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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_문화

놋그릇 - 방짜유기에 대한 자료 정리

by 성공의문 2012. 3. 29.

방짜유기의 장점

- 소화를 촉진합니다.

- 소량의 미네랄을 방출합니다.

- 해충을 소독하여 제거하는 효과가 있습니다.(양푼에 미나리 같은 야채를 씻을 때 거머리나 벌레가 씻겨 나감.)

- 농약, 나쁜 공기 등 독성물질에 반응을 합니다.

- 주위환경여건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냅니다.

- 보온, 보냉 효과가 뛰어나 음식의 맛을 살려줍니다.

- 입병이 잘 안 생기며, 있었던 입병도 훨씬 빨리 좋아집니다.

- 스스로 음식을 살균 소독하는 기능을 지녔기에 특히 노약자, 어린이, 임산부에게 탁월합니다.

- 유기와 타 용기의 식물 생장실험에서 유기의 경우 식물 생장에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 수저와 그릇이 부딪힐 때 내는 청아한 소리와 놋그릇 자체의 은은한 빛깔은 정서함양에 매우 좋습니다. 

- 무독, 무공해 식기입니다.

- 한국의 전통적인 멋이 있어 내.외국인 선물용으로도 적합합니다.

- 은은한 유기에서 우러나오는 고급스러움이 식탁의 분위기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 줍니다.

- 실용성. 예술미. 장식미를 두루 갖춘 세계 최고의 우리유기입니다.

- 유기자체에서 소독 정화를 하기 때문에 따로 소독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방짜유기 관리(주부들 체험 댓글)

정말 좋은 선물 받으셨네요. 이봉주 옹 것이면 방짜 중 최고로 치는데... 좋으시겠어요.

전 이봉주선생 밑에서 배워 창업하신 국일유기 김문익 선생꺼 쓰고 있어요. 너무 갖고 싶어 장만했는데... 돌쟁이 아가가 있으니 쓰기 어렵네요. 처음엔 열심히 썼는데...

유기는 날마다 쓰면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아요. 초록수세미에 세제 뭍혀 닦아 물기 있을 때 마른행주로 싸악 닦아주면 깨끗하죠. 그래도 오래 쓰면 광이 흐려지는데 그땐 마른 초록수세미로 세제 없이 그냥 결따라 박박 밀듯이 닦아주시면 검은 때가루 같은 게 밀려 나옵니다. 그러고선 또 평상시처럼 세제로 한번 닦아주시면 되요.

방짜는 그릇을 사랑하는 사람이 애정을 갖고 소중히 대할 때 그 빛이 나는 것 같아요. 대를 물려 사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그릇이구요. 해외 명품보다 더 빛나는 물건이지요. 장만해주신 어머님 마음 잘 새기시고 오래오래 잘 쓰세요. 가족들이 모두 건강해질 거예요~^^


초록 수세미에 치약을 바르고 물을 약간 적셔서 닦으면 쉽게 닦여집니다.(너무 쉽게 닦여서 치약은 놋쇠에 안전한가?는 생각은 늘...합니다. 누군가 아시면 궁금함을 풀어주시면 좋겠어요. ^^)

젊은 분들이 도우미없이 사용하기엔 관리가 너무 힘들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양념진하지 않은 음식은 놋그릇에 넣어서 냉장고에 보관하면 아~~주 좋습니다.

사용하면 할수록 멋진 그릇입니다. 시작은 친정엄마가 주신 것이라 저도 딸들에게 물려주려고 놋그릇을 계속 모으는 중인데 역시 이봉주님것이 최고입니다. 

고맙고 좋은 시모님을 두셨습니다. 나이많은 저가 봐도 참~~ 부러운 원글님이십니다.


저희도 이봉주 유기 쓰는데 요즘은 유기 관리가 그리 어렵지 않아요...

처음에만 검은게 좀 많이 묻어나고 계속 쓰다보면 보통 세척할때 그냥 세제를 묻힌 초록 수세미로 닦아쓰면 늘 깨끗해요... 쓰다 좀 색이 죽으면 초록수세미로만 닦아주면 검은때 다 벗어지고 제 색 돌아오고요... 유기 냄새가 느껴지는거나 물 얼룩 남는것도 좀 쓰다보면 괜찮고요...  

따뜻한 음식 정말 잘 안식고 여름에 유기그릇에 물 따라 마심 속까지 다 시원하죠... 거기다 유기의 살균력 정말 대단해요...(유기 수저로 밥 먹으면 입병도 안 생겨요) 

시어머니가 가족 생각해서 해주신거니 묵히지 말고 잘 쓰세요...


