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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세 아이들 그림

생후 7년까지 첫 주기의 발달 특성에 대해 이해한다면 학교에서 교사는 아이들을 완전히 다르게 인식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과 연결하여 수업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그림들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가져온 그림들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 속에는 대부분 비슷한 모티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이들의 그림들을 보며 “와! 참 잘 그렸구나.” 하고 생각할 뿐, 더 이상 그 그림을 가지고 뭔가를 하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의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갖고 있다면 금세 “아! 이 그림은 이런 의미였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그림의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을 만큼 자랐는가?’를 그림을 보면서 여러분과 엄격하게 짚어 보겠습니다.

아이들이 걷기 시작하는 때는 언제인가요? 빠른 아이인 경우 8-9개월에 걷기도 하고, 늦되는 아이는 1년이 한참 지나서야 걷기도 합니다. 그렇게 걷는 시기가 아이들마다 다른 것처럼 지금 보는 그림들은 꼭 특정한 나이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평균적인 시간 속에서 나타나는 그림들입니다.

아이들의 그림을 통해 아이들이 발달해 나가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따라가고자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들 그림의 발달 순서가 바뀌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가 갑자기 아플 경우에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가지고 아이들 그림들을 바라 봐야 합니다.

아이가 처음에 연필 같은 것을 쥐고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언젠가 누군가가 하는 행위를 봤기 때문입니다. 늘 모방을 하는 어린아이들은 행위와 움직임을 통해서 따라하고 배웁니다. 아이가 연필을 잡고 그리려고 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하는 것을 봤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시장 가기 전에 뭘 살까 메모하는 것을 아이가 봤다면 아이는 엄마가 했던 행위를 따라하려고 합니다. 이때 아이가 따라하는 것은 '오이, 당근, …' 등의 글자를 따라 쓰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행위, 동작 같은 움직임을 따라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처음으로 뭔가를 쥐고 그리려고 하는 행위를 본 적이 있나요? 이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이가 한 행위는 무엇입니까? 아이는 제일 처음 연필을 쥐고 (뭔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서 휘두르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처럼 종이에 흔적을 남깁니다. 물론 아이들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처음에 나타난 형태는 점 형태가 아니라 마치 점에 꼬리가 뻗은 것 같은 형태가 나타납니다. 아이는 허공에 모방적 행위를 하다가 우연히 종이와 만나는 것입니다.(그림1)

(그림1)

이 시기는 빠르면 8-9개월, 늦으면 1년이 지난 다음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시기가 지난 다음에는 의도적으로 뭔가를 표현합니다. 아이가 직접 종이에 그리려고 표현할 때 나타나는 것을 보면 두 가지 형태가 동시에 나옵니다. 이때 나타나는 것의 대부분은 왼쪽으로 그리는 형태로 나옵니다. (그림2)

(그림2)

다만 오늘날에 와서는 가끔 오른쪽으로 하는 아이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물질주의의 영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기에는 아이들이 어떤 색깔을 가지고 그리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뾰족한 물건을 찾습니다. 그것으로 그려낸 그림을 보면, 같은 것을 반복하지만 똑같이 만나지도 않으며 힘이 균등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때는 진하게 또 연하게도 나타나는데, 바로 여기에서 아이들의 역동성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색깔 크레파스를 주면 대부분 밝은 색부터 먼저 집고 그립니다. 그리고 그림은 점점 더 안으로 밀집해 들어갑니다. 마지막에 가서는 검은색이 되어 갑니다. 원들이 점점 밀집되어 작아져 가다가 언젠가는 점으로 찍기 시작합니다. (그림3)

(그림3)

점을 찍으면서 어떤 아이들은 “이건 나야, 이건 나야” 하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나이가 3세 때쯤입니다. “이건 나야” 하고 말하는 것은 ‘자아의식’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바로 이때부터 기억하기 시작합니다. 점의 시기가 나오기 전까지에 대해 우리는 기억을 잘 못합니다. 점이 나타난다는 것은 '첫 번째 자아가 태어났다', '이제 나는 지상에 도착해서 두 발로 섰어'라는 의미입니다. 만일 이것을 거꾸로 본다면 점 이전의 그림들에서 하는 행위는 '출생 이전의 것'을 행위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일러두기 : 본래 강연에서는 0세에서 7세까지를 (1) 0-2⅓세, (2) 2⅓-4⅔세, (3) 4⅔-7세로 세 주기로 나누었지만, 여기에서는 (1) 0-3세, (2) 3-5세, (3) 5-7로 바꾸었습니다. 통상적으로 쓰이는 시기에 따랐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난다는 것은 엄마와 아빠가 만나서 엄마의 몸속에서 커 가는 것입니다. 그 전의 인간 존재는 아주 넓고 굉장히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러한 존재가 커다란 작용에 의해 크게 원을 그리다가 이것이 점점 밀집해서 하나의 점으로 되는 것입니다. 저 먼 우주에서 이 지상으로, 인간이 육화되는 과정입니다. 우주적 존재였던 인간이 완전히 지상적 존재가 되는 것은 만 21세 정도가 되어서입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우주로부터 배꼽을 뗀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과정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우주의 법칙성에 의해서 지상으로 오다가, 이제 처음으로 ‘나는 지구에 도착했다’라는 의식과 함께 태어나는 그 순간, 바로 점의 순간입니다. 즉, 점으로 이루어지는 그림은 이런 면에서 '나는 우주적 존재였다가 이제는 지상적 존재가 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밀집된 그림은 밀집과 동시에 퍼져나가는 요소도 보입니다. 퍼져나가는 형태는 여러 모양이지만 대부분 나선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그리스 문화 유적 가운데에서 신전의 문양을 보면 나선형이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풀어져 나가는 그림이 많습니다.

