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부연 설명과 번역이 좋은 영상이나 연설 뒷부분이 생략 된 것이 아쉽다.
나치 독일에서는 영화의 상영이 금지됐으나, 히틀러는 두번이나 영화를 봤다고 한다.



영화의 최대 장면이라고 알려져 있는 연설 장면이 모두 나오는 동영상.



---------------------------------------------------------------------------------------------------


아래는 연설 내용

(찰리 채플린이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제대로 담겨있는 번역은 아닌 것 같아 아쉽다.)


미안합니다. 나는 황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다스리고도 싶지 않습니다. 가능한다면 모든 사람을 돕고 싶습니다. 유대인, 이방인, 흑인, 백인, 그 모든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남의 불행을 빌기 보다 행복하기를 빌고 싶습니다. 우린 남을 미워하거나 경멸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 사람들에게 줄 양식과 대지를 주고 있습니다. 그 인생을 자유롭게 살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 방법을 잃고 말았습니다. 탐욕이 인간의 영혼을 중독시키고 세계를 증오의 장벽으로 가로막았는가 하면 불행과 죽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급속도로 산업 발전을 이루었으나 우린 자신에게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도운 기계는 우리에게 결핍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지식은 우리를 냉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생각은 많이 하면서도 가슴으로 느끼는 것을 별로 없습니다. 기계보다는 인권이 중요하고 지식보다는 친절과 관용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더욱 불행해질 것입니다. 비행기와 라디오 방송은 우리를 가깝게 하였습니다. 이런 발명은 전 지구인이 화해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내 목소리가 세계 온 곳에 들리겠죠. 그리고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에게도요. 그 분들에게 전합니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이 불행은 발전을 두려워 하는 자들에 의해 벌어집니다. 이제 증오와 독재자는 사라지고 그들이 빼앗은 것은 다시 올 것입니다. 인간이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칠 때까지는 그것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군인들이여, 그대를 경멸하고 깔보고 그대들의 모든 삶을 통제하고 짐승처럼 다루고 조련하여 전쟁에 쓰는 저 자들에게 복속하지 마시오. 이런 자들, 기계의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굴복하지 마시오. 여러분은 짐승도 아니고 기계도 아닌 사람입니다. 저 자들만이 증오합니다. 군인들이여 싸웁시다. 누가복음 17장에는 '주의 왕국은 인간에게 있으니'라고 써져있습니다. 저 극악무도한 자들의 세상이 아니라 여러분의 세상이란 말이오. 여러분은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기계도 만들 수 있고 행복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힘으로 민주주의 아래 하나가 됩시다.


모두에게 일을 할 기회를, 젊은이들에게 새 미래를, 노인에게 복지 시설을 나눠줍시다. 물론 저 극악무도한 자들도 그런 것을 약속했지만 그들은 평생 지키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만 가능성을 줍니다. 이제 우린 그 공약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됩니다. 온 세계를 해방시키고 나라의 경계를 없애며 탐욕, 증오와 배척을 없애야 됩니다. 이성이 다스리는 나라, 기계를 통해 행복이 전해지는 나라를 만들어야 됩니다.


군인들이여, 민주주의의 이름 아래 하나가 됩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쏘우' 시리즈의 제임스 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2013년 개봉작 '컨저링'.

 

감독에 대한 기대, 또 지금까지의 헐리우드 감성과는 조금 다른

동양적 감성이 섞인 공포 연출로 엄청난 흥행몰이를 한 컨저링.

(감독이 말레이시아 태생)

 

이 컨저링은 현재 공포물로는 드물게도 3억 달러가 넘는 흥행수입을 기록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외화 공포 역사상 가장 많은 흥행을 하고 있다.

(벌써 속편의 준비가 끝났을 정도)

 

그리고 이러한 예상 밖의 흥행요소에는 분명 헐리우드의

공포영화 마케팅 중 다음의 기본요소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영화 컨저링은 과연 얼마만큼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을까?

 

컨저링은 크게 다음의 사실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애나벨 인형의 존재와 그에 얽힌 괴담"

 

"1971년,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방 로드아일랜드 주의

한 집으로 이사 간 페론 가족이 심령현상을 겪었다는 주장"

 

"심령 탐정(?)인 워렌 부부가 페론가를 방문했던 일"


<실제 워렌 부부>

 

첫째로, 애나벨 인형의 경우 다음과 같은 괴담을 가지고 있다.

 

"1970년, 간호대생으로 서로 룸메이트였던 도나와 앤지에게 있었던 일.

 

어느 날, 도나의 엄마가 골동품점에서 산

'누더기 앤(그림책 시리즈의 캐릭터)' 인형을 선물한다. 

 

그런데 이 인형이 집에 오고서부터 괴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누더기 앤 인형이 수시로 집안 다른 장소에서 발견되는가 하면

인형의 손부분에 피가 묻어있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어린아이가 쓴듯한

'도와주세요' 글자가 적힌 양피지 종이가 발견되던 것.

 

이에 그녀들은 자신들의 아파트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과거에 애나벨이라는 이름의 7살짜리 소녀가

이곳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알아낸 도나와 앤지는 곧 애나벨에게

연민과 동정심을 느껴 애나벨이 씌운 인형 누더기 앤과 함께 살기로 한다.

 

한편 애나벨 인형이 불길하다며 없애라고 경고하던 친구 루는

가위에 눌려 애나벨에게 목을 졸리는가 하면

가슴팍에 할퀸 자국이 생기기도 한다.

 

결국, 상황이 이렇자 심령 탐정인 워렌부부가 나서게 됐고

그렇게 애나벨 인형은 워렌부부의 집으로 옮겨진다.

 

허나 워렌부부의 집으로 옮겨진 뒤에도 애나벨 인형은 그곳에서도

동일한 현상을 보이는가 하면 공중에 뜨기까지 해,

하릴없이 유리 케이스 안에 봉인되는 처지가 되고 만다."

 

위와 같은 이야기의 애나벨 인형, 그러나 여러 괴담들이 뒤섞인 듯한

이 애나벨 인형 이야기는 실제론 3자에 의해 객관적으로 분석되거나

증명이 된 적은 없으며 어디까지나 워렌 부부의 주장에 기반을 두고 있을 뿐이다.

 

<실제 애나벨 인형> 

 

둘째로, 페론 가족이 겪었다는 심령현상.

 

페론 가족은 1971년부터 1980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9명의 영혼들과 함께 살았다고 주장한다.

 

이들 영혼은 모두 해를 끼치지 않는 영혼이었으나,

밧세바라는 영혼만이 화를 내며 그들을 괴롭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른 아침 침대가 들려지거나 집안에서 악취가 나는가 하면,

1974년엔 엄마가 귀신에 씌워 다른 세상의 언어를 구사하며

의자에 앉은 채 집안을 날아다녔다고 한다.

(그 외에 컨저링에서 그려진 것들은 모두 추가적인 연출)

 

그러나 이 역시 실제론 3자에 의해 객관적으로 분석되거나 증명된 적이 없다.

 

이번 년도에 가족의 경험담을 책으로 펴낸 페론가 첫째 딸의 주장과

워렌 부부의 보고서 속 주장만이 해당 이야기의 온전한 증거라 할 수 있다.

(페론가 외에 그들의 집에 살던 이들은 모두 심령현상을 겪은 적이 없다고 함)

 

물론 이러한 주장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이전에,

미국에서는 과거에서부터 이른바 '흉가 콘텐츠'가 하나의 비즈니스로 자리 잡아

그러한 장소들이 관광지(때론 요금을 받기도 하는)가 된다든지

아니면 전 집주인이 실제 경험담이라며 책 또는 영화들과

계약을 맺어왔다는 사실 또한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실제 페론가와 문제(?)의 집>

 

<실제 페론가의 아이들과 컨저링 배역들과의 합동사진>

  

또 심령 탐정이라는 워렌 부부의 경우에도 문제가 많기는 마찬가지.

 

제2차 세계대전 해군 참전병이었던 에드와 투시 능력을 지녔다고 주장하는 아내 로렌,

이들 부부로 구성된 이른바 워렌 심령 탐정단은 심령현상이

범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던 미국 내에선 굉장히 저명한 심령 탐정이었다.

(로렌 워렌은 자신의 투시력으로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인 '빅풋'을 봤다고도 주장)

 

하지만 어디까지나 심령 옹호론자들이나 그러한 것들을 유희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한해

그랬을 뿐, 일반 대중이나 회의론자들에게 그들 부부는 악명높은 탐정단이기도 했다.

 

그 이유는 워렌 부부들의 대표적인 심령 보고들이 비록 유명세를 타며

책과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실상 그 속내는 모두 과장이거나 사기로 밝혀졌기 때문.

 

(아미타빌 호러: 전에 살던 가족의 장남이 귀신에 씌어 일가족을 몰살했다고 하나

실은 체포 당시 장남이 '집이 나에게 살인을 시켰다'라며 면책성 발언을 했던 것으로,

이후 장남은 귀신같은 건 없었으며 당시 정신적으로 불안했던 그가

아버지와의 다툼 끝에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음을 인정,

물론 그 이전에 해당 집에서 살던 여배우 크리스틴 벨-육백만불 사나이,

헐크, 배틀스타 갤럭티카 등에 출연-은 전혀 심령현상을 겪지 않았으며

이후 세대주가 된 이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악마의 살인: 1981년, 임대주를 과실치사로 살해한 남자가

자신은 악마에게 홀려 살인을 저지른 것이라며 법정에서 호소,

이러한 배경에는, 이 남자가 살인을 저지르기 전 악마를 보고

기이한 행동을 했으며 워렌 부부가 의뢰를 받고서 방문했을 때

악마에 쓰였다고 진단 내렸기 때문,

물론 피고 측의 이러한 주장은 법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유죄 판결이 남,

한편 워렌 부부는 해당 이야기가 화제를 끌자 언론에 확산시키며

이 이야기를 책과 텔레비전 영화로 만드는 데에 협조할 것을 계약,

이후 피고 측 가족이 당시 정신병을 앓던 피고를 워렌 부부가 이용해먹었다며 비난

 

늑대인간 악마: 1983년, 자신이 늑대라는 망상에 빠져 사람들을 물던 남자가 있었는데

워렌 부부는 그 남자가 늑대 인간 악마에 씌웠었다며 이후 엑소시즘으로 그 악마를 쫓아냈다고 주장)

  

셋째로, 워렌 부부의 페론가 방문 사실.

 

컨저링에서는 워렌 부부가 마치 영화 엑소시트의 신부처럼 귀신과 싸운 것으로 그려졌지만,

실제론 워렌 부부는 페론가에 단 한 번 방문했을 뿐이다.

