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예술교육의 중요성 - 변종인

by 성공의문 2016. 10. 27.

예술교육의 중요성

변종인



현재 인류는 커다란 위협에 직면해 있다. 그 위협이란 다음과 같다.


1. 산업자본주의와 물질주의의 결과인 자연파괴

-지나친 농약과 비료사용으로 야기된 땅의 생명력 고갈

-과도한 원시림 벌목(매일 약 서울면적정도)

-기상조건의 극심한 변화로 인한 천재지변

-동․식물의 종류 감소(50년 안에 전체 동․식물의 10%~50%)

-전 대양의 오염

-무분별한 배기가스로 인하여 오존층이 점점 엷어짐


2. 석유자원의 고갈대책으로 개발한 원자력 발전소의 위협

-언제 체르노빌의 재앙이 다시 찾아 올 줄 모르고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선의 내포된 중금속 쓰레기 문제


3. 인간복제가능성

-자유의지가 없는 로버트형 인간이 대량으로 등장할 가능성

-국제 테러단의 난무

-나아닌 사람은 모두 나의 경쟁상대

-인간은 지능을 갖춘 기계로 전락



이러한 위기 속에 우리가 가져야할 올바른 태도는 체념, 자포자기, 무관심, 망각이 아니라 지혜로운 해결방법을 찾아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에 옮기는 것 일게다. 가령 화학세제를 쓰지 않거나 유기농법으로 전환하거나 등등. 그러한 실천만이 우리를 이 위기 속에서 구해줄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러한 정보를 접할 때 그 내용이 오직 머리의 지식으로만 남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행동의지로 발전시키지는 못한다. 올바른 일을 하려면 내면 양심의 소리가 너무나 미약하다. 나부터 우선 살고보자는 이기주의와 쉽게 살려는 안일주의에 빠진다. 왜 이럴까?


그 이유는 아마 우리 받았던 교육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 우리의 교육은 지식축적, 지능개발에 가장 큰 비중을 둔 교육이다. 입시경쟁에 필요한 과목위주로만 공부를 하다보니 자연히 예술과목을 등한시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사람은 점점 메말라져갔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이 점은 대부분의 인류사회에 공통으로 놓여있는 문제일 것이다. 일방적 지식축적, 지능개발은 교묘하게 남을 이용하고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 쉽다. 따라서 이러한 일방적 교육방향을 우리가 바꾸어 가야 할 것이다. 현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존멸위기의 중대한 원인이 바로 여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1861년에서 1925년 사이에 주로 중부유럽에서 활동한 오스트리아 출생 루돌프 슈타이너는 발도로프 교육을 창시하면서 교육예술이란 새로운 단어를 교육계에 도입했다. 이 교육예술이란 말을 이해하려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예술은 여러 가지 대상을 가지고 표현한다. 가령 소리, 나무, 돌, 색깔 등등. 이 때 우선은 예술의 표현수단인 대상의 속성을 잘 알아야 할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속성 근원에 놓여있는 대상의 본질적인 것이 잘 드러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세운 개념을 교육예술에 적용한다면, 교육예술이라는 것은 먼저 그 대상인 아이들을 잘 알아서 그 다음 아이의 본질적인 모습, 개별적인 특성이 나오도록 하는 예술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교사는 플라톤,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산파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스위스의 교육자 페스탈로찌도 이미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아이들을 우리 교사와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또는 동시대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로 만들려고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신이 심어놓은 아이들의 고유한 모습이 나타나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하루는 한 인디언아이가 높은 산위에서 독수리 알을 찾아 집으로 가져와 그 알을 암탉이 품도록 다른 달걀들과 함께 두었다. 시간이 지나 알에서 나온 독수리 새끼는 다른 병아리들과 함께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를 헤 메고 다니며 자라났다. 때때로 날개를 펴보기도 하고, 주변에 있는 낮은 나무 가지로 날아가 안기도 했다. 하루는 하늘 높이 빙빙 도는 새를 한 마리 보았다. 󰡒해까지 치 닿을 듯 나는 저 멋있는 새는 도대체 무슨 새야?󰡓하고 옆에 있던 닭에게 묻자, 󰡒응, 저건 독수리인데, 하늘의 왕이지. 그런데 그렇게 높이 쳐다보지 마! 너와 난 닭일 뿐이야. 우린 결코 저렇게 높이 날지는 못 해.󰡓라고 옆에 있던 닭이 말했다. 그 소리를 마음에 담은 독수리새끼는 자신이 닭이라고 생각하며 생을 마쳤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아이의 본질이 잘 드러나도록 하려면, 우선 인간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 발달 과정에 따른 교육의 중요성을 말했다. 다음은 그 발달과정에 대한 간추림이다. 인간 삶의 영역을 크게 나누면, 악함이 아닌 선함을 추구하는 종교, 추함이 아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 그리고 거짓이 아닌 진실을 추구하는 학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한꺼번에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인 과정을 거치며 발달한다. 다른 말로 나타내면 인간을 몸과 마음과 정신으로 구분할 때, 7년 주기로 우선 몸이, 그 다음 마음, 마지막으로 정신의 순서로 성장과정을 거친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7년 첫 주기에만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시기의 발달과정은 몸이 중점적이고 그때 이루어진 몸을 토대로 삼아 계속 발전된다. 이를 또 다르게 표현한다면 첫째 주기에 의지, 두 번째 주기에 감정, 세 번째 사고영역의 중점을 두어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하 수도 있다.