나선형이 안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되어 가는 인간, 즉 육화과정'을 의미하며, 풀어져 나가는 것은 '탈육화되어 가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이런 면에서 아이는 항상 되어 가는 육화의 형태, 다시 말해 안으로 들어가는 나선 형태를 그리지, 풀어져 나가는 형태는 절대로 그리지 않습니다. (그림4)

(그림4)

나선 형태로 계속 들어오다가 끝을 선 같은 것으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나는 지상인 이곳에서 살고 싶다’라는 표현입니다. 아이들은 나선 형태를 계속 그리지는 않고 점차 원의 형태를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즉, 나선 형태로 가다가 끝 부분에서 나선 형태가 풀어지는데 그것이 점점 작아지다가 원 형태로 갑니다. (그림5)

(그림5)

어떤 그림에서는 원을 그리면서 원을 마무리하려고 노력한 것이 역력히 보입니다. 원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처음 시작한 데에서 만나려고 합니다. (그림6,7)

(그림6)

(그림7)

이렇게 원을 만드는 시기는 점을 찍는 시기와 똑같습니다. 원도 만나려 하고 동시에 점도 찍습니다. 점이라는 것은 '나'라는 의미이고, 원은 '내 주변, 집안에 내가 있다'라는 표현입니다. 색깔이 나오는 나선 형태를 그린 아이는 좀 더 자란 아이입니다. 그 전까지는 색깔의 차이를 모릅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어두움입니다.

저 밝은 빛이 있는 곳에서 이 어두운 지구에 왔다는 의미인데, 내가 지구에 도착함으로써 나와 내 주변의 관계를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점점 더 어두워졌다는 것은 내가 빛이 있는 곳에서 어두운 곳을 지나 지구에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아이는 밝은 색에서 시작해 점점 그림을 어둡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아이가 점을 찍을 수 있고 원을 잘 그릴 수 있습니다. 이때 배운 이것이 후에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도 점과 원을 잘 그릴 수가 있는 이유입니다.

색이 있는 나선 형태를 그린 그림을 보면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는데, 나선형을 파란색으로 색칠한 가운데에 ‘자기’를 나타내었다는 것입니다. (그림5 참조) 이때가 바로 머리 인간(머리만 있고 그것에서 손과 발이 나오는 그림)의 시기로, 나선 형태로 육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내가 지상에 왔다’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색깔을 쓰는 아이는 동그라미와 점을 온전하게 그릴 수 있는 아이입니다. 아이가 원과 점을 그릴 수 있다면 계속해서 끊임없이 이것을 그려 나갑니다. 3.7세가 되면 원 안에 작은 원이나 점들을 그리기도 하고 좀 더 나이가 든 아이(만 4세)는 원에다가 점들을 찍어 그리기도 합니다. (그림8,9)

(그림8)

(그림9)

4세 아이의 그림은 ‘자아의식’에서 조금 벗어난 시기입니다. 출생부터 3-4세 시기까지 발달 과정의 특성을 그림에서 볼 수 있습니다. 3세 이하의 아이들을 보면 대부분 혼자 놀거나 개별적인 단어들을 열거하는 자기중심적인 때입니다. 그래서 0세에서 3세 사이를 ‘자기 발견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가 지나면 원 형태로 겹치는 그림뿐만 아니라 원이 아닌 다른 형태의 그림들도 나타납니다. (그림10)

(그림10)

이런  그림들 역시 여러 가지 색을 사용해서 그림을 어둡게 만들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일정한 방향 없이 그리다가 점차 일정한 방향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방향을 만들다가 두 방향으로 교차되는, 마치 십자가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그림11,12,13,14,15)

(그림11)

(그림12)

(그림13)

(그림14)

(그림15)

이렇게 그림이 겹쳐질 때는 ‘나’라는 초기적인 자아의식이 생길 때입니다. 이러한 그림들은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도록 완전히 자유롭게 놔 둘 때 나오지, 인위적인 조작으로 “이거 그려라, 저거 그려라” 하면 절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이 시기에 아이는 그림을 ‘면’으로 그리지 않고 선으로만 그립니다. 아이가 십자가 모양을 그릴 때에는 ‘내가 저 높은 곳에서 와서 지상에 섰다’는 수직관계뿐만 아니라 지구가 움직이는 궤도의 방향처럼 수평의 관계도 성립해서 ‘이제 나는 세상에 와서 내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림16)

(그림16)