무형문화제 77호 한상춘선생이 만든 것 쓰고 있는데 볼수록 예뻐요. 벌써20년 넘게. 옥바리는 원래 반방짜를 쓴다더군요 7첩반상기 모두꺼내지 않고 몇개씩 뚜껑과 함께 내놓으면 아이들도 좋아해요. 뚜껑을 열때 기분은 뭐랄까..

아무튼 깨질염려없어 좋고 쓸때마다 격이다른 느낌있어 좋고 닦을때마다 윤기나니 좋고 나중에 물려줘도 손색없는 문화재유기추천합니다


놋그릇은 처음엔 물이 묻으면 물자국 밥이 담기면 밥자국이 생김니다. 자국 생긴 그부분만 작게 싹싹 문지르고 그외 부분은 일상적으로 설것이 하듯 씻어서 바로 마른행주로 물기를 제거하고 다시 쓰면 처음보다 얼룩이 약하게 생깁니다. 

한 서너변 반복하고 나면 물기가 있어 제거를 안해도 자연히 마르면서 얼룩이 안생깁니다. 그러면 보통그릇들이나 같이 막써도 괜찮아요.

하지만 설것이는 만드시 3M이나 스카치브라이트 같은 수세미를 써야 합니다. 차츰 금색으로 바뀌다 어두운 금색으로 바뀌는 모습이 아주 고급스런 엔틱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중간 중간 밖은색이 생각 날땐 신경써서 수세미질을 하면 새로운 빛깔이 다시 나오죠.

저두 4년전쯤에 이봉주님 유기를 bj62.kr이란 곳에서 사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꾀 된답니다. 쓰면 쓸수록 매력 있는그릇 입니다.


음식점에서 들었는데 2주에 한번씩 식초에 30분간 담갔다가 세제로 가볍게 씼는다고 합니다.


음.. 이정도는 백만원 넘을 거 같은데요.. 저도 이봉주 방짜 씁니다. 한때 방짜에 미쳐서 문경(이봉주 공방)까지 가서 사왔다는..마른 초록수세미로 닦는것이 더 잘 닦입니다. 그런 다음 세제 묻혀서 닦으세요. 그러니까 수세미는 두개를 준비 하셔야 겠죠? 마른 수세미와 젖은 수세미..

그럼 은은한 금색이 납니다..그리고는 마른 행주로 물기를 닦으시면 녹청이 좀 묻어 나올겁니다.

싹싹 닦으세요.. 수세미 쓰시다 보면 손이 거칠어 지니까 고무장갑끼고 하세요. 관리가 구찮기는 하나 가끔 꺼내서 분위기 내면서 씁니다. 수저와 젓가락은 매일 쓰고요..맨날 입병 달고 사는 남편이 요즘은 입병 치례를 않하는거 보면 확실히 살균효과가 있긴 한가봐요..

시어머니가 완전 멋지세요..


유기그릇 넘 힘들어요. 물기 마르기전에 마른수건으로 닦아야지 안그럼 물자국 생기고 닦을때 마다 손자국에 고무장갑 자국에 시커먼 땟물 계속 나와요 ㅠ ㅠ. 음식 오래두면 유기 색깔이 변하니 설겆이는 바로바로 해주셔요.


달걀 묻어 검은 색으로 변하지않는 한 전 그냥 편하게 쓰기로 했어요, 처음에야 부지런히 수세미로 열심히 닦았지만 곧 지치고 가볍고 쓰기 편한 코렐로 바꿔 쓸까 갈등때리죠..

매일 쓰다보니 반짝이던 유기 빛을 잃어 오히려 쓰게 편해지더군요. 걍 편하게 쓰세요. 적어도 1주일에 한 번씩 모아서 닦아주려면 힘 좀 부칩니다. 

전 그냥 한달에 한 번 정도 너무 검게 변한 부분 부분만 수세미로 문질러줘요. 편하게 쓰세요


저도 이봉주 방짜유기 쓰고 있는데,, 스텐도 이것도 그냥 윤기가 안나도 아주 편하게 그냥 쓰고 있어요. 직장맘이라 일일이 물기 닦지 못해요. 얼룩 져도 그냥 그려러니 하고 써요. 

