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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달과 좀생이별. 과거 음력 2월 6일은 좀생이별로 점을 치던 날이다. 이때가 되면 초저녁 서쪽 하늘에 초승달이 뜨고 그 근처에 좀생이별이 보인다. 저녁밥을 먹고 나와 달과 좀생이별 사이의 거리와 빛깔 등을 보면서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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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봄에 들어섰건만 동장군은 쉽사리 물러가지 않고 변덕을 부리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엄청나게 많은 눈이 왔다고 하는데 집에서 칩거 중인 저는 그 눈도 오늘에서야 볼 수 있었습니다. 길가에 쌓여있는 눈을 보니 많이 오기는 왔나 봅니다. 어느 정도 녹았을 텐데도 공원에는 하얀 솜이불을 펼쳐놓은 것처럼 푹신해 보입니다. 그래도 목련은 다가올 봄을 준비하느라 솜털 보송한 꽃눈을 마련해놓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집에서 콕 박혀 지내면서 지나온 동서양의 역사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동양의 춘추 전국 시대와 서양의 로마 시대가 그것인데, 시기가 비슷해서 그런지 생활 모습도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정치 형태에서는 도시 국가의 모습을 지나 제국을 형성하는 과정도 그렇고, 법률을 집행하는 모습도 그렇고, 정치인 개인 개인의 모습도 서로 겹쳐 보입니다. 특히 일상 생활하는 모습도 서로 많이 비슷해서 참 재미있고 신기합니다. 하나하나 열거하면 밤이 새도 모자라니 농사와 관련 있는 이야기 하나만 하겠습니다.


작년 언젠가 이런 생각이 떠오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서 들은 얘기 때문에 갖게 된 것인데, “건강한 여성의 경우 월경주기가 달의 모습이 변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건강한 여성이라면 상현달이 떠오를 무렵부터 조금씩 월경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여, 보름달과 비슷한 시기에 월경을 하고, 하현달이 지나면서 그친다는 것입니다. 제가 남자인 관계로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직접 확인해 볼 길은 없지만, 주변을 가만히 보자면 그 말이 맞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특정 방송을 선전하려는 것은 아닌데 텔레비전에서 하는 로마라는 연속극에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상황은 옥타비아누스에게 그 친누나가 접근하여 시저의 비밀을 캐내려던 때였습니다. 놀랍게도 육체를 이용하여 친동생을 유혹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 당시 근친상간이 비일비재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강한 관념을 가지고 있는 저에게는, 아니 우리나라 사람 누구에게나 그 장면은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옥타비아누스는 순순히 그 유혹에 넘어가 주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근친상간을 하면 제대로 된 아이가 잘 태어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야.” 이미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하지만 오늘은 보름이 지났으니 임신할 염려는 없어.”라면서 간통을 합니다.

보름이 지났으니 임신할 염려가 없다!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의심이 순간 뭔가 단서를 잡은 듯했습니다. ‘그렇군, 예전에 들었던 말이 사실일 수도 있겠군.’ 그 시대에는 지금처럼 산업화된 문명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았던 시대였을 것이니 사람들의 몸도 지금에 비해서 더 정직했을 것입니다. 해가 떨어지면 아무리 밝힌다고 해도 지금처럼 대낮같이 환하지도 않았을 테고, 귀족이나 이런 사람들이나 밤에 연회를 즐기지 대부분의 사람은 해떨어지면 대부분 잠을 잤을 것입니다.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도 더 민감했을 것이고요. 요즈음은 겨울에도 집안에서는 덥다고 반팔을 입고 다니고, 여름에는 춥다고 긴팔을 입고 다니는 판이니 계절이 지나는지, 시계가 아니면 시간이 지나는지도 모르고 삽니다. 그래서인지 들리는 말에 의하면 요즈음은 월경 주기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합니다. 이 말은 곧, 월경과 달의 변화를 서로 연관 짓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한 “건강한 여성의 경우 월경은 달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으실 지도 모릅니다. 뭐 그게 사실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제가 월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두 이야기 중에서 무엇이 옳고 틀린지 주장하기 위해서 라기 보다는 “여성의 월경 주기가 달의 위상변화와 맞아떨어진다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입니다. 만약 여성의 월경 주기가 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그래서 사람마다 주기가 다른 것이 요 근래 인간에게 생기게 된 변화라면, 참 재미있는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월경 주기가 각자 다르다는 이야기는 사람은 동물과 달리 따로 발정기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원래는 그렇지 않아 월경주기가 달의 변화와 맞아 떨어진다면 사람에게도 발정기라고 할 수 있는 기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들이 애써 의무 방어전이다 뭐다 하면서 고생할 필요도 없겠지요. 발정기에만 신경 좀 쓰면 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각자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천천히 게으르게 살면 될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으니 씻는 소리만 나도 밤이 무섭다는 말도 종종 듣게 됩니다. 아무튼 발정기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는데 잠시 얘기가 샜습니다. 그냥 안주거리 삼아 듣고 넘기십시오.


위에서 얘기한 로마 시대의 모습처럼 원래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 그 순환 주기에 맞춰서 살았을 겁니다. 현대 사회처럼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며 살지 않았던 그때에는 우리 몸의 반응도 자연히 그 흐름이 맞춰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흐름이 철저히 파괴되다 보니 심심치 않게 불임 부부의 이야기도 자주 듣게 됩니다.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따로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자연의 흐름과 어긋나는 삶도 그에 한 몫을 했을 겁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은 그리 멀지 않은 산업화 이전의 농경 사회에서는 출생한 날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농번기에는 바빠서 미처 다른 데 신경 쓸 틈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한 집안의 형제들이 태어난 달은 다르지만 생일은 비슷한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그만큼 그 어머니의 월경 주기가 일정하고 또 그만큼 건강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다달이 하는 일이라서 월경月經이 아니라, 달의 변화에 따르는 것이라서 월경月經이라면, 보름달이 떴을 때 음기가 가장 강하다고 하는 우리 조상들의 미신 같은 이야기도 그 근거가 충분히 생깁니다. 음기는 모으고 저장하는 기운인지라 생명의 에너지를 응축하여 새 생명을 탄생시키기 좋은 때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음양오행이라는 철학관 같은 이야기도 그 근거가 성립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옛날 우리네 농서를 보면 흔히 “파종은 보름달이 뜨기 전에 하라.” 하고, “수확은 보름달이 지나고 난 후에 하라.”고 합니다. 요즈음의 서구 과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얼토당토하지 않은 근거 없는 미신이겠지만, 앞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면 그저 미신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는 양기가 점점 누그러지는 동시에 음기가 강해지는 시기이고, 보름달부터 그믐달까지는 음기가 점점 누그러지는 동시에 양기가 강해지는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태극기의 태극이 바로 이러한 이치입니다. 이러한 태극이나 음양오행은 모두 자연을 관찰하여 얻어낸 산물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자연의 흐름이 그러하다면 인간 또한 자연의 한 부분이기에 그에서 벗어나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의 월경 주기가 달의 변화와 맞아떨어진다는 이야기는, 무언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임신은 배란기인 월경 2주 전부터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 기간을 앞서 말한 달의 변화에 맞추어 추정해보면, 초승달부터 월경이 시작되는 보름달까지의 기간과 꼭 맞습니다. 또한 그 기간은 바로 옛 농서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씨뿌리기 좋은 기간과 일치합니다. 그럼 왜 옛날 사람들이 씨를 보름달이 뜨기 전에 뿌려야 한다고 했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될 법도 합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면 수확하기 좋은 기간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이해가 됩니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나의 몸을 통해서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편하고, 또한 가장 확실합니다. 그렇기에 만약 월경 주기가 그러하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쭉 밀고나가서 옛사람들의 미신 같은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모든 것은 그때그때마다 다르고 끝도 없이 변하기에 이것이 원칙이라거나 진리라고 주장할 수는 없겠지만, 옛날 사람들의 말이 그저 미신이라며 애써 무시하거나 관심을 끊을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다 무슨 이유가 있어서 이야기를 했을 테니, 그 근거가 무엇일까 궁리하고 찾아서 요즘 시대에 맞게 이용하는 자세가 바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정신이겠지요. 무슨 농사건 새로운 일을 벌이고자 하시는 분들은 그믐에서 보름 사이에, 그것도 한 해가 시작되는 정초인 봄에, 계획하고 실행하시기 바랍니다. 시작이 반이다, 첫 단추부터 잘 끼워야 한다는 말의 핵심이 바로 이맘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목련을 위시하여 온갖 꽃들이 피어날 것이고, 녹음방초가 우거질 것입니다. 때를 놓치지 말고 조금 부지런을 떨면 한 해를 보람차게 보내 풍성한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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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농업 

(사) 한국포도회 명예회장  김 성 순  (T. 054-436-4028)

 

개 요

작물생장에 광선을 공급하는 태양만 아니라 지구 표면에 미치는 달의 인력은 태양의 2배 이상이며, 바다의 조수간만에 미치는 거대한 힘이 작물과 모든 생명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서양 전통농업에서 음력을 중시하였고, 독일 슈타이너의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 등은 현재 세계 유기 농업에서 주목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정농회가 1995년경부터 본격 실천 연구중.

'현대 농업'지(2005년 3월호) 특집과 금년 7월 하순 일본 연수중 미야자키현 쓰노 지역에서 연수한 내용을 소개함.


【 달의 인력과 만조·간조의 관계 】



달편에서는 달의 인력이 승하고 반대편에서는 지구 공전에 의한 원심력이 올라가므로 만조가 된다.

지구는 하루에 1회전(자전)함으로 하루에 두번식 만조·간조가 일어난다.



【 달의 차고 기움과 조수·음력과의 관계 】 



 

농가 사례


(1) 스즈키 마사토(鈴木 正人)〈시즈오카현〉

   □ 차 재배농가

   · 벌레의 생태를 세밀히 관찰하였더니 밤 9시 ~ 아침 10시경 사이 가장 활발했다.

     → 이 시간대에 방제하면 효과가 크다.

  · 과거 수년간 벌레 발생 데이터를 조사하였더니 바닷물의 대조시기와 합치함을 발견.

    그후 수년간 실험 결과 신월이나 만월의 대조일(3~4일)의 마지막날부터 3일간이 방제 적기임을 밝힘.

   · 농약 살포량도 350~400L → 200L로 감소. 


(2) 하세가와 (長谷川  裕之)〈이바라기현〉

   □ 피만 농가

   · 만월시에 충해가 심하여 페로몬 트랩으로 조사. 보통 5~6마리 → 만월시에는 100마리 가까이 잡히고 피만 수확량도 만월기에 

     증가함을 발견.

   · 파종은 만월에 질소 중심 시비를 하고, 정식은 신월에 하고, 인산, 해조, 목초액을 시비한다. 수확이 시작되면 만월 4~7일 전에

     질소+아마노산의 엽면 살포를 권하고 싶다. 


(3) 쓰가모토 에이지(塚本 英智)〈후꾸오카현〉

   □ 딸기 농가

   · 부레드리 곡선

    미국 1,544곳의 50년간 강우량 조사에서 월령과의 강우곡선. 신월과 만월에 좀 뒤(4일경)에 강우량 피크가 있고, 그 후 장조, 

    약조 시기에 다시 작은 산이 있음.

   · 옛 어민들 사이에 "만월 직후에는 출어해서는 안된다."는 말.

