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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가, 아나키스트, 그리고 비트코인

비트코인(1)을 비롯한 온라인 화폐가 떠오르면서, 월스트리트의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 금융업계의 공룡들은 이 화폐 분야의 신기술이 새로운 수익의 지평을 열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자화폐들이 고안된 원래의 목적은, 기존의 은행을 배제하려는 것이었다. 금융 권력에 반발하는 시위대의 바람과는 거리가 있지만, 이들 전자화폐가 19세기 꿈꿨던 ‘이상적인 화폐’에 다시 숨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서점 <아마존>으로 서점업계를, 숙박사이트 <에어비앤비>로 숙박업계를, 그리고 <우버>앱으로 택시업계를 뒤흔든 디지털 광풍의 다음 정류장은 다름 아닌 월스트리트다. 서점이 출판사와 독자를 연결하듯, 금융가의 기본 기능도 돈을 빌리는 사람과 빌려주는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과 기술을 조합하려는 젊은 기업들에게, 이는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으로 비칠 수 있다. 

금융과 기술의 합성어인 ‘핀테크(Fintech)’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이용가능한 온라인 시장 플랫폼으로, 기존의 은행을 대체할 수 있어 기대를 모은다. 하지만 기대와 걱정은 언제나 함께 오게 마련이다. 컨설턴트들은 기존의 금융권 주체에게 기존체제의 붕괴를 예고한다. 특히 디지털 방식의 확산은 규제회피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만큼, 이전 시대는 빠르게 무너질 것으로 전망한다. 

비트코인을 만들어낸 금융 신기술이 금융거래에 어떤 혁명을 몰고올 것인지 세세히 설명해주는 기사들도 넘쳐난다. 이 분야와 관련해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펴낸 미국인 기업가 브렛 킹이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인 ‘브레이킹 뱅크’의 오프닝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금융 신기술은 “오늘날 은행권에서 업무가 이뤄지는 방식에서부터 화폐의 개념 그 자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뒤바꿔 놓는다.” 영국에서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이후 핀테크 분야의 매출액이 연간 평균 74% 성장했다. 금융 시스템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 덕분에 파이가 커진 것이다.

처음에는 신기술 분야에서 이뤄진 작은 쾌거들이 금융 분야로 몰려드는 양상을 보였다. 즉각적인 수익을 보장받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일어났던 대형 은행들의 도산에 따른 반발 때문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개인 이용자 사이에서 이 분야의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증대한 것은, 수천 명의 미국인들을 뉴욕 주코티 공원으로 불러들여 탐욕스런 금융 자본주의를 비난하게 만든, 바로 그 분노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신기술을 주무르는 실리콘 밸리의 엘리트와 주코티 공원의 시위대 사이에는 공통점이 전혀 없는 듯하다. 실리콘 밸리의 엘리트들은 그저 은행에 대한 반감으로 수익성 좋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발명한 것에 흡족해하는 이들이며, 시위대는 대형 금융기관의 몰락을 요구하고 사회정의를 말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 아니 공공의 적이 존재한다. 바로 월스트리트다. 이 기생충 같은 중개업자는 서로 다른 꿈을 꾸는, 엇갈린 두 비판세력 사이에 끼어 있었다. 실리콘 밸리 스타트업 기업들의 목적은 일단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골드만삭스의 수익을 빨아들이는 것이었다(그러나, 이 앱은 결국 골드만삭스에 인수되고 만다). 그리고 시위대는 돈 장사로 몸집을 키우는 금융산업 분야에 반발하고 있었다. 

물론 금융 분야에 대한 이러한 반감은 낯설지 않다. 과거에도 통화 분야의 수많은 ‘급진파’들은 오늘날 핀테크를 주창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금융 중개업자들을 제거하려 애썼다. 마르크스주의를 따르지 않는 사회주의자 대다수는 재화의 (생산이 아닌) 분배와 순환에 대해, 보다 포괄적인 고민을 바탕으로 시장경제와 경쟁논리를 비판했다. 

19세기 초에 등장한 사회주의는, 금융권에 대해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았다. 예를 들어 생시몽(1760~1825)의 경우, 물려받은 유산으로 호위호식하며 ‘빈둥거리는’ 부자들로부터 권력을 탈취할 실력 중심의 기업가들 중, 은행가를 우선으로 꼽았다. 생시몽은 “정치 단체에 있어 돈은 우리 몸의 핏줄과도 같다”고 보았다.(2) 그의 뛰어난 제자들은 스승이 남긴 이 명언을 따르면서 ‘노동자로부터’ 생산 수단을 몰수한 대지주와 금리 수익자를 집중 공격한다(이들에게 있어 노동자 계층은 ‘현역 자본가’로 분류됐다). 