모든지 마음편하게 쓰시면 될것 같아요. 이것 때문에 괜히 스트레스 받으면 안쓰니만 못하잖아요. 편하게 쓰세요^^


파는 아줌마 말씀이 식기세척기 넣어도 된다고 하더라구요. 대신 전자렌지는 넣지 말라고 하네요.

이봉주 방짜는 식기세척기 넣어도 혼자만 반짝 거린다는 상업적인? 얘기도 하시구요 ㅋㅋ

저는 그냥 퐁퐁으로 닦네요. 요새거는 옛날것만큼 닦기 힘들게 나오지 않는다고 하네요. 비율도 잘 나오고요.


저도 이봉주님꺼 사용하는데.. 초록 수세미로 몇번 물자국 없애고 나니... 그담부턴 안 생기던데요.. 그이후론 줄곳.... 그냥 그릇처럼 사용하는데... 관리하지 않아서 그런지.. 관리하는 부담은 없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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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짜 유기는 병원균에 살균 효과가 있다.

병원성 대장균 o-157균 대장균 중 가장 강력한 균으로 노약자인 경우는 사망을 하게 되는 균이다.

81년 미국에서 처음 발견되어 96년 일본에서 11명의 생명을 앗아간 죽음의 균이다. 

그 대장균을 전통유기인 방짜 그릇에 넣었더니, 24시간 후 알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방짜그릇에서 뿌연 침전물이 발견되었다.

침전물은 균이 사멸되어 생긴 흔적이었으며, 그릇은 표면이 부식되었다. 


2. 방짜 유기는 농약 성분을 가려준다.

스테인리스, 방짜, 사기그릇에 각각 농약이 묻은 깻잎을 담아 놓았다. 그리고 24시간 후 그릇의 상태를 체크해 보았더니 방짜에서만 탈색이 일어났다.

이번엔 2개의 방짜에 농약 깻잎과 무농약 깻잎을 놓아 보았다.

24시간이 지난 후 두 그릇의 상태를 비교해 보았더니, 농약 깻잎을 담은 그릇에서 만 탈색이 일어났다. 방짜유기는 농약성분을 그릇 표면에 표시해 준다. 


3. 식물이 생존하는데 더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준다.

1주일이 지난 후 백합실험 결과이다. 같은 조건에서 자란 백합이 방짜 유기에서 유독 잘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4. 현대 금속학 적으로 불가능한 합금 비율로 만들어 진다. 

금속학에서 실용기의 비율은 주석의 함유률이 10% 이하이어야 한다. 그런데 방짜 유기는 구리 78% 주석 22%를 사용 하고 있다. 현대 금속학에서 제시한 비율대로면 그릇이 쉽게 무르거나 아름다운 색깔이 나올 수 없는 비율이다. 

- 중앙일보


놋그릇

방짜유기 - 놋그릇 또는 유기(鍮器)는 놋쇠로 만드는 그릇이다.

역사

대한민국의 청동기 문화는 시베리아의 ‘미누신스크-스키타이’청동기 문화와 관련이 있는 북방계의 ‘오르도스-요령지방’청동기 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 시대 초기에는 비파형동검과 조문경을 제작하였고, 후기가 되면 세형청동검을 독자적으로 주조하여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다뉴세문경, 방울, 의식구를 비롯한 각종의 도구를 제작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빛깔이 고운 ‘고려동’을 생산하여 중국과 교역을 하였다. 왕족과 귀족은 방자기법으로 제작한 얇고 질긴 청동그릇을 식기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국가에서 채굴에 힘을 썼으며, 경국대전에 의하면 국가에서 쓰는 유기를 만드는 유장(鍮匠)을 중앙 장인인 경공장(京工匠)으로 공조(工曹)에 8명, 상의원(尙衣院)에 4명을 두었고, 지방 관아에 필요한 유기를 만드는 외공장(外工匠)도 상당수 배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는 숭유억불정책의 영향으로 불교적 색채를 띠는 금공품이 많지 않았던 반면 담배함, 화로, 향로, 반상기 등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을 주는 형태의 생활용품과 민예품이 많이 제작되었다. 자기를 대중적인 식기로 쓰던 시대였음에도 유기는 고려시대에 이어 상류층에서 식기로 사용하였으며,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도 생활 용구로 사용되어 전국 각지에서 생산되고 시장을 형성하였다.

근대 말에는 일본에 의한 유기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각 가정에서 소유한 거의 모든 유기들을 수탈당하였다. 그 후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유기는 다시 성행하기 시작하였으나 6·25 전쟁 이후 연탄을 사용하면서부터 연탄가스에 변색되기 쉬운 놋그릇 대신 스테인레스 그릇을 선호하여 유기는 점차 사라졌다.