   · 지구상 모든 생명들이 수만년 전부터 자연의 강우곡선에 따라서 물과 비료를 흡수하여 왔고, 체내 유전자에 각인되었을 것.

   · 약조시기(음 11일, 26일)에 정식하면 정과(頂果) →2→3→4과로 계속 꽃눈 분화하고 비대하여 수확 증대됨.

   · 소조시기 - 인산시비 등 광합성 능력 높혀 꽃눈 분화 촉진. (약재 살포도 이 시기에)

     약조시기 - 고토+효소제

     대조전기 - 칼슘(+망간, 아연 등 미량요소)

     중조시기 - 칼리는 칼슘 흡수시킨 뒤에


〈 달의 강우곡선에 맞춘 쓰가모토씨의 딸기 관리 〉

 

 (4) 쓰노(都農) 와이나리〈미야자키현〉

   · 식물은 월령(月令)에 따라서 '충실 성장'과 '신장 성장'을 반복한다. - 미와 스스무(三 輪 晉)

   · 흡비력이 높아지는 대조시기에 추비

   · 매년 월령과 포도 생육상태를 기록함으로 앞으로 포도가 어떻게 생육할 것인가를 알수 있고 따라서 미리 관리할 수 있다.

   · 쓰노 지역은 '토양 자체 발효의 고장'으로 유명

     가을에 계분(수분 35% 정도) 10a 2t 살포 → 10cm 경운 → 3일 후 하얗게 전면 발효

   · 요소 100~200배액 10a 50L 분무상태 살포 유효.


※ 2006년도 7,8월 월상중심 성장곡선과 작업관리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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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6199km. 그가 모는 2006년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누적 주행거리다. 매년 평균 1만5000km쯤 달린 셈이다. 직장인 출퇴근용이라면 회사가 좀 멀겠다 싶은 정도다. 아니면 주말 여가활동에 꽤 투입됐던지. 그런데 차주가 정년퇴임을 한 지 10년도 넘은 70대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자동차는 한 번도 고장을 일으킨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바퀴는 수도 없이 바꿨단다. 단순히 멀리 다닌 게 아니라 험한 곳만 골라 다닌 모양이다. 차주가 등산 마니아인가, 낚시꾼인가? 이 차는 어딜 그렇게 돌아다닌 걸까.》


밖은 영하 10도까지 내려가 있는데 안완식 박사의 집에는 꽃이 만발했다. 그는 실내에서만지내는 겨울의 답답함을 이 꽃들로 달랜다고 했다. 화성=김창덕 기자


차주는 한국의 대표적 토종연구가인 안완식 박사(72). 귀농을 꿈꾼다거나 토종에 조금의 관심이라도 있다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토종의 대부.' 이쯤 되면 벌써 견적이 나오지 않는가. 그렇다. 안 박사와 그의 SUV는 토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한 백발 신사가 처음 운전석에 앉았을 때 그의 SUV는 동네공원이나 마트만 오가는 '나태함'을 꿈꿨겠지. 설마 비포장도로에서 거친 일생을 보낼지 상상이나 했을까. 문제는 주인의 다음 목표다.


"내가 의식이 있는 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이 일을 계속할 겁니다. 토종이 있을 만한 곳은 전부 가서 모든 종자를 수집하는 게 남은 꿈이죠."


불쌍한 SUV, 앞으로도 쉬기는 글렀다. 할 일이 태산같이 남았으니 말이다.


○ 평생 토종과 함께한 삶


안 박사가 '토종'과 처음 인연을 맺은 시기는 약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촌진흥청은 1976년 종자저장고를 지어 당시 작물시험장, 원예시험장, 축산기술연구소, 농업과학기술연구원 등에 흩어져 있던 종자들을 한곳에 모았다. 그러나 종자관리시스템은 후진성을 면치 못했고, 심지어 책임자 직제도 없이 10년이 흘러갔다.


농진청 맥류연구소에서 밀을 연구하던 안 박사가 종자 관리를 책임지게 된 때는 1985년이었다. 그가 맨 처음 한 일은 세계의 유명한 유전자원센터를 모두 둘러보는 것이었다. 배우고 나니 길이 보였다. 그러곤 50만 점 규모의 저장고를 경기 수원에 다시 지었다. 토종이라 할 만한 종자를 모으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당시 전국에 배치돼 있던 농촌지도사 7000여 명을 활용해 한꺼번에 토종 종자 5000여 점을 모으기도 했다. 안 박사의 노력은 1991년 종자 관리를 위한 유전자원과 신설로 이어졌다.


1997년에는 한국토종연구회(2000년에 사단법인화)도 만들었다. 해외 장기출장 때문에 초대 회장을 타인에게 맡긴 그는 2∼5대 회장을 내리 지내면서 토종에 관한 학계와 농민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헌신했다. 2002년 농진청에서 정년퇴임을 한 뒤로도 일을 쉰 적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의 토종 사랑은 은퇴 후 더 깊어졌다.


○ 땅에서 보존해야 진짜 토종이다


사실 안 박사 자신도 처음엔 '탁상공론'의 중심에 서 있었다. 종자를 발견하면 저장고에 보관만 했고, 토종이 무엇인지 토종을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해 학문적으로만 접근하려 했다. 한국토종연구회도 대학교수나 연구원들이 주도하다 보니 어느새 농민들이 설 자리는 좁아져 있었다.


그러는 동안 토종은 눈에 띄게 줄어갔다. 우리 종자가 하루하루 소멸되는데 실험실에서, 책상머리에서 고민할 틈이 없었다. 2002년 퇴임 즈음에야 그걸 깨달았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할지 고민하던 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측에서 안 박사를 찾았다. '종자주권' 지키기 운동에 그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안 박사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종자와 관련된 일을 평생 하겠다고 마음먹은 터였고, 종자주권이나 식량주권도 누군가는 나서야 할 문제였기 때문이다. 대부분 아들딸뻘인 사람들과 함께였지만 나이는 중요치 않았다.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토종을 찾아다녔다. 토종 보존의 중요성을 알리는 심포지엄을 진두지휘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2007년엔 새로운 영역으로 활동범위를 넓혔다. 토종 보존을 위해 뛰어다니면서 연을 맺은 사람들과 함께 '씨드림(Seed Dream)'이란 인터넷 카페를 만든 것이다. 직접 만든 카페 이름에 그는 큰 애착을 보였다. "'씨앗의 꿈'이란 뜻도 있으면서, 우리말로는 '씨를 드린다'는 의미도 되니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다른 사람들도 정말 이름을 잘 지었다면서 치켜세워줬죠. 하하하."


씨드림은 그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다. 회원은 현재 4800여 명. 평상시는 토종이나 전통농법 등에 관한 정보교환이 주요 활동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매년 3월의 '씨앗 나눔' 행사다. 회원들은 자기가 확보한 종자들을 직접 가져와 다른 회원들과 필요한 만큼 주고받는다. 카페 운영위원들이 직접 증식한 종자들을 회원들에게 나눠 주기도 한다. 안 박사는 늘 "토종일수록 농가에서 직접 재배해야 보존다운 보존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1농가 1토종 갖기 운동'도 그런 이유에서다.


○ 겨울이 괴로운 70대 젊은이


안 박사는 매년 큰 조사를 1건씩 수행해 왔다. 큰 조사란 1박 2일 또는 2박 3일간의 조사를 10번쯤(일주일에 1번) 하는 것을 뜻한다.


"2010년에는 충북 괴산군에서 360여 점을 찾았고, 2011년과 지난해는 전남 곡성군과 경기여주군을 샅샅이 뒤져서 각각 330여 점, 160여 점을 확보했습니다. 2008년엔 제주, 강화, 울릉도 3개 섬을 다니면서 450점을 수집했고요."


걸쭉한 무용담도 곁들였다. 거의 포기하려던 '삼층거리파'(괴산군)와 '분홍감자'(강화도)를 우연히 들른 농가에서 극적으로 찾은 사연이나 차 오른쪽 뒷바퀴가 낭떠러지에 빠져 간담이 서늘해졌던 기억도 꺼냈다.


겨울이면 안 박사는 몸이 근질근질해 미칠 지경이다. 현장을 나가기도 힘들지만, 나간다 한들 종자를 발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종자 조사엔 9∼11월이 가장 좋은데, 그때까지 기다리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그래서 얼음이 녹으면 어디든 움직여볼 작정이다. 조바심 탓인지 겨울엔 시간이 더 더디게 흐른다.


요즘 같은 때 그의 적적함을 유일하게 달래주는 건 매화와 동백이다. 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 그는 매화 10여 종과 동백 70여 종을 키우고 있다. 하얀색, 분홍색, 붉은색 꽃들이 가득한 이곳은 '한겨울의 무릉도원'이나 다름없다. 특히 그의 매화 사랑은 남다르다. 전국을 누비며 350종이나 되는 매화를 수집한 다음 250종을 골라 '우리 매화의 모든 것'(눌와·2011년)이란 책을 펴냈을 정도니까.


인터뷰 말미 그의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씨드림 카페 운영자가 수원역에 도착했다는 연락이었다. 씨드림은 지금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 위한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좀 더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활동을 하려면 법인화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사람, 도무지 언제까지 일을 벌여나갈지 종잡을 수가 없다.

화성=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20년 뒤 인류는 무엇을 먹게 될까?


각국 정부는 식량 가격 폭등과 인구 증가, 환경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런 고민 속에서 식품 미래학자들은 '곤충'과 '배양육(培養肉)', '해조류'가 20년 뒤 우리 식탁의 주 메뉴로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농촌진흥청이 발간하는 미래농업을 위한 정보 학술지 '월드 포커스(World Focus)' 최근호는 영국 'BBC News Magazine'이 다룬 미래 식품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육류 섭취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서구인들은 풍부하고 저렴한 육류를 섭취하며 자라왔다. 하지만 식품업계는 5∼7년 안에 육류 가격이 2배 이상 올라 육류가 사치 품목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육류 대안으로 식품 미래학자들은 곤충을 꼽고 있다.


네덜란드 와게닝겐 대학교 연구진에 따르면 곤충은 일반 육류에 비해 영양가가 떨어지지 않는다. 다진 쇠고기 100g속에 들어있는 단백질은 27.4g인데 일반적인 곤충 애벌레 100g에는 28.2g의 단백질이, 성충 메뚜기에는 20.6g, 쇠똥구리에는 17.2g이 들어 있다.


영양가뿐만 아니라 곤충은 사육비용이나 물 사용량, 탄소 발자국이 적어 소, 돼지 등 일반 가축보다 장점이 많다. 또 식용으로 활용 가능한 곤충만 현재까지 1천400종에 달해 맛이나 영양분의 다양성도 얻을 수 있다.


물론 애벌레나 곤충이 원형 그대로 식탁에 오르지는 않겠지만 곤충으로 만든 햄버거나 소시지라면 얼마든지 우리 식탁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식품학자들은 내다봤다.



곤충 단백질에 여전히 거부감이 있다면 또 다른 대안으로 배양육(培養肉)이 등장한다.


배양육은 말 그대로 실험실에서 생산된 고기다. 암소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를 이용, 근육 조직을 배양하기 때문에 '시험관 육류(in-vitro meat)'로도 불리는 배양육은 이미 네덜란드 연구진이 생산에 성공했다.


