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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난을 기회로 중국의 금융기관들이 런던과 뉴욕의 인재 사냥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투자공사(CIC)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중국-프랑스 공동펀드인 포춘SGAM (Fortune SGAM)은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인재 채용을 이미 시작했다. 또한, 상하이 市당국은 다음 달 런던과 뉴욕에서 금융 전문가 채용을 진행할 예정이다.

포춘SGAM CEO 페이 창지앙(Pei Changjiang)은 금융 위기로 월스트리트에서 대대적 감원이 진행 중인 반면, 중국의 금융산업은 아직 미숙한 단계로 전문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영국의 싱크탱크 옥스포드 이코노믹스(Oxford Economics)에 따르면, 이번 금융난으로 향후 2년간 월스트리트에서만 16만5,000명의 감원이 추정되며, 같은 기간 런던에서는 약 19만4,000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현재 상하이는 금융 인력 채용이 한창이다.

한 정(Han Zheng) 상하이 시장은 상하이에서 엑스포가 열리는 2010년까지 상하이를 국제금융허브로 도약시키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중국의 금융감독당국은 중국 경제 신문에서 미국은 지나치게 비대했져 다이어트가 필요한 반면, 중국은 아직도 빈약하여 보다 강해질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올해 초 기준으로 상하이에는 600개 이상의 금융기관 사무실이 있으며, 910만 명의 직장인 중 금융업 종사자는 겨우 2.4%에 불과하다. 런던의 11%, 뉴욕의 12.7%와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수치다.

상하이 시당국은 주요 은행과 보험, 증권, 자산운용회사를 위해 최소 80명 이상을 구인하고 있으며, 2,000억 달러(약 270조 원) 규모의 중국투자공사(CIC)는 현재 채권 투자 업무부터 주식 분석까지 총 30명 이상을 구인 중이다.

국영 철강 제조업체 상하이 바오스틸 그룹과 프랑스 은행 소시에테 제너럴(Societe Generale)의 합작회사인 SGAM은 우수 인력 조사를 위한 특별 팀을 미국에 파견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움직임이 힘든 시기 속에서 인재의 가치를 극대화시키고, 중국 경제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금융인력 채용에 가장 큰 걸림돌로 중국 정부와 국영 기업의 지나친 규제 및 관료주의를 지적했다. 금융 전문가들의 속성상 상당한 자율이 보장되지 않는 한 중국 국영 기업에서 결코 일하고 싶어하지 않을 거라는 것.

한편, 보스턴의 금융업 전문 헤드헌팅기업 에포크(Epoch)의 대표 린다 스튜어트(Linda Stewart)는 "총 1조9,000억 달러(약 2,500조 원)의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는 중국은 세계적 금융 중심지로 성장할 야심과 능력 모두를 갖추고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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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23일, 미연방준비위원회(FRB)는 M3 통화량 통계를 더 이상 발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M3는 통화량을 측정하는 기준의 하나로, 유동성의 총합을 보여줍니다.

FRB 는 M3가 별 의미가 없는 통계인지라 자료를 수집하고 발표하는 비용에 비해 유익이 없어 발표를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우선, 통화량 발표를 하면서 M3 한 줄을 끼워넣는데는 거의 돈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또한 M3 통계는 발표하지 않지만, M3 통계를 내는데 필요한 자료는 지금도 발표가 되는데, 이는 자료는 있지만 컴퓨터로 통계를 내는 비용이 아까워서 발표하지 않겠다는 말이죠. 게다가 FRB처럼 막강한 기관이 돈을 아끼려고 늘 해오던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무래도 믿기가 힘듭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은 FRB가 M3 통계를 발표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으며, 그것은 바로 M3에서 드러나는 통화량 증가가 엄청나기 때문이라고 추측합니다. M3는 M2에 고액 정기 적금, 금융기관 펀드 잔액 등을 더한 수치입니다. 따라서 대형 금융기관을 통한 통화량 증가가 쉽게 눈에 띄죠. 이런 이유에서 M3를 " (전자) 지폐 제조기가 돈찍어내는 속도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즉, FRB가 대형 금융기관에 전산으로 공급한 통화가 M3에 잡히는 것입니다.


통계를 보면 지난 몇년간 M3의 증가량은 엄청났습니다. 80년대만 해도 얼마 되지 않던 M2와 M3의 차이는 2000년대에 들어 급작스럽게 늘었고, 마지막 발표가 되던 시점에서 3조 달러가 넘게 됩니다. 이렇게 엄청나게 돈을 풀었으니 FRB로서는 자료를 공개하기가 부담이 되었던 것이지요.

FRB가 이처럼 통화량을 늘린 이유는 무역수지 적자가 워낙 심하기 때문입니다. 무역수지 적자는 곧 외국에서 벌어오는 돈 보다 외국에 지불하는 돈이 많다는 뜻인데, 이렇게 외국에 돈을 지불하기 위해선 어디선가 돈을 구해와야 합니다. 한국은 물건을 수입하기 위해서 달러를 지불해야 하고, 달러는 남의 나라 돈이기 때문에 달러를 벌어오지 못하면 수입을 해 올 수도 없습니다(달러를 빌려 몇년은 버틴다 하더라도). 그런데 미국은 자국화폐인 달러를 지불하기 때문에 무역수지 적자가 아무리 커도 돈을 더 찍어낼 수 있습니다. 미국이 M3통계 미공개를 통해 감추는 것은 이러한 불편한 진실입니다.

앞서 M3 통계를 내는데 필요한 자료는 공개가 된다고 설명했는데, 실제로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M3 통화량을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차트를 보면 통화량 증가율이 15%선이고, 이는 엄청나게 높은 수준입니다. 미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지금, 돈이 이처럼 많이 풀리면 대단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밖에 없죠. 그럼에도 미국 물가가 생각만큼 많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이렇게 풀린 돈의 많은 부분이 시장에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비상시를 대비해 은행 계정이나 금고 속에 보관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통화 공급을 늘린다면 달러화의 가치는 장기적으로 볼 때 하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앞으로 몇달에서 1-2년 간은 달러화가 강세를 유지할찌라도 달러화의 미래는 그리 밝지 못합니다 (그에 비해 유로화는 여러 나라 정부가 서로 견제를 하기 때문에 통화량 증가가 쉽지 않고,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달러보다 안정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죠). 결국 달러의 가치가 많이 하락하면 기축통화의 자격을 잃게 될찌도 모릅니다. 그러고 나면 미국이 더 이상 자국의 화폐로 빚을 내 풍요로운 삶을 살지 못하고, 다른 나라들 처럼 열심히 일해서 수출에 성공해야 수입을 할 수 있게 될찌 모릅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리 멀지 않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 cimi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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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ack  Obama  미국 상원의원이 6월 3일 후보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 수를
확보함으로써  'Presidential Nominee' 가 되었다.
미국 민주당이 사상 처음으로 흑인 출신 대선 후보를 배출하였다
.