수직선과 수평선이 만나는 부분에서 이제 내가 생겨났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십자가 모양의 몸짓은 ‘나는 이제 이 세상을 나의 삶으로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은 마구잡이로 그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가장 원형적인(원초적인) 상징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발견할 때 굉장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아이들이 존경스럽고 경외스럽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이렇게 원형적인 것을 그리는 것은, 천상의(점과 원, 십자가 같이 지혜가 가득 담긴 상징들은 천상에 있는 것들입니다) 세계에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천상에 있는 것들을 아이들이 그림을 통해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원과 십자가들을 많이 그리고, 또 굉장히 연습을 많이 해서 언젠가는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원 밑이나 원 안에 선들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또 원 안에 점들을 찍는 그림도 있고, 십자가에서 발전한 형태의 선으로 인간을 표현합니다. (그림17,18,19,20)

(그림17)

(그림18)

(그림19)

(그림20)

그러한 그림들은 아이들이 의도적으로 보고 그린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자기가 그린 것을 보고 “아! 이건 마리고, 저건 페터야”라고 말하며 그 그림에 대해 말합니다. 또 이 시기에 머리 인간의 형태를 한 그림이 나타납니다. 인간을 직선과 곡선을 가지고 그립니다. (그림21)

(그림21)

그러면 이것 말고 더 나올 것이 없을까요? 점, 선, 곡선, 이것들을 가지고 아이들은 그림을 그립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무엇인가를 굉장히 빨리 그려 놓고 보니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는 “아! 이건 자전거잖아” 하고 말합니다. (그림22)

(그림22)

아이들은 어른들이 그리는 자전거처럼 그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움직임으로 그립니다. 아이가 자전거라고 인식했을 때에는 이미 전에 자전거를 봤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전거라고 인식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아이가 그린 그림에서 아이는 “이건 오토바이야” 하고 말합니다. 그림에 “부릉, 부릉” 하는 오토바이 소리가 다 들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서 아이는 오토바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림23)

(그림23)

이러한 주제가 우리에게 얼마나 흥미롭고 또 잘 알아야 될 부분인지를 감지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중에 아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될 때, 이러한 그림의 과정들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판단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


3-5세 아이들 그림

어제는 9개월에서 3세 사이의 아이들 그림을 보았습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원, 점, 십자를 그리는 시기로 초기적인 자아가 생길 때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출생 전에 경험했던 것들이 그림으로 나타나고, 우주에서 경험했던 것들이 지상세계에 도착해서 ‘이제 내가 이 지상에 서 있다’는 것을 최초로 인식하는 과정임을 여러분께 보여 드렸습니다. 아이들은 뾰족한 크레파스 같은 것을 잡고 선을 그리는데, 이때는 색깔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종이에다 밝은 색에서 점점 어두운 색으로 밀집을 하며 그려 나갑니다.

초기에 아이들은 엄마가 사용했던 것들을 따라서 잡고, 그 후에 여러 가지 도구들을 잡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학교에 갈 때까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때 나타나는 그림들이 원을 그림과 동시에 방향을 나타내기 시작하는데, 십자 형태가 나타날 때까지 아이들은 반복해서 연습을 합니다. 지혜로운 것은 아이들이 그림을 원형(原形)적인 선(원), 점, 십자 같은 형태로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하는 것은 무의식적인 것으로 출생 전에 경험했던 것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가 원, 점, 십자를 그리면 첫 7년 주기의 첫 번째 시기(0-3세) 끝에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인간은 첫 번째 시기 이전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고 그 이후부터 기억합니다. 3세 즈음에 자아의식이 처음으로 생기면서 비로소 사고하기를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아이들은 자기를 가리켜 “나”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는 원, 점, 십자 형태를 반복해서 연습합니다. 이 세 가지를 이용하여 그리는 것을 습득하고 나면 평생 동안 이 기술을 가지고 가게 됩니다. 그림을 보면 점, 선, 원은 기본적인 요소들입니다. 그 후 머리 인간이 나올 때까지 기본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들을 그려 나갑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그리는 것은 아닙니다. 나중에 “아! 이건 엄마, 아빠야” 하며 알게 됩니다. 3.5세 정도 된 아이들 그림을 보면 머리 인간에서 다음 시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몸통 같은 것을 그립니다. (그림24)

(그림24)

3세 이후 아이는 다음 발달 단계로 넘어갑니다. 이 시기에 아이는 자기 혼자 놀며 양극성 있는 놀이를 합니다. 문을 닫았다 열었다, 앉았다 일어섰다, 앞으로 섰다 뒤로 섰다 등 자기 중심적인 놀이를 합니다. 그 이후 아이는 다른 아이와 놀고 싶어 하는 발달 단계로 넘어갑니다. 이때부터는 언어에서도 사회성이 나타나 다른 사람과 대화적인 언어를 합니다. 이제 아이는 감각기관을 펼쳐 들리는 곳으로, 소리 나는 곳으로, 보이는 곳으로 모든 방향으로 의식을 집중해 알고 싶어 합니다.