실험실에서 육류를 배양하면 가축 도살과정을 생략할 수 있어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고 에너지와 물 사용도 절약할 수 있다. 또 인위적으로 지방 성분을 줄이거나 다른 필수 영양소를 첨가할 수 있어 효율성을 더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간과 동물에게 영양분을 공급해줄 대상으로 해조류가 있다.


지구의 토지와 담수가 갈수록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무궁무진한 바다에서 자라는 해조류는 인류의 큰 보너스다. 전 세계 해조류는 1만 종이 넘고 영국 근해에 서식하는 해초는 630여 종이지만 현재 식품으로 이용되는 것은 35종에 불과하다.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주요 식품으로 해조류를 활용하고 있으며 양식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보다 정교한 재배법이 도입되면 바다는 새로운 식품의 보고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농진청 관계자는 "20년 후가 될 지 아니면 더 먼 미래가 될 지는 모르지만 곤충이나 배양육, 해조류가 인류의 주식품원이 될 확률은 높다"며 "안전한 동시에 안정적으로 식품을 공급하기 위해 우리도 이들 미래 식품원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drops@yna.co.kr


치솟는 국제 사료값 때문에 육식어종인 연어도 채식주의자가 돼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상 기온으로 남미 연안의 멸치 어획량이 크게 줄면서 연어에게 멸치 대신 콩이나 해바라기씨를 먹이는 양식업체들이 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2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유럽과 미국의 식탁에 가장 자주 오르는 물고기인 연어는 대표적인 육식어종. 어린 자연산 연어는 강에서 살면서 물에 사는 곤충류를 잡아먹는다. 커서 바다로 나가면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다가, 더 크면 갑오징어나 꼴뚜기를 먹고 산다.


이런 식성을 감안해 양식업체들은 연어에게 그동안 어분(魚粉ㆍ물고기 간 것)을 가공한 사료를 줘왔다.


그러나 최근 어분의 주원료인 멸치 값이 치솟으면서 더는 동물성 사료를 사 먹이기가 어려워진 것.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최근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멸치 값은 사상 최고치인 톤당 2190달러까지 올랐다. 엘니뇨로 불리는 기상이변 때문에 세계 최대 멸치 산지인 페루에서 잡히는 멸치 마릿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페루 정부가 작년 11월 이후 3개월 동안 어종 보호를 위해 잡아들이는 멸치 양을 70%나 줄이도록 지시한 것도 멸치 값 상승을 부채질했다.


치솟는 멸치 값을 견디지 못한 양식업체들은 콩이나 해바라기씨로 어분을 대신하는 추세다. FT에 따르면 콩이나 해바라기씨 등 식물성 사료 사용량은 10년 전보다 3.5배 늘었다.


반면 사료에서 어분이 차지하는 비율은 15년전 60%에서 지난해 7%로, 거의 10분의 1 가까이 줄어들었다.


노르웨이의 연어사료 전문가는 "곧 어분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사료도 개발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chosun.com

세계 26개국의 여론주도층을 설문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여론주도층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기업 신뢰도를 보였다.


미국 홍보업체 에델만이 21일(현지시간) 발표한 '2013 에델만 신뢰 바로미터'에 따르면 여론주도층을 대상으로 한 기업 신뢰도 부문에서 우리나라는 31%로, 조사대상 26개국 중 최하위였다. 평균치(59%)에도 크게 못 미쳤다.


조사 대상 여론주도층은 각국에서 가계소득 상위 25%이면서 대학교육을 받은 응답자 총 5천800명이다. 각국 여론주도층이 자신이 속한 국가의 기업이나 정부에 대해 지닌 신뢰 수준을 지수화한 것이다.


우리나라 여론주도층의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44%로 기업 신뢰도보다 크게 높았다. 조사 대상 26개국 전체로는 여론주도층의 정부 신뢰도는 평균 50%였다.


우리나라 여론주도층이 우리 기업들에 대해선 세계에서 가장 인색한 신뢰 수준을 지녔고, 정부에 대해서도 평균치 이하의 신뢰를 보였다는 뜻이다.


조사대상 26개국 중 우리나라처럼 기업 신뢰도가 정부 신뢰도에 못 미치는 국가는 10개국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나라는 정부 신뢰도가 기업 신뢰도보다 13%포인트나 높아 조사 대상국 중 격차가 가장 컸다. 


반대로 멕시코 등 16개국은 여론주도층에서 기업 신뢰도가 정부 신뢰도를 웃돌았다. 


이중 멕시코(41%포인트), 브라질(31%포인트), 아르헨티나(30%포인트), 스페인(24%포인트), 일본(20%포인트) 등은 기업 신뢰도가 정부 신뢰도를 크게 웃돌았다.


에델만은 이번 조사에서 세계적인 지도력 위기 현상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 26개국 전체에서 여론주도층이 평가한 정부 신뢰도와 기업 신뢰도는 각각 50%와 59%였다. 


이에 비해 정부와 기업을 이끄는 정부관료와 기업 CEO에 대한 신뢰도는 이에 못 미치는 36%와 43%에 그쳤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론주도층이 보여준 정부관료와 기업 CEO에 대한 신뢰도는 각각 22%와 34%로 세계 평균보다 낮았다.


조사 대상 26개국 전체로 볼 때 여론주도층은 믿을만한 소스로 학계 전문가(신뢰도 69%), 사내 기술전문가(67%), 같은 여론주도층(61%) 등을 높은 순위로 꼽았다. 


업종별로는 기술 산업(77%)에 가장 높은 신뢰를 보였다. 이어 금융과 은행이 각각 50%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미디어 역시 53%로 하위권에 자리했다.


에델만은 매년 다보스 포럼 개최에 맞춰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merciel@yna.co.kr




이 소식을 전한 4 Gamer.net 등은 이 장치의 상용화가 언제인지는 공개된 바 없지만 2013 년 4월 27일 에서 5월 2일 사이 파리에서 개최되는 컴퓨터 과학 컨퍼런스 AMC CHI 2013 에서 상세 발표가 있을 지 모른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올해 E3 즈음 공개될 것이라는 루머가 나도는 차세대 XBOX 와 연동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PC 와의 연동 역시 충분히 가능해 보이는데 색다른 게임 경험을 원하는 유저들에게 신선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제8식 아뢰야식(阿賴耶識)과 제9식 아마라식(阿摩羅識) 


1) 아뢰야식(阿賴耶識/alaya-vijnana)이란


   불교에서는 우리 인간의 인식활동을 안(眼) ‧ 이(耳) ‧ 비(鼻) ‧ 설(舌) ‧ 신(身) 다섯 가지 감각기관(5근/五根=5관/五官)이 인식하는 ‘전5식(前五識)’과 정신부분인 제6식인 의식(意識)을 합해서 6식(六識)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제6식인 의식의 뿌리가 되는 것이 제7식인 말나식(末識;manas -vijnana)이다. 


   말나식은 자아의식(自我意識)으로서 제6식보다 한 단계 깊은 마음의 세계이다. 그리고 제7식 말나식보다 더 심층에 숨어있는 잠재의식이 제8식 아뢰야식(阿賴耶識, alaya-vijnana)이다. 헌데 아뢰야식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프로이드가 말하는 무의식(Unconsciousness) 정도로 생각해도 크게 잘못될 것은 없다. 


   인도에서 유식학도들이 인간의 심리를 관찰해 학문적으로 정리하는 가운데 가장 큰 업적을 세운 것이 말나식과 아뢰야식의 발견이라고 한다. 이 제1식부터 제8식까지를 통틀어 생각 혹은 마음이라 한다. 

 

   제8식 아뢰야식은 인간의 모든 활동을 총괄한다는 점에서 정(淨)과 염(染), 선과 악 모두의 의지처가 되며, 마음이 정이나 염이 되고, 행동이 선이나 악이 되는 것은 그 근저에 아뢰야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뢰야식 자체가 오염(汚染)의 근원일 수도 있고, 청정(淸淨)의 근원일 수도 있다. 


   이 아뢰야식(제8식, 心)은 자아의식(제7식, 意)과 대상의식(제6식, 識)을 총괄해서 마음의 흐름에서 주체가 되는 잠재의식이다. 6식의 활동은 인식된 것을 계속해서 보존할 수 있는 보존성이 없기 때문에 어느 때 어느 곳을 막론하고 항상 변하지 않고 그 존재가 이어져 갈 수 있는 궁극적인 실체로서의 존재를 따로 상정하고 있다. 즉 업의 저장소로 윤회의 주체가 되는 그것이 바로 제8식인 아뢰야식이다. 


   범어 아뢰야(alaya)는 ‘저장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무엇을 저장한다는 말인가? 종자(種子, bija)를 저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을 통해서 하는 생각과 행동은 하나도 빠짐없이 종자로 변해 아뢰야식에 저장된다. 


   모든 일어난 일이나 생각들을 전부 받아들여서 기록하고 저장하는 카메라의 필름과 같은 역할을 하는 무의식이 아뢰야식이다. 여러 행위가 필름에 찍히듯이 업이 돼 아뢰야식에 전부 저장되게 된다. 그래서 아뢰야식을 업장(業藏=업의 창고) 혹은 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 즉 6식을 통해서 얻어지는 모든 작용이 제7식 말나식을 통해 아뢰야식으로 저장된다. 그래서 아뢰야식이 바로 말나식의 근거이기도 하다. 


   무시이래 각자가 해온 정신적 육체적 행위는 하나도 빠짐없이 종자(種子)가 돼 제8식 아뢰야식에 차곡차곡 저장된다. 아뢰야식에 저장되는 것을 훈습(薰習)이라고 하며, 종자를 습기(習氣)라고도 한다. 종자는 좋은 종자와 나쁜 종자가 있는데, 나쁜 종자와 좋은 종자 모든 종자를 훈습시켜 담아둔다. 그래서 아뢰야식을 종자식(種子識)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아뢰야식은 과거 행위의 온갖 잔상(殘像)들을 저장하는 훈습작용을 한다. 우리가 잠자다가 꾸는 꿈은 제6 의식의 영역인데, 전생 또는 이전에 내가 지은 행위(업)가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제8 아뢰야식에 저장돼 있다가 꿈을 꿀 때 제6의식을 통해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잔상들이 미래의 업을 일으키는  행위의 씨앗(종자)을 형성하기도 한다. 종자는 아뢰야식 속에 있으면서 스스로 자기 결과(업)를 일으키는 특수한 에너지(氣)이다. 


   이처럼 아뢰야식은 모든 존재의 생명과 신체를 유지시켜 나가는 업력(業力)과 윤회의 심종자(心種子)가 저장돼 있는 곳으로 일생동안 끊어지지 않고 존재의 밑바탕에 붙어 있다가 알맞은 환경과 조건 등의 연(緣)을 만나면 업력이 원동력이 돼 다시 생각하고 행동한다. 


   저장된 종자가 다시 생각과 행동을 일으키는 것을 ‘현행(現行)’이라 하는데, 현행은 종자를 낳고, 종자는 현행을 낳는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통해서 행한 나쁜 생각과 행동은 나쁜 종자를 낳고, 선한 생각과 행동은 선한 종자를 낳는다. 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렇다. 종자가 현행으로 나타날 때도 악한 종자는 반드시 악한 행동과 생각을 낳고, 선한 종자는 선한 행동과 생각을 낳는다. 