최근 각종 실험을 통해 병원균, O-157 살균기능, 농약성분 검출기능 등이 밝혀지면서 부각되고 있다. 또한 열보존률은 사기그릇, 스테인리스, 방짜유기 중 방짜유기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악기, 제기, 식기 및 각종 생활용품 등으로 제작되고 있다. 

- 위키백과


방짜유기

방짜유기는 음식을 담는 식기류에 쓰인다. 구리와 주석의 합금액을 불에 달구어 망치로 여러 차례 두들겨서 만든다. 이때 주석의 비율이 일반 청동 그릇에 비해 훨씬 높다.

여러 사람이 한 조를 이루어 조직적으로 제조해야 하므로,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고도의 숙련 기술이 요구된다. 경기도 안성시가 전통적으로 유기 제조로 유명했다. '안성맞춤'이라는 표현도 안성의 유기에서 나온 것이다.

1945년 경 안성 일대에만 공방이 20여 개 있었을 정도로 성황이었으나, 연탄이 보급되면서 변색이 잘 되고 닦기도 번거로운 유기는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유기 제조 기술 보유자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공예문화 보존을 노력하고 있다.

구리와 주석의 비율을 78%대 22%로 합금한 놋쇠를 망치로 두드려서 방짜 유기를 만든다. 방짜유기는 독성이 없고 음식 맛을 좋게 하기 때문에 최근에 주목을 받고 있다. 53년간 방짜유기를 만들고 있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10호인 김문익(64, 金文益) 유기장을 만나보았다.

김문익씨는 12살때부터 방짜유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당시의 방짜유기 기술자들의 벌이는 5일 정도 일하면 한 달은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대우가 좋았다. 김문익씨도 이런 점에 끌려 방짜유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후 54년간 외도 한번 없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유기를 제작하고 있다.

구리와 주석의 장점을 결합한 방짜유기

방짜유기의 제작은 보통 6인이 1조가 되어 제작한다. 3명은 때리고 1명은 집게를 잡고, 1명은 불에 구워 주고, 1명은 풍구를 잡는다. 먼저 구리와 주석을 78%대 22%의 비율로 섞어 용광로에 녹인다. 용해된 쇳물을 퍼내어 쇳물을 물판에 부어 판을 만든다. 이 판을 바둑알과 비슷하다 하여 바둑이라고 한다. 바둑을 넓히는 작업을 네핌질이라고 한다. 네핌질할 때의 바둑은 겉과 속이 고르게 달구어져야 망치질할 때 깨지지 않는다. 바둑판이 얇아지면 판을 10개 정도씩 덧대 놓고 망치질을 하여 오목하게 만드는데 이를 우김질이라고 한다. 덧대 놓은 바둑을 분리하는데 이 과정을 냄질이라고 한다. 

그 후 작은 망치로 두드려서 모양을 잡는 닥침질을 한다. 제질 작업으로 좀 더 미세하게 마무리 작업을 하고, 염분이 섞인 물에 담금질을 한다. 담금질할 때 변형된 부분을 교정하는 벼름질을 하고, 표면의 산화 피막이나 흠짐을 깎아내는 가질을 하여 제품을 완성한다. 

현대의 재료공학에서는 주석의 비율이 10%를 초과한 구리합금은 깨지기가 쉽다고 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제작기법은 불에 달구고 망치로 치는 과정을 반복해서 깨지기 쉬운 단점을 극복하고 가장 강한 합금을 만들어 낸다. 불순물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작업 과정상 균열이 생기고 깨지기 때문에 주물로 부어내는 유기그릇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김문익씨는 말한다.

생명의 그릇으로 재등장

조상은 유기를 귀하게 여겨 대를 물리며 사용했었다. 일본강점기의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이 무기제작을 위해 일상생활에 쓰이는 유기를 강제로 공출해 갔다. 해방 이후 유기의 품귀현상이 나타나 놋쇠와는 재질이 다른 합금이 주물로 생산되었다. 1960년대에 연탄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연탄가스에 쉽게 변색하는 유기는 점점 사용이 줄어들고 양은, 스테인리스, 플라스틱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현재의 웰빙 바람과 함께 방자 유기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KBS의 수요기획에서 방영한 내용에 따르면 방짜유기는 여러가지 효능이 있다. 