 

당시 페론 부부의 요청을 받고 워렌 부부가 집을 방문하긴 했는데

여기서 워렌 부부는 현관 언저리서 엑소시즘 의식을 하더니 악마를 내쫓았다며 돌아갔다는 것.

(여담으로, 에드 워렌과 공동으로 저술을 했던 이들 중 일부가

'지시'에 따라 적절하게 이야기를 꾸며내 첨가하기도 했다고 고백)


  

이와 같이 컨저링, 그리고 워렌 부부와 관련한

환상 이면에는 분명 실망스러운 진실도 함께 존재한다.

(국내 흉가 괴담의 진실이 실망스럽듯이, 미국의 경우에도

흉가로 불려진 곳에선 여전히 사람들이 아무 탈 없이 살고 있음)

 

따라서 우리는 이를 통해 최소한 다음의 두 가지를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헐리우드의 '실화를 기반으로 했습니다' 문구를 너무 신뢰하지는 말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공포영화를 볼 때 그 환상 너머는 들여다 보지 말 것. 


 

* 참조문헌: 위키백과, warrens.net, Snpoes, USA Today, Center for Inquiry 

Written by The Wonder Omnibus Medea

[출처: http://blog.naver.com/medeiason/120199777582]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음모론에 대하여

 

세계를 움직이는 배후의 힘

 

<컨스피러시>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현실을 보노라면 ‘진리’는 고사하고 ‘진실’조차 저 너머의 이야기로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 세계의 파수꾼이 되려는 한 사나이가 진실 게임에 뛰어 듭니다. 그를 통해 영화 <컨스피러시>는 조크처럼 부담 없이 우리에게 하나의 퍼즐을 던집니다. 다름 아닌, 세계지배 음모론! 세계의 배후에 어떤 신비한 미지의 강력한 조직이 있어서 인류를 지배하려 한다는 흥미로운 주장이죠. <컨스피러시>는 일반인들의 눈에 그저 황당무계하게만 보이는 이 음모론을 다룬 영화입니다. 


 

세상은 과연 우연히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택시 기사 제리(멜 깁슨)는 이 물음에 단연코 "노(No)!"라고 외치는 인물. 읽지도 않으면서 샐린저의 소설 『호밀 밭의 파수꾼』을 끊임없이 사들이는 괴짜인 그는 택시에 탄 손님들에게 엉뚱한 얘기들을 떠벌려 당황하게 만들곤 하죠.

 

케네디의 암살범은 따로 있다, 바티칸의 비리는 밝혀져야 한다, 부시가 말하는 신세계 질서에는 노리는 게 있다, 그는 프리메이슨 33도(최고위) 멤버다, 블랙 헬리콥터가 쫙 깔려서 감시하고 있다, 인간에게 앞으로 칩이 삽입될 것이다, 등등.

 

그의 머릿속은 온통 ‘음모’에 대한 것뿐이죠. 도시 한복판에서 수도관이 터지는 사건에서도 그는 ‘음모’의 냄새를 맡습니다.

  

영화 속에서 제리가 내뱉는 말들 중에는 사실 그냥 웃어 넘겨버릴 수 없는 문제들,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한 뼈 있는 얘기들이 있긴 합니다.

 

케네디의 암살에 대해서는 일찍이 CIA, 마피아 관련설이 있어왔고, 음모론자들은 소위 ‘그림자 정부’의 소행으로 보고 있지요. 하지만 다른 설에 의하면 케네디는 오히려 그림자 정부의 하나로 여겨지는 일루미나티의 멤버였으며 바티칸의 비리를 폭로하려다 제수이트에 의해 제거되었다고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일루미나티와 제수이트회는 앙숙이기 때문이죠.

 

또 음모론자들은 부시(아버지 부시)가 프리메이슨단의 33도 멤버라고 말하고 있지만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사실, 미국 역대 대통령들 중 많은 이들이 메이슨이었지요. 프리메이슨단의 공식 발표에 의하면 와싱턴에서 포드에 이르기까지 15명의 대통령들이 메이슨이었습니다. 물론 최근의 대통령들에 대해서는 아직 언급이 없구요. 하지만 음모론자들은 부시와 클린턴을 메이슨으로 추측하고 있지요.

 

제리는 또 블랙헬리콥터, 생체칩, 지진무기 등에 대해서도 말하는데, 이것들은 모두 음모론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들입니다. 아무런 표식도 없이 어두운 밤에 마치 감시라도 하는 듯 저공비행하며 도시 위를 나는 정체불명의 헬리콥터들이 미국에서는 종종 목격된다고 하죠. 

 

영화에서 제리는 이 블랙헬리콥터들에 의해 쫓겨 다니는 것으로 나오지요. 자세히 보면 그를 쫓는 사람들이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소속 불명의 에이전트들인 맨인블랙이죠. 블랙헬리콥터와 함께 종종 목격된다고 하지요.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도 아직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황당했던 것은 아마 대통령 암살 시도에 이용된 지진 무기일 것입니다. 아무리 영화지만 너무했다고요? 하지만 이것도 근거가 충분히 있는 얘기입니다. 연구가들에 의하면 스칼라파(波)라는 고주파를 이용해 지각과 멘틀에 공명을 일으킴으로써 지상의 특정 지역에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하프 프로젝트’라는 이름하에 스칼라파를 이용한 에너지 전송 실험이 비밀리에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지상에 자칫 대재앙을 불러 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실험이라고 하지요.

 

제리가 빠져있는 이런 식의 음모론이 처음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엽입니다. 그 기원을 더듬어 올라가면 우리는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와 만나게 되죠. 음모론이 처음 나오기 시작한 것은 툴레회라는 독일의 국수주의 오컬트 그룹으로부터입니다. 그들은 ‘시온의정서’라는 괴문서를 근거로 유대인들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하였죠.

 

하지만 오컬트 음모론의 이론적 토대를 체계적으로 마련한 사람은 영국의 여류 저술가, 네스타 웹스터입니다. 그녀는 1920년대에 유대인의 세계지배 음모를 다룬 시리즈물을 출판해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녀는 프리메이슨단과 같은 신비단체의 심벌들 중에 유대사상과 관련된 것들이 많이 나오는 것에 착안하여, 신비단체와 유대 신디케이트의 세계 지배 음모설을 주장하게 되지요.

 

그러나 그녀 역시 반유대사상이라는 개인적 편견에 바탕 하여 이론을 전개시키고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논리성이 많이 결여돼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저술들은 유대인에 대한 의혹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고, 세간에 흉흉한 소문들이 나돌게 되지요. 그리고 급기야 이 어두운 민심의 시류를 탄 나치가 음모론을 악용해 유대인 학살의 빌미로 삼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니까 인류 역사의 최대 비극, 홀로코스트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 바로 음모론이었던 것이죠.

 

 

2차 대전 후 한동안 뜸하던 음모론의 망령이 오늘날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일부 극단적인 개신교의 분파들에 의해 약간 변형된 형태로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죠. 애초에 유대인을 주 타깃으로 하던 음모론의 총구가 이번에는 뉴에이지 조직들에게로 돌려지고 있지요.

 

그들은 기독교 이외의 모든 영적인 조직과 사상 체계들을 사탄의 활동으로 규정하며, 악마의 세력들이 지구를 지배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하지요. 소위 그 ‘어둠의 세력’에는 서양과 동양의 모든 영적인 단체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심지어 불교조차 그 안에 포함됩니다. 어쩌면 가장 강력한 사탄의 조직이죠. 왜냐하면 불교도들이 미래에 오실 부처님으로 숭배하는 미륵불을 그들은 그리스도와 대항하기 위해 나타날 '적그리스도'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기저기서 끌어다 모은 온갖 찌라시 정보들을 짜집기해서 그럴듯한 주장을 펼칩니다. 그들의 끈질긴 주장은 오늘날 기독교 문화권인 서구에서뿐만 아니라 동양에서까지 다수의 대중들에게 먹혀들기 시작하고 있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 것이죠.

  

음모론에서는 프리메이슨단을, 세계 지배의 야욕을 키우고 있는 매우 부정적인 단체로 봅니다. 아마 음모론의 최대 희생자라면 바로 이 프리메이슨단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프리메이슨단은 고대지혜를 보존,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보편적이고 포용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종교 사상을 허용하며 개별적 자아와 자유를 존중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인 자유와 평등 사상은 사실 프리메이슨리(프리메이슨 사상)에서 나온 것이죠. 절대주의에서 시민 민주주의로의 전환 과정에서 서구 여러 나라에서 필연적으로 시민혁명들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음모론자들은 그 혁명들을 꾀한 것이 프리메이슨단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 혁명들은 프리메이슨단에서 계획했다기보다는 자유와 평등 사상을 주장하는 프리메이슨리의 파급으로 시민들의 의식이 깨어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생하게 된 사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18세기 후반 유럽 전역에 일어났던 계몽주의 사상은 바로 프리메이슨리에서 나온 것이죠. 만일 저변에서 대중들의 의식을 계몽시킨 프리메이슨리가 없었다면 인류는 오늘날까지도 독재적인 절대 권력(정치든 종교든) 아래서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혁명이 나쁜 것이라면 혁명 없이 노예처럼 계속 사는 것이 미덕일까요? 독단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런 미덕이죠. '아무 생각 말고 제발 우리가 가르치는 교리를 그대로 믿어라.' 하지만 그 결과는? 지배와 통제이죠. 

 

프리메이슨리에서는 기독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종교와 사상을 허용합니다. 이런 면에서 서양에서 기독교 세력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프리메이슨단입니다. 만일 프리메이슨단이 없다면 서양은 기독교 천지가 될 것입니다. 기독교 세력을 견제할 아무런 대항 세력이 없게 되죠. 기독교계에서 프리메이슨단을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서 매도하고 비난하고 공격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최소한, 현재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종교의 자유가 좋고 그 덕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프리메이슨단을 욕하거나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멱살 잡고 덤비는 형국이 되는 것이까요.


 

음모론은 사실 매우 위험한 이론입니다. 자칫 선무당 사람 잡을 이론이죠. 누군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그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이론을 내세워 자신의 목적과 행위를 합리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고한 희생양이 생기게 될 것은 뻔한 이치구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케이스처럼요.

