌다. 베버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돈벌이를 자신의 물질적 생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 자체로 여기는 것이다.’는 주장은 이제 설득력이 없다. 물질적 생활 욕구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상상을 초월하게 되었으며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되고 있다. 어떤 계층 어떤 계급에 속하든 물질적 부의 척도는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과 삶의 태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는 단순히 생에 대한 통찰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과 인간의 삶의 양태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반성적 관점에서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은 공허한 울림이 되겠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분명히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종교적인 질문도 세속적인 질문도 아닌 단순한 삶에 대한 자기 점검을 위한 질문일 뿐이다. 도구와 수단을 살펴보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삶에 대한 철학이 부재한 것은 아닌가. ‘유태교의 에토스는 한 마디로 말해 천민 자본주의의 에토스이다.’는 위험한 발언을 선언적으로 할 수 있었던 시대의 베버는 오히려 행복했던 것은 아닐까? 유태교에 대한 혹은 유태인에 대한 비하가 아니라 청교도주의에서 추구하는 직업과 소명 의식에 대한 반성으로 읽히는 이유는 현재의 자본주의가 베버가 비판했던 유태교의 에토스보다 악화됐다고 믿는 까닭이다.

시대가 변하고 시간이 흘러도 오로지 돈에 대한 집착과 인간의 욕망만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무조건 거부하거나 돈을 멀리하자는 멍청한 말이나 태도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와 태고 변화가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자본주의를 변화 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소박한 낙관주의일까?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아니라 그 어떤 대상과도 자본주의 정신은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다양한 관점과 생산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막스 베버의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번 쯤 떠올렸음직한 고민들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