 

이에 따라 오는 11월 실시되는 대선에서 공화당 존 매케인 상원의원(71)과 오바마 의원 간 흑백 대결이 펼쳐지게 됐다.

오바마는 미네소타주 세인트폴 집회에서 “오늘 밤 나는 여러분 앞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될 것임을 밝힌다. 오늘로써 길고 힘들었던 프라이머리 시즌이 끝났다”고 승리를 선언했다.

 


오바마는 1961년 8월 4 하와이 호놀룰루 출생했다.  
하와이대 학생이던 케냐 출신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는 오바마가 두 살 때 이혼을 하였다.

2004 7월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케냐 출신 아버지와 미국 캔자스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버락 오바마의 연설은 미국인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오바마는 대담한 희망 이란 연설로 일약 스타가 됐다.




부모는 내게버락’(Barack, 스와힐리어로축복받은’)이란 아프리카식 이름을 붙여줬다.
미국에서 성공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이 야윈 소년은 이곳에 자리 잡을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품었다
.
(
미국이 아니라면) 지구상 어떤 나라에서 내 이야기가 가능하겠는가. 역경에 맞서는 대담한 희망(the audacity of hope), 그건 신이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이자 미국의 근본이다
.”

오바마 아버지


하와이대학 캠퍼스 커플로 만났으나 케냐로 가고싶어하지 않던 오바마의 어머니
스탠리 앤 더넘 소에토로 이혼했다.

케냐 정부 장학금으로 하와이에 유학을 와 오바마를 낳은 그는 아들이 2살 되던 해 부인과 이혼하고 하버드 대학으로 떠났다. 거기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다른 미국여인과 결혼해 케냐로 돌아간 그는 대통령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고위직에 올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새 조국 케냐의 건설을 주도했고 부와 명예를 누리기도 했다.
  
  그 러나 1960년대 말 케냐는 최대 부족인 키쿠유족과 제2의 부족인 루오족의 갈등으로 심각한 위기 국면에 휩싸였다. 작년 12월 대통령 선거 후 소요사태로 16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케냐의 부족갈등은 40년의 뿌리를 가진 것이었다.
  
  루오 족 출신인 아버지 오바마는 같은 루오족 출신인 부통령 라일라 오딩가와 함께 저항운동을 이끌었다. 현재 케냐 야당 오렌지민주운동의 지도자 오딩가가 미국의 유력 대선후보인 오바마를 두고 자신의 조카라고 주장하는 건 아버지 오바마와의 직접적인 인연 때문이다.
  
  아 버지 오바마는 오딩가와 함께 케냐의 정치가들이 독립을 위해 싸운 사람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고 제국주의자들이 두고 간 재산을 차지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고 비난했다. 최대 부족이 만들어 가는 기득권에 타협하는 이들이 속출하는 가운데서도 오바마는 대통령의 만류까지 뿌리치며 강력히 저항했다.
  
  정부는 그런 오바마를 거세게 탄압했다. 공직에서 해임되고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갑자기 닥친 불행을 술로 달래던 오바마는 권토중래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1982년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하는 비운을 맞았다.


  아버지 오바마가 꿈에 그리던 아들을 데려갈 요량으로 하와이를 찾았던 것은 어쩌면 마지막 희망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외조부 밑에서 반듯하게 잘 자라고 있는 아들을 데려가겠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 1971년 하와이 호놀룰루를 방문한 아버지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소년 오바마.

  오바마는 그런 아버지의 시련을 뒤늦게 듣게 됐다. 그것은 우상의 몰락이었다. "명석한 학자, 관대한 남자, 탁월한 지도자라는 아버지의 이미지가 부서져 연기처럼 사라졌다." 소수파로서의 제약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버린 아버지를 통해 미국 사회의 마이너리티로 살아가야 할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다.



계부 롤로는 생부와 마찬가지로 하와이대 동서센터 유학생이었다.
오바마가 그를 따라 자카르타로 건너간 것은 1967년이었다. 수하르토가 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를 무력으로 진압한 뒤 수카르노로부터 권력을 찬탈한, 인도네시아 독립 이후 최고의 격변기로 기록되던 바로 그 해였다.
   
롤로는 당시 가장 급진적인 제3세계 지도자로 꼽혔던 수카르노 대통령에 의해 장학생으로 뽑혀 유학을 갔었다. 그러나 수하르토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후 여권이 취소되어 귀국했고, 1년간 강제 징집됐다.


-인도네시아의 일반 초등학교에서

  
그런 롤로는 오바마를 친아들처럼 아꼈다. 그러나 오바마가 본 것은 절망 끝에 세상과 타협해 버리는 전형적인 엘리트의 모습이었다.
  
군에서 나온 롤로는 오바마의 표현대로 "아무런 위장도 하지 않은 채 벌거벗은 몸뚱어리 그대로 늘 생경하게 존재"하고 있는 권력에 의해 길들여졌고, "권력과 손을 잡고 망각의 지혜를 배웠다." 석유회사에 취직해 돈과 권력을 맛봤지만 탈세 혐의로 몰락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롤로는 자신의 행태에 대해 '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몰아붙이는 오바마의 어머니에게 "죄의식은 외국인이나 가질 수 있는 사치"라고 쏘아붙였고, 둘은 불화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공작으로 집권한 수하르토 치하에서 과거를 버리고 타협해 버린 롤로. 그런 그에게 '양심'을 이야기 하는 미국인 어머니의 다툼 속에서 어린 오바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바마는 롤로가 "가난과 부패와 자기 안전을 위한 끊임없는 쟁탈에 대해 설명했다"면서 "그의 설명은 내게 늘 가까이 남아 있었고 내 안의 몰인정한 회의주의에 자양분이 됐다"고 고백했다.