 

음모론자들은 냉전시대까지만 해도 프리메이슨단이 세계를 공산화시키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메이슨들이 공산주의자들과 접촉했다는 온갖 증거들을 들이대면서 입에 거품 물고. 하지만 공산주의가 몰락하자 우리가 언제 그런 적 있었냐는듯 쏘옥 들어가 버렸죠. 이것이 바로 허접한 음모론의 실상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세계의 배후에서 활동하는 힘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음모론을 깊이 파고들다보면 복잡한 미로 속을 헤매는 기분이 됩니다. 머리에 쥐가 날 정도이지요. 영화에서 제리는 말합니다.

 

“두 개의 대립 세력이 있다. 안정 희구 세력(재벌들)과 사회불안 희구 세력(무기산업체). 그러나 이 두 세력은 알고 보면 한 통속이다. 냉전과 화해를 번갈아 조장하며 뒤에서 웃고 있다.”

 

제리의 이런 생각은 미로 속을 헤매고 헤매다 통로가 보이지 않자 궁여지책으로 내린 결론이라 할 수 있죠. 편리하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세속적인 관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일수록 현상보다는 원인을, 외부보다는 내부를 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것도 되도록 깊이요. 그렇게 깊이 파고들다 보면 모든 존재의 핵인 영성의 층위에 이르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겠지요. 그렇다면 결국 영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는 한 이 수수께끼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다는 얘기가 되겠죠.

  

비교(秘敎)의 위대한 경전, <에메랄드 타블레트>에는 이런 구절이 있죠.

 

“빛과 어둠 사이의 투쟁은 아득히 먼 과거에 시작되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사람들은 빛과 어둠으로 차 있었다. 어둠에 의해 지배받는 사람도 있었고, 영혼이 빛으로 차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 이 싸움, 빛과 어둠의 투쟁은 참으로 오래되었다.”

 

빛의 세력이 인류의 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어둠의 세력은 인류를 지배하기 위해 광분하고 있지요. 이 투쟁은 아득한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계속돼 오고 있죠. 인류가 어둠의 세력의 먹이가 되지 않는 것은 빛의 세력 덕분입니다.

 

이 두 세력은 모두 보이지 않게 활동합니다. 두 세력의 근원은 물질계를 넘어선 곳에 있기 때문이죠. 결국 본질상 두 세력간의 싸움은 영적인 전쟁인 셈이죠.

 

이런 관점에서 에소테릭 가르침에서는 2차 세계대전 역시 빛의 세력과 어둠의 세력 사이의 영적인 전쟁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현상계에 가시적으로 드러난 모든 것들은 이미 영계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죠. 영계의 상황이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물질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이 두 영적인 힘들이 통로로 사용하는 비밀 그룹들이 있고 각자의 에이전트들이 있어서 자신들의 정체를 감춘 채 비밀리에 활동해나갑니다. 예를 들어 프리메이슨단이나 장미십자단은 빛의 세력의 전위 조직, 브릴회나 툴레회는 어둠의 세력의 전위 조직으로 일컬어지고 있지요.

 

오컬트 자료들에 의하면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믈러, 괴링, 헤스 등 나치의 주요 지도자들은 툴레회와 브릴회의 멤버들이었습니다. 히틀러의 배후에 있었던 툴레회와 브릴회는 암흑 세력이 외부 통로로 이용했던 흑마술 단체로 알려져 있지요.

 

이에 비해 처칠, 루스벨트, 맥아더, 마샬 등 연합군의 주요 지도자들은 프리메이슨단의 고위 멤버들이었구요. 프리메이슨단은 암흑세력에 대항해 빛의 세력이 외부 통로로 이용했던 비밀 결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듯 비의적인 관점에서 보면 2차 대전은 현대판 마법전쟁이라고 할 수 있죠. 예를 들어 히틀러의 배후에 티벳의 흑마술사들이 있었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히틀러가 전쟁에서 연전연승할 수 있도록 내면의 소리를 통해 그의 작전을 도왔다는. 

 

또, 2차 대전 말기에 나치와 연합군 사이에서 벌어졌다고 하는 남극전쟁 얘기도 있죠. 나치는 왜 남극으로 갔을까, 남극에서 왜 전쟁이 벌어졌을까, 하는 사연의 내막을 파헤치다 보면 마치 마법 향로에서 피어오르는듯한 미스테리의 안개에 싸이게 됩니다. 


 

<맨 인 블랙>에는 MIB 요원의 은밀한 활동을 이렇게 표현하죠. 

 

“그들의 언어는 침묵이며 그들의 이름은 익명이다.” 

 

빛의 세력이든 어둠의 세력이든 모든 비밀 활동은 그렇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X파일>의 멀더(데이빗 듀코브니)가 이렇게 불평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죠.

 

“진실에 가까이 접근해 봤자 매번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어.”

 

음모론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은 세상의 배후에서 활동하는 힘들과 그 모든 비밀 활동들을 어둠의 세력의 작업 하나로만 파악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경우 빛의 세력을 어둠의 세력으로 오판하고 있는 듯 하구요. 뿐만 아니라 음모론 자체가 어둠의 세력들에 의해 악용되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대중을 선동해서 자신의 정적을 물리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죠. 

 

무엇이 빛이고 무엇이 어둠인가? 그것은 결코 우리들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때론 빛이 어둠처럼 보이고 어둠이 빛처럼 보입니다. 진리의 문은 의례 좁은 법이고, 악은 언제나 선을 가장하기 때문이지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의 원인을 누군가에게로 몰아 그 탓으로 돌리고 비난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마음 속에 어슬렁거리는 악을 보는 불편한 자기성찰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죠. 제리처럼 시선을 외부로 향해서 세상이 온통 뭔가 잘못되었다고 끊임 없이 궁시렁대면서 살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내면을 관조하며 자신이 하루하루 올바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들여다 보는 것은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밀 조직이 자기들을 해할까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올바른 삶을 살기만 한다면 세상의 어떤 강력한 비밀 조직도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의의 법칙이 자동적으로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자신의 쾌락과 야욕만을 좇으며 산다면 언젠가는 어둠의 세력의 마수에 걸려들게 되죠. 따라서 진정으로 걱정해야 할 것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가 스스로의 양심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향해 있느냐는 점입니다.  


 

제리가 끊임 없이 사들인 책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인공 홀든이 되고 싶은 것은 딱 한 가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만사 모든 것에 툴툴거리는 홀든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은 것 외에는 아무런 꿈이 없었죠. 그러나 우리가 파수해야 할 진짜 호밀밭은 이 세상이 아니라 바로 자기 마음입니다.    

 

음모론에 한 번 빠지면 세상의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어두운 시선으로 밖을 보는 동안 자기 내면이 바로 그 어둠에 서서히 물들고 있다는 것을 미처 보지 못하게 되죠. 그러므로 세상의 파수꾼이 되려고 하기보다 무엇보다 먼저 자기 마음의 파수꾼이 돼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호밀밭의 파수꾼이니까요.  [출처: http://blog.naver.com/eyeinhand/10184767876]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루미나티에 대하여

 

모든 것을 보는 눈, 전시안의 비밀

 

<툼 레이더>

 

인간은 상징의 동물입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것은 상징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요. 상징을 이해함으로써 물(物) 그 자체와 그 대상을 다스리는 힘을 얻게 되니까요. 영화 <툼 레이더>에는 에소테릭적인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심벌이 주요 소재로 등장합니다. 이른 바 ‘모든 것을 보는 눈(All Seeing Eye)’, 즉 전시안이 바로 그것이죠. 


 

이 전시안 심벌에는 매우 깊은 영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습니다. 전시안은 흔히 구름이나 삼각형에 싸여있는 형태로 묘사되는데 그 둘레에는 언제나 항상 영광이 발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지요. 또 이 전시안은 종종 꼭대기가 잘린 절두형 피라밋과 함께 등장하곤 합니다. 그 피라밋의 정상 부분에 삼각형 전시안이 그려지는 형태로요. 

  

전시안 피라밋은 미국의 국새 뒷면의 문양입니다. 독수리가 화살과 올리브 가지를 발톱으로 쥐고 있는 문양은 미국 국새의 앞면 문양이고, 그 뒷면이 전시안 피라밋이죠. 그리고 미국의 1달러 지폐를 보면 거기에도 이 전시안 피라밋 문양이 새겨져 있죠.


 

음모론자들은 미국의 국새와 1달러 지폐에 새겨진 이 전시안 피라밋을 보고 어떤 강력한 미지의 오컬트 조직이 미국과 세계의 역사 흐름에 개입하고 있는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그 조직을 그들은 일루미나티(Illuminati)라 부르고 있지요. 영화 <툼 레이더>는 바로 그 일루미나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순수한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일루미나티는 무슨 악당같은 존재들의 조직도 아니고 세계를 좌지우지할 만큼 막강한 조직도 아닙니다. 그것은 편집증적인 음모론에 빠진 자들이 상상으로 만들어낸 허구의 뻥튀기라 할 수 있죠. 그렇다면 과연 실제 역사 속의 일루미나티는 어떤 조직일까요?

  

일루미나티는 1776년 5월 1일 바바리아(바이에른) 공국에서 아담 바이샤우프트에 의해 창설되었습니다. 일루미나티Illuminati는 라틴어 일루미나투스(Illuminatus)의 복수형으로, 깨우친, 계몽된, 계명啓明된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일루미나티에 대해 많은 오해들이 있는데, 사실 일루미니스트들은 그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계몽주의자들입니다. 18세기에 유럽에서는 이성의 빛을 통해 봉건적 구습과 종교적 미신을 타파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우고자 하는 운동이 벌어졌는데, 그것을 계몽운동이라고 하죠. 일루미나티는 바로 그런 계몽주의 운동을 선도했던 조직이죠. 일루미나티가 당시의 여타 계몽주의자들과 다른 차이점은 오컬트적인 요소와 결합되었다는 사실이죠.

  

일루미나티를 창설한 아담 바이샤우프트는 불과 27세의 나이에 바바리아 잉골스타트 대학교의 법학대학장을 지냈을만큼 탁월한 지성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개혁의 선구자로, 전제군주와 기독교 성직자들의 압제로부터 백성들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숭고한 이상을 갖고 있었지요. 또 그는 여성에게 교육받을 권리가 주어져야 되고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렇듯 핍박받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섰던 그에 대해 객관적인 연구가들은 지극히 도덕적인 성격을 지닌 심원한 사상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바이샤우프트

 

바이샤우프트는 프리메이슨이었고 나름대로 엘레우시스 비의와 피타고라스의 가르침 등을 공부하기는 했지만(그의 스승이 오컬티스트였다는 설도 있음), 사실상 그 자신은 신비적인 요소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이성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이성의 숭배자’라고 말하곤 했지요.