   여기에서 인과응보(因果應報), 업보(業報)사상이 나온다. 자기가 한 행동과 생각이 빠짐없이 아뢰야식 속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가 그와 유사한 환경에 처하면 의식으로 살아나서 그것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계속되고 있으며, 저장된 종자는 지워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전생에서 이생으로, 이생에서 내세로 계속 이어지면서 세세생생(世世生生) 윤회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의식 가운데 하나인 아뢰야식에는 모든 행위(업)가 발생 즉시 자동적으로 저장 입력된다. 행동하는 즉시, 생각하는 즉시 저장되는 의식의 저장 탱크, 선악의 저축 뱅크다. 그리하여 육식(六識)의 심층에 아뢰야식이 있으며, 이 아뢰야식은 육체는 죽어도 사라지지 않고 내생으로 이관된다고 한다. 이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가 바로 업(業)이다. 그래서 전생의 업이란 전생의 아뢰야식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죽으면 종자(아뢰야식)는 다른 모태를 만나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 현상이 바로 윤회이다.  


   따라서 여기에 저장돼 있는 업에 의해 내생이 결정된다. 그래서 아뢰야식이 윤회의 주체, 혹은 실체라고 하며, 이것을 아뢰야식연기설(阿賴耶識緣起說)이라고 한다.  즉,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에 의해 일체 만법이 연기하는 것이 아뢰야연기설이다. 


   업이란 과거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한 모든 것들이 우리 몸속(아뢰야식)에 입력된 의식을 말하는데, 이 아뢰야식에 저장된 업이 어떤 계기로 움직여 일어나는 생각을 업식(業識)이라 한다. 따라서 아뢰야식은 불변의 요소가 아니고 우리 마음 작용에 의해 변하며, 수행 정진에 의해 소멸도 된다. 이와 같이 아뢰야식은 고정된 실체의 개념이 아니라서 업이 소멸되면 아뢰야식 또한 없어지는 것으로 수행을 통해 자기 업장을 다 소멸시키면 아뢰야식 또한 소멸되는 것이니, 고정된 실체 혹은 자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의 심신을 오염된 상태에서 청정한 상태로 질적 변화를 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수행이며, 수행을 통해서 아뢰야식 속에 있는 악한 종자를 남김없이 소멸시켜야 완성된 인간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유식불교에서는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고 계속 반복해서 선정 수행을 함으로써 아뢰야식 속의 악한 종자를 다스려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길을 가다가 만 원권 돈다발을 발견했다고 하자. 이 때 어떤 사람은 남이 볼가 봐 빠른 동작으로 호주머니에 넣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남이 보든 말든 돈을 주워서 돈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경찰관서로 가지고 가서 신고를 할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왜 이런 차이를 보일까? 그 차이는 그들이 과거에 정신적 육체적 경험에 의해 축적돼온 종자의 차이 때문이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다는 것도 어려서 어른들이 하는 짓을 봤기 때문에 그 본 것이 종자로 저장돼 있다가 그와 같은 상황이 닥치면 자기네 부모가 했던 짓을 자식도 따라서 하기 때문이다. 


   선행은 선종(善種)을 낳고 다시 선행을 가져오며, 악행은 악의 종자를 낳고 다시 악한 행동을 생산한다. 한번 훈습된 종자는 언젠가는 반드시 현행되는데 선을 쌓으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악을 쌓으면 악의 결과를 가져온다. 악의 종자는 업장소멸을 위한 수행과정을 거치지 않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고 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 불교의 수행은 바로 아뢰야식에 저장된 악의 종자를 소멸해 가는 과정이다.   


   헌데 원래는 8식까지만 있다고 했으나 인간의 육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식도 진화해 후대에 제9식인 아마라식(Amala)의 단계가 있다고 하는 이론이 성립됐다. 

    


2) 제9식 아마라식(阿摩羅識/Amala-vijnana)이란 


   제9식 아마라식을 암마라식(菴摩羅識) ․ 아말라식(阿末羅識)이라 음역하기도 하고, 무구식(無垢識), 진여식(鎭如識), 혹은 백정식(白淨識)이라 의역하기도 한다. 제8식 아뢰야식 이외에 반야(般若)의 지혜가 곧 제9식 아마라식이다.  


   양나라 무제(武帝) 때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진제(眞諦, Paramartha, Gunarata 499∼569) 계통의 섭론종(攝論宗)에서는 9식설을 주장했고, 당나라 현장(玄奘, 602-664) 계통의 법상종(法相宗)에서는 8식설을 주장했다. 


   그리고 신라 유식의 대가 문아(文雅)=원측(圓測)은 구유식의 9식설을 취하지 않고 신유식의 8식설을 취함으로써 종래의 섭론종이 주장하는 제9 아마라식을 제8 아뢰야식의 정분(淨分)으로 이해했다.


   제8식 아뢰야식까지로 모든 식을 마무리하는 주장은 아뢰야식 가운에 염(染) ‧ 정(淨), 곧 오염된 식과 청정한 식이 같이 아울러 있다. 그러니까 청정한 식 즉 백정식(白淨識)의 요소가 아뢰야식 가운데 다 갖추어 있으니 새삼스레 무슨 필요로 9식설을 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9식설을 말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오염된 식과 청청한 본래 식은 차이가 있으므로 마땅히 별도로 시설해야 한다고 한다. 즉 유식론에서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 8식 중, 제8식인 아뢰야식이 미망에서 완전히 벗어나 깨끗해진 상태에 이른 것을 아마라식이라는 것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참 나’를 의미하고, 전생과 이생을 연결하는 종자(種子)의 역할을 한다고 하며, 인간의식의 가장 저변에 있다고 한다. 


   제6식의 저변에는 제7식인 말나식이 있고, 그 7식에서 보다 깊이 들어가면 제8식인 아뢰야식이 있으며, 그 아뢰야식의 근본으로 아마라식이 있다는 것인데, 이 아마라식이 이른바 불성(佛性)이어서  제9식이 곧 부처님의 경지라고 한다. 


   현장(玄裝) 이후에 <해심밀경(解深密經)> 같은 유식론파 경전에서 이러한 제8식에 가려 있는 무명이 없어진 깨끗한 식을 상정(想定)해서, 제8식 외에 감추어진 식을 제9식 아마라식이라고 했다. 제9식이라고 해서 식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사실은 반야(般若)이고, 8식이 성불하면 제9 백정식이 되며, 제9식 백정식에 이르면 곧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아마라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8식은 모두 허망한 것이며, 제9식인 아마라식만이 진실한 것이라 한다. 즉 제8식인 아뢰야식이 미망(迷妄)을 버림으로써 청정 상태에 이른 것이 제9식이라는 것이다. 




아카식레코드(우주도서관, Akashic Records)


사람의 기억의 창고(도서관)가 뇌에 있는 것처럼 우주에도 기억의 창고 같은 것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일부 사이킥능력자(영능력자), 예지능력자들의 주장이다. 그 기억의 창고, 우주도서관같은 것을 ‘아카식레코드(Akashic Records)’라고 한다. 

아카식레코드라는 개념이 근래에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은 ‘신지학(神智學)협회’를 창설한 브라바츠키(1831~1891)와 ‘인지학(人智學)협회’를 세운 루돌프 슈타이너(1861~1925)와 관련이 있다. 브라바츠키는 20세기 신비주의의 토대를 마련한 러시아 출신의 영매이고 루돌프 슈타이너는 신지학의 신비주의적 요소를 제거하고 그것을 더욱 합리적으로 학문화해 ‘인지학’의 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슈타이너는 브라바츠키의 신지학처럼 유체이탈, 영적 의례(채널링 등), 마술 같은데 의거하지 않고, 명상과 도덕적 수양만으로도 ‘초감각적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인지학 이론을 세웠다. 그는 타고난 투시 능력자, 영시 능력자인데다가 논리적 사고능력, 언어표현능력도 뛰어났다. 


신지학의 브라바츠키같은 순수한 영매와는 달리 자연과학자의 눈과 철학자의 논리적 사고능력에다가 예술가다운 문장력을 갖춘 영적투시 능력자인 슈타이너는 신비학도 학문으로서 성립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초월적 인식’을 획득할 수 있을 때에야 ‘인지학’은 하나의 학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슈타이너는 인지학의 방법에 따라서 수련, 특히 그 ‘명상’과 ‘집중’ 수련을 매일 15분씩 꾸준히 계속하면 초월적 인식능력의 발현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슈타이너는 ‘아카샤연대기(Akasha chronicle)’라는 저서를 남겼다. 그는 거기서 우주의 창생부터 혹성의 진화, 고대의 아틀란티스 대륙과 무 대륙 등의 존재에 관해 이야기를 했는데, 아카식레코드와 접촉해 정보를 얻었다고 했다. 바로 이로 인해 아카식레코드라는 용어가 ‘정신세계’ 관련자들 사이에서 곧잘 쓰이게 됐다. 

그런데 이 아카식레코드 즉 우주도서관은 사실은 우리의 내부에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 그후에 심심찮게 제기되어 왔다. 미국의 뇌과학자인 존 C. 릴리 박사는 의식의 심층을 끝까지 탐구한 학자이기도 한데, 그는 자신의 내적 체험의 기록에서 심층의식의 가장 깊은 데에 아카식레코드같은 우주적인 기억층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했다. 


스위스 출신의 분석심리학자 칼 융 박사가 말하는 ‘집합적 무의식’이라는 사람의 가장 깊은 의식층이 릴리 박사가 말하는 우주적인 기억층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꿈 속에서 체험하는 다양한 세계와 직관의 세계, 죽음의 순간에 주마등처럼 체험한다는 ‘자기의 일생’의 광경도 이 심층의식을 체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언하거나 예지하는 것도 그 일부분은 자기의 심층의 정보를 읽고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슈타이너도 아카식레코드에 접근하는 능력을 개발하는 수단으로서 명상을 수련할 것을 강조했다. 알다시피 명상은 심층의식과 접촉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의 하나이다. 


결국 슈타이너도 자기의 심층의식에 담겨있는 정보에 접근해 ‘아카샤연대기’를 썼다고 할 수 있다. 영적투시 능력자나 예지 능력자 가운데는 특별한 수련을 하지 않았는데도 능력을 발휘하게 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일을 계기로 자기의 심층의식과의 통로가 활짝 열려버렸거나 타고난 심층의식 연결자일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명상을 효과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만이 심층의식 속의 우주도서관, 무한한 지혜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다. 


우리의 심층의식은 우주만물의 의식과 하나로 이어져 있다. 우주만물에는 모두 의식이 있으며 그것은 균질적인 것이다. 사람도 에고(자아의식)가 형성되기 전인 갓난아이 때에는 우주만물의 의식과 균질적인 의식인 심층의식만을 가지고 살아 우주만물과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우주도서관의 문이 그대로 열린 것 같은 상태에서 사는 것이다. 

말을 할 줄 몰라 표현을 하지 못할 뿐 그들은 아카식레코드를 모두 읽을 수 있는 지혜의 덩어리이다. 나이가 들면서 에고(자아의식)가 형성되어 감에 따라 우주도서관이며 지혜의 덩어리인 심층의식은 깊은 심층으로 밀려들어가게 된다. 그래도 심층의식이 완전히 덮혀 있는 어른들과는 달라서 언뜻언뜻 우주도서관과 연결되는 일이 있다. 아이들 가운데 자기의 전생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예언·예지의 소리를 하는 아이들이 그런 아이들이다. 