인류학을 전공해 박사학위까지 딴 오바마의 모친은 아이 둘을 키우면서 대학원에 들어가 800쪽짜리 인류학 논문을 썼다. 그는 뉴욕에 있는 여성세계은행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포드재단 등에서 근무하며 여성과 빈민지원 활동에 참여했고 파키스탄에서 관련 컨설팅 업무를 맡기도 했다.

 


-어머니 앤과 외조부모

자카르타에서의 혼란에서 빛을 발했던 것은 어머니 앤의 존재였다.
앤은 롤로의 체념이 아들 오바마에게 전도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교육했고, 아들을 자부심 강하고 예의 바른 인물로 만들었다. 형편이 허락지 않아 오바마를 국제학교가 아닌 인도네시아 학교에 보내는 대신 매일 새벽 4시 아들을 깨워 미국식 교육을 시켰다.
  
그리고 앤은 아들에게 언제나 생부 얘기를 들려줬다. 아버지가 얼마나 가난하게 자랐는지, 그렇지만 얼마나 부지런하고 정직했는지를 되풀이 해 들려줬다. 오바마는 그런 아버지를 "어머니의 유일한 동맹군"이라고 말했다.


10살이 되어 자카르타에서 하와이로 돌아와 명문 푸나호우 아카데미 5학년에 전학한 오바마에게 인종주의는 구체적인 현실이 되어 버렸다.
오바마가 오기 전까지 흑인이 단 한명밖에 없었던 푸나호우에서
그는 친구들의 놀림과 따돌림을 받았고, 스스로 쌓은 벽 안에 갇혀 허우적댔다.

 
그나마 위안이 됐던 것은 농구였다. 푸나호우 농구부 선수가 된 오바마는 대학 코트에서 만난 흑인 선수들을 보며 열등감을 털어버릴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 농구장에서 그는 "존경심은 자기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것이지 아버지가 누구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했다.

-186cm의 키로 고등학교 농구부원으로 뛰던 오바마君


- 하와이 소재 푸나호우고등학교 졸업식때 축하해 주는 여동생


인도네시아인 피가 흐르는 여동생은 동남아계 남자와 결혼해서 하와이대학 강사로 재직 중.


외할아버지 스탠리 던햄과 외할머니의 고교 졸업 축하 장면.

유년기와 청년기의 오바마를 키운 외할아버지는 실제 아버지에 버금가는 존재였다. 오바마가 태어나던 1961년부터 하와이의 명문 푸나우 아카데미를 졸업하던 1979년까지, 외할아버지는 그가 인도네시아에 살았던 4년을 제외하고 14년 동안 오바마를 지켜줬다.

외조부는 오바마에게 미국의 백인 중산층 가정의 언어와 문화, 세계관을 터득케 했다. 케냐인과 미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흑백혼혈이자 자카르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오바마였지만 정체성의 혼란을 딛고 다문화적 장점만을 받아들인 인물로 성장하게 한 것은 외조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외할아버지가 겪고 오바마에게 전해준 역사는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이었다. 캔자스 남부 위치타에서 태어난 그는 대공황을 겪은 후 1941년 진주만 공격 이후 입대, 유럽에서 군복무를 했다.
  
1959년 사업을 위해 하와이 호놀룰루에 정착한 그가 미국 50개 주(州) 중 절 반이 흑백 결혼을 중죄로 여기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딸과 케냐인의 결혼을 승낙한 것은 언제나 자유를 갈망했던 낙천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오바마는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에서 "늘 새로운 출발을 찾고 눈에 익은 것들로부터 도망쳤다"라고 외할아버지를 묘사했다.


-콜럼비아 대학을 찾아 온 외조부모

외조부 던햄의 역마살을 다스린 것은 오바마의 탄생이었다. 오바마가 태어난 후 그는 하와이에 완전히 정착해 손자를 뒷바라지하며 자신이 겪은 경험이며 역사를 대물림했다.
   
특히 외할아버지는 소년 오바마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던 흑인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오바마의 피부색에 얼굴을 찌푸리거나 혀를 차는 관광객들을 향해 경멸을 태도를 보이며 그의 상처를 달래줬다.
  
  "너희들만 잘 되면 그게 다야. 내가 바라는 건."
  
외할아버지는 평생 오바마에게 이 말을 되풀이하며 부모의 사랑에 목마른 손자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한 뒤 1992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여전히 생존해 있는데, 'CNN 중독자'가 되어 외손자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벅찬 가슴으로 지켜보고 있다. 가끔은 유세장에도 나간다.

△ 하버드대 로스쿨을 우등으로 졸업한 오바마는 시카고로 돌아가 시민운동에 열을 올리는 한편, 시카고대 법대에서 헌법을 강의하기도 했다.


콜럼비아대학을 졸업한 뒤 24살이 되던 해에 시카고라는 낯선 땅으로 건너간 것은 공동체에 대한 동경과 갈망 때문이었다. 욕망의 도시 뉴욕에서 할렘과 부유층 거주 구역을 보며 목도한 문제, 즉 인종과 계급이 얽혀서 만들어낸 차별과 억압을 공동체를 통해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었다.
 
공동체조직가가 되기로 결심한 오마바의 혼잣말을 보면 지금 오바마가 내걸고 있는 '변화'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그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게 이 무렵이 아닌가 싶다. 그의 독백은 매우 급진적이다.
  
  "레이건과 그의 앞잡이들이 더러운 짓을 벌이는 백악관에 변화가 필요하고, 양처럼 고분고분하고 부패한 의회에 변화가 필요하며, 미친 듯이 한쪽으로만 치우친 나라 안의 분위기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변화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조직된 풀뿌리에서만 나온다."

뒤늦게 얻게 된 종교는 결정적인 축복이었다. 오바마는 라이트 목사의 '희망의 담대함'이란 설교를 듣고 흑인들의 시련은 보편적인 인간의 것이라는 위안과 희망을 얻게 됐다. '희망'의 담대함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의 기조연설, 그리고 미국의 미래 비전을 담은 그의 평론집 제목이 됐다.