병원성 대장균 O-157균을 방짜그릇에 넣고 24시간 후에 보니 그릇에서 뿌연 침전물이 발견되었고 대장균은 사멸되었으며 그릇의 표면은 부식되었다. 방짜그릇 성분 중 구리의 플러스 극이 대장균의 마이너스 극과 반응하여 대장균을 죽인 것이었다. 백합 생화를 방짜그릇, 스테인리스 그릇, 사기그릇에 놓은 결과 1주일 후에 방짜 그릇의 백합만 싱싱하게 피어나고 다른 그릇의 백합은 시들어 갔다. 농약을 사용하여 재배한 깻잎을 방짜그릇에 놓은 결과 그릇에서 탈색이 생겼다. 인체에 해가 있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으면 방짜그릇은 탈색이 일어나며 잘 닦이지 않는다. 

실제로 스님들도 머리를 자를 때 꼭 방짜로 만들어진 삭도만 사용한다. 이유는 방짜 칼로 베었을 때 상처가 덧나지 않는다. 방짜유기만을 쓰는 음식점에서는 농약을 사용한 재료를 썼을 경우 유기의 색깔이 변한다고 한다. 김문익씨는 방짜유기는 불순물이 0.1%도 안 들어 가고 오랜 망치질을 한 결과 이러한 효과가 생겼다고 말한다.  

마음과 정신으로 작품 만들어

김문익씨가 특히 잘 만드는 것은 징이나 꽹과리이다. 이때에는 주석의 함량을 많이 높여 제작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금과 은도 소량 넣는데 금은 맑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고, 은은 높은 소리를 낸다. 1,000개를 만들면 1,000개가 다 다른 소리를 낸다. 특히 사용자의 용도에 맞추어 전문가용, 연습자용 등으로 만들어 준다. 징과 꽹과리를 만드는 과정 중에 울음깨기라는 공정이 있다. 어느 정도 모양이 완성된 것의 소리를 들어보며 두께를 조절하며 펴는 과정인데 아시울음깨기 등 몇 가지 단계가 있다. 이 과정을 거쳐 명품이 탄생한다.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돈을 떠나 있고 마음과 정신으로 작업을 한다고 김문익 씨는 말한다. 

김문익씨가 운영하는 국일공예사에는 10여 명의 직원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그 중에는 70대의 노인들도 여러 명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75세이다. 지금까지 가장 보람이 있었던 일은 경기도에서 전통에 관심을 두고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주었을 때라고 한다. 한여름에도 1,500도의 용광로 옆에서 두꺼운 옷을 입고 하는 작업이 가장 힘들다고 말하는 김문익씨 힘이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방짜유기를 만들 계획이다.

- BC.8937


국내 최초 방짜유기를 테마로 한 전문박물관 탄생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의 역사

세계적으로 기술 보존국이 희귀하며 점차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유산인 방짜유기와 그 제작기술을 보존하고 전통문화유산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방짜유기 전문박물관이 국내 최초로 건립되었다. 바로 지난 5월 25일 개관하여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는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이다. 

2004년 건축공사를 착공하여 2년 만에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에 모습을 드러낸 이 박물관은 유기전문 박물관이라는 특성화된 차별성 외에도 IT와 CT가 접목된 우수한 문화 콘텐츠를 구축하여 신세대들에게도 선조들의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동기를 유발시키고 있다. 기성세대에게는 전시된 유기를 통해 지난날의 아련한 추억과 향수를 되살리는 기회를 제공하며, 아이들에게는 부모님 세대에 대해 체험하는 생생한 체험교육의 현장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에 유기문화실, 기증실, 재현실 등 3개의 상설 전시장과 기획전시실, 여기에 자료검색실, 문화사랑방, 영상교육실, 야외공연장과 방짜유기 음악치료의 장인 체험장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유기문화실은 방짜유기의 뿌리를 찾아가는 공간이다. 우리의 역사와 함께 그 맥을 이어온 유기의 역사를 소개하고, 유기를 계승한 사람들의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다. 다양한 유기의 종류와 재료, 그리고 방짜, 주물, 반방짜유기의 제작 과정을 축소 모형과 슬라이딩 비전을 이용하여 입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선사시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식기의 변천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으며, 생명의 그릇으로서 방짜유기도 소개한다. 더불어 방짜유기의 과학적인 효과와 전통적인 방짜 악기의 소리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이어지는 기증실에는 1983년 정부에 의해 중요무형문화재 제 77호로 지정된 방짜유기장 이봉주 선생에게 기증받은 유기 275종, 1480점이 전시되어 있다. 이봉주 선생이 평생 수집, 제작한 방짜유기 가운데 예술적 가치가 높고 정교하며 섬세한 작품들을 생활유기, 상차림, 제기류, 악기 등으로 구분하여 전시하고 있다. 유기그릇에 아름다운 음각 장식을 한 요즘 보기 힘든 유기그릇과 유기를 기증한 유기장 이봉주 선생의 삶도 영상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지하 1층에 자리한 재현실은 1930년대 평안북도 정주군 납청마을의 유기공방과 방짜유기가 거래되는 놋점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유기공방의 모습을 1:1 인물모형과 자동감지장치가 부착된 작동모형으로 연출하여 방짜유기의 제작과정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유기는 언제 만들어졌나?

