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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사회 문제의 핵심] 정신 생활의 무기력 · 경제 생활 · 노동 문제

by 성공의문 2018. 3. 10.


정신 생활이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는 사회적 공생에는, 사회적 유기체의 생존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힘 중에 하나가 결여된다는 사실의 무게를 진정으로 느끼도록 배워야, 이 영역에서 오늘날 생각하는 것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적 유기체는 정신 생활의 무기력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그리고 그 정신 생활의 무기력에 대한 인정을 혐오하기 때문에 그 병이 더욱 악화될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사회 운동에 적합한 사고를 발달시킬 수 있는 근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흡사 강렬한 계시라도 받은 듯 그의 시각은 오로지 경제 생활만 바라보도록 이끌어졌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곳에, 정신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에 사회 운동의 영역에서 필수적으로 들어서야 할 동인이 존재할 수 있다고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비정신적이고, 비영적인 경제 생활의 발달을 통해서만 그가 인간 존엄적이라 느끼는 상태가 생겨날 수 있다고 유일하게 믿고 있다. ·········· 자신의 구원을 오로지 경제 생활의 개혁에서만 찾도록 몰아대어졌다. 사적 기업과 개별적 고용주의 이기주의, 그리고 피고용인 내에 존재하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권리 요구를 정당화시키지 못하는 개별적 고용주의 무능에 기인하는 모든 손상이 오로지 경제 생활의 개혁을 통해서만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 몰아대어졌다. ·········· 모든 정신적, 영적인 것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순수하게 경제적인 과정으로만 시각을 향하도록 함으로써 그런 의견이 생겨났다. 


그로 인해서, ·········· 모순적인 모든 것이 들어서게 되었다. ·········· 최종적으로 완벽한 인간 권리를 그에게 줄 모든 것이 경제에서, 경제 생활 자체에서 발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바로 그 완벽한 인간 권리를 위해서 그는 투쟁한다. ·········· 사람들은 그 어떤 것이 경제 생활 자체에서 생겨난다고 믿고 있지만, 결코 유일하게 경제 생활로부터만 그것이 솟아날 수 없으며, 오히려 고대 노예 제도에서 봉건 시대의 농노 제도를 거쳐서 현대 ·········· 노동자에 이르는 직선적 발달선상에 존재한다. 현대 생활을 위해서 상품 순환, 통화 유통, 자본 조직, 소유, 토지와 부동산 제도 등등이 형성되었듯이, 그렇게 분명하게 말해지지 않는 어떤 것이, ·········· 역시 의식적으로 느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가 지니는 사회적 의지의 실제적인 근본 자극이 되는 어떤 것이 현대 생활 내부에 형성되었다. 


··········


전반적인 현대 ·········· 사회 운동의 근본 자극 중에 하나로서, 시장에서 상품을 팔듯이 자신의 노동력을 고용주에게 팔아야만 한다는 것에 대한 혐오감이, 수요와 공급을 따르는 시장의 상품처럼 자신의 노동력이 노동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 그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대한 혐오감이 그들의 본능 속에, 잠재 의식적인 느낌 속에 얼마나 강하게 살고 있는지를 한번만이라도 일별할 수 있다면, 노동력이라는 상품에 대한 그 혐오감이 현대 사회 운동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 수만 있다면, ·········· 거기에 작용하고 있는 것을 완전히 자유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 그 ·········· 자극이 오늘날의 사회 문제를 압박하면서 몰아대고 격렬하게 타오르도록 만든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고대에는 노예가 있었다. 인간 자체가 상품처럼 팔렸다. 조금 적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인간 존재의 한 부분이 농노제를 통해서 경제 과정으로 편입되었다. 자본주의는 인간 존재의 나머지에 상품적 성격을 들러 붙이는 권력이 되었다. 바로 노동력이다. ·········· 경제 생활에 편입되는 모든 것은 상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그 사실이 경제 생활 자체 내에 어떻게 놓여 있는지는 보지 않는다. 상품의 생산과 실용적인 소비에 경제 생활이 존재한다. 인간 노동력을 경제 과정에서 분리시킬 가능성을 찾아내지 않는다면, 그것에서 상품의 성격을 벗겨낼 수가 없다. 경제 과정을 재형성해서 그 과정 내에서 인간 노동력이 그에 정당한 권리를 얻게끔 할 수는 없다. 어떻게 노동력을 경제 과정에서 분리해 내어서, 그것에서 상품적 성격을 덜어 내는 것을 사회적인 힘에 의해 규정되도록 하는가? 바로 이것이 추구되어야만 한다. ·········· 자신의 노동력이 적절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경제 생활 상태를 갈망한다. 그렇게 갈망하는 이유는, 자신의 노동력이 지니는 상품적 성격이 본질적으로 보아서 경제 과정에 완전히 얽매여 있는 자신의 상태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동력을 그 과정에 완전히 양도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 과정 안에서 자신의 전체 인간으로 몰두한다. 노동력의 조정을 그 내부에 둘 수 있는 한 경제 생활은 그 자체적인 성격으로 인해, 마치 상품이 소비되듯이 바로 그렇게 노동력을 적절한 방식으로 이용하기를 추구한다. 현대 경제 생활의 힘에 마취나 된 듯 사람들은 오로지 그 내부에서 작용할 수 있는 것만 주시한다. 


어떻게 노동력이 더 이상 상품이 될 필요가 없는지를 그 시각으로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경제 형태는 단지 다른 방식으로 노동력을 다시금 상품으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생활 내에서는 그 영향권이 인간 노동력으로까지 확장되지 않아야 할 이해관계를 통해서 규정되는 법칙에 따라 상품 생산, 상품 유통, 상품 소비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는 한, 노동 문제를 그 진정한 형상에서 사회 문제의 한 부분으로 만들 수 없다. 


한편으로는 노동력으로서 인간에 결부된 것이 경제 생활에 어떻게 편입되는지,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부터 소비에 이르기까지 상품이 흘러가는 그 길에서 원천적으로 보아 인간과 무관한 것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완전히 상이한 이 두 양식을 구분할 수 있도록 근대의 사고가 배우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이 방향으로 가는 건강한 사고 양식을 통해서 노동 문제의 진정한 형상이 드러난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 사고 양식을 통해서 건강한 사회적 유기체에서 경제 생활이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할지도 역시 분명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