아버지의 땅 케냐에 다녀와 정체성의 뿌리를 확인하는 동시에 한때 우상이었다가 부서져 버린 아버지와 마음으로 화해한 일도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희망을 품은 오바마에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1988년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간 뒤 흑인 최초로 <하버드 로 리뷰>의 편집장이 됐다. 91년 졸업한 오바마는 다시 시카고로 돌아와 민권변호사로 활동했고, 결혼과 동시에 시카고대학에서 헌법학 강의를 맡기도 했다.

오바마의 희망은 소수자로서 미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참의미를 되새기는데 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그것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의 기조연설 전반부에 압축됐다. 그 연설로 오바마는 일약 전국적인 스타가 되었다.
 
  
  " 이 나라의 가능성에 대한 굳은 신념을 가졌던 내 부모님은 나에게 '신의 은총'이란 뜻의 버락이라는 아프리카식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것은 관대한 나라 미국에서 이름은 성공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부모님들은 부유하지 않았지만 내가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관대한 나라 미국에서는 꼭 부유하지 않아도 잠재력을 꽃피울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부모님들은 모두 돌아가셨지만 오늘 밤 하늘나라에서 나를 자랑스럽게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 는 오늘 내가 물려받은 다양성에 대해 감사하고, 내 부모님들의 꿈이 내 귀여운 두 딸에게도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여기 서 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품고 있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이고, 내가 먼저 살았던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내 이야기는 미국이 아니고서는 지구상 어디에서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늘 밤 우리는 우리나라의 위대함을 확인하기 위해 여기 모였다. 미국은 마천루의 웅장함이나 군사력, 경제 규모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다. 200년 전 독립선언문에 나온 대단히 간단한 말은 우리가 가진 자긍심의 기초다.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조물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것은 진정한 미국의 정신이다. (…) 흑인의 미국도 백인의 미국도, 라틴계의 미국도 아시아계의 미국도 없다. 미국은 오직 미국일 뿐이다."  
    

부인 미셸(64년 생)은 흑인 소방관 가정에서 태어나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 법대를 나와 자수성가한 대표적 인물이다.   미셀은 대선 유세 지원을 위해 시카고 대학병원 대외업무 담당 부원장직을 그만 두었다. 
공부하느라 비교적 결혼이 늦었고, 딸만 둘인데….애들도 결혼 7年만에 낳아서, 초등학생   말리아(10)와 사샤(7)의 학부모이다.

참고 출처 : 프레시안 '오바마, 아버지의 이름으로' , 중앙선데이 평론집 '희망의 담대함'동아일보.'오바마 어머니는 커리어 우먼' 세계일보, 한국일보 사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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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하루아침에 '대통령의 딸'로 거듭난 버락 오바마의 두 딸을 살펴보자. 1992년 10월 결혼한 오바마는 아내 미셸 사이에 두 딸 말리아(10)와 사샤(7)를 두고 있다.

이들은 1961년 생후 2개월이던 존 F. 케네디 2세와 4살이던 그의 누나 케롤라인 케네디 슐로스버그, 1977년 9살이던 지미 카터 대통령의 딸 에이미와 더불어 어린 나이에 백악관에 입성한 기록을 남기게 됐다.

여느 대통령의 딸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오바마의 유세현장에 동행하며 주목받았다. 아버지 없이 자라 두 딸을 끔찍이 아끼는 것으로 유명한 오바마는 연설 중에도 딸을 자주 언급해 자상한 아버지 상을 보여줬다.

하지만 두 딸은 지난 7월 초 NBC '액세스 할리우드'에 출연해 "아빠의 패션 감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빠가 선거 유세를 떠날 때 싼 여행가방을 아무 곳에 두어 걸려 넘어지게 해서 불만이다"라고 털어놓는 등 '솔직한' 인터뷰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오바마의 첫째 딸 말리아는 영화 속 캐릭터처럼 자신의 견해를 거침없이 밝히기로 잘 알려져 있다. 말리아는 10월 29일 자신이 카메오로 출연한 30분짜리 대형 선거 광고를 대대적으로 방송하기로 하자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의 아내 미셸은 10월 27일 제이 레노가 진행하는 NBC '투나잇 쇼'에 출연해 "딸이 (광고에 관한) 대화를 듣고 있다가 'TV를 전부 다 사려고 하느냐, 내 TV를 방해하려고 하지 말라'고 따지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털어놓았다.

반면 오바마의 두 딸은 알레르기에도 불구하고 "애완견을 사달라"고 조르는 등 여느 아이처럼 천진난만함을 보였다. 오바마는 지난 5일 당선 연설에서 두 딸에게 "백악관에 새 강아지를 데려올 수 있다"고 말해 두 딸을 기쁘게 했다.

현재 오바마의 두 딸은 워싱턴으로 거처를 옮기고 전학할 학교를 정하는 등 '대통령 딸'이 되기 위한 수순을 밟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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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프라 윈프리가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제44대 미국대통령 당선이 사실상 확정된
4일(현지시간) 시카고의 그랜트 공원에서 열린
당선축하 행사에 참석해 있다.


"오프라 윈프리가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것은 오바마 본인과 지지자들의 땀과 눈물의 결과이지만 누구보다도 잊지 못할 숨은 공신이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라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막강한 인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윈프리는 대권경쟁 초기인 작년 5월 초선 연방 상원의원이 내세울 만한 경력의 전부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지지를 선언했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 선거 때마다 정치권으로부터 지지선언 구애를 받아왔지만 예외 없이 거부해왔던 윈프리로선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윈프리는 오바마에 대한 단순 지지 차원을 넘어서 대중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 경선과정에 직접 오바마 지원 연설에 나서는 등 `킹 메이커'로 본격적인 활동을 벌였다.

윈프리가 모습을 드러내는 행사장에는 수만명의 지지자들이 참가, 자연스럽게 오바마의 세(勢)를 과시하는 셈이 됐다.

때문에 `오프라바마(오프라+오바마)'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오바마에 대한 윈프리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윈프리의 이 같은 오바마 지지활동은 민주당내 대권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 비해 전국적 지지도에서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오바마의 대권가도에 `날개'를 달아줬고, `오바마 돌풍'을 `태풍'으로 발전시키는 동력이 됐던 것으로 평가된다.