 

일루미나티는 무엇보다 철학적인 요소가 강한 조직입니다. 바이샤우프트 자신이 철학자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일루미나티에서 멤버들에게 추천하는 양서들도 대부분 철학서적들이었죠. 일루미나티에 오컬트적인 요소가 포함되게 된 것은 창설 이후의 일로, 여기에는 일루미나티의 이인자인 크니게 남작의 역할이 컸습니다. 프리메이슨이자 오컬티스트였던 크니게는 자신의 오컬트 지식을 활용하여 교단의 의식(儀式) 구성을 체계화 시킵니다.

 

크니게

 

현대의 음모론자들은 일루미나티와 프리메이슨단을 거의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일루미나티는 프리메이슨단과는 완전히 독립된 별개의 조직입니다. 일루미나티의 일인자 바이샤우프트와 이인자 크니게가 프리메이슨이었기 때문에 자연 일루미나티의 멤버들 중에 많은 수의 프리메이슨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일루미나티의 등급 속에 프리메이슨 등급이 포함돼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세 개의 클래스 중에서 두 번째 클래스는 프리메이슨 등급들로 구성돼 있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루미나티와 프리메이슨단이 직접적인 연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

 

어떤 면에서 일루미나티에서 프리메이슨들을 적극 영입함으로써 교단이 추진하고 있는 운동이나 활동들에 안정감과 효율성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죠. 즉 일루미나티에서 기존의 프리메이슨 세력을 이용하려 했던 것이죠. 그러나 그것은 프리메이슨단의 입장에서는 썩 달가운 일은 아니죠. 왜냐하면 쓸데 없는 위험 부담을 안아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 우려는 사실상 현실화됩니다. 훗날 바바리아 정부에서 일루미나티를 탄압할 때 프리메이슨단까지 덤으로 활동 금지 조치를 당해야 했거든요.

  

창설 당시에 다섯 명의 회원으로 시작한 일루미나티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됩니다. 얼마 안 가, 유럽 전역에 지부들을 두게 되었고 멤버 수는 2천명에서 3천명 사이에 이르게 되지요.

 

일루미나티 멤버 중에는 당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로는 괴테, 헤르더, 생 제르맹(세인트 저메인) 등이 있습니다. 일루미니스트들은 대부분 당대의 고매한 지성인들이었고, 악당과는 전혀 상관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괴테

 

헤르더


일루미나티의 활동 목적은 절대 군주제와 배타적인 종교 등 사람들을 억압하는 사회 시스템들을 없애고 자유, 평등에 바탕하여 보편적인 형제애 안에서 온 인류가 조화롭게 사는 것이었죠. 일루미나티에게 있어서 개인에 대한 과도한 억압을 가하는 전제 군주제, 그리고 철학의 자유, 과학의 자유를 억압하는 당시의 기독교 교회는 사회 개혁을 위해 타파해야 할 가장 큰 장애물이었죠. 

 

 일루미나티가 바바리아 정부와 기독교 세력(특히 제수이트회)으로부터 탄압을 받았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죠. 일루미나티의 급진 사상은 권력자와 성직자 등 기득권 계층에 위협의식과 적대적인 반감을 불러일으키게 되지요.

 

일루미나티의 급진 개혁주의는 심지어 유사한 오컬트 조직과도 대립각을 세우게 만듦니다. 황금장미십자단과의 충돌이 대표적인 예이죠. 이 부분은 얼핏 보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황금장미십자단은 프리메이슨들로 이루어진 오컬트 조직이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프리메이슨들끼리 충돌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당시 황금장미십자단은 정치적으로 보수주의 노선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황제를 비롯한 사회 지배층 인사들이 많이 포함돼 있었죠. 따라서 군주제 철폐를 주장하는 일루미나티의 급진 개혁주의자들과는 상극이라 할 수 있죠. 게다가 납을 황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하는 황금장미십자단의 연금술 가르침을 일루미나티에서는 터무니 없는 미신으로 취급하였고 혹세무민하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철학적 성격이 강한 일루미나티는 무엇보다 합리적인 이성을 중시하였기 때문이죠. 

 

요컨대, 일루미나티와 황금장미십자단의 대립은 '개혁주의 대 보수주의', '이성주의 대 신비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일루미나티의 개혁주의는 필연적으로 기독교 기성 세력과의 마찰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일루미나티가 기독교 자체와 대립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일루미나티의 멤버들은 모두 크리스천들이기 때문이죠. 가입 자격에 이교도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지요. 따라서 일루미나티와 유대주의를 관련짓는 것 또한 어불성설입니다.  

 

일루미나티에서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독단적인 교리(예수 안 믿으면 지옥간다는 식의)를 믿지 않았습니다. 일루미니스트들은 고급 과정에서 예수가 가르쳤던 진정한 가르침, 즉 에소테릭 기독교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일루미나티는 예수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교회에 반할 뿐이죠.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 때문에 일루미니스트들의 활동은 매우 비밀스러울 수밖에 없었죠. 멤버들의 이름은 본명이 아니라 별칭으로 불립니다. 예를 들어 스파르타쿠스, 필로 등. 그들은 지명地名도 바꾸어 불렀죠. 예를 들어 일루미나티 본부가 있는 곳은 엘레우시스, 오스트리아는 이집트 등으로 불렀지요. 심지어 날짜까지 암호 형식으로 주고받습니다.

 

미국의 제퍼슨 대통령은 훗날 일루미나티의 이런 비밀주의에 대해, 만일 바이샤우프트가 미국에서 자신의 사상을 펼쳤다면 비밀스러운 장치들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건국 이념(자유와 평등)과 일루미니즘이 많은 부분 유사하기 때문이죠.

 

바바리아에서 일루미나티의 활동에 처음 제동을 건 것은 제수이트회였습니다. 일루미나티와 제수이트회는 서로 상반되는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앙숙관계이죠. 전자는 기성 기독교 타파, 후자는 기성 기독교 수호를 각각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루미니스트들은 제수이트들을 몰아내려고 했고, 제수이트들은 일루미니스트들을 몰아내려고 했죠. 

 

바바리아에서 일루미나티의 세력에 밀린 제수이트회는 일루미나티를 박멸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일루미나티에 두 명의 오스트리아 장관이 멤버로 있는 사실을 이용해서 일루미나티가 바바리아를 오스트리아의 지배권에 넣게 하려 한다고 주장한 것이죠. 이런 제보로 인해 마침내 바바리아 정부 당국까지 일루미나티에 대한 공격에 가세하게 됩니다. 날로 성장해 가는 일루미나티는 바바리아 선제후의 입장에서 볼 때도 자기 권력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만큼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던 것이죠. 

 

그렇게 해서 1784년 마침내 바바리아 정부에 의해 일루미나티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되지요. 그로 인해 많은 일루미니스트들이 투옥되거나 강제 추방되게 되지요. 하지만 죄목들은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어처구니 없는 내용들이었죠. 예를 들어 금식일 날 밥을 먹었다, 고해의식에 반대했다, 특정 책들을 유통시키거나 베껴썼다, 등이었죠. 이런 어처구니 없는 박해의 결과 18세기 말엽에 이르러 일루미나티는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바이샤우프트는 고타 지방으로 망명하였고 거기서 일루미니즘에 대한 수권의 저술들을 남기게 됩니다.

  

기록으로 볼 때 일루미나티의 역사는 10여년에 불과합니다. 일루미나티의 전신前身이라 할 수 있는 완전주의자단까지 포함해도 2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요.

 

18세기 후반에 잠시 불꽃처럼 피어올랐다가 사라져 버린 일루미나티가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루미나티가 현대에 대중의 의식 속에 부활하게 된 것은 1970년대 중반에 나온 소설 <일루미나투스!> 삼부작에서 시작됩니다.

 


소설 <일루미나투스!>

 

이 소설은 앤턴 윌슨과 로버트 쉬어의 공저로, 역사적 사실과 기존의 일루미나티 세계 지배 음모론(예를 들어 18세기 말 존 로비슨, 바루엘, 20세기 초 네스타 웹스터 등의 저서들)에 나온 자료들을 바탕으로 해서 작가적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만든 펙션 소설입니다. <일루미나투스!>는 출간 후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고 그 인기에 편승해서 유사한 음모론 책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죠. 픽션과 논픽션이 버무려진 펙션 스타일의 책들로 인해 대중은 상상의 허구와 역사적 사실을 혼동하게 됩니다.

 

로버트 쉬어

 

앤턴 윌슨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그 책들을 이용해서 마치 그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사람들은 일루미나티가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조직처럼 착각하게 되었지요.  (사실 일루미나티 세계지배 음모론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반대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역이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시안 피라밋이 일루미나티를 상징하는 심벌로 인식되게 된 것도 바로 소설 <일루미나투스!> 때문이지요. 사실 일루미나티의 심벌들 중에 피라밋은 있지만 전시안은 없습니다. 전시안은 프리메이슨 심벌에 속하죠.

 

아무튼 오늘날 일루미나티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심벌이 되어 버린 전시안 피라밋 심벌(미국새와 1달러 지폐에 새겨짐)은 음모론적 연계선상에서 파악되고 있지요. 실제로 맨리 홀(그는 전통적인 음모론자는 아님) 같은 오컬티스트는 미국의 국새에 오컬트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하고 있지요.

 

맨리 홀은 전시안 피라밋 심벌이 초기에 미국으로 건너온 신비 단체들의 직접적인 영향에 그 기원이 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하지요. 사실 조지 와싱턴(프리메이슨 33도 멤버)을 비롯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상당수가 프리메이슨들이었던 것만큼은 확실하지요.

 

하지만 와싱턴 대통령은 미국 정부와 일루미나티의 관련성을 분명히 적극 부인합니다. 그러나 그가 친일루미나티파는 아닐지라도 반제수이트파에 속한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만일 먼 훗날 미국에 큰 혼란이 온다면 그것은 제수이트들 때문일 것이다라는 예언적인 말을 했기 때문이죠.

 

20 세기 중반, 미국 국새 외에 1달러 지폐에 전시안 피라밋을 새겨 넣는 것은 당시 왈라스 농무장관(후에 부통령 역임)의 제안을 루스벨트 대통령이 수정하여 받아들인 것입니다. 애초에 왈라스는 동전에 그 문양을 새겨 넣자고 제안했지만 루스벨트가 지폐에 새기는 것으로 바꾸었지요. 아무튼 이 두 사람 역시 프리메이슨 고위 멤버들이었습니다.

 

루스벨트의 경우 AAONM이라는 신비 단체의 멤버이기도 했는데 거기서 그는 피티아스 기사 등급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요. AAONM은 32도 이상의 고위 프리메이슨들만 입문이 가능하며, 자신들이 일루미나티에서 파생되었다고 주장하는 조직입니다.