※ 아카식레코드(우주도서관)에 접근하는 법


아카식레코드라고 불리는 집합적 무의식층(심층의식층)에 접근하려면 자아의식(표층의식)을 제어하여 집합적 무의식층으로 녹아들어가는 일이 필요하다. 

집합적 무의식은 우주의식이기도 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만물의 정보가 다 들어 있다. 거기서 필요한 정보를 가져오려면 자기의 책임과 자유의지로 아카식레코드에 접근하겠다는 자기의 결의가 필요하다. 


아카식레코드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정보만을 내주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스피릿가이드(지도령)나 고차원적 존재(천사, 장군신 혹은 조상령, 옛 성자 등)에게 지금 필요로 하고 있는 정보만을 열람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을 해도 좋을 것이다. 


1) 긴장 이완할 수 있는 자세

긴장 이완이 될 수 있는 상태라면 누워도 좋고, 앉아도 좋다. 음악을 들으면서 하는 것이 긴장 이완이 더 잘된다면 음악을 틀어도 무방하다. 


2) 호흡에 의식을 집중한다

보통보다 느린 호흡을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계속한다. 호흡의 길이는 마음의 상태가 변하는데 따라서 적당히 조절하도록 한다.


3) 빛 구슬을 이미지로 만든다.

이마 한 복판에 탁구공 정도의 크기의 구슬을 이미지로 만든다. 그 구슬은 청자색이고 그 둘레는 흰 구름으로 둘러싸여있다. 구슬이 돌기 시작하면 그 높이를 유지한 채로 머리의 중앙까지 평행으로 이동시킨다. 

회전운동이 잘 되지 않을 때에는 안쪽의 색(청자색)과 바깥쪽의 색(흰색)을 반전시키고, 머리 한복판에서 빛의 구슬을 곧바로 떨어뜨리는 이미지를 그린다. 


4) 지구의 빛

발밑을 통해 숨을 들이마시는 이미지로 호흡을 해본다. 숨을 내쉴 때에도 그 흐름은 멈추는 일이 없다. 숨을 들이쉬고 있을 때에도 숨을 내쉬고 있을 때에도 발밑에서 지구의 빛이 들어온다. 

이런 호흡에 익숙해지면 다음에는 지구의 빛에 색채를 붙여보도록 한다. 색은 전부 10가지이다. 각 색마다 최저 한 번씩의 호흡을 해보도록 한다.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 색은 여러 차례 계속해서 해보도록 한다. 

빛은 좌회전의 나선을 그리면서 적색, 오렌지색, 황색, 녹색, 청색, 남색, 자색, 로즈핑크, 은백색, 마지막은 밝은 황금색이다. 황금색은 서너 차례 호흡을 해보도록 한다. 

온몸을 황금색 빛이 가득 채워간다. 그 빛은 한 번씩 숨을 쉴 때마다 점점 더 커져가다가 두 팔을 벌린 크기만한 계란 모양이 되었다. 


5) 우주의 빛

정수리를 통해 숨을 들이마신다는 이미지로 호흡을 해보도록 한다. 숨을 내쉬고 있을 때에도 그 흐름은 멈추는 일이 없다. 숨을 들이쉬고 있을 때나 내쉬고 있을 때나 머리 위 30센티쯤 되는 곳에서부터 우주의 빛이 쏟아져 들어와 양팔을 벌린 크기의 공간을 가득 채워간다. 이 호흡에 익숙해지면 다음에는 우주의 빛에 색을 붙여 간다. 

색은 전부 열 가지이다. 각 색마다 최저 한 번씩의 호흡을 해보도록 한다. 우주에서 들어오는 빛은 지구의 빛보다 섬세하기 때문에 투명한 색을 이미지로 그리도록 한다. 

색은 투명한 적색, 투명한 오렌지색, 투명한 황색, 투명한 녹색, 투명한 청색, 투명한 남색, 투명한 자색, 투명한 로즈핑크, 투명한 은백색, 그리고 마지막은 투명한 황금색이다. 

이 투명한 황금색의 알이 차원을 넘어설 때의 우주복(우주를 여행할 때 입는 옷)으로 바뀌어 우리의 육체, 마음, 정신, 혼을 지켜준다. 


의식을 가지고 하는 여행에서는 우리의 내부로의 여행은 동시에 우리의 외부인 우주로의 여행과 같은 것이다. 우주는 하나의 의식으로 통일장을 이루고 있다. 


6) 빛의 바퀴

머리 위에서는 우주의 빛이, 발밑에서는 지구의 빛이 들어오는 것을 이미지로 그리면서 호흡을 계속한다. 

앞에서 머리 중앙에다 만들었던 구슬을 심장 언저리까지 천천히 수직으로 이끌어내린다. 그리고 지구의 빛과 우주의 빛을 그속에서 융합시키는 이미지를 그리면서 호흡을 해본다. 

두 개의 흐름을 융합시킴으로써 구슬 속은 제로포인트가 된다. 심장에다 의식을 집중하면 언제나 ‘조화’ 속에 머물러 있을 수가 있다. 


7) 33계단

언뜻 보니 눈앞에 계단이 있다. 모두 33계단이다. 수를 세면서 올라가 보자. 1, 2, 3,…, 11계단째는 자아의식의 최고영역이다. 여기서 잠시 발을 멈추고 주위의 경치를 구경한다. 

그 다음에는 자아의식을 넘어서 12, 13, 14, …, 22. 만약 피로를 느끼면 잠시 휴식을 취해도 된다. 준비가 되었으면 경계선을 넘어서 앞으로 나아간다. 23, 24, 25…, 점점 우주도서관이 보인다. …, 29, 30, 31, 32, 33.


8) 우주도서관의 입구

문 좌우에는 돌의 대좌가 있고 오른쪽 대좌에는 ‘지혜의 문장’이라는 상형문자, 왼쪽 대좌에는 ‘용기의 문장’이라는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각각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이어라’라는 의미의 말이 쓰여져 있다. 

그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속으로 ‘열려라, 문이여’하고 외웠더니 우주도서관의 문이 소용돌이를 치기 시작한다. 도서관으로 한 걸음 발을 옮겨보았더니 깊은 바다 밑에 있는 것 같은 고요함이 느껴진다. 이미 차원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돌아가고 싶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돌아갈 수가 있다. 거기서 스피릿가이드나 고차원의 존재를 불러보아도 좋을 것이다. 부르면 언제나 와줄 것이다. 


9) 수정구(水晶球)

똑바로 걸어가면 수정구가 보인다. 수정구에 손을 대고 소리를 내 질문을 하거나 마음 속으로 질문을 떠올리거나 하면, 목적하는 책이 나온다. 도서관에는 거울과 같은 테이블이 있으니 거기에 손을 대고 책을 내와도 된다. 만약 읽을 수 없는 문자로 되어 있는 책이면, 읽을 수 있는 문자의 책으로 바꿔달라고 청원해도 된다. 

우주도서관의 정보는 머리로 읽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다 만든 제로포인트의 영역에서 읽도록 해보자.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면 알 수 없는 문자가 있지만 가슴의 영역에서 읽으면 알 수 없었던 문자도 차츰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10) 개인의 책

개인의 책을 읽을 때에는 수정이나 테이블에 손을 대고 자기의 이름을 말하도록 한다. 그래도 책이 나오지 않을 때에는 생년월일을 덧붙인다. 표지를 펼치고 손을 대면 필요한 페이지가 저절로 열릴 것이다. 

당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전생이나 상처받은 기억같은 것은 결코 열리지 않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펼쳐진 페이지는 당신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 뿐이니 용기를 내서 읽어나가기 바란다. 

펼쳐진 페이지에는 한 장의 사진과 문자가 늘어서 있다. 해독하기 어려운 문자는 스피릿가이드 혹은 고차원의 존재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사진에는 당신의 전생의 모습이 찍혀있다. 


11) 돌아오기

우주도서관에서의 검색이 끝났으면 스피릿가이드에게 돌아간다고 하자. 검색에 몰두하고 있으면 가이드가 돌아가기를 재촉하는 때도 있다. 여기는 또 다시 올 수 있는 곳이니까 온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자.

우주도서관의 문을 나서니 눈 밑으로는 별들을 거느리고 소용돌이치고 있는 은하가 보인다. 하나하나의 별이 서로 다른 빛을 방사하고 있으면서도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일체감을 맛보기 바란다. 

여기서 보이는 광경은 우주의 집합적 무의식이며 이 계단은 우주와 지구를 잇는 다리가 된다. 33, 32, 31, … 22계단째는 인류의 집합적 무의식이다. 여기서 조금 휴식을 취해도 무방하다. 이곳에서는 태양계와 이웃 별들이 보인다. 21, 20, 19, …, 11계단째는 당신의 의식이다. 지구로의 귀환이 다가왔다. 이 지구에 처음으로 내려선 날의 일을 회상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확인하듯이 계단을 내려가도 좋을 것이다. 10, 9, 8, …, 1.


12) 심장의 영역

대지에 단단히 발을 딛고 발바닥에서 대지의 숨결을 느껴보도록 하자. 혹성인 지구와의 조화가 느껴지면 심장에 만든 빛의 구슬을 황금색으로 바꾸어 곧바로 발밑으로 내려보낸다. 우주에서 얻은 정보를 지구의 중심에 가라앉혀 가는 이미지를 그리자. 당신이 우주에서 가지고 돌아온 것은 혹성 지구의 진화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빛이 된다. 그 빛을 이용해 혹성 지구가 녹색이 넘치는 별이 되도록, 다툼질이 없는 별이 되도록… 당신 자신의 소원을 빌자. 

사단법인 한국엔지니어클럽

일 시: 2010년 6월 17일 (목) 오전 7시 30분

장 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521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2층 국화룸


조선은 어떤 나라였는가?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허성도 교수 강연 녹취록

 

○ 저는 지난 6월 10일 오후 5시 1분에 컴퓨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로호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여기에 계신 어르신들도 크셨겠지만 저도 엄청나게 컸습니다. 그런데 대략 6시쯤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7시에 거의 그것이 확정되었습니다. 저는 성공을 너무너무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날 연구실을 나오면서 이러한 생각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제가 그날 서운하고 속상했던 것은 나로호의 실패에도 있었지만 행여라도 나로호를 만들었던 과학자, 기술자들이 실망하지 않았을까 그분들이 의기소침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더 가슴 아팠습니다. 그분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더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어떻게 이것을 학생들에게 말해 주고 그분들에게 전해 줄까 하다가 그로부터 얼마 전에 이런 글을 하나 봤습니다.

 

1600년대에 프랑스에 라 포슈푸코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그 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 그러나 큰 불은 바람이 불면 활활 타오른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우리의 우주에 대한 의지가 강열하다면 또 우리 연구자, 과학자들의 의지가 강열하다면 나로호의 실패가 더 큰 불이 되어서 그 바람이 더 큰 불을 만나서 활활 타오르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 그런데 이 나로호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러한 것도 바로 우리의 역사와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실패가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고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을 국민이 부끄러움으로 여기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습니다.