이 시기의 그림을 보게 되면 대개 사람들은 ‘해님을 그렸구나’ 하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발달 상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림25)

(그림25)

아이가 머리 인간을 그려 놓고 또 옆에는 해 같은 것을 그려 놓은 그림을 보면, 이제는 바깥세상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아이의 상태가 표현된 것입니다.(그림26)

(그림26)

아래의 그림을 그린 아이는 사방에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을 보이며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림27)

(그림27)

아이들 그림 중에 배경 같은 것을 그린 경우가 있는데, 주의할 점은 아이들은 스스로 배경 같은 것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부모나 교사가 그려 주었거나 그리라고 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때 부모나 교사는 절대로 말을 시키거나 지시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림28)

(그림28)

기본적인 그림들은 이 시기에도 나타나지만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이들마다 다 다릅니다. 밖에서 가져오고 싶은 행위는 비슷하지만 이러한 잠재적 경향은 아이마다 다릅니다. 이 시기에 발달이 빠른 아이들 가운데에는 색깔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림29, 30, 31, 32, 33, 34)

(그림29)

(그림30)

(그림31)

(그림32)

(그림33)

(그림34)

이 시기의 모티브는 바깥 세계와 나의 만남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가령, 아이들 그림 중에는 나선형에서 시작해서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는 경우도 있고, (그림 35)

(그림35)

색이 있으면서 원으로 이루어진 그림에서도 바깥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그림36)

(그림36)

또 점으로 시작해서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림37)

(그림37)

아이들은 다양한 개인성이 있기 때문에 같은 모티브에서 출발하더라도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이가 조금 든 아이들은 그림에 몸통이 생기고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는 십자 형태도 그리며, 손이 움직이는 모습도 표현하고자 합니다. (그림38,39,40)

(그림38)

(그림39)

(그림40)

이 시기의 아이들은 처음에는 머리를 중요시 여기며 바깥세상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마치 머리에서 안테나와 같이 뻗쳐 나가는 그림들이 나타납니다. (그림41)

(그림41)

저는 이런 그림들을 볼 때 아이들이 아직도 하늘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이 시기에 더 나이든 아이들 그림을 보면 머리 위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두드러지게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림42)

(그림42)

또 어떤 아이의 그림을 보면 귀에서 뭔가 나가는 그림도 있습니다. 그 아이는 이 그림을 그리고 난 후 이틀 후에 귀에 염증이 났습니다. 이미 아이가 그 전에 느낀 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림43)

(그림43)

3-5세 사이의 그림들을 보면 아주 특별한 태아기에 대한 그림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프랑스 한 의사 부부는 아이들의 그림을 수집하여 태아기의 기억(회상)에 대한 그림들을 설명하여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사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 잘 알려고 하지도 않고, 또 이러한 특별한 그림들은 아이들한테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나선 형태를 안쪽으로 그릴 때 그것은 육화하는 것의 표현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이 그림 중에 나선형을 그리고 난 다음 그 가운데에 또 하나의 원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마치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 안에 있는 부분인 것처럼 작은 원을 표현했고 그 위에 사람 얼굴 같은, 즉 엄마와 같은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엄마의 몸 전체와 엄마의 내부까지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림44)

(그림44)

어떤 아이는 나선형이 안쪽으로 들어오고 별들이 함께 나선형 안으로 들어오는 그림도 그립니다. 육화하는 과정을 엄마의 몸에 표현한 것인데, 더 흥미로운 일은 밖에 있는 별들이 엄마를 쳐다본다는 것입니다. (그림45)

(그림45)

또 다른 아이들 그림을 봐도 정말 흥미롭습니다. (그림46,47)

(그림46)

(그림47)

이것은 러시아 인형처럼 생겼는데, 이젠 아이가 바깥세상으로 나오려고 하는 그림입니다. (그림 48)

(그림48)

다음 그림을 보면 점점 '내(자아)가 천상에서부터 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과정'을 표현했습니다. 성인의 경우는 밑에서부터 그려 올라가겠지만, 아이들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그림을 그립니다. 이는 저 세상인 천상에서부터 이 세상으로 왔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림 49)

(그림49)

또 다른 아이의 그림을 보면 ‘내가 온다. 아, 내가 와야만 하지!’라며 위에서 아래로 표현하고, 지상에 와서는 척추 같은 형태의 그림들을 통해 강하게 표현을 합니다. (그림 50)

(그림50)

두 그림의 경우(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그림) 다른 조건들이 있는데 한 그림은 오고 싶어서 좋아하는 그림이고, 또 한 그림은 오고 싶지 않은 듯한 조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3세 아이가 그렸는데, 태아기에서 세쌍둥이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2.9세 아이가 그린 그림에는 쌍둥이처럼 그렸는데 그린 아이는 정말 쌍둥이입니다. 이는 자기가 기억하고 있던 것을 바깥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림51)

(그림51)

아이가 중심으로부터 12개의 선이 바깥으로 뻗어 나와 12개 선마다 원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12개의 선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이것은 마치 황도 십이궁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양탄자 같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위에 아이가 뉘어져 있고 식구들이 아기를 받는 듯한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그림52)