 

왈라스의 경우, 그의 스승은 러시아 신비가이자 예술가인 니콜라스 로에리치였습니다. 그는 로에리치와 많은 서신 교환을 통해 친밀한 교류를 합니다. 로에리치는 중앙아시아와 히말라야 일대를 여행하며 대백색형제단의 마스터들과 접촉하게 되는데, 그의 부인 헬레나는 아그니 요가회의 창설자이기도 하지요.

  

오늘날 일루미나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바리아 일루미나티 이후 그동안 몇몇 조직이 일루미나티를 계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객관적인 사실성은 전혀 입증되지 않은 것들이죠. 간판만 일루미나티 이름을 내걸었다고 해서 그것을 일루미나티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죠.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일루미나티는 사회의 기득권자들(특히 기독교계)로부터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일루미나티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은 히스테리칼할 정도이지요.

 

일루미나티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은 일루미나티의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더욱 놀라운 신비의 존재가 되게 하였지요. 영화에서도 일루미나티에 대한 이런 두려움과 신비감이 반영되어 나타납니다.

 

이런 대사들이 그 예이죠.

 

“일루미나티라는 비밀 조직은 극도로 위험한 집단이다.”

“일루미나티는 무소불위의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지.”

 

심지어 ‘지상의 모든 오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창조주의 오른 팔’이라고 지칭되기도 하지요.

 

일루미나티는 세상에 떠도는 찌라시 정보들에서 보이는 것처럼 악한 조직이 아닙니다. 그것은 프리메이슨단을 견제하려는 기독교 세력과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돈을 벌려는 일부 음모론 작가들에 의해  그럴듯 하게 꾸며내어진 이야기이죠. 

 

진정한 어둠의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암흑형제단은 따로 존재합니다. 그들은 일루미나티와 같은 고매한 철학 사상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증거가 노출되어 사람들로부터 대놓고 욕먹을 게 뻔한 짓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커튼 뒤에서 사람들이 내심 좋아하는 것들만 골라가면서 하기 때문에 결코 욕먹는 법이 없습니다. 뒤늦게, 아차 함정에 걸렸구나, 하고 알아챈 순간은 이미 덫에 걸린 뒤이기 때문에 고발하거나 성토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본질상 암흑형제단에 대해서는 일정 선 이상 깊이 거론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말하는 순간 몰랐던 사람들까지 너도나도 좋아라고 자기 발로 그들을 찾아갈 것이기 때문이죠. 악을 얘기하는 순간 악이 더 강화돼 버리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암흑형제단에 대한 정보가 세상에 거의 없는 이유입니다. 악은 스스로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것이고, 선은 악을 말함으로써 악을 강화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알고도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일루미나티가 공개적으로 대대적으로 욕을 먹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일루미나티가 암흑형제단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일루미나티의 심벌로 알려진(사실은 그렇지도 않지만) 전시안 피라밋의 심벌 속에는 깊은 형이상학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습니다. 

 

에소테릭 상징학의 관점에서 보면 꼭지가 잘린 피라밋은 신성 실락된 우리 인간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또한 고대 지혜의 상실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맨리 홀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밋이 비전(秘傳)의 장소로 이용되던 때 피라밋의 정점에는 특별한 관석(冠石)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관석은 천연 크리스탈이나 진귀한 금속들의 합금으로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우주 광선들과 영적인 에너지들을 집중시켜 피라밋 내부에서 비전을 받고 있는 입문자가 영적인 일루미네이션을 체험할 수 있도록 특정한 조건들을 일으켰었다고 하지요.

 

상징적으로 전시안을 둘러싸고 있는 삼각형은 바로 그 잃어버린 관석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오늘날 영적인 차원에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 인간이 삼각형으로 상징되는 영적인 고급한 단계를 성취하였을 때 피라밋은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지요. 즉 신성과의 완전한 합일을 다시 회복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영화 <툼 레이더>에서 라라(안젤리나 졸리)가 찾는 조각난 삼각형은 바로 잃어버린 관석, 즉 우리가 상실한 신적인 힘을 상징한다 할 것입니다.

 


라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시안이 새겨진 삼각형을 차지하면 어마어마한 힘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죠. 아버지는 그것을 ‘빛의 트라이앵글’이라 불렀죠.”

 

라라의 이 말 속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에소테릭적으로 해석될 때 비로소 그 진정한 의미가 확연히 드러나게 됩니다. 카발라적인 관점에서 말하면 삼각형은 생명나무의 최상위에 있는 세 개의 세피로트(케테르, 호크마, 비나)를, 그 안의 눈은 호아(현현된 신성의 최고 표현 - 성경상의 용어로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를 나타내지요. 아래의 꼭지가 잘린 피라미드는 나머지 하위의 일곱 세피로트를 상징하구요.

 


요지를 말하자면, 지금은 상실해 버린 인간존재의 신적인 힘들을 성취하게 될 때 분리된 삼각형은 관석이 되고 우리는 피라밋의 정점에 도달하게 될 것이고 그때 우리는 하위계와 최고천 사이에 완전한 통합과 합일을 이루어 신적인 완전성을 회복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영화에 보면 라라와 악당 파월이 피라밋의 양 측면에서 트라이앵글이 있는 정점을 향해 경쟁적으로 달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간발의 차로 ‘빛의 트라이앵글’을 거머쥐게 된 라라는 그때부터 신적인 힘(영화에서는 시간을 지배하는 힘으로 표현됨)을 발하여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친구 알렉스를 구해내게 되지요.

 

우리 인체와의 대응 관계 속에서, 전시안은 '제3의 눈' 즉 영안이라 할 수 있죠. 제3의 눈과 관련지어 음양을 얘기할 때 여성원리는 아즈나 차크라, 남성원리는 사하스라라 차크라에 해당됩니다. 


양 미간 사이에 있는 아즈나 차크라가 열리면 우리는 잠 속에서도 깨어 있게 됩니다. 육체는 수면을 취하지만 의식은 깨어 있게 되는 거죠. 이 주시자는 모든 것을 보고 인식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수동적입니다. 보기만 할 뿐 행동을 취하지는 않습니다. 이 주시자는 우리 인생에 어떤 고통이 와도 무심합니다. 그것은 거울과 같아서 그 안에 세상의 모든 것이 비칩니다. 


아즈나 차크라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지만 그뿐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들을 볼 수는 있지만 상황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단계 더 발전하여 정수리에 있는 사하스라라 차크라가 열리면 비로소 적극적인 활동력을 얻게 됩니다. 사하스라라 차크라는 남성원리입니다. 그것은 역동적, 활동적, 창조적 센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있는 이 두 센터(아즈나 차크라와 사하스라라 차크라)가 모두 열리게 되면 전지전능한 힘을 얻게 되지요.  

 

이 영화의 주인공 라라의 캐릭터 속에는 이 양성원리의 합일이 표현돼 있지요. 그녀는 외관은 여성이지만 성격은 남성적입니다. 상징적으로 볼 때 라라는 남성원리와 여성원리가 통합된 이상적인 인물이지요. 양성(兩性)적인 성질을 모두 구유한 라라가 전시안을 얻게 되었다는 것은 바로 아즈나 차크라와 사하스라라 차크라의 합일로 신적인 완전성에 도달하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이를 두뇌 안의 내분비선 또는 센터와 관련지을 때, 전시안을 둘러싼 빛의 트라이앵글의 세 꼭지점은 뇌하수체(객관의식 센터), 송과선(주관의식 센터), 시신경교차(초월의식 센터)를 각각 상징하게 됩니다.     


 

영화 끝부분에 라라가 신적인 권능의 전시안 트라이앵글을 파괴해 버린 것은 준비되지 않은 자들이 그러한 힘을 남용할 우려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영화 속에서 인류는 도로 피라밋의 관석을 잃어버린 셈이죠.  관석을 파괴해 버린 라라는 그 관석이 우리들 각자가 삶의 모든 에너지를 모아 다시 찾아야 할 영원한 숙제라는 걸 알고 있었겠지요. 언젠가 각자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내면에서 빛의 트라이앵글, 즉 전시안을 획득하고, 신성의 광휘로 세상을 환히 보고 밝힐 것을 소망하면서요.

[출처: http://blog.naver.com/eyeinhand/10185248124]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외계인에 대하여

 

빛의 시대, 우주 문명을 향하여

 

<콘택트> <맨인블랙> <인디펜던스데이> <X파일> <제5원소>

 

고금(古今)을 가리지 않고 밤하늘은 인간들의 영원한 동경의 대상입니다. 특히 예전에는 더욱 그랬죠. 공기가 맑아, 보석처럼 총총히 박힌 무수한 별들이 당장이라도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듯이 빛났습니다. 어린 시절 그 별들을 보며 ‘별 하나, 나 하나’의 꿈을 키웠었고요. 그다지 오래 전 일도 아니죠.

 

오늘날 그 많던 별들은 도시의 탁한 스모그 뒤로 숨어 버렸지만 그렇다고 우리 마음속에서까지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닙니다. 태양 속에 세 발 달린 까마귀가 살고, 달 위에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는 우리네 할배 할매의 순박한 꿈은 오늘날 UFO와 ET의 신화로 탈바꿈 되어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렇게 별들은 우리 가슴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빛나고 있죠. 


 

외계인은 과연 존재할까? 현대 과학자들도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오래 전부터 전파망원경을 통해 외계지성인탐색(SETI)에 진지하게 매달리고 있습니다. 이 세티 계획을 소재로 한 영화가 바로 <콘택트>죠.

 

영화에서 한 소년이 세티 프로젝트의 리더, 앨리(조디 포스터)에게 묻습니다.

 

“외계인들이 정말로 있나요?”

 

그러자 그녀가 이렇게 답하죠.

 

“그야 알 수 없지.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무한한 우주에 만약 우리뿐이라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겠지.”

 

이 영화의 주제어라 할 수 있는 이 말은 우회적이긴 하지만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표현입니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사는 이 시대에 사실 외계인의 존재여부를 두고 새삼스레 논쟁한다는 것은 매우 진부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몇 백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온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고, 지구는 평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는 어린애도 웃을 만큼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죠. <맨 인 블랙>에서 외계인 감시요원 케이(토미 리 존스)도 이런 예를 들어가며 인간들의 우매함을 비웃죠. 우리 지구에만 지적 생명체가 산다는 생각은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돈다는 생각과 별반 다를 게 없죠. 자기중심적이고 어리석다는 점에서 말이죠.

  

오늘날 UFO 연구가들은 외계인의 존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외계인이 이미 우리 지구사(史)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고 믿고 있죠.