우리나라에서 유기가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유기에 대한 흔적들은 기원전 청동기 시대에서부터 발견된다. 시베리아의 스키타이 청동기문화와 관련이 있는 중국 요령지방 청동기문화를 받아들인 청동기 시대 초기에는 중국 요령식 동검과 조 문경(粗文鏡)을 제작하였다. 

청동기 후기인 기원전 300년경 한국식 동검(細形銅)을 독자적으로 주조하여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세문경, 방울, 의식구를 비롯한 각종 생활 도구를 제작하였다. 유석(鍮石)이라 불리는 놋쇠는 구리에 아연 니켈을 합금한 것으로 기원전 5세기경 페르시아에서 유래하여 인도,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며, 이후 구리 78%에 주석 22%를 합금한 한국 특유의 유기로 발전하였다. 

기원전 3세기쯤에는 중국 연(燕)나라에서 명도전(明刀錢)과 함께 무기, 농기구 등 철기문화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를 계기로 한반도에서 철을 이용해 무기류와 농기구 등을 생산하는 본격적인 철기시대가 시작되었다. 

삼국시대에는 이미 금은동철을 생산했는데, 무령왕릉에서 발굴한 금동제 대발은 백제가 유기를 제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에서도 경덕왕 이전부터 ‘철유전’이라는 기관을 두고 철과 유석을 관장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어지는 통일신라시대에는 유기재료와 제조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여 중국에서 ‘신라동’으로 부를 정도로 유명하였다. 청동으로 불상과 범종, 쇠북, 사리기 등 많은 미술품과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빛깔이 고운 ‘고려동’을 생산하여 중국과 교역을 하였던 고려시대에는 유기 제작기술이 발전하여 생활용기와 동활자뿐 아니라 말기에는 하포 등 다양한 종류의 기물까지 제작하였다. 당시 왕족과 귀족들은 방짜 기법으로 제작한 얇고 질긴 청동그릇을 식기로 사용하였다. 고려시대 청동기는 주조와 절삭가공법으로 모루쇠를 이용한 ‘타모법(타출법)’으로 기묘한 형태를 만들어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쓰는 유기를 만드는 유장을 중앙 장인인 경공장으로 공조에 8명, 상의원에 4명을 두었고, 지방 관아에 필요한 유기를 만드는 외공장도 상당수 배치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 때 유기를 만들어 무역을 했으며 대마도주가 토산물을 바치며 유기를 원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 시기에는 향로와 술잔 같은 제기, 식기류인 반상기를 비롯하여 촛대, 화로, 세숫대야, 담배합, 악기 등 많은 생활용품을 유기로 제작하였는데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을 주었다. 

17세기 이후 유기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생산량도 증가하였으며, 19세기 들어 전국에 유기점, 연죽점(놋담배통, 놋장죽대), 시점(숟가락, 젓가락)이 생기면서 다양한 유기제품을 생산하였다. 

1900년경에는 납청의 놋점에서 1년에 180,240톤의 놋쇠를 소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유기가 널리 보급되었다. 일제 강점기 말인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이 거의 모든 유기를 전쟁물자로 공출하고 유기 제작을 금지시켜 기술이 퇴보했을 뿐 아니라 한때 전통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기의 전통은 이어져 해방 후 한국전쟁 전까지 개성, 안성을 비롯하여 대구, 김천, 남원, 운봉, 전주 등 전국에서 유기그릇을 많이 만들었다. 한국전쟁 이후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이 늘면서 연탄가스에 쉽게 변색하는 유기그릇 대신 스테인리스 그릇을 선호하면서 유기는 점차 사라져갔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쇳독이 오르지 않고 살균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기는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방짜유기의 멋과 실용성

유기는 성분의 비율에 따라 구리와 주석을 78대 22로 합금해 만든 놋그릇을 방짜유기, 구리와 아연을 합금해 만든 그릇을 황동유기, 구리에다 니켈을 합금해 만든 그릇을 백동유기라 부른다. 또한 제작 기법에 따라 방짜와, 주물, 반방짜로 구분한다. 