나비의 성장과정을 관찰하면 어느 정도 앞에 말한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비는 알에서 애벌레-번데기-나비의 변화과정을 거친다. 알에서 전혀 다른 애벌레가 나오고, 애벌레에서 전혀 다른 번데기가 되고, 마지막으로 번데기에서 전혀 다른 나비가 탄생된다. 사람은 나비 같은 외형변화는 갖지 않는다. 일곱 살에 머리에 뿔이 나고, 열네 살에 등 뒤에 날개가 솟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면은 이와 비슷한 변화를 겪는다. 이 말은 일곱 살이되면 그 전과는 전혀 다른 내면속성을 갖는다는 말이다. 태어나서 일곱 살 때 까지 아이들은 종교인이 자신이 믿는 종교에 완전히 맡기듯이 주변 환경에 자신을 온전히 맡긴다. 의심도 없고, 비판도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모든 것을 받아들여 그것이 좋다고 여긴다. 이 때 아이는 자신 몸의 기본형태를 만든다. 나쁜 것을 많이 보면 나쁜 것에 맞는 몸으로 표현해야하는 시기이다. 밀어보고, 당겨보고, 쓰다듬어보고 꽉 쥐어보고, 미끄러져보고 등등. 이 때 지나치게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하면 이는 아이의 행동의지를 꺾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아이주면에서 어른들은 언어, 행동, 생각까지도 아이가 해서 안 될 것을 스스로 배제해야 한다. 이 때에 아이의 교육을 맡이 있는 사람들은 경건한 종교인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일곱 살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세상에 있는 것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고, 교사의 눈을 통해서, 교사의 귀를 통해서 받아들인다. 아이들은 사물의 이치를 개념적이고 관념적인 설명으로 듣고 싶어 하지 않고,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내면의 상이 풍부하게 떠오를 수 있는 설명을 원한다. 아이들은 아직 스스로 참되고 거짓을 구분 할 수 있는 지성이 깨어나지 않는 상태이다.

그러나 이 때 아이들은 교사의 안목으로 아름다운 것은 좋게 받아들이고, 추한 것은 나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참되고 거짓된 것을 구분하려면 논리적인 추구능력, 이치를 따질 수 있는 지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이 논리적 지력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일어난다.