 

외계인과 미국 정부간의 비밀 계약설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고요. 이미 미 정부가 외계인과 접촉했고 지금도 관계를 맺고 있다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는 1953년 실제로 일어났던 미 정부와 외계인의 접촉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하지요.

 

<맨 인 블랙>에서 비밀 요원 케이는 신입 요원 제이(윌 스미스)에게, 50년대 중반 외계인과 접촉하기 위해 비밀기관이 창설되었다고 설명해 줍니다. 또 <인디펜던스 데이>에는 네바다 사막 51구역에 비밀 기지가 있고 거기서 추락한 UFO를 재건하여 띄우는 작업을 하는 내용이 나오고요. 이것들은 모두 UFO 연구가들이 주장하고 있는 사실에 근거하여 영화화된 내용입니다.

  

연구가들에 의하면 외계인과의 비밀 거래의 주 내용은, 첨단기술을 제공받는 대신 인간에 대한 납치, 생체실험을 묵인해 주는 것이라고 하지요. <인디펜던스 데이>, <X파일> 등에는 외계인의 인간 납치가 부분 소재로 등장하고 있음에 비해 영화 <침입자> <비지터스> <영적 교섭> 등은 오직 이 주제만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내용이죠.

 

예를 들어 한 여성이 외계인에 의해 납치돼 강제 수태 당한 후 일정한 시간이 흘러 태아 상태의 아기를 빼앗기고 그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고통과 여러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줄거리를 이루고 있죠. 이것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지금까지 외계인에 의한 피랍 사례들이 많은 곳에서 보고 되고 있죠.

 

  

<X파일>의 멀더(데이빗 듀코브니)도 그의 동생을 외계인한테 빼앗긴 슬픔을 갖고 있죠. 바텐더가 그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묻자 술에 취해 이렇게 대답합니다.

 

”외계인의 존재를 은폐하려는 권력자들의 음모를 폭로하는 일이지. 사람들은 닥쳐 올 위험을 모르고 있고 그걸 알리는 게 내 임무요.“

 

외계인이 종족 번식을 통해 지구를 식민지화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고 모종의 배후 세력이 그 일을 돕고 있다는 <X파일>의 시나리오 설정 역시 연구가들의 주장이 반영된 것이죠.

 

지구의 종말과 외계인의 침공을 연계하는 내용들은 비단 <X파일>뿐만 아니라 <인디펜던스 데이>, <화성침공>, 이현세의 <아마겟돈> 등에서 보이는 공통점이지요.

 

 

성경의 ‘요한계시록’ 9장 16­-19절에는 수많은 마병대가 불과 유황이 나오는 말을 타고 인류의 1/3을 죽인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한 비교(秘敎) 학파에서는 그 마병대를 UFO를 타고 오는 외계인으로 해석하고 있지요.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의 예언서 『격암유록』 ‘말중운’ 편에도 하늘로부터 철마 3천대가 온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어지는 문장에, 사람의 씨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인류가 절멸된다는 내용이 이어지지요. 여기서도 이 철마를 UFO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인디펜던스 데이>나 <화성침공>에는 지구인의 지혜와 용기로 외계인을 물리쳐 위기를 극복한다는 시나리오로 되어 있지만 사실 그것은 현실성이 별로 없는 설정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보다 과학이 월등히 앞선 존재들을 상대로 지구인의 힘만으로 싸워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요.

 

 

이에 비해 이현세의 <아마겟돈>에는 특이한 해법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지구 내부에 있는 미지의 조직 ‘엘카’의 도움이 그것이죠. 외계인들이 지구를 정복하는 데 있어 유일한 장애물인 엘카! 여러 다른 면들이 있긴 하지만, 우리 지구에는 이 엘카와 유사한 조직이 있지요. 전 세계의 비전적 가르침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샴발라’가 그것이죠.

 

고대로부터 모든 민족의 신화 속에 남아 있는 꿈의 이상향, 샴발라…. 민족에 따라 아갈타, 히페르보레오스, 자하도 등으로 불리지만 하나의 곳을 지칭하지요. 인류의 진화를 은밀히 돌보고 있는 지구의 수호자들이 있는 곳.

 

오늘날 UFO 연구가들도 지구 공동(空洞)설을 주장하며 이 샴발라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요. 심지어 UFO 중 일부는 외계가 아닌 지구 내부에서 날아온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샴발라는 비교(秘敎)에서 흔히 ‘대백색형제단’, ‘화이트 롯지(Lodge)’, ‘성(聖)형제단’, ‘빛의 형제단’, ‘하이어라키(영단靈團)’ 등의 명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비전의 가르침에 의하면 이 백색형제단은 지구만이 아니라 전 우주적인 규모로 조직돼 있다고 하죠. 한 마디로 빛의 세력이 모인 우주 연합체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죠.

 

대백색형제단은, 영적인 성장을 거쳐 윤회로부터 벗어난 초월적 성자들의 그룹으로, 그들은 흔히 ‘지혜의 마스터’, 또는 ‘승천 마스터’라 불립니다. 그런 마스터들로는 모리야, 쿠트 후미, 주알쿨, 힐라리온 등이 많이 알려져 있지요. 신지학회, 아케인스쿨, 사람의 사원 등 여러 비교(秘敎) 단체들의 창설을 배후에서 도왔던 그들은 오늘날에도 직접 또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인류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에도 빛의 존재들과 어둠의 존재들이 있어서, 전자는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고 후자는 물질적인 지배욕을 추구한다고 하죠. 그들은, 과학기술은 발달했지만 사랑이 결여돼 있는 종족이라고 합니다. <X파일>은 그들과, 지구의 배후에 존재하는 어둠의 세력 간에 위험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내용을 주제로 하고 있지요.

 

외계인 영화들은 많은 경우 네거티브한 외계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외계인만 있는 것은 아니죠. 지구의 영적인 진화를 도와주는 선한 외계인들에 대한 사례들도 연구가들에 의해 발표되고 있습니다.

 

UFO 연구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조지 아담스키가 1950년대에 접촉한 외계인들은 태양계 내에 존재하는 행성들로부터 왔는데 그 메시지는 영성에 충만한 선의의 내용들로 가득 차 있지요. 스위스의 농부 빌리 마이어가 7,80년대 접촉한 플레이아데스성단으로부터 온 외계인들도 우호적이고 인도적인 모습이고요.

 

90년대 들어서부터는 직접적인 접촉보다는 채널링을 통한 방식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플레이아데스, 시리우스, 거문고자리, 안드로메다 등 다양한 우주의 외계인들로부터 전해지고 있는 메시지가 넘치고 있지요. 이들은 한결같이 지구에 닥칠 대파국과 그 극복법, 새로운 빛의 시대의 도래, 인류의 의식 변화, 영성의 계발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 등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 정보들을 보면 마치 오컬트 서적을 읽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영적인 내용들로 가득하지요.

 

  

부르스 윌리스의 <제5원소>에 등장하는 절대선의 외계인이자 사랑(제5원소)의 화신 릴루(밀라 조보비치)와 <콘텍트>에 나오는 베가성의 외계인은 우리에게 포지티브한 외계인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우주의 형제애를 주장하지요.

 

사실상 지구가 우주 문명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형제애라 할 수 있습니다. 온 우주에 있는 생명을 신성 안에서 하나로 보는 자세가 그것이죠.

 

외계인에 대한 극단적인 숭배나 극단적인 배척은 모두 올바른 태도라 볼 수 없겠지요. <화성침공> <인디펜던스 데이>에는 외계인 숭배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조소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절 데려가 주세요’라는 구호판을 흔들며 열광하는 그들에게 UFO의 무자비한 공격이 퍼부어지죠.

 

또 <콘텍트>에는, ‘예수님은 외계인이다’라는 피켓을 든 숭배론자들, 그리고 자신의 종교 교리에 맞지 않다고 외계인의 존재를 극단적으로 부정하며 테러를 자행하는 광신도의 모습도 그려지고 있고요.

 

  

에소테릭적인 관점에서 볼 때 ‘외계인’이라는 말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비교(秘敎)에서는 인간이 별에서 별로 윤회전생(轉生)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볼 때 지구상의 인간 치고 외계인 아닌 사람은 없는 셈이죠.

 

중요한 것은 육체적인 관점이 아니라 영적인 관점, 분리의 관점이 아니라 통합의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영혼을 갖고 있는 생명체라면 외관이 어떻든, 기술 수준이 어떻든 신 안에서 평등한 형제인 것입니다. 이런 열린 마음이 없는 한 지구는 우주문명을 향해 한 걸음도 떼어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옛날의 선각들은 세계일가(世界一家)를 부르짖었으나 오늘날 우리는 바야흐로 우주일가(宇宙一家)를 말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지구의 모든 스승들과 외계의 선한 형제들은 이구동성으로 머지않아 도래하게 될 새로운 변화, 영적인 상승이 가까워 옴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파도의 흐름을 타기 위해서는 의식의 고양이 필수 요건이라 말하고 있고요. 우주문명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은하철도의 동력, 그것은 바로 제5원소인 사랑이 아닐까요.

[출처: http://blog.naver.com/eyeinhand/10185521166]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모세에 대하여 

 

모세, 약속의 땅으로 이끈 구원의 인도자

 

<이집트 왕자>


위대한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이익이 그들의 생각과는 다른 데 있음을 인식시킨다고 하지요. 비 온 뒤의 지렁이처럼 방향 감각을 잃고 헤매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인도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영화 <이집트 왕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모세의 삶은, 지나온 수천년의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짙은 신화의 연무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그가 실존했던 인물인지 아니면 단순한 신화에 불과한 존재인지조차 모호하지요. 영화 속에서는 파라오의 친아들 람세스와 양아들 모세 사이의 애틋한 형제애와 칼날 같은 갈등의 두 국면이 교차하며 극적인 긴장감과 흥미를 더해 줍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학자들은 출애굽이 파라오 하렘헤브가 통치하던 시대와 다음의 세 왕, 람세스 1세, 세티 1세, 람세스 2세 시대의 어느 시점에 발생한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파라오 가문은 하렘헤브의 통치가 시작되기 몇 년 전부터 대가 끊긴 상태였다는군요. 하렘헤브는 총사령관을 역임한 직업 군인으로 스스로 왕좌에 오른 인물입니다. 그의 뒤를 이은 람세스 1세 역시 왕족이 아니라 직업 군인 출신으로 하렘헤브의 친구이자 당시 재상을 지낸 인물이었구요. 