(그림52)

아이들 그림을 많이 연구한 덴마크 의학자가 저에게 “당신은 당신의 일생을 선 하나로 끊이지 않고 그릴 수 있느냐?”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는 아이가 그린 어떤 그림을 보여 주면서 아이가 자기 일생을 선 하나로 표현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그림은 하늘에서 내려와서 머리가 밑을 향하고 있는 태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 선은 다시 태아 같은 것을 돌아 나와서 세상을 계속 살다가 다시 왔던 세상으로 돌아가는 듯한 그림을 선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림53)

(그림53)

어느 시기에 다다른 아이의 그림을 보면, 엄마의 머리와 몸을 그리고 엄마 몸에 있는 아기 머리가 밑으로 내려가서 태어나려고 하는 그림도 있습니다. (그림 54)

(그림54)

이제까지 아이는 이러한 것들을 연습하고 표현한 다음 더 발전하여 마치 계단이나 사다리처럼 선들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인지학에 따른 인간의 발달론에 대해 소개한 다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인지학에서는 아이들이 태어나서 7년 동안 형성력(에테르체)이 작용해 신체를 형성한다고 봅니다. 그 가운데 첫 번째 시기인 0-3세 시기에는 숫구멍이 닫힐 때까지 형성하는 힘이 머리 부분에서 제일 많이 작용합니다. 3세 즈음의 그림들을 보면 원을 완전하게 그리는데, 머리 부분이 동그랗게 될 때까지 계속 힘을 쏟고 숫구멍이 닫힐 때까지 그 힘이 계속 작용합니다. 0-3세 시기에는 두뇌가 거의 70-80% 정도 형성되며, 두 번째 시기(3-5세)에는 몸통 속에 있는 기본적인 장기들이 대부분 형성됩니다. 또 이때에 신경계가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인간을 이러한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다음에 있는 인간학적인 그림들을 보겠습니다. 3-5세부터는 지금까지 나온 그림들을 조합하여 그리는 형태가 나옵니다. 이 시기에는 항상 공간을 만들어 놓고 채워 놓는 듯한 사다리 그림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림55)

(그림55)

이제 선이 왼쪽 오른쪽으로, 가슴-몸통에서 하는 일들인 규칙적이고 리듬적인 그림들이 나타납니다. (그림56)

(그림56)

이젠 머리가 작아지고 중간 부분인 몸통을 두드러지게 그립니다. 즉, 사다리에 머리가 있는 형태의 그림입니다. 머리가 작아지고 몸통이 크게 그려지며 몸통에 사다리처럼 내부를 표현합니다. (그림57)

(그림57)

어떤 아이는 이 부분을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가 새로 나올 시기가 되면 아이 스스로 그러한 그림들을 그리고, 입을 사다리 모양 안에 많은 선을 그려 표현합니다. (그림58)

(그림58)

이 시기의 아이는 눈도 사각형으로 그리곤 합니다. (그림59)

(그림59)

성인의 신경계를 보면 가슴 부분에 사다리 형태가 나타납니다. 아이들은 이 시기에 신경계가 완성되는데, 이때 아이들 그림에서도 사다리 모양의 그림이 나옵니다. (그림60, 61)

(그림60)

(그림61)

아이들은 자기 내부에서 생겨나는 것을 마치 눈으로 본 것처럼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그전 발달 단계에서 십자를 그린 형태에서 발전하여 사각형으로 만들어 냅니다. 이 시기에는 그전 발달단계에서 보인 점, 선, 원이 빠지는데, 이 부분을 관찰해 보겠습니다.

선이 발달하여 막힌 사각형으로 발전했고, 원이나 곡선은 사람의 장기 형태라고 생각되지만 그것이 완전하게 그림에서 이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건 흥미로운 부분인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일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 중에서 장기 부분은 어디에 나타났는지 한 번 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


5-7세 아이들 그림

어제는 태아기 때를 그린 그림을 살펴보았습니다. 태아기 때의 그림 중에 사다리꼴 모양에서 막힌 사각형이 나오는 그림까지 살펴보았습니다. 그 후 형성하는 힘에 의해 몸통 부분이 생겨 나는 것을 그림에 보았습니다. 사다리꼴 모양이 수평적인 선과 수직선인 십자 모양에서 발전된 것도 보았습니다. 사다리꼴 모양의 형태는 일반 인간학의 관점에서 보면 신경계 형태의 그림인데, 그러한 모티브들이 우리 몸에 들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점, 선은 나왔는데 원에 대한 것은 어떻게 발전했을까요? 아마도 원에 나타난 형태는 몸속에서 장기 형태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한 장기 형태는 아이들 그림 속에서 둥그런 원형들이 장기 형태로 보이는데 아직 그림에서는 확연히 드러나 있지는 않습니다.