상속세 부과와 철도 개발, 생산 수단의 사회화 등 이들의 구상안에 있어 기본 전제는, 국가가 독점하는 단일은행의 신설이었다. 기업의 필요에 따른 채권 발행 또한 이 은행에서 이뤄진다. 유산상속자들이 은행에 재산을 예치하도록 강제하고, 이 재산을 산업생산 용도로 활용하면 저들의 무위도식하는 생활을 근절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이론적으로 이러한 바람이 실현되려면, 단순한 계산 단위를 뛰어넘는 화폐의 개념이 전제돼야 한다.(3) 신용과 신뢰를 바탕으로 운용되는 이 화폐는 노동자 부대를 위해 활용될 것으로, 은행이 그 중심에 있었다.

물론 이러한 단일 은행의 수립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생시몽과 뜻을 같이 하던 은행가 이멜 페레르 및 이작 페레르 형제는 제2제정이 이뤄지던 1852년, 크레디 모빌리에를 설립해 성공을 거둔다. 이는 사회개혁 세력이 기업활동을 위한 자금운용과 사회적 근대화 사이의 관계를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회주의 사상이 프랑스 내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돼 감에 따라 ‘빈둥거리는 자본주의자들’과의 싸움은 모든 자본주의자들과의 싸움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러한 전환이 돈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꾸지는 못했다. 


프루동에서 온라인 금융에 이르기까지

상품화폐(금과 같이 실물가치를 지닌 화폐로서, 상품처럼 교환되는 화폐) 대신 기호화폐(은행권처럼 실물가치가 없는 명목화폐)를 사용하려는 욕구는 19세기 내내 꾸준히 커져갔다. 1848년 자본유출에 따른 금융위기가 불거지자,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1809~1865)은 노동의 생산물을 통화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경제질서를 찾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그는 환어음의 유통을 주창한다. 이는 제3자인 은행이 정당한 가격을 매긴 물품으로 어음을 보장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나아가 소작료와 집세 등 모든 형태의 이자 수입을 포함해, 전반적인 금리 인하와 금과 은의 유통 중지를 주장한다. 그러려면 프랑스 은행을 ‘인민은행’으로 바꾸어 국유화해야 했다.(4) 정부에 대해 독립적인 은행 이사회는 모든 생산 분야 및 공공 서비스 분야의 대표로 구성된 총회에서 임명하며, 은행의 운영 또한 시의회 및 상공회의소의 감시를 받게 된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었다.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난 급진적 화폐 이론은 프랑스 이외의 지역에서도 대두됐는데, 협동조합 운동의 창시자인 이상주의 기업가 로버트 오언(1771~1858)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이 주축이 됐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금본위제의 복원에 반대하고, “오직 노동만이 부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 영국 사회주의자들은, 생산에 투입된 노동의 양으로 한 재화의 가치가 표현될 수 있는 교환체계를 수립하고자 노력한다. 

이들은 이와 같은 화폐의 새로운 정의를 통해, 부를 자본주의자들의 손에서 노동자 계층의 손으로 이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언의 생각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고 판단한 미국의 무정부주의자 조시아 워렌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신시내티에 직접 자신의 (노동 가치) 교환은행을 설립한다. 이 은행의 노동 바우처 상에는 시간단위로 측정한 근무 확인내역이 서면으로 기록돼 있었다. 

19세기 말, 소다제조법에 관한 특허로 막대한 부를 거머쥔 벨기에 사업가 에르네스트 솔베이(1838~1922)는 화폐가 없는 또 하나의 이상적인 교환거래를 구상한다. “불완전한 도구인 화폐제도를 폐지하고 간단한, 그러나 법적효력을 지닌 기입방식으로 이를 대체해야 한다. 우리는 이를 ‘사회적 기장주의’(5)라 명명한다.” 

벨기에 의회에서 소개한 그의 계획안은 은행 부문의 공유화를 요구하고 정부에 중점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있었다. 또한 정부는 개인별로 계좌를 하나씩 개설해주어, 자산총액을 기입하도록 했다. 동시에 모든 지출내역을 찍을 수 있는 신용통장을 제공한다. 재산에 비례하는 세금의 신설로 제도를 보완하고 부의 재분배에 따른 폐단을 최소화한다. 이렇게 하면, “각자가 사회적 생산성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던 솔베이의 말이 실현될 수 있었다.

20세기 초, 사회주의로 전향한 독일의 상공업자 실비오 게젤(1862~1930)은 화폐가 부의 과도한 축적도구가 될 수 없도록 하는, 오랜 역사적 투쟁을 위해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인다. 그는 ‘프라이겔트(Freigeld, 독일어로 자유화폐-역주)’라는 신개념 통화를 발전시킨다. 

이 화폐의 특징은 시간이 지날수록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인데, 고정하락률에 따라 주당 0.1%, 연간 5.2%씩 가치가 하락한다. (6) 즉 손해를 보고 싶지 않으면, 서둘러 소비해야 한다. 중앙은행을 대체하는 통화조정위원회의 개입으로, 지폐 재고를 주기적으로 갱신하는 이 제도 하에서는 금리를 낮출 수 있고, 그에 따라 자본 보유자의 수입을 줄일 수 있다.