윈프리는 같은 여성인 힐러리 대신에 피부색이 같은 오바마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백인 여성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메릴랜드대학 크레그 가드웨이트, 티모시 무어 교수(경제학)는 윈프리가 오바마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민주당 경선과정에 오바마에게 100만표 이상을 몰아줬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가 승리한 뒤 겉으로 드러나는 윈프리의 지원은 눈에 띄게 뜸해지긴 했지만 윈프리는 지난 달 10일 시카고에서 오바마 선거자금 모금행사를 지원하는 등 음으로 양으로 계속해서 오바마의 당선을 도와왔다.

이에 따라 오바마의 당선은 윈프리가 거둔 또 하나의 승리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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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쟌나비 2008.11.06 18:10 신고

    미국에도 '같은 여자 밀어주지 흑인끼리 싸고 돈다'라고 말하는 무개념人이 있군요.


혼혈 눈으로 미국 경험 “인종 초월한 공동체 꿈”
경제위기 앞 초선상원 ‘다자주의 세계’ 지향


그는 ‘혼혈’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수많은 경계를 넘어선 인종·문화·정치·사회적 혼혈이다. 미국 최초의 코즈모폴리턴(세계주의자) 대통령이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이념에 상관없이, 미국 중심주의 사고를 버리지 못한 대통령과는 다른 첫 대통령이다.

“충분히 흑인적이지 않다.” “백인처럼 행동한다.” “충분히 미국적이지 않다.”

오바마를 괴롭혔던 공격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혼혈성이 오바마를 다인종 국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글로벌 시대를 이끌어 갈 21세기형 코즈모폴리턴 지도자로 성장시켰다.

아버지는 케냐 출신 흑인 유학생이고, 어머니는 캔자스 출신의 백인이다. 1961년 태어나 성장한 곳은 동서양이 만나는 하와이다. 여섯 살 때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서 아시아·이슬람 문명권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4년을 보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다문화적 배경에서 관용과 화합을 익혔다. 그리스도 연합교회를 다니는 개신교도지만, ‘버락’이라는 아랍어 이름을 갖게 됐다.

1. 마약까지 손댔던 방황

혼혈과 경계의 삶은 그를 괴롭혔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검은 피부 탓에 백화점에 가면 감시원이 오바마의 뒤를 따라다니며 감시했다. 피부색을 하얗게 바꾸려고 화학수술을 받은 흑인의 사진을 보고 충격도 받았다. 마약에까지 손을 대며 방황했다. “나는 여러 인종의 혈통과 문화를 물려받은 흑인의 눈으로 미국을 경험하게 됐다. 인종과 계층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 놓을 것인지 영원히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오바마는 자서전에 적었다. 26살 때, 아버지의 고향 케냐를 찾아 정서적 뿌리를 확인했다. 하지만 흑인 오바마는 “흑과 백의 두 세상에서 줄을 타는 법을 익혔다.”

‘버락’은 축복을 뜻했지만, 세상은 대신 역경을 안겼다. 아버지는 두 살 난 오바마의 곁을 떠나 하버드대로 유학을 간 뒤 케냐로 돌아가, 1982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오바마가 13살 때 어머니는 인류학 공부와 사회운동을 위해 다시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이후 오바마를 돌본 것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였다.

2. 공동체와 미래의 꿈을 키우다

시련은 그를 담금질했고, 흑백의 장벽과 경계를 뛰어넘게 만들었다. “흑인의 자존심이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질병의 만병통치약이라고 나팔을 불어대는 사람들은 믿을 게 못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또 그것은 오바마가 새로운 시대의 흑인 정치인이기에 가능했다. 오바마는 노골적인 인종차별의 시대만을 살지는 않았다. 마틴 루서 킹 목사나 제시 잭슨 목사와 같은 흑인 투사가 되도록 강요받지도 않았다.

오바마는 대신 증오를 껴안았다.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흑인으로) 바라본다 해도, 그런 깨달음은 닻을 내릴 곳을 찾지 못한 채 떠돌고 있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공동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더 큰 미국이라는 공동체, 흑인과 백인과 아시아인을 모두 포괄하는 공동체”를 떠올렸다.

그는 동부의 명문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한 뒤 1983년 시카고 흑인거주지역에서 도시빈민운동을 벌였다. 공동체 건설의 출발이었다. 오바마의 ‘아메리칸 드림’도 같이 시작됐다. 다문화적 성장 배경과 함께,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지적·문화적 역량을 다졌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법과 정치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판단에 하버드 법대 대학원에 1988년 진학했다. 1991년 ‘하버드 로 리뷰’의 첫 흑인 편집장을 맡으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1992년 “나의 최고의 친구이자, 가족의 바위와 같은 존재”인 변호사 미셸 로빈슨과 결혼한다. 1996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으로 정치에 첫발을 디딘 그는 2004년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지난해 2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했고, 노예제로 얼룩졌던 미국에서 232년 만에 첫 흑인 대통령에 오르는 꿈의 대장정에 올랐다. 드디어 지난 6월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민주당 경선에 승리하면서 미국 첫 흑인 대통령에 다가섰다.

3. 투사가 아니라 통합으로

정치인 오바마는 증오와 분열, 대립의 정치를 뛰어넘었다. “나는 인종적 성적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성, 일반적으로 피해의식에만 기반한 정치행위를 배격한다.”

그의 공동체 건설 꿈은 통합의 정치로 이어졌다. 오바마가 새긴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은 서로 다르지만 하나로 합쳐진 통합의 꿈이었다. 오바마가 ‘하나의 미국’, 흑인과 백인,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나뉜 것이 아닌 ‘하나의 미국’을 강조한 배경이다. 희망과 통합의 정치, 그 세상으로의 변화는 이후 정치인 오바마의 최대 슬로건이었다.

4. 21세기 코즈모폴리턴 지도자

“아메리카는 이들의 꿈을 모두 실현시키고도 남을 만큼 넓고 크다.” 오바마는 중남미 이민자 가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미국이라는 닫힌 경계를 넘어 세계를 보듬는 21세기 지도자의 탈경계적 가치관이다.