 

아무튼 모세의 아버지에 해당되는 파라오가 왕족 출신이 아니라면 그가 죽은 뒤 적법한 계승자가 누구인지가 문제가 되었을 것이고 그에 따른 갈등은 필연적인 것이었을 것입니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자신의 논문 '모세와 유일신교'에서 모세가 유대인이 아니라 이집트인이었을 거라는 설을 주장합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라는 이름은 그를 구해 준 이집트 공주가 지어 준 것으로, 히브리어로 '물에서 건져 낸 자'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신분을 감춰야 할 처지에 있는 아이에게 히브리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얼른 생각해도 비상식적인 얘기이기 때문이죠. 

 

이에 대해 프로이트는 '모세'라는 이름은 이집트어로 '태어나다' 또는 '아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이집트 역대 파라오 중에는 모세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 많았지요. 카 모세, 투트 모세, 아흐 모세 등. 예를 들어 투트 모세는 '토트 신이 보낸 아이' 또는 '토트의 화신'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모세의 완전한 이름은 '○○ 모세'였을 것인데 앞에 붙어 있던 신의 이름이 생략된 채 뒷부분만 불리게 되었을 개연성이 높다고 할 수 있죠. 

  

프로이트는 또한 모세가 유대인들에게 가르쳐 준 종교 역시 이집트 종교의 하나인 아텐교(또는 아톤교)였다고 주장하지요. 그는 히브리어 '아도나이(주님)'와 시리아의 신 '아도니스'의 어원을 '아텐(아톤)'으로 볼 수 있다는 점, 할례의 풍습이 이집트에서 기원한 것이라는 점, 아텐교가 우상숭배를 금기시하고 배타적인(즉 유일신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지요.

  

아텐교는 이집트 18 왕조의 파라오 아케나텐(아크나톤)에 의해 국교로 강력히 내세워졌지만 전통적으로 다신교인 아몬교를 믿던 대다수 민중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하던 종교였다고 해요. 아케나텐은 다신들을 모신 판테온을 없애고 유일신만을 숭배하도록 강요하였고, 결국 두 종교의 갈등은 왕국을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 가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아텐교의 고위사제였던 모세가 당시 쇠락해 가고 있던 아텐교를 재건하기 위해 이집트에서 히브리인들을 끌고 나왔다고 주장합니다. 즉 야훼를 믿는 유일신교의 원형이 바로 이집트의 아텐교라는 것이죠. 즉, 이집트의 아텐교에서 발원된, 다른 신과 우상을 숭배하지 못하는 유일신이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인 관념의 신, 초월적이고 추상적인 전지전능의 신의 개념이 그대로 유대교 속에서 계승, 발전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죠.    

 

모세가 이집트인이었다는 설은 프로이트가 처음 주장한 것이 아니라 기원전부터 몇몇 역사학자들(마네토, 필로 등)이 주장해 온 것입니다. 심지어 현대의 일부 학자들(카를 아브라함, 로버트 페더 등)은 모세가 바로 파라오 아케나텐이었다는 과감한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아텐교의 최고사제였다는 것이죠. 

 

권력 투쟁에서 밀린 아케나텐은 퇴위 후 이집트의 역사 기록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는데, 그가 바로 출애굽을 이끈 모세였다는 것이죠. 

 

 

성경 이외에 모세의 삶이 기록된 자료로 『오아스프, 새로운 성경Oahspe, A New Bible』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미국인 존 뉴브러프가 19세기 말엽에 천사들의 도움으로 일종의 자동서기 형식으로 쓴 방대한 분량의 책입니다. 

 

이 책 속에는 아득한 고대로부터 지상에 화신했던 예수의 여러 전생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돼 있어서, 비교(秘敎)에서 예수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문헌상의 근거로 제시되는 책이기도 하지요.

 

이 책에 기록된 모세의 삶을 보면 파라오의 딸 레오토나스가 강변을 거닐고 있을 때 한 아기가 바구니에 담겨 강물에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그를 자기 아들로 삼는데, 이때 파라오는 그녀에게 모세가 공주의 형제이자 아들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달리 말해 파라오는 모세를 자기 양아들로도 삼았다는 말이죠. 

  

당시 파라오에게는 아들이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파라오는 모세를 유달리 사랑했고 이집트 왕자로서 소양을 갖출 수 있는 모든 교육을 시켰다는군요. 하지만 조정의 신하들은 이방인의 피가 흐르는 모세를 항시 못마땅하게 여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를 끌어내리려고 모함을 했다는군요. 

  

파라오의 대사로서 외국에 12년 동안 나가 있었지만 결국 조신들의 등쌀에 그 자리에서도 물러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세가 파라오의 남다른 사랑을 받았다는 부분과 신하들로부터 경원시되는 부분은 우연일지 모르지만 영화 속의 내용과 유사한 부분입니다.

 

모세는 이집트로 돌아와 주유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참한 삶을 살폈고 파라오에게 그 실상을 고하게 됩니다. 파라오는 모세의 말에 공감을 하면서도 신하와 귀족들의 반감 때문에 이스라엘인들을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해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파라오의 후계자는 누간(Nu-ghan)이었다고 『오아스프』에는 기록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누간이 파라오의 아들이 아니었다는 점 외에, 구체적으로 그가 어떤 인물이고 어떻게 후계자가 되었는 지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무척 연로했던 파라오는 열병을 앓게 되었고 자기가 죽게 되면 누간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려는 모세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을 하면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 이후 『오아스프』에서 묘사하는 출애굽의 과정은 성경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세의 삶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오아스프』와 성경이 다른 부분 중 주목할 만한 것은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에 현현한 신과 대화를 나누는 대목입니다. 성경과 영화에서 모세는 신(스스로 있는 자)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묘사되지요. 하지만『오아스프』에서는 명백히 모세가 신과 직접 대화를 나눈 것이 아니라 대천사를 통해 대화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요. 

 

이것은 사소한 차이로 보이지만 에소테릭적인 관점에서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현대의 영적인 스승 아이반호프는, 우리 인간은 결코 신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없다고 주장하지요. 왜냐하면 신이 직접 물질계에 현현할 경우 우리는 그 어마어마한 전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괴돼 버릴 것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생명나무                       사계(40개의 세피로트) 

 

여기에 바로 천사들의 존재 이유가 있다 할 것입니다. 천사는 바로 신과 인간, 최고천과 물질계 사이를 잇는 단계적인 사다리와 같기 때문입니다. 카발라에서 존재의 4계를 말하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입니다. 신이 직접 자신의 이름으로 통치하는 것은 최고천인 아칠루트계뿐이고 그 아래의 세계인 브리아계와 예치라계는 대천사와 천사가 지배하는 영역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어떤 영적인 소리를 들었을 때 그것은 아무리 높아도 대천사 이상의 존재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른바 신과 나누는 이야기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카발라의 가르침에서는 모세가 대화한 것은 신의 최고 메신저인 대천사 메타트론이었다고 합니다.

 

앞서 모세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았지만, 사실 에소테릭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의 실제 혈통이 이집트에 속하든, 이스라엘에 속하든, 파라오였든 아니든 그런 사실관계는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죠. 실제의 모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화 속의 모습입니다. 수천년 전 살았던 실제의 모세는 이미 죽어 뼛가루도 남지 않았지만 신화 속의 모세는 지금도 생생히 살아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죠.   

 

신화 속의 모세는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뿐만 아니라 출애굽 사건 전체가 하나의 상징이죠. 사실 이집트 역사 기록 속에는 성서에서 언급되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대탈출 사건에 대한 서술이 전혀 없습니다. 

 

카발라적인 관점에서 볼 때 출애굽 사건의 이야기는 물질성에 속박된 우리의 자아가 그 구속을 풀고 영의 세계로 해방되는 과정 또는 비전의 성취 과정에 대한 상징적 표현입니다. 그것은 카발라의 생명나무에 대입하여 해석할 수 있지요. 

 

지중해의 성자로 알려진 다스칼로스에 의하면 사실 오늘날 알려진 생명나무 심벌의 기원은 아케나톤 시대에 있다고 하지요. 그는 모세가 이집트의 '생명의 심벌'을 변형하여 생명나무 심벌을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최소한, 다스칼로스의 견해에 의하면 아케나톤 자신이 모세는 아닙니다.) 생명의 심벌과 생명나무는 매우 흡사한 외관이지만 세부적으로는 여러 차이점들이 존재합니다.    



                     고대 이집트 생명의 심벌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을 카발라의 생명나무에 대입할 때 모세는 생명나무의 세피라 티페레트 속에 거하는 우리의 진아, 이집트는 물질계(말쿠트), 노예로 전락한 이스라엘 백성은 네거티브(즉 클리포트의 힘)에 사로잡혀버린 인간의 마음을 각각 상징합니다.   

 

모세의 아내 십보라는 생명나무상에서 티페레트와 대대 관계에 있는 예소드를  나타내는데, 하늘로부터 사명을 받은 뒤 하나님의 지팡이를 쥔 채  아내를 나귀에 태우고 이집트로 돌아오는 선지자 모세의 모습 속에는, 한 육체(나귀) 안에서 이루어지는 남성원리와 여성원리의 통합이 표현돼 있지요. 후술하게 되겠지만 이밖에도 지팡이와 관련하여 모세와 십보라는 또 다른 음양원리인 핑갈라와 이다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모세=티페레트, 십보라=예소드, 나귀=육체(말쿠트)  

  

우리 안의 영(모세)은 이스라엘 백성(저급자아)을 약속의 땅, 즉 영의 세계로 인도해야 합니다. 만일 성공하지 못하면 이집트 군대(클리포트의 존재들)에게 짓밟힐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요. 악카르마의 벌이 우리의 머리 위로 떨어져 참혹한 고통 속에 처하게 되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다는 것은 우리의 저급 자아가 낡은 습을 버리고 영적인 입문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이고, 다시는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다를 건넌 입문자는 다시 광야에서 내적인 정신적 사막과 직면하여 시험과 수양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치러야 했던 40년 동안의 방랑 생활이 그것이죠. 

 

40은 앞서 언급한 존재의 4계에 있는 모든 세피로트의 숫자를 합한 숫자입니다. (각 계에 10개의 세피로트가 있음) 따라서 40은 물질계에서 최고천의 꼭대기에 이르는 사다리의 발판들이라 할 수 있지요. 우리는 이 40개의 발판들을 거쳐 마침내 약속의 땅, 영광의 신의 영역에 이르게 됩니다.

