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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 - 박종현

by 성공의문 2008.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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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 & 하이에크

 

요즘 케인즈가 무덤에서 불려 나와 제 2의 전성기를 맞는 모양이다. 반면 신자유주의의 대부격인 하이에크나 그의 사상적 제자 뻘인 밀턴 프리드먼은 부관참시도 모자랄만큼 비난을 받고 있다. 하이에크의 경제학에서 사상사적 족보를 보면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를 가장 잘 보살필 것이라며 자유주의 입장을 내세웠던 아담 스미스와 리카도를 스승으로 하며 시카고 학파의 산파인 밀턴 프리드먼에게 의발을 건네며 법맥을 전수한다. 하이에크의 경제사상을 받아들여 나라를 운영한 대표적인 이가 로널드 레이건과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이다. 이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좌판을 깐 정치인들로 작금의 경제공황을 야기시킨 자로 지목된다. 노동 유연화만이 살길이라며 노조를 부정하고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몰았다.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작은 정부를 추구하며 부유한 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행위가 기업을 살리는 길이라며 옹호했던 자들이다. 레이건과 대처는 일시적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작금의 사태를 야기한 뿌리로 지목되면서 그들 역시 죽어서도 맘 편하지 못한 상황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자유주의자를 자칭하는 보수 양아치 떨거지 새끼들 수효를 세자면 수십 트럭 분량은 나오겠지만 멘 앞에 복거일이라는 떠중이가 있음을 부기한다. 나는 존경하는 고종석이 도대체 복거일의 어떤 면이 존경스럽다고 그를 인정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인간의 자유를 옹호하는 부분일 것이다) 설사 그를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더라도 복거일의 사고 '틀' 자체가 틀려 처먹었는데 어느 빛나는 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그를 인정할 수 있는가, 하고 의아심이 들곤 한다. 복거일의 쌍판만 봐도 구역질이 난다.

 

케인즈와 헤이에크 사상을 대비시키면서 시장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극명성을 좇아간 이 책은 출판사 ‘김영사’에서 기획한 '지식인 마을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이 시리즈는 상당히 참신한 기획물이라고 본다. 대학생이나 교양에 목 마른 일반인들, 고등학생 수능대비서로도 손색이 없다.

 

 

케인즈 -- 인간은 장기적으로 죽는다!

 

케인즈 사상은 말하는 것은 너무 진부할 만큼 알려져 있지만 핵심은 “ 정부 개입의 옹호” 이다. 세이라는 경제학자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고 했다. 물건을 만들어내면 누군가 사게 된다는 것. 고전학파 시각이다. 고전학파는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여 수급의 균형을 자동으로 맞춘다고 주장한다. 케인즈는 이를 전면 부정한다. 공급 과잉으로 대공황이 온 부분을 고전학파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든다. 고전학파 자유주의자들은 공황이 오더라도 시장이 균형점을 찾아갈 때까지 그대로 놔두면 된다고 말하며, 심지어 어떤 덜떨어진 경제학자는 ‘공황은 좋은 것이여’ 하며 예찬론을 내놓기도 했다. 이 때 케인즈가 그들에게 톡 쏘아 부친 말이 있다. “장기적으로 인간은 모두 뒈진다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시장이 균형을 찾아서 공황을 해결할 때까지 기다릴만큼 인간의 삶은 장기적이지 못하다는 것. 정부가 나서서 구제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하이에크는 정부가 나서는 어떤 상황도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다며 반대의견을 제출한다. 정부의 개입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노예의 길>로 들어선다며 극단적 자유주의론을 옹호했다. 밀턴 프리드먼 역시 하이에크 못지 않다. 프리드먼은 나쁜 약을 제조해서 팔아도 그걸 막으면 안된다는 극단적 비유를 통해서까지 자유시장을 옹호했다. 시장이 나쁜 약을 척결하도록 놔두는 것이 규제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지켜내야할 인간의 자유가 과연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로널드 레이건이 멍석을 깔고 밀튼 프리드먼이 이론적 뒷받침을 했으며 전쟁광집단인 네오콘들이 정신적 자양분으로 받아들였던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파토 내버렸다. 그들은 금융산업간 규제를 풀고 헤지펀드들이 난장을 칠 수 있도록 모든 규제의 장벽을 제거했다. 이제 세상은 그들이 그렇게 옹호했던 '자유'의 대가를 톡톡히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누구를 위한 자유였던가?)  시장 자유주의자들이 깨버린 판을 설거지하러 불려온 자가 다시 케인즈라는 것도 씁쓸하다. 과연 정부는 판쓰리 지경까지 와 버린 경제를 추스려서 똑바로 일으켜 세울 수 있는가?  정부는 자본가들의 로비와 이익추구 앞에서 초연하고 공평무사하게 행정할 능력이 있는가?  대공황 탈출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던 시절의 케인즈주의와 지금의 케인즈주의는 너무도 다른 환경을 갖고 있지 않은가?  월가 자본가들의 헌금으로 대통령이 된 자가 월가의 이익을 배반하면서 서민들의 이익을 옹호해줄 수 있는가?  오늘 박노자 선생의 한겨레 칼럼 “오마바 당선을 별로 반기지 않는 이유” 에서 의문부호를 찍는 부분이다.

 

“ 과연 명문고교-컬럼비아대 학부-하버드대 대학원이라는 엘리트 코스를 별 어려움 없이 거친 중산계층의 흑인 오바마가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백인(7%)보다 거의 세 배 가까운 빈곤율(20%)을 보이는 흑인사회 전체의 비참한 상황이 약간이라도 개선될 수 있겠는가? 미국도 우리처럼 빈곤이 대물림 되는 사회인데, 학력·경제력이 약한 부모를 둔 탓에 출발점부터 불리해 아무리 발버둥쳐도 출세할 수 없는 이들의 고충을 해결하자면 빈민가 공립학교의 수준 향상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붓는 등 복지주의 정책을 활발히 펴야 할 것이다. 오바마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특히 제너럴 모터스(GM)나 포드 등 거대 재벌들이 공황의 파도에 떠밀려 정부 지원책이 있지 않고서는 파산으로 치달을 수 있는 오늘날과 같은 비상시에 말이다. 최고 통치자가 흑인이 돼도, 미국의 사회·정치 구조상으로 ‘기업 복지’와 ‘민중 복지’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할 때 늘 전자를 선택하게 돼 있다.”

 

 

자본주의 이후는 없는가?

 

현재 경제상황 타개는 케인지언의 손을 빌리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고 규제와 정부개입이 당연시 되고 있다. 국민들이 지갑을 닫고 있는데 정부라도 나서서 돈을 뿌려야 한다는 폴 크루그먼의 주장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쉽게 말해서 정부의 취로사업만이 공황을 타개할 유일한 길인 셈이다. 이 책 <케인즈 & 하이에크>는 자본주의 체제를 위기에서 일으켜 세우려는 자(케인즈)와 전체주의와 맞서서 자본주의를 옹호하려는 자 (하이에크) 간 논쟁이다. 나름 깔끔하게 정리된 책이다. 일독할만하다. 책을 읽고도 개운치 않는 이유는 자본주의는 과연 위기에서 구해낼만한, 옹호할만한 가치가 있는 체제인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체제의 대안은 없는 것인가?  무덤에서 불려 나온 케인즈가 자본주의를 수술한다 한들 땜빵 밖에 더 되겠는가?  지금 상황에서는 땜빵이라도 빨리 이루어지기를 비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앞으로 다가올 한 겨울이 두려울 뿐이다.       

-포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