 

- 1957 년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라고 하는 인공위성을 발사했습니다. 그 충격은 대단했다고 하는데, 초등학교 학생인 저도 충격을 엄청나게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미국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뱅가드호를 발사했는데 뱅가드호는 지상 2m에서 폭발했습니다. 이것을 실패하고 미국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왜 소련은 성공하고 우리는 실패했는가, 그 연구보고서의 맨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게 끝이 나 있습니다.

‘우리나라(미국)가 중학교, 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꿔야 한다.’ 아마 연세 드신 분들은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것도 독일 과학자들의 힘이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미국이 뱅가드호를 실패하고 그 다음에 머큐리, 재미니, 여러분들이 아시는 아폴로계획에 의해서 우주사업이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미국의 힘이 아니라 폰 브라운이라고 하는 독일 미사일기술자를 데려다가 개발했다는 것도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 중국은 어떻게 되냐면 여기는 과학자들이니까 전학삼(錢學森)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실 텐데요, 전학삼은 상해 교통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캘리포니아에 공과대학에서 29살에 박사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수를, 2차대전 때 미국 국방과학위원회의 미사일팀장을, 그리고 독일의 미사일기지 조사위원회 위원장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핵심기술자입니다.

 

그런데 이 전학삼이라는 인물이1950년에 미사일에 관한 기밀문서를 가지고 중국으로 귀국하려다가 이민국에 적발되었습니다. 그래서 간첩혐의로 구금이 되었고 그때 미국에서는 ‘미국에 귀화해라. 미국에 귀화하면 너는 여기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고 전학삼은 그것을 거절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모택동이 미국 정부에 전학삼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때 중국 정부는 미국인 스파이를 하나 구속하고 있었고, 이 둘을 1 대 1로 교환하자고 그랬어요. 그런데 미국이 그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전학삼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우리는 너와 우리의 스파이를 교환하지만 네가 미국에 귀화한다면 너는 여기 있을 수 있다.’ 그랬더니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미국에서 전학삼에게 ‘너는 중국에 가더라도 책 한 권, 노트 한 권, 메모지 한 장도 가져갈 수 없다, 맨몸으로만 가라.’

그래도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습니다.

 

나이 마흔여섯에 중국에 가서 모택동을 만났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일화입니다.

모택동이 ‘우리도 인공위성을 쏘고 싶다, 할 수 있느냐.’ 그랬더니 전학삼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그것을 해낼 수 있다. 그런데 5년은 기초과학만 가르칠 것이다. 그 다음 5년은 응용과학만 가르친다. 그리고 그 다음 5년은 실제 기계제작에 들어가면 15년 후에 발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에게 그동안의 성과가 어떠하냐 등의 말을 절대 15년 이내에는 하지 마라. 그리고 인재들과 돈만 다오. 15년 동안 나에게 어떠한 성과에 관한 질문도 하지 않는다면 15년 후에는 발사할 수 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모택동이 그것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인재와 돈을 대주고 15년 동안은 전학삼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 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 나이 61세, 1970년 4월에 중국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정부가 이 모든 발사제작의 책임자가 전학삼이라는 것을 공식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중국의 우주과학 이러한 것도 전부 전학삼에서 나왔는데 그것도 결국은 미국의 기술입니다. 미국은 독일의 기술이고 소련도 독일의 기술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선진국도 다 그랬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 한국역사의 특수성

 

○ 미국이 우주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중·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꾸었다면 우리는 우리를 알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론은 그것 입니다.

 

- 역사를 보는 방법도 대단히 다양한데요.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 아마 이 가운데서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하신 분들은 이걸 기억하실 것입니다. 500년 만에 조선이 망한 이유 4가지를 달달 외우게 만들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제도 등 4가지 때문에 망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 우리는 500년 만에 망한 민족이구나, 그것도 기분 나쁘게 일본에게 망했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나로호의 실패를 중국, 미국, 소련 등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듯이 우리 역사도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아야 됩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고 한일합방이 1910년입니다. 금년이 2010년이니까 한일합방 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면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세계 역사를 놓고 볼 때 다른 나라 왕조는 600년, 700년, 1,000년 가고 조선만 500년 만에 망했으면 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는가 그 망한 이유를 찾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는 500년을 간 왕조가 그 당시에 하나도 없고 조선만 500년 갔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선은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갔을까 이것을 따지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 1300 년대의 역사 구도를 여러분이 놓고 보시면 전 세계에서 500년 간 왕조는 실제로 하나도 없습니다. 서구에서는 어떻게 됐느냐면, 신성로마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이지 왕조가 아닙니다. 오스만투르크가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국이지 왕조는 아닙니다. 유일하게 500년 간 왕조가 하나 있습니다. 에스파냐왕국입니다. 그 나라가 500년째 가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에스파냐왕국은 한 집권체가 500년을 지배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어, 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어, 이거 안 되겠다. 형님, 에스파냐 가서 왕 좀 하세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트가 에스파냐에 가서 왕을 했습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한 집권체이지 단일한 집권체가 500년 가지 못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째 가고 있는 것은 조선 딱 한 나라 이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 그러면 잠깐 위로 올라가 볼까요. 

고려가 500년 갔습니다. 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 고구려가 700년 갔습니다. 백제가 700년 갔습니다.  신라가 BC 57년에 건국됐으니까 BC 57년 이후에 세계 왕조를 보면 500년 간 왕조가 딱 두 개 있습니다. 러시아의 이름도 없는 왕조가 하나 있고 동남 아시아에 하나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500년 간 왕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통일신라처럼 1,0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고구려, 백제만큼 7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과학입니다.

 

- 그러면 이 나라는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입니다. 한 왕조가 세워지면 500년, 700년, 1,000년을 갔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럴려면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성립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선조가 몽땅 바보다, 그래서 권력자들, 힘 있는 자들이 시키면 무조건 굴종했다, 그러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500년, 700년, 1,000년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바보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시 말씀드리면 인권에 관한 의식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면, 또 잘 대드는 성격이 있다면, 최소한도의 정치적인 합리성, 최소한도의 경제적인 합리성, 조세적인 합리성, 법적인 합리성, 문화의 합리성 이러한 것들이 있지 않으면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장기간의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기록의 정신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25년에 한 번씩 민란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동학란이나 이런 것은 전국적인 규모이고, 이 민란은 요새 말로 하면 대규모의 데모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상소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기생도 노비도 글만 쓸 수 있으면 ‘왕과 나는 직접 소통해야겠다, 관찰사와 이야기하니까 되지를 않는다.’ 왕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런 상소제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왜? 편지를 하려면 한문 꽤나 써야 되잖아요. ‘그럼 글 쓰는 사람만 다냐, 글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언문상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글줄 깨나 해야 왕하고 소통하느냐, 나도 하고 싶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신문고를 설치했습니다. ‘그럼 와서 북을 쳐라’ 그러면 형조의 당직관리가 와서 구두로 말을 듣고 구두로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래도 또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신문고를 왕궁 옆에 매달아 놨거든요. 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면 ‘왜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만 그걸하게 만들었느냐, 우리는 뭐냐’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격쟁'이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격은 칠격(?)자이고 쟁은 꽹과리 쟁(錚)자입니다.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라. 혹은 대형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흔들어라, 그럼 왕이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격쟁이라고 합니다.

 

○ 우리는 이러한 제도가 흔히 형식적인 제도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입니다. 24년 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 입니다. 이것을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영조 같은 왕은 백성들이 너무나 왕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니까 아예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여기에 모이시오.’ 해서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 보셨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이 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통치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제도가 생겼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아까 말씀 드린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후자에 해당합니다. 이 나라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다. 그러면 최소한도의 합리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 합리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 첫째는 조금 김새시겠지만 기록의 문화입니다.여러분이 이집트에 가 보시면, 저는 못 가봤지만 스핑크스가 있습니다. 그걸 딱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할까요? 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다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 중국 사람들은 재수도 좋다, 좋은 선조 만나서 가만히 있어도 세계의 관광달러가 모이는 구나’

여기에 석굴암을 딱 가져다 놓으면 좁쌀보다 작습니다. 우리는 뭐냐. 이런 생각을 하셨지요? 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그러한 유적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베르사유의 궁전같이 호화찬란한 궁전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여러분, 만약 조선시대에 어떤 왕이 등극을 해서 피라미드 짓는 데 30만 명 동원해서 20년 걸렸다고 가정을 해보죠. 그 왕이 ‘국민 여러분, 조선백성 여러분, 내가 죽으면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자제 청·장년 30만 명을 동원해서 한 20년 노역을 시켜야겠으니 조선백성 여러분, 양해하시오.’ 

그랬으면 무슨 일이 났을 것 같습니까? ‘마마, 마마가 나가시옵소서.’ 이렇게 되지 조선백성들이 20년 동안 그걸 하고 앉아있습니까? 안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문화적 유적이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왕이 베르사유궁전 같은 것을 지으려고 했으면 무슨 일이 났겠습니까. ‘당신이 나가시오, 우리는 그런 것을 지을 생각이 없소.’ 이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유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 대신에 무엇을 남겨 주었느냐면 기록을 남겨주었습니다. 여기에 왕이 있다면, 바로 곁에 사관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여러분께서 아침에 출근을 딱 하시면, 어떠한 젊은이가 하나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시는 말을 다 적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을 다 적고, 둘이 대화한 것을 다 적고, 왕이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 언제 화장실 갔으면 화장실 갔다는 것도 다 적고, 그것을 오늘 적고, 내일도 적고, 다음 달에도 적고 돌아가신 날 아침까지 적습니다. 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살살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살살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인조 같은 왕은 너무 사관이 사사건건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싫으니까 어떤 날 대신들에게  ‘내일은 저 방으로 와, 저 방에서 회의할 거야.’ 그러고 도망갔습니다. 거기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사관이 마마를 놓쳤습니다. 어디 계시냐 하다가 지필묵을 싸들고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 인조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데서 회의를 하는데도 사관이 와야 되는가?’ 그러니까 사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마, 조선의 국법에는 마마가 계신 곳에는 사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었습니다.

너무 그 사관이 괘씸해서 다른 죄목을 걸어서 귀향을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습니다. 이렇게 500년을 적었습니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에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왕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며 다 적습니다. 이걸 500년을 적는데, 어떻게 했냐면 한문으로 써야 하니까 막 흘려 썼을 것 아닙니까?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정서를 했습니다. 이걸 사초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왕이 돌아가시면 한 달 이내,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 달 이내에 요새 말로 하면 왕조실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사관도 잘못 쓸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의정, 이러한 말 한 사실이 있소? 이러한 행동한 적이 있소?’ 확인합니다. 그렇게 해서 즉시 출판합니다. 4부를 출판했습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4부를 찍기 위해서 활자본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사람이 쓰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쓰는 게 경제적이지요. 그런데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면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 빼먹을 수 있습니다. 글자 하나 잘못 쓸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후손들에게 4부를 남겨주는데 사람이 쓰면 4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후손들이 어느 것이 정본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판활자, 금속활자본을 만든 이유는 틀리더라도 똑같이 틀려라, 그래서 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 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6,400만자입니다. 6,400만자 하면 좀 적어 보이지요? 그런데 6,400만자는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보면 11.2년 걸리는 분량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학자는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생각 안 드세요? ‘사관도 사람인데 공정하게 역사를 기술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가끔 드시겠지요? 사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를 쓰도록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씀드리죠.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태종실록입니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습니다.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이 참았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또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 희 정승이 나섰습니다. ‘마마,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이걸 세종이 들었겠습니까, 안 들었겠습니까? 들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 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교지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 그런데 사실은 중종은 슬쩍 봤습니다. 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안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왕이 못 보는데 정승판서가 봅니까? 정승판서가 못 보는데 관찰사가 봅니까? 관찰사가 못 보는데 변 사또가 봅니까? 