잉에 브로흐만(『아이들 그림의 비밀』의 저자)은 저와 함께 연구를 했던 분으로 아이들 그림을 통해 발달과정을 연구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아이의 두 번째 발달 단계에서 원형은 장기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언급은 되어 있지만 자세히 나와 있지 않고 내용에도 약간 오류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제 과제로 내준 ‘장기 같은 형태’가 그림의 어느 부분에 나타나는지 혹시 발견 사람 있습니까? 그것은 다른 형태로 변형이 되어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힌트를 드린다면, 그것이 몸통에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곳은 나중에 우리의 감정(느낌)이 사는 곳입니다. 아이들 그림 중에서 이러한 부분들이 나타납니다. (그림62, 63, 63-1)

(그림62)

(그림63)

(그림63-1)

색깔은 감정과 밀접한 관계가 많습니다. 그러나 감정은 7-14세 시기에 발달합니다. 손을 다쳐 울고 있는 아기에게 왜 우느냐고 물으면 “책상이 나한테 그랬어”하고 말합니다. 감정이 내부에서부터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기가 아프거나 울 때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 보면 아기는 스스로 어디가 아픈지 찾아내지 못합니다.

초기적인 감정에 대한 인식은 우리 신체 안에 3-5세 사이에 생겨납니다. 나중에 감정이 발달하기 위한 기초적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이때에 처음으로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주기(0-3세)에서 나온 그림 중에 색깔들이 나온 그림들이 있는데 그것은 색깔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둡게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까지는 색깔은 아이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다리꼴에 대한 모티브가 나타난 그림들에서도 색깔이 들어 있는데, 그 색깔은 마치 강조가 된 듯했습니다. 아이가 한 색깔을 그리면서 ‘아! 이것이 빨강이구나’ 하고 된 것처럼 말입니다. 사다리에 대한 모티브를 그리면서 색깔을 연습해 가는 과정들이 이 시기에 확연히 나타납니다.

바로 두 번째 단계(3-5세)에 아이들은 색깔도 인식하는 단계에 접어듭니다. 하지만 색을 한꺼번에 다 발견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천천히 발견해 냅니다. 아이 스스로가 내면에서 색깔을 발견해 나갈 때 누군가가 ‘이건 빨간색이야’ 하고 미리 색을 말해 준다면 색을 발견해 나가는 성취감을 잃게 됩니다. 세 번째 단계(5-7세)가 되면 색깔을 발견하는 정점에 이르는 시기입니다.

학교에 들어가기 직전 시기의 초기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때에는 아이들이 색깔들을 굉장히 많이 발견해 내고, 아직도 사다리 모티브 형태 안에서 색깔들을 더 많이 칠함과 동시에 덧칠하며 색을 정복해 나갑니다. 이러한 모습은 모든 아이들이 이 나이 때에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터득한 사각형 모양을 만들어 내고, 그 속에 색깔을 채워 나가면서 색에 대해 알아갑니다. (그림64)

(그림64)

이제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종이 네 귀퉁이에서 시작해 색을 채워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림65)

(그림65)

이렇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5세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아이들 스스로 색을 칠해 나가다가 사각형이 나옵니다. 이제까지의 사다리에서 나오는 사각형과는 다른, 뾰족한 부분이 서 있는 마치 마름모와 같은 그림들이 나옵니다. (그림66)

(그림66)

사실 잘 보면 마름모를 그린 것 같지만 본래는 삼각형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때가 되면 학교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행위를 하기 위한 신체에 기본적인 것’이 생깁니다. 이때는 손재주가 굉장히 늘어나고 발도 빨라집니다. 이것은 사지를 가지고하는 것으로, 사지에서 발견한 삼각형의 표현인 것입니다. 이것(그림66)과 같은 그림들(양탄자 모양)을 몇 주 동안 계속 그리게 되는데, 그것을 그리는 사이에 삼각형을 그리는 것입니다.

점, 선, 원, 사각형, 삼각형 이러한 것들은 기하학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아이들은 색깔을 가지고 연습하기도 하지만 ‘대칭연습’을 하기도 합니다. 아이는 대칭연습을 한 후 이제는 어떤 것을 봤을 때 표상하는 힘이 생겨서, 자기가 본 것을 그림으로 그리는 힘을 얻게 됩니다. 완전히 똑같은 대칭은 아니지만 약간 다를 경우 ‘살아 있는 대칭’의 그림들이 나옵니다. (그림67)

(그림67)

그리고 나서 아직도 모서리 부분을 그리고, 그러다가 하늘을 발견하여 대칭축 부근에 해를 그립니다. (그림68)

(그림68)

살아 있는 대칭은 항상 똑바른 대칭이 아닙니다. 이런 대칭에 대한 그림은 학교에 갈 때까지 확연하게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그림이 있는데 대칭이 나타나고 양쪽에 삼각형이 나오고 별 모양, 반달모양, 또 별 두 개가 양쪽으로 똑같이 대칭적으로 그려진 그림이 있습니다. (그림69)

(그림69)

이렇게 아이들이 색깔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자기가 봤던 것을 표상하여(Vorstellung, 아이가 유치원에 오면서 봤던 나무를 그리려고 할 때, 표상은 자기가 본 것을 자기 앞으로 가져온다는 뜻) 그리는 힘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 그림을 보면 꽃이 대칭의 중심선에 있고 위에는 하늘, 아래에는 땅의 대칭이 있습니다. 양쪽에 나무가 있는데 한 나무는 연두색, 다른 나무는 초록색의 살아 있는 대칭을 보여줍니다. (그림70)

(그림70)

또 아이가 습득해낸 것들(점, 선, 십자, 원, 삼각형, 사각형, 색깔들)을 가지고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아이는 땅에 대해 완전하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것을 집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집은 우리 영혼이 사는 몸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림71)

(그림71)

위의 모든 과정을 거쳐야 아이들에게서 살아 있는 그림이 나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집을 그리라고 어른들이 지시했을 때는 살아 있는 그림들이 나오지 않습니다.