방짜 유기의 유기는 놋그릇을, 방짜는 구리와 주석을 섞은 금속을 녹여 손으로 두들기고 때려서 만드는 제작기법을 지칭한다. 방짜는 공이 많이 들어가 만들기 가장 까다롭지만 유기 제품 중 으뜸으로 친다. 주물유기는 쇳물을 일정한 틀에 부어 그릇을 만드는 방법이고, 반방짜는 절반은 주물로 절반은 방짜기법으로 만드는 것이다. 현재 이 3가지 기법은 각각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으며, 김근수(주물), 한상춘(반방짜)씨와 함께 이봉주 씨가 방짜 기능보유자다. 

주물유기가 두 사람 또는 소수의 인원으로 제작이 가능한 반면 방짜유기는 용해 → 네핌질 → 우김질 → 냄질 → 닥침질 → 제질 및 담금질 → 벼름질 → 가질의 여러 공정에 많은 인원과, 숙련된 기술, 무엇보다 만드는 사람들 사이의 협동 작업을 가장 필요로 한다. 

방짜유기는 정확히 구리 78% 주석 22%의합금을 용해하여 도가니에 녹인 엿물로 바둑알과 같은 둥근 놋쇠덩어리를 만든다. 이 덩어리를 바둑 또는 바데기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여러 명(보통 11명)이 한 조가 되어 서로 도우면서 불에 달구고 망치로 치는 과정을 되풀이해가며 얇게 늘려 물건의 형태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방짜유기는 휘거나 잘 깨지지 않으며 비교적 변색되지 않는다. 그릇이라기보다 예술품에 가까운 방짜유기는 쓸수록 윤기가 나고 두드린 망치 자국의 멋이 은은히 남아 있어 수공예품의 멋을 느낄 수 있다. 

예부터 음식을 담는 반상기로 요긴하게 쓰인 방짜유기는 독성이 없고 영양분 배양기능을 가지고 있다. 특히 방짜유기는 농약성분을 가려주는 역할을 하며, 병원균 살균효과와 해독성을 가지고 있어 갈수록 심각해지는 환경오염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대장균 중 가장 강력한 균으로 알려진 병원성 대장균 O-157균을 전통그릇인 방짜 그릇에 넣었더니 24시간 후 방짜 그릇에서 뿌연 침전물이 발견되었다. 이 침전물은 균이 사멸되어 생긴 흔적이었으며, 그릇의 표면이 부식되었다. 

이러한 장점들이 알려지면서 세계에서 유일한 살균 위생 그릇인 방짜유기는 ‘생명의 그릇’으로 크게 부각되고 있다. 주석을 섞어 녹이 슬지 않도록 제작하여 사용하기 편리해지면서 최근에는 티스푼, 나이프, 포크 등까지 방짜 기법으로 제작되고 있다. 

방짜는 여러 가지의 기능과 효능을 가지고 있어 식기뿐 아니라 생활용품과 타악기 등 다양한 물품도 만든다. 방짜 기술만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악기다. 대표적인 방짜 악기로 징을 들 수 있으며, 이 밖에도 꽹과리, 좌종, 곰보종, 운라, 바라 등 다양하다. 방짜기법으로 만든 악기는 소리가 맑고 특유하게 깊은 울림소리를 가지고 있다.

국내 유일의 방짜유기 기능보유자

유기장 이봉주 옹은 평생 한길만을 고집하며 놋그릇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이 시대 최고의 유기장이다. 유기장 가운데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방짜유기 기능보유자이다. 방짜유기의 고장인 평북 납청에서 1926년 태어난 그는 1948년 월남한 이후 지금까지 방짜유기와 더불어 살아왔다. 

한국전쟁 이후의 놋그릇 파동이나, 스테인리스, 알루미늄의 보급으로 인해 놋그릇이 외면당하는 어려운 시기는 공장문을 닫고 호떡장사, 공사판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유기 만드는 연장만은 버리지 않았다. 1982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했으며, 1983년 대한민국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으로 지정되었다. 