그가 배운 통합의 정치는 미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간다. 그는 대결과 분열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 외교와 동맹을 내세운다. “‘악의 축’ 지도자와도 만나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의 당선에 전세계가 환호하는 까닭이다. 그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했고, 철군을 주장했다. “명확한 논리적 근거와 국제사회의 강력한 지지 없이 이라크를 침공한다면 중동의 타오르는 불길에 부채질을 하는 꼴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는 미국의 우월주의와 일방주의가 아니라, 다양한 가치를 포용하는 다원적 세계질서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 금융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붕괴, 미국의 추락은 오바마에게 이런 시대정신을 절실히 깨닫게 만드는 기회였다. 오바마는 4일 당선 연설에서도 “진정한 미국의 힘은 군사력과 부의 규모가 아니라, 영구적인 이상이다”라고 강조했다.

47살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직책의 하나에 오른 오바마. 그 앞에는 수많은 난제가 놓여 있다. 무엇보다 파탄난 미국과 세계의 경제를 회생시키고, 시장과 자본의 폭주가 빚은 상흔을 치료해야 한다. 그가 진정으로 미국과 세계의 분열을 아우르는 통합의 지도자, 21세기 세계적 지도자가 될지 다시 그 경계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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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미셸 오바마, 딸 말리아, 사샤, 오바마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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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유력해지고 있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어떤 인물일까요,

오바마 후보가 걸어온 길을 정리했습니다.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1961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 주니어'입니다.

케냐 출신 유학생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흑백 혼혈인입니다.

오바마 후보가 두 살 되던 때 아버지가 하버드대 박사과정에 진학하기 위해 떠나면서 부모가 이혼했습니다.

그 후 어머니가 인도네시아 출신 유학생과 재혼한 뒤, 새 아버지를 따라 6살 때부터 4년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생활하다 하와이로 돌아왔습니다.

오바마 후보는 하와이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LA 옥시덴털 대학을 거쳐 뉴욕의 콜럼비아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뒤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습니다.

인종과 문화를 넘나드는 성장과정 때문에 오바마 후보는 스스로를 '인류의 복합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버드 로스쿨을 우등으로 졸업한 뒤 시카고에서 변호사로 일하면서, 차별대우 관련 소송과 유권자 등록 운동을 전개하는 시민단체의 대표를 맡기도 했습니다.

이어 1997년부터 2004년까지 일리노이주 주의회 상원의원에 3번 당선됐습니다.

2000년 미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는 낙선하는 좌절을 맛봤지만 2004년엔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습니다.

대권 출마설이 나돌던 2007년 2월, 링컨 대통령이 남북단결을 호소했던 곳에서 대권 도전을 선언했습니다.

당내 경선에서 변화를 화두로 던진 오바마는 당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유력 정당의 대권 후보가 됐습니다.

오바마는 약자에게는 부드럽고 강자에게는 꼿꼿하다거나, 또는 출세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철한 인간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편모 슬하에서 자란 오바마가 결코 유약한 인물은 아니라는 점은 평가가 일치합니다.

특히 케냐 출신으로는 첫 하버드 박사인 아버지와 관련해서, 성장기에는 늘 아버지보다 잘 되려고 노력했다고 고백할 정도로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버드 로스쿨 재학 시절엔 엘리트 코스인 대법관의 판사 시보직을 거절하고 시카고로 돌아가 자원봉사활동을 하다가 선출직에 진출하겠다고 밝힐 정도로 현실주의적이고 실용적인 면모를 보였습니다.


풀네임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로 1961년 8월 하와이에서 케냐 출신 흑인 아버지와 미국 캔자스 출신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오바마가 두 살때 부모님은 이혼했고 이후 어머니는 인도네시아 사람과 재혼해 4년동안 인도네시아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모친의 두 번째 결혼도 실패로 돌아가 다시 하와이로 돌아온 오바마는 이 때부터 외조부모의 보살핌을 받기 시작한다.

하와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LA에 위치한 옥시덴탈大에 입학했으며, 이후 콜롬비아 대학으로 편입해 정치학을 전공했다.

콜롬비아大 졸업 후 시카고로 돌아가 비영리 빈민구제사업에 뛰어들었던 오바마는 이후 하버드大 로스쿨에 진학했다. 로스쿨 재학 시절 학회지인 '하버드 로 리뷰'의 흑인 최초 편집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한 로스쿨 재학 시절 한 시카고 법률회사에서 연수 중 지금의 부인 미셸 오바마를 만나 결혼에 성공한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오바마는 시카고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시카고大 로스쿨에서 헌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1996년 일리노이주 시카고 지역구의 주상원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오바마의 정치적 행보가 시작된다. 이후 오바마는 2004년 일리노이주 미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그리고 2007년 2월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 경선에 출마한 오바마는 올해 8월 28일 막강한 라이벌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박빙의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두고 대선후보로 공식 지명됐다.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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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두바이에 위치한 두바이몰(Dubai Mall) 내부 수족관 앞에서 관광객들이 여가를 즐기고 있다.

메가쇼핑센터인 두바이몰은 세계적인 경기둔화 가운데 사업 성공에 대한 의구심을 뒤로 하고 개관되었다.

이 쇼핑몰은 1,200개의 상점 및 1,000만 리터 규모의 수족관, 올림픽 경기장 규모의 아이스 링크를 보유한 세계 최대의 쇼핑몰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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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당선연설 전문 " Yes We can. "

미국이 모든 것이 가능한 국가라는 것에 대해 회의를 갖고 있는 분이 있다면 우리는 건국 선조들이 그것을 가능하다는 것을 오늘 우리는 보여줬습니다.


오늘밤이 바로 그 날입니다.

그 어느때보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석했습니다. 사람들은 투표 소에서 세시간이고 네시간이고 기다리며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한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이번에는 다를 것이란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바로 변화 입니다.

선거에 참여한 공화당원, 민주당원, 정당을 떠나서 동성애자이던 양성애자이던 미국은 전세계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우리는 개개인이 뭉친 나라가 아니고 영원히 미 합주국 일 것이라고. 미국인들이 바로 미국의 힘입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우리 미국의 다양성과 가능성에 회의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일심을 제기하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던 것들의 답입니다.
오늘은 바로 미국인들이 변화를 받아들인 사실입니다.