게젤은 이어 천연자원 및 민간 토지소유권의 국유화까지 예상해, 부동산 소득 및 이자 소득을 통제할 방안을 마련한다. ‘프라이겔트’를 사용하는 기업들은 이러한 압박을 받지 않으려면, 유통되는 화폐의 수량과 유동성을 조절해 자본축적에 따른 문제를 예방해야 한다. 이러한 게젤의 통화론은 국경을 넘어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눈으로 볼 때, 경제학사에 길이 남아야할 이름은 칼 마르크스가 아니라 바로 실비오 게젤이었다. 그의 새로운 발상은 대공황 기간 동안 유럽과 미국에서 수많은 실험적 시도에 영향을 미쳤지만, 이후 정부와 중앙은행이 본격적으로 금융 무대에 등장하면서 신속히 자취를 감췄다.

현재 상황에서는 대기업 총수가 사회주의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한 화폐개혁의 방식을 고민하는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과거의 엘리트와 지금의 엘리트는 분명 다르다. 과거의 기술과 지금의 기술도 다르다. 근대의 금융 시스템 상에서 은행이 그 권력을 잃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게젤이 꿈꾸던 ‘프라이겔트’의 이상향은 기술적으로도 실현 불가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자화폐의 경우 이야기가 다르다. 전자화폐는 얼마든지 그 특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 소비되지 않을 경우 매월 1%씩 가치가 떨어지는 비트코인 형태의 대안 화폐를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 화폐의 코드에 그런 특징을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 뿐만 아니라, 비트코인은 일개 중앙서버가 아닌, 네트워크에 접속된 모든 컴퓨터의 협력으로부터 화폐의 신용도를 끌어내는 기술을 활용한다. 오늘날의 게젤이나 프루동은 거래의 중간 매개자를 없애는 이 분권적인 특성을 기반으로 화폐 유토피아의 실현을 구상해볼 수 있다.

소규모의 역내 단위로 유통되는 대안 화폐로서 비트코인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아직 비주류의 공상 정도로 그치고 있다. 전자화폐의 의미와 자본과의 상관관계는 아직 현대 좌파들의 관심 밖에 있다. 이런 것은 프루동이나 솔베이, 게젤에게 있어서도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이 화폐계의 이단아들은 가치를 교환하고 보존·변형시키는 화폐제도를 차근차근 구상해 나갔으며, 이들이 구상한 화폐제도는 개개인의 노동에 대한 보상이 가능하고, 동시에 유의미한 평등 수준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였다. 화폐의 신용도를 구축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수단에 불과했다. 이들은 은행을 통제해 새로운 가치의 교환규약을 부과하기 전에, 그러한 개혁을 통해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회에 대해 뚜렷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2008년, 사람들의 신뢰가 바닥을 친 금융산업은 서둘러 ‘실리콘 밸리’라는 열차에 편승한다. 금융계가 기존의 아날로그 시대를 ‘붕괴’하는 파격적인 신기술에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출판업계나 숙박업계, 택시업계가 겪었던 쇠락의 길을 피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자체적인 거래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려는 목적도 있다. 월가에서 ‘핀테크’ 분야에 특화된 실리콘 밸리의 신생기업을 사들일 가능성은 적지 않다. 

그러나 골드만삭스가 ‘인민은행’이나 ‘프라이겔트’ 같은 구상을 사들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는 관심과 취향의 문제라기보다, 게젤과 프루동이 그들의 이상향을 이런 기업에게 팔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월가 시위대가 금융권과 정치권에 대한 반감으로부터 각각 경제적·기술적 대체재를 구상했다면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그 이전에, 부의 재분배에 따른 폐단이 부의 생산방식과 유통방식에 기인한다는 점을 알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글·에드워드 캐슬턴 Edward Castleton: 경제사학자로 근현대 화폐금융에 관해 글을 주로 쓰고 있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22세기 세계: 내일을 위한 유토피아> 등의 역서가 있다. 


(1) Bitcoin, ‘블럭체인’이란 기술을 이용하는 전자화폐. 블록체인은 일종의 공공 거래 장부(데이터베이스)로, 거래내역은 안전하게 승인·저장된다. 승인과 유지 작업은 중앙의 한 관할 기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스템 이용자 각각의 컴퓨터를 통해 이뤄진다. 

(2) Saint-Simon, <생시몽 전집OEvres complètes> 제2권, PUF, Paris, 2012. 

(3) 공동단위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가늠하는 것이 바로 화폐의 기능 중 하나다.  

(4) 은행과 관련한 프루동의 구상안은 2016년 출간될 그의 저서 <공화국 논집Mélanges républicains>(Presses du Réel)을 참고.

(5) Ernest Solvay, <생산주의와 기장주의에 대한 소견: 사회적 연구를 기반으로Notes sur le productivisme et le comptabilisme : études sociales>, Henri Lamertin, Bruxelles, 1900.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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