5.3세에서 5.5세 사이의 아이들 그림을 보면 중심축이 있고, 양쪽, 위, 아래에 삼각형이 나옵니다. (그림72)

(그림72)

삼각형은 아이들이 학교에 갈 준비가 되어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시입니다. 학교에 가기 전 시기에는 아직 동물 그림이 잘 나오지 않는데, 간혹 집에 동물을 길렀을 때 나오기도 합니다.

6.9세에는 대칭의 중심에 집이 서 있고, 꽃, 나무, 태양 등이 대칭으로 그림에 나타납니다. 이때가 되면 표상(Vorstellung)이 어느 정도 되는데 아이들은 ‘저 위에 있는 저것만이 하늘이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림에서처럼 하늘과 땅을 잡아 당겨 표현합니다. (그림73, 74)

(그림73)

(그림74)

아이들은 바깥에서 인식했던 것을 어떻게 표현할지를 시도합니다. 부모가 음악가인, 그림을 잘 그리는 6.6세 된 아이 그림이 있습니다. (그림75)

(그림75)

이 그림에서는 대칭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섬세하거나 자세하게 표현하지 못합니다. 이 아이의 그림이 나중에 어떻게 나오는지 뒤에 말하겠습니다. 한국의 아이들 그림에도 위와 같은 대칭적인 그림들이 나올 것입니다. 이러한 그림들은 세계 어느 나라 아이든지 일반적인 발달과정을 겪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지상에서 대칭으로 균형을 유지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한테는 아직 그러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이것을 완벽하게 갖추지는 않았지만 균형을 유지하면서 살려고 하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때에 아이들은 특히 집과 나무를 많이 그립니다. 전세계에서 수집한 집과 나무들 그림을 보면 자기들이 습득한 색깔과 선들을 가지고 연습해서 그린 것들이 나타납니다.

저는 이집트에 가서 이집트 최초의 발도르프 유치원을 설립했습니다, 그때 있던 아이들도 바로 위와 같은 발달단계를 거쳤습니다. 흥미로운 일은 이집트에 가면 삼각형 모양의 집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때 그곳 유치원에 다닌 아이들의 초기 그림에도 삼각형이 달린 집들을 그렸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집은 인간의 몸과 관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삼각형 형태의 집에는 머리, 눈, 코, 입의 형태가 나오는데 이런 의미에서 집은 몸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대칭 연습을 많이 하다가 표상을 통해서 몸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다가 작은 창문을 통해 큰 나무가 다 보이고, 열쇠 구멍을 통해 큰 산이 다 보이는 것에 대해 신기하게 생각합니다. 어떤 아이는 교사에게 “선생님, 어떻게 저 큰 탑이 눈에 다 들어오나요?”라고 질문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을 통해 아이들은 원근에 대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발견한 것을 가지고 연습하고 실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산이 있으면 산 뒤에 있는 꽃을 그림에 그립니다. (그림76, 77)

(그림76)

(그림77)

그 사이에 흥미로운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새 머리를 파란색으로, 주둥이를 주황색으로, 몸통은 노란색, 한쪽 날개를 빨간색, 다른 날개를 노란색, 꽁지를 노란색으로 표현한 그림이 있는데 아이들은 자기 스스로 그림을 그릴 때 정말 멋있는 새를 그립니다. (그림78)

(그림78)

그런데 아래의 그림은 인위적으로 조작된 새들의 형태입니다. 그러한 그림을 그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림79)

(그림79)

다음 그림을 보면 원근감을 시도하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농부를 크게 그리고 그 뒤에 왕관을 쓴 왕과 나무들은 점점 작게 표현했습니다. (그림80)

(그림80)

또 도끼를 크게 그리고 집이나 길 들을 작게 표현하기도 하고, 앞에 있는 사람을 크게, 먼 쪽에 있는 집들은 작게 표현합니다. 이렇게 원근감을 표현하기 시작하면 학교에 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학교에 들어갈 만큼 성숙되었다고 보이는 그림에는 삼각형이 나오거나, 머리에 항상 무엇인가 얹혀 있는 것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지상의 사람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 신발이 나오는 것도 하나의 표식입니다. 그리고 모자를 쓰거나 머리 부분을 매우 강조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림81)

(그림81)

아이들이 그린 것을 보고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게 “너 무엇을 그렸니?”라고 묻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바보 같은 질문입니다.