평생 제작, 수집한 유기 1480점을 대구방짜유기박물관에 기증했다. 1994년 지름 161cm, 무게 98kg 세계최대 크기의 특대징을 제작했으며, 현재 대구방짜유기박물관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경북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팔공산 IC에서 불로동 방면으로 우회전을 한 뒤 백안삼거리까지 직진한다. 백안삼거리에서 좌회전 하여 2km 정도 가면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이다. 4월부터 9월까지는 오전 10시 부터 오후 7시 까지, 10월부터 3월까지는 오전 10시 부터 오후 6시 까지 관람이 가능하며, 1월1일과 설 연휴, 추석연휴,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 뉴스한국


방짜유기 제작과정

1, 재료합금(구리78% 주석22%합금과정에서 주석을 먼저 녹인다)

2, 재료를 녹인다(다 녹인 재료를 인코더에 뽑는다)

3, 흙을 다진다(쇳물이 녹을 동안 틀에 물건모양의 형틀을 넣은 후 흙을 다진다)

4, 흙을 말린다(다진 틀을 쇳물이 흙속으로 파고들지 않기 위해 그을음으로 말린다)

5, 틀 고정(그을음 말린 틀을 쇳물을 붓기 위해 줏대로 고정시킨다)

6, 쇳물 중비(다져진 틀에 쇳물을 주입하여 그릇 형태를 만든다)

7, 흙에서 그릇을 털어낸다(쇳물 주입 후 완성된 제품을 흙에서부터 분리한다)

8, 담금질(분리한 제품을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해 담금질을 한다.

9, 재료를 녹인다-담금질까지 완성된 제품(열에 가열한 후 물에 그릇을 넣고 식혀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10, 마무리 작업-로구로(가질로)깍아 낸 제품(담금질 한 제품을 가질(로구로)깍아 낸다.

11, 포장단계 (고급 선물박스 포장. 보자기포장, 오동나무 박스포장)


방짜유기 종합정리

1. 방짜유기의 효능 

- 식중독균등 각종 유해세균 살균효과(0ㅡ157균이 하루도 지나기 전에 사멸됨)

-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성분 생성

- 각종 미네랄, 장시간 신선도 유지(사기와 스테인레스는 금방 소멸)

- 농약, 유해성분 등 독성 물질 검출 

2. 유기그릇은 쓰기가 불편하다? 

한마디로 그렇지 않다. 유기그릇은 다른 그릇처럼 편하게 쓰면 된다. 유기도 보통 그릇처럼 일반세제에다가 수세미로 닦아주면 된다. 단 수세미는 철수세미만 쓰지 않으면 되고 매일 사용하면 유기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랫동안 보관 시에는 물기를 제거한 후 비닐이나 신문에 싸서 보관하면 된다. 광택제는 얼룩이 지거나 변색이 되고 색상이 싫증날 때만 사용하면 된다. 물론 다른 그릇보다 조금 무겁다는 단점이 있다. 그렇지만 오히려 무겁다는 단점 하나로 놓치기엔 장점이 많은 그릇이 방짜유기다.

3. 생활속 방짜유기 

- 부패세균을 살균하여 각종 채소(거의 한달 동안)나 생선 등 음식물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싱싱함이 유지된다.

- 보온 보냉이 좋아 요리 직후 온도를 유지해줘 음식 맛이 살아난다.

- 옛날 미나리를 놋그릇에 씻으면 거머리 등이 떨어져나간다. 방짜 양푼이 없으면 작은 놋쇠수저라도 그 속에 넣어서 씻기도 했다. 즉 놋쇠는 해충을 소독하여 제거하는 효과가 있는 셈이다.

- 스님들 삭발 기구인 '삭도'는 반드시 방짜로 만든다. 자주 삭발하는 스님들에게 덧나지 않는 칼은 방짜 밖에 없었다.

- 옛날사람들은 오이지를 담글 때 놋그릇을 닦았던 지푸라기를 얻어놓으면 오이가 더 파랗게 되고 맛있어진다.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

- 놋그릇을 사용하면 풍에 좋다.(풍은 미네랄부족으로 올 수 있는데 방짜유기는 미네랄성분을 방출 한다.)

- 놋그릇에 화초를 기르면 훨씬 잘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방짜수저로 바꾸는 그날부터 입병이 안 생기며 있었던 입병도 씻은 듯이 낫는다고 한다. (김원수씨의 이야기와 인터넷자료참고)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