7-14살 사이에 형성된 미의 감각, 예술 감각은 이 다음 시기에 올 진리를 추구하는 데 밑바탕이 된다. 이는 마치 애벌레 시절에 충분히 풀을 먹고, 건강한 애벌레가 되어야 이다음 튼튼한 번데기가 되어 올바른 나비가 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예술 감각은 감정을 풍부하게 다듬어 주는데 이 때를 놓치게 되면 이후에 일어나는 지적능력은 차가운 기계식 사고가 된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불행은 바로 이러한 선․미․진의 불균형적인 발달에 놓여있다. 아이들이 예술을 추구하면 어떤 때는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좌절할 때도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억지로 견디라고 강요받지 않고 예술적으로 극복하게 할 때 아이들은 미에 대한 감각뿐 아니라 강한 의지도 길러진다.


불균형적인 입시위주의 지적중심교육에서 벗어나는 길은 곧바로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동물은 나자마자 동물이 되지만, 사람은 20여년의 알찬시간을 엮어야 의․정․지를 고루 갖춘 사람이 된다. 이러한 의․정․지 또는 의지․감정․사고가 균등하게 발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게으른 인간, 약한 자를 거리김 없이 삼키는 냉혈 인간이 될 것이고, 전쟁을 일으켜 무기판매를 하여 자기 배만 불리면 된다는 이기적 인간이 되기가 너무나 쉽다. 따라서 현재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은 예술교육에 더욱 비중을 두는 것 일게다.


모양그리기(Formenzeichnen, 포르멘자이히넨) 또는 선그림은 루돌프 슈타이너가 1919년 처음으로 학교교육에 도입한 과목이다.


발도로프교육을 창시한 루돌프 슈타이너는 그림을 처음부터 색깔그림과 선그림으로 나누어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색깔그림은 미리 상상한 어떤 형태에 색깔을 채워 넣게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색깔이 갖고 있는 고유한 성질을 잘 익힌다음 나중에 색깔의 법칙에 따라 이루어내는 형태를 찾도록 하였다.

선그림에서는 직선이나 곡선, 삼각형이나 사각형등의 기본선의 성질을 먼저 익혀 능동적으로 무궁무진한 형태의 세계로 이끌고자 하였다. 이는 자연을 그대로 모방하는 수동적 태도와는 뚜렷히 구별된다.


발도로프 학교(또는 슈타이너학교)에서는 2-3주일간의 모양그리기 에포크시간을 1학년에서 5학년까지 1년에 2-3번 갖는다. 이 선그림은 1,2학년 때는 글자를 유연하게 잘 쓰기위한 준비과정이기도 하고 5학년 때는 본격적인 기하로 들어가는 예비단계가 되기도 한다.


사람몸에 흐르는 생명기운은 만 7살 전후까지 주로 신체기관(심장, 허파, 콩팥, 등뼈등등을)의 기본꼴을 만드는데 쓰여져야 한다. 이를 가는 시기쯤 이 기운은 예술적 상상력과 기억력으로 바뀌어진다. 그전에 이 기운을 문자, 숫자교육이나 선그임을 익히는데 사용하면 인간의 신체는 그만큼 약해진다. 이뿐아니라 만 7살까지 아이들은 원이나 삼각형따위를 원이나 삼각형자체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한 기본모양을 꼭 사물과 연관을(가령 태양처럼 둥글다던지, 상자처럼 네모나다든지 등등)지어야 한다. 따라서 선그림을 유치원에서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1학년 때는 주로 직선과 곡선, 삼각형, 소용돌이 무의,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원각에 대한 기본 성질을 익힌다.


2학년(만 8살 전후)이 되면 비로소 체내의 평형감각이 어느정도 갖추어짐으로 처음에 좌우대칭을 다음에 상하대칭을 익힌다음 마지막에 사방대칭으로 넘어간다.