이런 사람이 못 보는데 국민이 봅니까? 여러분,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그 어려운 시대에 왕의 하루하루의 그 행적을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힘들게 적어서 아무도 못 보는 역사서를 500년을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썼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땅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핏줄 받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후손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가 살았던 문화, 제도, 양식을 잘 참고해서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 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어려운 시기에 왕도 못 보고 백성도 못 보고 아무도 못 보는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남겨주었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인의 보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물이기에,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 놨습니다.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있습니다. 승정원은 오늘날 말하자면 청와대비서실입니다. 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지요. 이 최고 권력기구가 무엇을 하냐면 ‘왕에게 올릴 보고서, 어제 받은 하명서, 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회의를 했습니다. 이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습니다. 아까 실록은 그날 밤에 정서했다고 했지요.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전월 분을 다음 달에 정리했습니다. 이 ‘승정원일기’를 언제까지 썼느냐면 조선이 망한 해인 1910년까지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써놓았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유네스코가 조사해보니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이 남아있습니다. 이게 몇 자냐 하면 2억 5,000만자입니다. 요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납니다. 이러한 방대한 양을 남겨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선조입니다.

 

○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날 日자, 반성할 省자입니다. 왕들의 일기입니다. 정조가 세자 때 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쓰니까 그 다음 왕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썼으니까 손자왕도 썼습니다. 언제까지 썼느냐면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썼습니다. 

아까 ‘조선왕조실록’은 왕들이 못 보게 했다고 말씀 드렸지요. 선대왕들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정조가 고민해서 기왕에 쓰는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습니다.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습니다. 

여러분, 150년 분량의 제왕의 일기를 가진 나라를 전 세계에 가서 찾아보십시오. 저는 우리가 서양에 가면 흔히들 주눅이 드는데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언젠가는 이루어졌으면 하는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전부 한글로 번역합니다. 이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은 개략적이나마 번역이 되어 있고 나머지는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이것을 번역하고 나면 그 다음에 영어로 하고 핀란드어로 하고 노르웨이어로 하고 덴마크어로 하고 스와힐리어로 하고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탑재한 다음날 전 세계 유수한 신문에 전면광고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인 여러분, 아시아의 코리아에 150년간의 제왕의 일기가 있습니다. 288년간의 최고 권력기구인 비서실의 일기가 있습니다. 실록이 있습니다. 혹시 보시고 싶으십니까? 아래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당신의 언어로 볼 수 있습니다.’

해서 이것을 본 세계인이 1,000만이 되고, 10억이 되고 20억이 되면 이 사람들은 코리안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야, 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어떻게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가, 우리나라는 뭔가.’이러한 의식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뭐냐면 국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이라고 하는 브랜드가 그만큼 세계에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것을 남겨주었는데 우리가 지금 못 하고 있을 뿐입니다.

 

○ 이러한 기록 중에 지진에 대해 제가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지진이 87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3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249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029회 나옵니다. 다 합치면 2,368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 때 이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통계를 내면 어느 지역에서는 155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지역은 200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을 다 피해서 2000년 동안 지진이 한 번도 안 난 지역에 방폐장, 핵발전소 만드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면 세계인들이 틀림없이 산업시찰을 올 것입니다. 그러면 수력발전소도 그런 데 만들어야지요. 정문에 구리동판을 세워놓고 영어로 이렇게 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진 2,000년 동안의 자료에 의하면 이 지역은 2,000년 동안 단 한번도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곳에 방폐장, 핵발전소, 수력발전소를 만든다. 대한민국 국민 일동.’

이렇게 하면 전 세계인들이 이것을 보고 ‘정말 너희들은 2,000년 동안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느냐?’고 물어볼 것이고, 제가 말씀드린 책을 카피해서 기록관에 하나 갖다 놓으면 됩니다.

 

이 지진의 기록도 굉장히 구체적입니다.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느냐 하면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 이것이 제일 약진입니다. ‘흙담에 금이 갔다, 흙담이 무너졌다, 돌담에 금이 갔다, 돌담이 무너졌다, 기왓장이 떨어졌다, 기와집이 무너졌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지진공학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 내고 있습니다. 대략 강진만 뽑아보니까 통일신라 이전까지 11회 강진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11회 강진이, 조선시대에는 26회의 강진이 있었습니다. 합치면 우리는 2,000년 동안 48회의 강진이 이 땅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계산할 수 있는 자료를 신기하게도 선조들은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 정치, 경제적 문제

 

○ 그 다음에 조세에 관한 사항을 보시겠습니다.

 

세종이 집권을 하니 농민들이 토지세 제도에 불만이 많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옵니다. 세종이 말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는가?’ 신하들이 ‘사실은 고려 말에 이 토지세 제도가 문란했는데 아직까지 개정이 안 되었습니다.’

세종의 리더십은 ‘즉시 명령하여 옳은 일이라면 현장에서 해결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개정안이 완성되었습니다. 세종12년 3월에 세종이 조정회의에 걸었지만 조정회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왜 부결 되었냐면 ‘마마, 수정안이 원래의 현행안보다 농민들에게 유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렇게 됐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하다가 기발한 의견이 나왔어요. 

‘직접 물어봅시다.’ 그래서 물어보는 방법을 찾는 데 5개월이 걸렸습니다. 세종12년 8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찬성 9만 8,657표, 반대 7만 4,149표 이렇게 나옵니다. 찬성이 훨씬 많지요. 세종이 조정회의에 다시 걸었지만 또 부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신들의 견해는 ‘마마, 찬성이 9만 8,000, 반대가 7만 4,000이니까 찬성이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7만 4,149표라고 하는 반대도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상소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은 전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됐어요.

 

세종이 ‘그러면 농민에게 더 유리하도록 안을 만들어라.’해서 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시하자 그랬는데 또 부결이 됐어요. 그 이유는 ‘백성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릅니다.’였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하니 ‘조그마한 지역에 시범실시를 합시다.’ 이렇게 됐어요.

시범실시를 3년 했습니다.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습니다.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조정회의에서 또 부결이 됐어요. ‘마마, 농지세라고 하는 것은 토질이 좋으면 생산량이 많으니까 불만이 없지만 토질이 박하면 생산량이 적으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과 토질이 전혀 다른 지역에도 시범실시를 해 봐야 됩니다.’ 세종이 그러라고 했어요. 다시 시범실시를 했어요.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어요.

세종이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또 부결이 됐습니다. 이유는 ‘마마, 작은 지역에서 이 안을 실시할 때 모든 문제점을 우리는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할 때 무슨 문제가 나는지를 우리는 토론한 적이 없습니다.’ 세종이 토론하라 해서 세종25년 11월에 이 안이 드디어 공포됩니다. 

조선시대에 정치를 이렇게 했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 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고 이렇게 해서 13년만에 공포·시행했습니다.

 

대한민국정부가 1945년 건립되고 나서 어떤 안을 13년 동안 이렇게 연구해서 공포·실시했습니까. 저는 이러한 정신이 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법률 문제

 

○ 법에 관한 문제를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3심제를 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조선시대에 3심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수에 한해서는 3심제를 실시했습니다. 원래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말 고려 문종 때부터 실시했는데, 이를 삼복제(三覆制)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맨 처음에는 변 사또 같은 시골 감형에서 하고, 두 번째 재판은 고등법원, 관찰사로 갑니다. 옛날에 지방관 관찰사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재판은 서울 형조에 와서 받았습니다. 재판장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습니다. 왕이 신문을 했을 때 그냥 신문한 것이 아니라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썼어요. 조선의 기록정신이 그렇습니다.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입니다. 정조가 1700년대에 이 '심리록'을 출판했습니다. 오늘날 번역이 되어 큰 도서관에 가시면 ‘심리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왕이 사형수를 직접 신문한 내용이 거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왕들은 뭐를 신문했냐 하면 이 사람이 사형수라고 하는 증거가 과학적인가 아닌가 입니다. 또 한 가지는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서 왕들이 무수히 노력합니다. 이 증거가 맞느냐 과학적이냐 합리적이냐 이것을 계속 따집니다. 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조선의 법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과학적 사실

 

○ 다음에는 과학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입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는 이미 다 아시겠지만 물리학적 증명이 없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시도했습니다. 종교법정이 그를 풀어주면서도 갈릴레오의 책을 보면 누구나 지동설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책은 출판금지를 시켰습니다. 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입니다. 1767년에 인류사에 나왔습니다.

 

- 동양에서는 어떠냐 하면 지구는 사각형으로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둥글고 지구는 사각형이다, 이를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실은 동양에서도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얘기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성리학자 주자입니다, 주희. 주자의 책을 보면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황진이의 애인, 고려시대 학자 서화담의 책을 봐도 ‘지구는 둥글 것이다, 지구는 둥글어야 한다, 바닷가에 가서 해양을 봐라 지구는 둥글 것이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 그런데 이것을 어떠한 형식이든 증명한 것이 1400년대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입니다. 이순지는 지구는 둥글다고 선배 학자들에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1400년대입니다. 그러니까 선배 과학자들이 ‘그렇다면 우리가 일식의 날짜를 예측할 수 있듯이 월식도 네가 예측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이순지는 모년 모월 모시 월식이 생길 것이라고 했고 그날 월식이 생겼습니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오늘날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적인 업적을 쌓아가니까 세종이 과학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이때 이순지의 나이 약관 29살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준 임무가 조선의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동지상사라고 많이 들어보셨지요? 동짓달이 되면 바리바리 좋은 물품을 짊어지고 중국 연변에 가서 황제를 배알하고 뭘 얻어 옵니다. 다음 해의 달력을 얻으러 간 것입니다. 달력을 매년 중국에서 얻어 와서는 자주독립국이 못될뿐더러, 또 하나는 중국의 달력을 갖다 써도 해와 달이 뜨는 시간이 다르므로 사리/조금의 때가 정확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선 땅에 맞는 달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됐습니다. 수학자와 천문학자가 총 집결을 했습니다. 이순지가 이것을 만드는데 세종한테 그랬어요. 

‘못 만듭니다.’ 

‘왜?’ 

‘달력을 서운관(書雲觀)이라는 오늘날의 국립기상천문대에서 만드는데 여기에 인재들이 오지 않습니다.’ 

‘왜 안 오는가?’ 

‘여기는 진급이 느립니다.’ 그랬어요.

오늘날 이사관쯤 되어 가지고 국립천문대에 발령받으면 물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행정안전부나 청와대비서실 이런 데 가야 빛 봤다고 하지요? 옛날에도 똑같았어요. 그러니까 세종이 즉시 명령합니다.

‘서운관의 진급속도를 제일 빠르게 하라.’ 

‘그래도 안 옵니다.’ 

‘왜?’ 

‘서운관은 봉록이 적습니다.’ 

‘봉록을 올려라.’ 그랬어요.

‘그래도 인재들이 안 옵니다.’ 

‘왜?’ 

‘서운관 관장이 너무나 약합니다.’ 