오늘 저녁 매케인 상원의원으로부터 매우 감사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분은 저보다 어렵게 더 긴 싸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상상조차 할수없는 싸움을 그분이 하셨습니다. 자신의 사리사욕보다 미 국을 걱정하는 그분의 노력은 애국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이기심을 없애고 그들이 함께 나아갈 것입니다.
매케인 후 보와 페일린과 함께 우리가 약속한 것을 이뤄나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협력해서 변화해서 나아가기를 기대합니다.

우선 감사드리는 말씀을 전합니다.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미국의 차기 부통령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오늘밤 이자리에 있기까지는 10년동안 가장 큰 친구가 없었으면 불가능했 을 것입니다.
저와 함께 유세를 함께 한 죠 바이든 부통령 후보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차기 령부인인 미셀 오바마를 소개합니다.
지난 16년간 변함없는 사랑과 지지를 보여준 미셀 오바마가 없었으면 저는 이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가족과 백악관에 갈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아빠가 사랑한다. 새로운 강아지 사줄께, 백악관에 데리고 들어가자.

안타깝게도 저의 외할머니는 지금 이자리에 함께 있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할머니가 저를 지켜주고 있음을 압니다.
저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가족들과 더불어 할머니가 그립습니다. 그 분에게 진 빚과 은혜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모든 가족들의 지지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 선거운동을 담당한 데이빗 플러프씨는 겉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항상 큰 힘이 됐습니다. 많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데이빗은 제 최고의 전략가 입니다.
항상 저와 함께 있었고, 제가 상상할 수 없 는 최고의 드림팀을 구성해 유세를 이끌었습니다. 저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감사드리고 싶은 분은 국민여러분 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저는 많은 과정을 거쳐오며 승리할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선거자금도 부족했고, 선거유세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찰스턴에서 작은 돈을 모아서 작은 유세를 시작했고, 그분들의 힘이 저에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예전에 꿈꾸었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이제야 탄생했습니 다.
여러분이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 저를 지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처한 국가 현안이 산적하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희는 지금 닥친 도전을 휼륭히 이겨내야 더 나은 미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금융위기도 극복해야 합니다.
지금 이시간에도 아프카니스탄과 이 라크서는 상주하는 미군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주택 대출금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몰라 국내에 잠 못이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많은 학교와 교육시설을 지어야 합니다.

우리는 과제가 많습니다.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해결하고, 목표점에 도달할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려운 것도 많고 실수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정책에 대해 여러분의 반대의 목소리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 여러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동의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나라를 새 롭게 하고 재탄생하는데 최대한 반영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굳은 살 박힌 손으로 이 나라를 재건할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승리가 변화를 시작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새로운 미래와 변화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새로운 애국심과 책임감, 여러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금융위기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 있다면, 금융체계를 바로잡지 않으면 국가 가 부강해 질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전의 당파적인 싸움으로 시간낭비를 할 일은 없을 것 입니다.

우리는 자유와 국가의 단합을 믿습니다.
이런 신념 아래 우리는 한 데 모였습니 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링컨 대통령 시절에는 더 분열된 국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애정 과 단결은 그 어떤것도 깰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의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국가와 의회, 전세계는 미국의 현안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세계를 분열시키려는 사람들을 폐배시킬 것이고, 평화와 안정을 구하는 사람들을 지지 합니다.

미국이 앞으로 더욱 빛나는 국가가 되게 노력하는 것은 부와 돈이 아닌 기회와 민주주의 우리땅이라는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미국의 정신입니다.

미국은 변화할 수 있습니다.
오늘 달성 하지 못한 것은 내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오늘 애틀란테에서 저에게 표를 던져준 여성이 있습니다.
그 분에게 특별한 점 이 있다면, 오랫동안 미국에서 노예생활을 한 선조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동안 흑인이라는 이유로 투표를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투표를 했고, 그들의 고통과 노력이 바로 이자리에서 보답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변화를 이뤄낼 수 있습니다.
여성과 흑인의 목소리는 이번 대선에서 중 요한 몫을 해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새로운 일자리와 목표를 갖고 달성해 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 곁에서 그 변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볼 것입니다.

몽고메리와 버몬트 등 모든 곳에 있는 지지자들이 한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
우리는 해낼 수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듯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불가능해보이는 모든 일들이 한 표를 통해 이뤄질 것입니다. 미국이 변할 수 있고 암울한 과거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미국은 많은 변화를 이뤄왔습니다.
그리고 많은 자유를 얻었고 기회가 있는 곳입니 다.

이자리에서 묻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음 세기까지 살 수 잇다면 그들이 어떤 변화를 보게될까요?
오늘 바로 이자리가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일자리를 만들고 아이 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것입니다.
번영과 자유, 진실을 이뤄낼 것입니다.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우리는 극복할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신의 은총이 미국에 있기를…

이하 영어 전문

If there is anyone out there who still doubts that America is a place where all things are possible; who still wonders if the dream of our founders is alive in our time; who still questions the power of our democracy, tonight is your answer.

It’s the answer told by lines that stretched around schools and churches in numbers this nation has never seen; by people who waited three hours and four hours, many for the very first time in their lives, because they believed that this time must be different; that their voice could be that difference.

It’s the answer spoken by young and old, rich and poor, Democrat and Republican, black, white, Latino, Asian, Native American, gay, straight, disabled and not disabled – Americans who sent a message to the world that we have never been a collection of Red States and Blue States: we are, and always will be,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It’s the answer that led those who have been told for so long by so many to be cynical, and fearful, and doubtful of what we can achieve to put their hands on the arc of history and bend it once more toward the hope of a better day.

It’s been a long time coming, but tonight, because of what we did on this day, in this election, at this defining moment, change has come to America.

I just received a very gracious call from Senator McCain. He fought long and hard in this campaign, and he’s fought even longer and harder for the country he loves. He has endured sacrifices for America that most of us cannot begin to imagine, and we are better off for the service rendered by this brave and selfless leader. I congratulate him and Governor Palin for all they have achieved, and I look forward to working with them to renew this nation’s promise in the months ahead.

I want to thank my partner in this journey, a man who campaigned from his heart and spoke for the men and women he grew up with on the streets of Scranton and rode with on that train home to Delaware, the Vice President-elect of the United States, Joe Biden.

