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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_문화

샌드위치 세대의 비애

by 성공의문 2009. 4. 5.
미국의 베이비부머는 2차대전에 참전했던 군인이 전쟁후 돌아와 가정을 꾸리며 낳은 세대입니다. 이들이 성년이 되던 1960년대가 되면 미국은 극심한 세대 갈등에 시달리게 됩니다. 당시 미국을 주도하던 세대는 대공황과 2차대전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2차대전 이후 시작된 냉전에서 공산주의자들과 대치하던 중년, 노년 세대였습니다. 이러한 세대에 속한 사람들은 보통 문화적으로 보수적이고, 근면과 절약을 강조하고, 규율을 따라 사는데 익숙했습니다. 그에 비해 2차대전 이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은 전쟁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이나 부족을 모르고 자랐고, 규율을 싫어하고 자유를 추구했으며, 기성세대의 근엄한 문화를 위선적이라고 거부했습니다.

이러한 두 세대가 대립한 60년대는 인권, 베트남전 등으로 미국 사회가 두 갈래로 나뉘던 시절이었죠. 베이비부머는 인권의 신장, 베트남 참전 반대 등으로 기성세대와 전혀 다른 목소리를 냈고,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경향을 보였고, 문화적으로는 히피 운동을 낳았습니다. 이들 중엔 비틀즈를 들으며 대마초를 피고, 뚜렷한 직업이 없이 Flower power를 믿으며 사는 삶을 이상적이라고 여긴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60년대 젊은이들의 문화는 젊었을 때 한 번 앓고 마는 반항병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중요한 이유는 실제로 이들은 80년대를 거치면서 정치, 경제 권력을 기성 세대에서 뺏어왔고, 90년대 이후로 네 번의 대통령 선거를 휩쓸었고 (클린턴과 조지 W. 부시 모두 베이비부머죠), 지금은 은퇴기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세대로 남았습니다. 즉, 이들은 젊어서 잠깐 반항하다 만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미국 사회를 바꾸어 놓은 것이죠. 이들이 추구하던 인권, 남녀평등, 환경보호 등이 이제 미국인이 대부분 동의하는 개념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들이 얼마나 확실하게 이념 전쟁에서 승리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에 비견할만한 한국의 세대로는 386세대를 들 수 있습니다. 386세대는 80년대에 대학교를 다닌 세대인데, 이들은 한국이 어느 정도 먹고 살만큼 여유가 생긴 시대에 자랐기에 "잘살아보세"가 인생의 목표였던 이전 세대와는 뚜렷히 다른 가치관을 보였습니다. 이들은 "성장"보다는 "공평한 분배"에 관심을 가졌고, "경제"보다는 "민주주의"에 매력을 느낀 세대이지요. 결국 이들이 많은 노력을 한 결과 군사독재는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싹트게 됩니다. 이들은 90년대가 되면 본격적으로 사회권력을 차지하기 시작하는데, 그러한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분야는 바로 영화계였습니다. 기존 세대와 뚜렷히 다른 예술적 감수성을 보이던 이들은 기존 한국 영화와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90년대말 한국 영화의 상업적 성공을 이끄는 주역으로 등장합니다. 386세대가 진출에 성공한 또 다른 분야는 사교육계였습니다. 80년대 운동권 중엔 이른바 명문대생이 많았는데, 이들은 학생운동에서 손을 땐 뒤에 교육사업에 진출해서 학원가를 장악하고 참고서를 제작하였습니다. 지금도 대형학원 운영자, 인기 학원 강사 중엔 386세대가 많습니다.

90년대 학번들은 386세대처럼 군사 독재와 직접 맞서 싸운 경험은 없지만, 사회 곳곳에 남은 부조리에 대해 실망하고, 민주주의의 완성과 더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었습니다. 이들이 잠시나마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벤처기업을 육성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20대이던 90년대 학번들은 컴퓨터와 인터넷에 익숙하였기에 쉽게 IT 벤처의 세계로 뛰어들었고, 그중엔 대박 사업을 일으킨 예도 가끔은 있죠 (물론 대부분은 망했습니다만). 그리고 2002년 대선에서 386세대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386 세대와 90년대 학번은 드디어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중추세력으로 자리잡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80년대와 90년대 학번의 시대는 거기서 끝나고, 사회는 다시 60-70년대에 청춘을 보낸 중, 장년 세대에게 주도권이 넘어갔습니다. 60년대 대학을 다닌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된 2007년 대선은 그러한 현실을 잘 보여주죠. 이명박 대통령은 젊었을때 데모하다가 재판도 받고 하였지만, 결국은 60년대 사람인지라 "잘 살아보세"식 사고를 넘어서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니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 추구한 것은 정확히 60년대식 경제성장 정책이었죠. 그렇게 본다면 미국은 베이비부머가 정치, 경제계의 권력을 기성세대로 부터 빼앗아 오면서 사회 분위기를 바꾸었는데, 한국은 386세대와 90년대 학번이 기성세대의 권력을 거의 전혀 빼앗아 오지 못하고 마냥 질질 끌려가는 형편이죠.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기성세대가 현재 20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입니다. 즉, 지금 20대는 10-20년 선배들과는 다르게 사회 정의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별로 없고, "어떻게 하면 이 각박한 경쟁속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넘어서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이는 이들이 10년전 외환위기를 겪고 중산층이 몰락하던 시기에 자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잘 살아보세"시대가 다시 온 것이지요. 따라서 386세대, 90년대 학번은 "젊은 애들이 왜 이명박을 지지하느냐"고 답답해 하지만, 이들로서는 나름대로 이명박이 자신들의 이상에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물론 최근에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워낙 떨어졌으니, 지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지금 한국에서 그나마 사회 정의를 꿈꾸고 공정한 분배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세대는 지금의 30-40대 밖에 없는 듯 보입니다. 즉, 20대나 50대 이상은 대부분 "정의가 밥먹여주냐? 정부말 잘 들어서 경제성장 잘 되면 그게 최고다"라는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지요. 아무리 촛불시위가 크게 일어나는 듯 싶다가도 결국 정부에 밀리고 마는 것은, 이처럼 이명박 정부와 지향점이 다른 세대가 적고, 같은 세대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욕을 먹어도 지지도가 30%대씩이나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되죠.

어쨌든 지금 30-40대는 정치, 경제계를 지배하는데 실패했고, 앞으로도 이들이 사회를 다시 주도하는 세력으로 자라날지는 의문입니다. 잘못하다간 30-40대는 노년 세대와 청년 세대 사이에 껴서 늘 소수의 목소리로 남는 불행한 세대가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정말 이러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는 30-40대의 불행일 뿐 아니라 한국 전체의 불행일 것입니다. 지금 30-40대가 한국을 혁신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그저 그런 나라로 옛날 방식이나 고집하는 답답한 나라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부디 한국이 그러한 답답한 지경에서 벗어나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