아이들은 무엇인가를 하는 행위를 그리기도 합니다. 가령 나무를 들고 간다거나 망치로 못을 때리는 등의 행위를 하는 그림들을 그립니다. (그림82)

(그림82)

이 시기 아이들 그림의 또 다른 특징은 사람의 옆모습을 그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왕이 왕비에게 등잔불을 주는 내용의 그림을 보면 그 전까지는 사람의 앞모습을 그렸는데 이제는 왕의 옆얼굴을 그리는데, 아직 그것이 너무 힘들어서 눈 색깔을 다르게 표현합니다. 눈의 모습을 보면 이상한 형태로 보입니다. (그림83)

(그림83)

또 이 시기에는 자세하게, 예를 들어 당근의 잎까지 표현하려고 하는 것도 나타납니다. 이 시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또 하나는 줄거리, 이야기가 있는 그림들을 그린다는 것입니다. 가령 다리 밑으로 배가 지나가는데 비가 오다가 다시 비가 그치고 해가 나와서 무지개가 뜹니다. 이때에 아이들은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림84)

(그림84)

아이가 누구의 도움 없이, 외부의 조작 없이 지금까지 계속 그림을 그려 왔다면 놀라운 일이 나옵니다. 0-7세 동안 아이들이 배운 것을 바탕으로 학교 담임교사의 과제는 이것을 앞으로 어떻게 바꿔야 할지입니다. 이에 대한 것을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아까 말했던 음악가 부모님의 아이, 그림을 잘 그렸던 그 아이가(그림75) 6.6세에서 6.9세가 되어서 그린 그림을 보고 부모님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 엄마는 저에게 “아니 선생님, 이렇게 그림을 잘 그렸던 아이가 지금 이 그림이 뭡니까?” 하며 놀라서 왔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옆에 있다가 저에게 와서 “선생님, 제가 그림을 이야기해 줄게요” 하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식사를 위한 시’를 표현한 것입니다.


빛은 하느님의 얼굴로부터 나옵니다.

빛은 곡식이 되고, 곡식은 양식이 됩니다.

땅의 열매도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빛은 내 가슴속에도 들어옵니다. (그림85)

(그림85)

이것을 보게 되면 고대 이집트의 그림 문자와 비슷합니다. 이 아이는 바로 알고 있는 내용을 글로 쓰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 아이가 그린 그림들 중에는 교사가 보여준 손유희에 있는 내용을 표현한 그림도 있습니다. 손유희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콩콩이라는 친구가 산보를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과 어깨 위를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떨어져 시궁창에 빠졌네’라는 내용입니다. 유치원에서 행하는 손유희의 줄거리를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글씨를 쓰고 싶은데 글씨를 몰라서 그림으로 그린 것입니다.

‘참새 두 마리가 손을 잡고 둥지에 앉았습니다. 한 참새가 깨어나서 밖에 나갔다가 다시 둥지로 돌아왔습니다. 또 다른 참새가 깨어나서 밖에 나갔다가 다시 둥지로 돌아옵니다. 그러다가 둘 다 함께 날아다닙니다. 그리고 함께 다시 둥지로 날아옵니다.’

어느 유치원 선생님이 이 내용을 가지고 아이에게 손유희를 하면서 들려주었습니다. 그 내용을 그린 그림을 가지고 저에게 왔습니다. 그 그림은 ‘두 새가 한 둥지에 있고 한 새가 둥지에서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옵니다. 또 다른 새가 다시 날아갔다가 돌아왔습니다. 그 두 새는 함께 날아가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림86, 87)

(그림86)

(그림87)

이런 것을 보게 되면 알 수 있는 것이, 아이가 이제까지 알았던 것을 가지고 정말로 학교에 가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교사는 이러한 것을 받아서 이제까지 알았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변환시켜, 어떻게 아이들에게 셈하고 쓰기를 가르칠지를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아름답게 배워 왔습니다.

아이들이 동물을 그리는 것은 학교 가기 직전쯤에 나타납니다. 또 이 시기에는 남자아이들은 배를 많이 그리고, 대부분 여자아이들은 집을 많이 그립니다. 아마도 집이라는 것은 고정되어 있고, 배도 집은 집인데 물 위에 떠서 움직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관계가 있는지는 제가 아직 파악하지 못했는데, 확실한 것은 남자아이는 배를, 여자아이는 집을 그린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생긴 크레파스를 주는가 하는 질문에 본인은 넓적하게 생긴 크레파스를 주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뾰족한 것을 골라 그리기 때문입니다. 또 유치원에서 수채화를 해야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그건 학교에 들어가서 해야 될 문제이지 유치원에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은 움직임, 행위를 나타내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아래 그림은 터키 아이가 그렸습니다. 이 아이 그림 속에는 나무, 집, 이빨, 뿌리가 다 들어 있습니다. 이 그림에는 사람의 눈, 입도 들어 있습니다. (그림88)

(그림88)

* 이 글은 2002년 Margret Costantini 여사의 사)한국발도르프교육협회(www.waldorf.or.kr) 교사교육 저녁특강을 재수정하여 올리는 것입니다. 여사님의 홈페이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www.margretcostantini.de

출처: 슈타이너사상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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