‘그러면 서운관 관장을 어떻게 할까?’

‘강한 사람을 보내주시옵소서. 왕의 측근을 보내주시옵소서.’ 

세종이 물었어요. ‘누구를 보내줄까?’

누구를 보내달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 

‘정인지를 보내주시옵소서.’ 그랬어요. 정인지가 누구입니까? 고려사를 쓰고 한글을 만들고 세종의 측근 중의 측근이고 영의정입니다.


세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 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습니다. 그래서 1,444년에 드디어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냈습니다.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著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이 하루 10분, 20분, 1시간 틀려도 모릅니다. 한 100년, 200년 가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달력이 정확한지 안 정확한지를 어떻게 아냐면 이 달력으로 일식을 예측해서 정확히 맞으면 이 달력이 정확한 것입니다. 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공개를 했습니다. 1,447년 세종 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 50분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날 오후 6시 55분 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습니다.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세종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고 붙여줬습니다. 이것이 그 후에 200년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입니다. 

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든 핵심기술이 어디 있냐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 여러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 홍대용이라는 사람은 수학을 해서 ‘담헌서(湛軒書)’라는 책을 썼습니다. ‘담헌서’는 한글로 번역되어 큰 도서관에는 다 있습니다. 이 ‘담헌서’ 가운데 제5권이 수학책입니다. 홍대용이 조선시대에 발간한 수학책의 문제가 어떤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구체의 체적이 6만 2,208척이다. 이 구체의 지름을 구하라.’ cos, sin, tan가 들어가야 할 문제들이 쫙 깔렸습니다. 조선시대의 수학책인 ‘주해수용(籌解需用)’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sinA를 한자로 正弦, cosA를 餘弦, tanA를 正切, cotA를 餘切, secA를 正割, cosecA를 如割, 1-cosA를 正矢, 1-sinA를 餘矢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있으려면 삼각함수표가 있어야 되잖아요. 이 ‘주해수용’의 맨 뒤에 보면 삼각함수표가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제가 한 번 옮겨봤습니다. 

예를 들면 正弦 25도 42분 51초, 다시 말씀 드리면 sin25.4251도의 값은 0.4338883739118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왜 다 썼느냐 하면 소수점 아래 몇 자리까지 있나 보려고 제가 타자로 다 쳐봤습니다. 소수점 아래 열세 자리까지 있습니다. 이만하면 조선시대 수학책 괜찮지 않습니까?

 

다른 문제 또 하나 보실까요?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眞線에 있다. 조선시대 수학책 문제입니다. 이때는 子午線이라고 안 하고 子午眞線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미 이 시대가 되면 지구는 둥글다고 하는 것이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線上에 있다. 甲地는 北極出地, 北極出地는 緯度라는 뜻입니다. 甲地는 緯度 37도에 있고 乙地는 緯度 36도 30분에 있다. 甲地에서 乙地로 직선으로 가는데 고뢰(鼓?)가 12번 울리고 종료(鍾鬧)가 125번 울렸다. 이때 지구 1도의 里數와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하라. 이러한 문제입니다.

 

이 고뢰(鼓? ) , 종료(鍾鬧)는 뭐냐 하면 여러분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를 초등학교 때 사회책에서 보면 오늘날의 지도와 상당히 유사하지 않습니까? 옛날 조선시대의 지도가 이렇게 오늘날 지도와 비슷했을까? 이유는 축척이 정확해서 그렇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십리 축척입니다. 십리가 한 눈금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왜 정확하냐면 기리고거(記里鼓車)라고 하는 수레를 끌고 다녔습니다.  

기리고거가 뭐냐 하면 기록할 記자, 리는 백리 2백리 하는 里자, 里數를 기록하는, 고는 북 鼓자, 북을 매단 수레 車, 수레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만들었냐 하면 수레가 하나 있는데 중국의 동진시대에 나온 수레입니다. 바퀴를 정확하게 원둘레가 17척이 되도록 했습니다. 17척이 요새의 계산으로 하면 대략 5미터입니다. 이것이 100바퀴를 굴러가면 그 위에 북을 매달아놨는데 북을 ‘뚱’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북을 열 번 치면 그 위에 종을 매달아놨는데 종을 ‘땡’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여기 고뢰, 종료라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5km가 되어서 딱 10리가 되면 종이 ‘땡’하고 칩니다. 김정호가 이것을 끌고 다녔습니다.

 

우리 세종이 대단한 왕입니다. 몸에 피부병이 많아서 온양온천을 자주 다녔어요. 그런데 온천에 다닐 때도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이 기리고거를 끌고 갔어요. 그래서 한양과 온양 간이라도 길이를 정확히 계산해 보자 이런 것을 했었어요. 이것을 가지면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원주를 파이로 나누면 지름이다 하는 것이 이미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 수학적 사실

 

○ 그러면 우리 수학의 씨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것인데요,

 

여러분 불국사 가보시면 건물 멋있잖아요. 석굴암도 멋있잖아요. 불국사를 지으려면 건축학은 없어도 건축술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최소한 건축술이 있으려면 물리학은 없어도 물리술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물리술이 있으려면 수학은 없어도 산수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이게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졌던 의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지었을까.


그런데 저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 선생님을 너무 너무 존경합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에스파냐, 스페인에 있습니다. 1490년대에 국립대학이 세워졌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는 1600년대에 세워진 대학입니다. 우리는 언제 국립대학이 세워졌느냐, ‘삼국사기’를 보면 682년, 신문왕 때 국학이라는 것을 세웁니다. 그것을 세워놓고 하나는 철학과를 만듭니다. 관리를 길러야 되니까 논어, 맹자를 가르쳐야지요. 그런데 학과가 또 하나 있습니다. 김부식 선생님은 어떻게 써놓았냐면 ‘산학박사와 조교를 두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명산과입니다. 밝을 明자, 계산할 算자, 科. 계산을 밝히는 과, 요새 말로 하면 수학과입니다. 수학과를 세웠습니다. ‘15세에서 30세 사이의 청년 공무원 가운데 수학에 재능이 있는 자를 뽑아서 9년 동안 수학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졸업하게 되면 산관(算官)이 됩니다. 수학을 잘 하면 우리나라는 공무원이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서 찾아보십시오. 수학만 잘 하면 공무원이 되는 나라 찾아보십시오. 이것을 산관이라고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산관은 계속 되었습니다. 이 산관이 수학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됩니다. 산관들은 무엇을 했느냐, 세금 매길 때, 성 쌓을 때, 농지 다시 개량할 때 전부 산관들이 가서 했습니다. 세금을 매긴 것이 산관들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수학 상황을 알려면 무슨 교과서로 가르쳤느냐가 제일 중요하겠지요? 정말 제가 존경하는 김부식 선생님은 여기다가 그 당시 책 이름을 쫙 써놨어요. 삼개(三開), 철경(綴經), 구장산술(九章算術), 육장산술(六章算術)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구장산술이라는 수학책이 유일합니다. 구장산술은 언제인가는 모르지만 중국에서 나왔습니다. 최소한도 진나라 때 나왔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좋은 책이면 무조건 다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 8장의 이름이 방정입니다. 방정이 영어로는 equation입니다. 방정이라는 말을 보고 제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저는 사실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부터 방정식을 푸는데, 방정이라는 말이 뭘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어떤 선생님도 그것을 소개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보니까 우리 선조들이 삼국시대에 이미 방정이라는 말을 쓴 것을 저는 외국수학인 줄 알고 배운 것입니다.

 

○ 9 장을 보면 9장의 이름은 구고(勾股)입니다. 갈고리 勾자, 허벅다리 股자입니다. 맨 마지막 chapter입니다. 방정식에서 2차 방정식이 나옵니다. 그리고 미지수는 다섯 개까지 나옵니다. 그러니까 5원 방정식이 나와 있습니다. 중국 학생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말을 모릅니다. 여기에 구고(勾股)정리라고 그래도 나옵니다. 자기네 선조들이 구고(勾股)정리라고 했으니까.

 여러분 이러한 삼각함수 문제가 여기에 24문제가 나옵니다. 24문제는 제가 고등학교 때 상당히 힘들게 풀었던 문제들이 여기에 그대로 나옵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삼국시대에 이미 교육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전부 서양수학인 줄 알고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밀률(密率)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비밀할 때 密, 비율 할 때 率. 밀률의 값은 3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수학교과서를 보면 밀률의 값은 3.14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까 이순지의 칠정산외편, 달력을 계산해 낸 그 책에 보면 ‘밀률의 값은 3.14159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다 그거 삼국시대에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는 오늘날 플러스, 마이너스, 정사각형 넓이, 원의 넓이, 방정식, 삼각함수 등을 외국수학으로 이렇게 가르치고 있느냐는 겁니다.

 

저는 이런 소망을 강력히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초등학교나 중·고등 학교 책에 플러스, 마이너스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우리 선조들은 늦어도 682년 삼국시대에는 플러스를 바를 正자 정이라 했고 마이너스를 부채, 부담하는 부(負)라고 불렀다. 그러나 편의상 正負라고 하는 한자 대신 세계수학의 공통부호인 +-를 써서 표기하자, 또 π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682년 그 당시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우리는 π를 밀률이라고 불렀다, 밀률은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뜻이다, 오늘 컴퓨터를 π를 계산해 보면 소수점 아래 1조자리까지 계산해도 무한소수입니다. 그러니까 무한소수라고 하는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이 말은 철저하게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밀률이라는 한자 대신 π라고 하는 세계수학의 공통 부호를 써서 풀기로 하자 하면 수학시간에도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없는 것을 가지고 대한민국이 세계 제일이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선조들이 명백하게 다큐멘트, 문건으로 남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조들이 그것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서양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거짓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것이 전부 정리되면 세계사에 한국의 역사가 많이 올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났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인 세계사를 풍성하게 한다는, 세계사에 대한 기여입니다.

 

◈ 맺는 말

 

○ 결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자료는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선조들이 남겨준 그러한 책이 ‘조선왕조실록’ 6,400만자짜리 1권으로 치고 2억 5,000만자짜리 ‘승정원일기’ 한 권으로 칠 때 선조들이 남겨준 문질이 우리나라에 문건이 몇 권 있냐면 33만권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위에 한문 전공한 사람 보셨습니까?

정말 엔지니어가 중요하고 나로호가 올라가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 국학을 연구하려면 평생 한문만 공부하는 일단의 학자들이 필요합니다. 이들이 이러한 자료를 번역해 내면 국사학자들은 국사를 연구할 것이고, 복제사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복제사를 연구할 것이고, 경제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경제사를 연구할 것이고, 수학교수들은 한국수학사를 연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스템이 우리나라에는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문을 공부하면 굶어죽기 딱 좋기 때문에 아무도 한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의 문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동경대학으로 가고 북경대학으로 가는 상황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되냐 하면 공대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물리학사, 건축학사가 나옵니다. 수학과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허벅다리, 갈고리를 아! 딱 보니까 이거는 삼각함수구나 이렇게 압니다. 밤낮 논어·맹자만 한 사람들이 한문을 해서는 ‘한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책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사회에 나가시면 ‘이 시대에도 평생 한문만 하는 학자를 우리나라가 양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여론을 만들어주십시오. 이 마지막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이런 데서 강연 요청이 오면 저는 신나게 와서 떠들어 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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