쉬운 모양 변화과정을 도입하여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상상력을 펼칭 기회를 준다. 자연에서 우리가 보게되는 다양한 형태는 그 형태로 고착되기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모양 변화의 과정을 연습함으로 상상력이 발달 할 뿐 아이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해서도 어렴풋이나마 눈을 뜨게 된다.


3학년(만 9살 전후)이 되면 아이들은 처음으로 자신이 세상과 하나가 아닌 독립된 존재라는 것을 느끼는 시기이다.(Rubicon)이 시기에는 원과 중심, 중심으로 이어지는 삼면대칭, 오면대칭을 익혀 독립된 존재이지만 그래도 모두는 큰 세상에 속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 수 있게 한다.


만 10살 전후는 사춘기전 아이들의 황금시기이다. 몸과 마음이 조화롭게 발달되어 있다. 4학년에는 3학년때 깨어나기 시작했던 자아의 힘을 매듭모양, 얽힌 모양, 엮은 모양을 통하여 조금 더 강화해준다.


5학년에는 4학년때 시작된 엮기의 정도를 조금 더 복잡하게 하고(그리스, 에트루스문양), 기하의 준비단계로서 자와 콤파스를 쓰지 않고 도형그리기를 연습한다.


6학년때는 논리적인 사고가 미약하나마 일어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슈타이너 학교에서는 방정식을 도입한다. 랑고바르드족이나 아일랜드인들이 사용했던 복잡한 문양을 그린다.

선그림의 기본요소는 곧은 선과 둥근 선이다. 곧은 선은 생각을 둥근선은 의지를 나타낸다. 이 선에 대하여 언급한 보기를 든다.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Prokles(아테네, 410~485) : 모양그리기(선예술)는 영혼속에 들어 있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관면(이데아)에 대한 회상이다.

모양그리기가 주는 효과는 다음과 같다. 정신을 일깨우고 이성을 정화하여 사람안에 들어 있는 어떤 높은 존재를 바깥으로 드러내어 보여준다.


Filppo Brunelleschi(1377~1446, 이탤리 플로랜스 대성당건축) : 선이나 모양은 하느님의 손짓을 볼 수 있게 드러내주는 도구이다. 이런 선들을 이해하면 어떻게 하느님이 세상을 만들었는지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Johannes Kepler(1571~1630) : 둥글고 곧은 두 선의 요소는 창조의 기본요소이며 이 두요소의 협력작업으로 세상이 이루어졌다.


Siegfried Muller : 선그림에도 자신의 모습이 들어있다. 우리는 선그림을 통하여 자신을 가다듬과 변화시킬 수 있다. 특히 엮기 모양을 통하여 개인 스스로에 대한 자각 뿐 아니라 전체 사회속에 얽혀있는 개인의 존재에 대한 자각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루돌프 슈타이너 : 인간의 신체나 영혼구조는 양극성을 띄고 있다. 한 극(머리부분)은 비교적 고요함을 이루고 있고, 다른 극(사지부분)은 움직임의 흐름속에 들어 있다. 위에서는 신경-감각조직이, 아래에서는 신진대사-사지운동조작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한쪽은 생각에, 다른 쪽은 행동에 그 역할을 서로 나누고 있다. 생각은 죽은 개념으로 굳어질 수도 있고 지혜의 빛으로 가득 할 수도 있다. 행동은 혼란으로 몰고 갈 수도 있고 사랑으로 채워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자아는 이러한 두 성질을 한쪽으로 쏠리게 하지 않고 조화로이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선그림은 일반적으로 집중력, 모양에 대한 감까, 생각의 유연성과 상상력을 북돋우어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자아를 강하게 하는 좋은 수잔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선그림을 그릴때에는

-모양을 주변 여건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걸을 수도 있다.

-모양을 공중에 크게 그린다. 이때 눈이 손끝을 좇아간다.

-손가락으로 종이위에 몇 번 연습한 다음 연필이나 크레용으로 옮긴다.

(서울 자유 발도르프 학교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