I would not be standing here tonight without the unyielding support of my best friend for the last sixteen years, the rock of our family and the love of my life, our nation’s next First Lady, Michelle Obama. Sasha and Malia, I love you both so much, and you have earned the new puppy that’s coming with us to the White House. And while she’s no longer with us, I know my grandmother is watching, along with the family that made me who I am. I miss them tonight, and know that my debt to them is beyond measure.

To my campaign manager David Plouffe, my chief strategist David Axelrod, and the best campaign team ever assembled in the history of politics – you made this happen, and I am forever grateful for what you’ve sacrificed to get it done.

But above all, I will never forget who this victory truly belongs to – it belongs to you.

I was never the likeliest candidate for this office. We didn’t start with much money or many endorsements. Our campaign was not hatched in the halls of Washington – it began in the backyards of Des Moines and the living rooms of Concord and the front porches of Charleston.

It was built by working men and women who dug into what little savings they had to give five dollars and ten dollars and twenty dollars to this cause. It grew strength from the young people who rejected the myth of their generation’s apathy; who left their homes and their families for jobs that offered little pay and less sleep; from the not-so-young people who braved the bitter cold and scorching heat to knock on the doors of perfect strangers; from the millions of Americans who volunteered, and organized, and proved that more than two centuries later, a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and for the people has not perished from this Earth. This is your victory.

I know you didn’t do this just to win an election and I know you didn’t do it for me. You did it because you understand the enormity of the task that lies ahead. For even as we celebrate tonight, we know the challenges that tomorrow will bring are the greatest of our lifetime – two wars, a planet in peril, the worst financial crisis in a century. Even as we stand here tonight, we know there are brave Americans waking up in the deserts of Iraq and the mountains of Afghanistan to risk their lives for us. There are mothers and fathers who will lie awake after their children fall asleep and wonder how they’ll make the mortgage, or pay their doctor’s bills, or save enough for college. There is new energy to harness and new jobs to be created; new schools to build and threats to meet and alliances to repair.

The road ahead will be long. Our climb will be steep. We may not get there in one year or even one term, but America – I have never been more hopeful than I am tonight that we will get there. I promise you – we as a people will get there.

There will be setbacks and false starts. There are many who won’t agree with every decision or policy I make as President, and we know that government can’t solve every problem. But I will always be honest with you about the challenges we face. I will listen to you, especially when we disagree. And above all, I will ask you join in the work of remaking this nation the only way it’s been done in America for two-hundred and twenty-one years – block by block, brick by brick, calloused hand by calloused hand.

What began twenty-one months ago in the depths of winter must not end on this autumn night. This victory alone is not the change we seek – it is only the chance for us to make that change. And that cannot happen if we go back to the way things were. It cannot happen without you.

So let us summon a new spirit of patriotism; of service and responsibility where each of us resolves to pitch in and work harder and look after not only ourselves, but each other. Let us remember that if this financial crisis taught us anything, it’s that we cannot have a thriving Wall Street while Main Street suffers – in this country, we rise or fall as one nation; as one people.

Let us resist the temptation to fall back on the same partisanship and pettiness and immaturity that has poisoned our politics for so long. Let us remember that it was a man from this state who first carried the banner of the Republican Party to the White House – a party founded on the values of self-reliance, individual liberty, and national unity. Those are values we all share, and while the Democratic Party has won a great victory tonight, we do so with a measure of humility and determination to heal the divides that have held back our progress. As Lincoln said to a nation far more divided than ours, “We are not enemies, but friends…though passion may have strained it must not break our bonds of affection.” And to those Americans whose support I have yet to earn – I may not have won your vote, but I hear your voices, I need your help, and I will be your President too.

And to all those watching tonight from beyond our shores, from parliaments and palaces to those who are huddled around radios in the forgotten corners of our world – our stories are singular, but our destiny is shared, and a new dawn of American leadership is at hand. To those who would tear this world down – we will defeat you. To those who seek peace and security – we support you. And to all those who have wondered if America’s beacon still burns as bright – tonight we proved once more that the true strength of our nation comes not from our the might of our arms or the scale of our wealth, but from the enduring power of our ideals: democracy, liberty, opportunity, and unyielding hope.

For that is the true genius of America – that America can change. Our union can be perfected. And what we have already achieved gives us hope for what we can and must achieve tomorrow.

This election had many firsts and many stories that will be told for generations. But one that’s on my mind tonight is about a woman who cast her ballot in Atlanta. She’s a lot like the millions of others who stood in line to make their voice heard in this election except for one thing – Ann Nixon Cooper is 106 years old.

She was born just a generation past slavery; a time when there were no cars on the road or planes in the sky; when someone like her couldn’t vote for two reasons – because she was a woman and because of the color of her skin.

And tonight, I think about all that she’s seen throughout her century in America – the heartache and the hope; the struggle and the progress; the times we were told that we can’t, and the people who pressed on with that American creed: Yes we can.

At a time when women’s voices were silenced and their hopes dismissed, she lived to see them stand up and speak out and reach for the ballot. Yes we can.

When there was despair in the dust bowl and depression across the land, she saw a nation conquer fear itself with a New Deal, new jobs and a new sense of common purpose. Yes we can.

When the bombs fell on our harbor and tyranny threatened the world, she was there to witness a generation rise to greatness and a democracy was saved. Yes we can.

She was there for the buses in Montgomery, the hoses in Birmingham, a bridge in Selma, and a preacher from Atlanta who told a people that “We Shall Overcome.” Yes we can.

A man touched down on the moon, a wall came down in Berlin, a world was connected by our own science and imagination. And this year, in this election, she touched her finger to a screen, and cast her vote, because after 106 years in America, through the best of times and the darkest of hours, she knows how America can change. Yes we can.

America, we have come so far. We have seen so much. But there is so much more to do. So tonight, let us ask ourselves – if our children should live to see the next century; if my daughters should be so lucky to live as long as Ann Nixon Cooper, what change will they see? What progress will we have made?

This is our chance to answer that call. This is our moment. This is our time – to put our people back to work and open doors of opportunity for our kids; to restore prosperity and promote the cause of peace; to reclaim the American Dream and reaffirm that fundamental truth – that out of many, we are one; that while we breathe, we hope, and where we are met with cynicism, and doubt, and those who tell us that we can’t, we will respond with that timeless creed that sums up the spirit of a people:

Yes We Can. Thank you, God bless you, and may God Bless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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