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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의약에 대해서 - 성호 이익

by 성공의문 2013. 6. 14.



의약에 대해서

 

사람들은 항상 말하기를 "사람에게는 운명이란 것이 있어서 질병이 아무리 괴롭힌다 하더라도 명을 옮겨놓을 수 없다"고 하는데, 이는 어떤 사람은 고질을 앓으면서도 죽지 않고 오랜 세월을 연명하며, 어떤 사람은 아무 병이 없는데도 갑자기 죽는 것을 보고서, 정해진 명으로 아는 것이다.

 

옛말에 "약이 사람을 살릴 수 없고, 병이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하였다. 약이 과연 도움이 있다면 왕이나 귀족들은 명의와 좋은 약이 옆에 있으며, 집사자가 서둘러 약을 갈고 달여 올리니 낫지 않을 병이 없을 듯하다. 그러나 먼 시골의 가난한 백성은 침질과 뜸질을 알지 못하고 음식도 제때에 먹지 못하며, 육진六陣(대황, 진피, 반하, 약애, 복령, 죽력)의 좋은 약이 밭에 있으나 초자炒煮(한약재를 굽거나 볶는것)하는 방법을 모르니, 마땅히 나을 병도 낫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여 왕이나 귀족들과 가난한 백성이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이 비슷하니, 이것이 허망한 술수의 설이 판을 치게 된 이유이다.

 

내가 일찍이 알고 있던 명의가 있었는데, 그는 말하기를, "좋은 약이 사람을 살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함부로 쓰는 약도 사람을 죽일 수 없다. 용렬한 의원들이 보잘것없는 방법으로 허실을 잘못 진단하여 인삼, 부자로 열을 치료하고 망초, 대황으로 냉을 치료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으나 반드시 다 죽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이로써 명에는 정해진 연한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자에 어떤 사람이 변방에서 돌아와 나에게 말하기를 "삼을 캐는 사람들이 삼을 캐면 반드시 먼저 삶아서 그 물을 먹은 다음 다시 말린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열이 나지 않는데, 서울의 사대부들은 매양'삼을 잘못 먹고서 죽었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나는 곧 말하기를 "만약 사람의 운명이 정해진 것이라면 성인은 무엇 때문에 <역경>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화를 피하고 길한 데로 나아가도록 하였으며, 또 무엇 때문에 의약을 발명하여 병을 치료하고 목숨을 건지게 하였겠는가? 이치는 크고 작은 것이 없으니, 만약 병이 치료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찌 생사에 대해서만 방법이 없겠는가? 질병에는 경중이 있고 기혈도 경중이 있으며, 약에도 경중이 있어서 각각 분수의 같지 않음이 있는 것이다. 기혈이 10분 완전하다면 기후가 고르지 못하여 생기는 외감外感이 들어올 틈이 없거니와 혹 기혈이 10분 완전하지 못하고 다만 7,8분 정도인데 10분의 혹독한 병을 만난다면 문득 10분의 이기는 바가 될 것이며, 또 혹 7, 8분의 병에 화타, 편작이 10분의 치료를 한다면 기사회생할 것이며, 병세는 7, 8분인데 치료는 2, 3분에 불과할 뿐이라면 끝내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그 보잘것없는 방법으로 잘못 진단하여 병을 잘못 치료하는 경우에도 혹 명은 중한데 해침이 경하면 죽음을 면할 수 있으니, 비상과 야갈을 먹고도 중독되거나 죽지 않는 데서 증험할 수 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에게는 소금맛으로 조처할 수 없고, 고기를 많이 먹는 사람에게는 고깃조각으로 몸을 보할 수 없는데, 이는 소금과 고기가 저들에게 좋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평소에 항상 먹기 때문에 효험이 없는 것이다. 삼이 많은 고장에서는 삼 삶은 물 보기를 마치 나물국을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는 것처럼 여겨 차와 밥처럼 되었으므로, 삼을 먹어도 해를 입지 않는 것이다. 이로써 미루어본다면 병의 해침이 아무리 중하나 품명이 완전한 사람은 지탱해나갈 수 있지만, 속이 허하고 병이 심한 사람은 바로 죽는 것이 마치 칼로 찌르면 엎어지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였다

 

혹자가 말하기를 "주색에 절제가 없으며 더위와 추위를 피하지 않되 오래 사는 자가 있으며, 음식 대하기를 적을 대하는 것처럼 조심하고 바람 두려워하기를 화살처럼 여기되 단명한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어째서인가?"라고 한다. 이도 명분과 외양이 서로 경중이 되어서 그러한 것이다.

 

속에 10분의 명이 있으면 외상이 해칠 수가 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몸을 조심해 가지면 생명을 조금 연장시킬 수는 있으나 오래  살 수는 없다. 공자가 말하기를 "여자를 때 없이 가까이하고 음식을 조절하지 않으며, 근로와 안일이 도에 지나치면 병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죽는다"고 하였다. 잠자리는 생명을 해치는 무기이니, 성인이 어찌 모르고서 그렇게 말씀하였겠는가? 이 세가지 중에 사람을 죽이는 거은 여색이 더욱 심하다. 홀아비로 늙은 사람 치고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이로써 품명의 연한을 채우는 사람이 대개 드물다는 것을 알겠다. 


- <이익의 성호사설中>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실학을 창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일가에서 이가환, 이용휴, 이중환 등이 배출되었고, 문인으로 안정복, 권철신, 정약용 등이 있다. 특히, 정약용은 이익의 유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들은 주자학만으로는 이용후생을 실천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조선의 실학을 이끌게 된 것이다.


이황과 이이가 주리설이나 주기설을 사상적으로 체계화시켰다면, 이익은 실학의 바탕이 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