 

사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문자 그대로 지상의 특정 지역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좀 우스꽝스럽지요. 메마른 바위산과 모래 바람이 불어대는 척박한 팔레스타인 지방을 어떻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입문자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즉 최고천에 이르기까지 온갖 시련들을 겪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자신의 마음입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끊임 없이 불평불만을 늘어놓습니다. 신이 하루하루 먹을 양식을 하늘에서 내려주건만 배불리 먹고 돌아서면 다시 내일 일을 걱정하며 온갖 푸념을 늘어놓고, 모세 때문에 이 고생이라며 원망을 하곤 하였지요. 


이스라엘 백성의 이런 행태는 바로 인간의 마음의 속성을 상징합니다. 직선거리로 얼마 되지 않는 거리를 수십년씩이나 광야에서 뺑뺑이를 돌며 고생하게 되는 것도 바로 불안해 하고 의심하고 불평하는 우리 마음 그 자체의 속성 때문인 것이죠.  


 

광야를 헤매는 이스라엘 백성의 길을 인도한 것은 하나님의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었지요. 낮에는 구름 기둥이 앞서가며 길을 안내하고,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의 앞길을 비추어 줍니다. 

 

낮에는 구름으로 서늘한 그늘을 드리워주고, 밤에는 불길로 온기와 밝음을 선사해 주는 이 기둥은 바로 지혜를 상징합니다. 

       

또, 위기의 순간마다 기적을 베풀어 위난에서 구해주는 모세의 지팡이는 마음의 주장자를 상징합니다. (에소테릭적인 관점으로 말하자면 모세의 지팡이는 헤르메스의 지팡이로 표현되는 생명나무임) 이 주장자가 올바로 서면 어떤 마음의 갈등과 혼란 속에서도 기적적인 구원이 오게 되죠. 그것은 우리 내면 속에 거하는 고급 자아의 힘이기 때문이죠.   



헤르메스의 지팡이 = 모세의 지팡이 = 생명나무 


지팡이를 감싸는 두 마리 뱀 = 척추를 감싸는 음양의 신경(핑갈라와 이다)

핑갈라= 모세, 이다=십보라.    



헤세는 어디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요. "구원의 길은 어디에도 없다. 오직 자기 자신의 내면에 이르는 길뿐이다. 거기에만이 신이 있고 평화가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그 약속의 땅은 바로 우리의 마음을 초월한 저 너머 내면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열락의 세계입니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삶의 매 순간마다 걱정과 불평불만을 버리고 지혜의 기둥을 의지하고 마음의 주장자를 굳게 세워나가야겠습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eyeinhand/10186674356]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조상령 이야기

 

<가문의 영광> <뮬란>

  

잘났던 조상 외에 자랑할 것이 없는 인간은 감자와 같다고 하더군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단 한 가지 좋은 부분이 땅 속에 있기 때문에요. 우리는 흔히 어디로 가고 있는가보다는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영광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꼭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원류에 대한 자긍심이 현실을 개척하고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이 된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종종 지나치다 싶을 만큼 조상과 가문에 집착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있을지는 적이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네요.

 

영화 <가문의 영광>과 <뮬란>은 우리로 하여금 조상과 가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호남 주먹 세계의 살아 있는 신화 쓰리제이(3J) 가문의 형제들이 공갈협박 브라더스가 되어 머리 좋고 잘 난 엘리트 사윗감을 집안에 들이려고 사생결단으로 달려드는 이야기를 다룬 <가문의 영광>은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며 시간을 ‘죽이기’에 좋은 흔한 조폭 코미디의 하나죠. 하지만 실컷 배꼽 잡고 웃음 터뜨리고 난 뒤에 왠지 마음 한 켠에 이런 생각이 맴돌더군요. ‘도대체 가문이 뭐 길래….’

 

비슷한 여운을 남기는 또 한 편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뮬란>이 바로 그것이죠. 파 가문의 영광을 위한 뮬란의 고군분투기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가문’이나 ‘조상’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기로는 <가문의 영광> 뺨치죠.

  


우리 인간들은 모두 특정한 가문, 민족, 종족에 속합니다. 에소레릭 가르침에 의하면 우리 개인에게 특정 기질과 운명이 있듯이 가문이나 민족 등에도 특정한 기질과 운명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구체적인 현실성을 띠고 존재한다고 하지요. 거기에는 특정 가문과 종족을 수호하는 영, 즉 조상령과 종족령 등의 힘이 작용한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어떤 의미에서 각각의 개인들은 그러한 조상령이나 종족령의 단순한 집행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달리 말해 어떤 조상령이나 종족령이 자신의 계획을 물질계에 실현시키기 위해 그 구성원 개개인들을 하나의 도구로서 사용한다는 것이죠.

 

이때 우리 인간들은 자기가 지금 행하는 일의 고차원적 의미나 성격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조상령이나 종족령의 의도에 따라 일을 하게 됩니다.   

 

영화 <뮬란>에서 뮬란이 여자의 몸으로 아버지 대신 전쟁에 나갔을 때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조상령들의 회의가 열리고 그녀를 보호해 주기 위한 특별 조치로 수호신을 보내주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뮬란은 멸망의 위험에 처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게 되지요. 영화는 뮬란의 공훈 이면에 조상령의 인도가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주지요.

 

<가문의 영광> 또한 동일한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쓰리제이 가문의 형제들이 여동생을 엘리트에게 시집보내려고 기를 쓴 데는 우수한 피를 수혈 받아 가문의 질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었지요. 그들의 그런 무의식적인 충동의 이면에도 필시 조상령의 힘이 은밀히 작용하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지요.

  

 

슈타이너(인지학회의 창설자)는 우리를 인도하고 수호해 준다는 측면에서 조상령, 종족령에게 감사의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서 우리는 지상의 특정 국가 또는 민족의 구성원으로 태어나 그 보호 아래서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죠. 그런 처지에 있는 인간이 자기 나라와 민족을 비하하고 우습게 여긴다면 그것은 은혜를 저버리는 배은망덕한 행위가 됩니다.  

 

몸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고 있으면서 툭하면, 난 한국이 싫어, 난 OO 나라가 좋아, 난 떠날 거야,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지극히 안 좋은 태도입니다. 일단 우리가 세상의 하고 많은 나라들 중에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그것은 섭리가 우리에게 한국이라는 공동체를 위해 무엇인가 기여하도록 기회를 준 것이라 볼 수 있죠. 한국의 보호 아래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우리는 그 보답으로 한국의 발전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 발전 과정 중 어느 시점에선가는 조상령이나 종족령의 지배권으로부터 반드시 벗어나야만 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조상령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슈타이너조차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다시 말해 자기가 속한 특정 공동체의 온상에서 벗어나 세계를 하나의 가족으로 여길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야 된다는 것이죠.

 

막스 하인델(장미십자펠로십의창설자)은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인간들을 종족령과 조상령으로부터 해방시켜 모든 인류를 보편적인 형제애 속에서 하나로 묶는 길을 준비하기 위해 왔다.”

 

성경에 보면 그리스도가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죠.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었느니라.” 하인델은, 여기서의 ‘나’는 바로 우리들 모두 안에 있는 개체적인 진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우리들 내면에 있는 개체 영은 신성의 불꽃으로서 모든 종족과 인종들 이전에 존재해 온 것이다. 따라서 지상의 모든 종족과 인종이 다 사라진다 하더라도 우리의 영은 남아 있을 것이고, 그렇게 볼 때 우리가 따라야 할 진정한 존재는 다름 아닌 내면의 신(진아)이다.’

 

그는 또 이렇게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핵심은 내면에 있는 신의 해방이고, 마땅히 우리는 개체로서 각자의 특권을 행사하여 혈족, 종족, 국가를 넘어서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가족과 나라를 무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에 대한 모든 의무를 이행해 나가되, 다만 우리 자신을 그 부분들과 동일시해서는 안 되고 대신 전 세계에 대한 형제애를 인식해야만 한다.“

  

종족령의 지배 하에서는 종족, 혈족, 국가 등이 최우선시 되고 개인은 맨 나중이 될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그 결과 혈통의 순수성, 우수성 유지가 의무처럼 여겨지게 될 거구요.

 

에소테릭 가르침에서는 이런 본능과 그에 수반해 발생된 모든 관습들은 우리들의 피 속에 존재하는 종족령 또는 조상령의 활동의 결과라고 합니다. 결국 혈통의 순수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조상령의 힘은 그만큼 강해지고 개인을 그 종족이나 부족 또는 가문에 구속시키는 연결고리도 강해지는 것이지요.

 

에소테릭 과학에 의하면 피는 영이 활동하기 위한 매개가 되는데, 종족령이나 조상령은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를 통하여 이 피 속으로 들어온다고 합니다. 또 후손들은 피를 통하여 그 혈족의 집단 기억에 다가가게 되구요.

 

피는 생명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에테르체와 관련되고 에테르체는 다시 기억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조상의 삶에 접한 후손들은 그것을 마치 자기 자신이 산 것처럼 여기게 되죠. 그렇게 되면 자손은 자신을 조상들의 긴 흐름의 연속으로 여기게 되고, 그는 자신을 하나의 독자적인 자아로서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뮬란은 뮬란이 아니라 ‘파 가문의 딸’이 되는 것이죠.

  

 

지금 우리가 종족령이나 조상령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일반인들이 그 단어와 접할 때 어렴풋이 떠올리는 개념들과는 사뭇 다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에소테릭적인 관점에서 조상령이라고 할 때, 그것은 죽은 할아버지나 증조할아버지의 개개의 영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진정한 자아는 죽은 뒤 윤회를 거쳐 지상의 어디선가 다른 몸을 입고 살아가고 있겠지요. 에소테릭 과학에서 말하는 조상령은 한 가문의 성장과 발전을 돕는 천사입니다. 우리 할아버지들이 살아생전 지었던 모든 행동과 상념의 에센스는 가문의 천사(즉 조상령) 속에 고스란히 각인 돼 있게 되지요. 그리고 그 조상령은 우리의 에테르체 안에서 활동합니다.

  

조상령이 천사라면 종족령은 대천사들입니다. 그들은 인간과 동물의 진화를 돌봅니다. 대천사들은, 이를테면 아스트랄 질료를 다루는 숙련된 건축가들이라 할 수 있지요. 그들은 특정한 그룹의 사람들과 동물들에 대해 지배권을 행사합니다. 요컨대 조상령이 에테르적 존재라면 종족령은 아스트랄적 존재이죠. 

 

투시가들이 볼 때 종족령은 그들(종족령)의 지배 하에 있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 전체의 대기를 감싸듯 스며들어 있는 구름처럼 보인다고 하지요.

 

애국심은 종족령에 의해 나오고 길러지는 감정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사해동포주의를 가진 사람들은 그만큼 종족령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이라 할 수 있죠. 반대로 종족령이나 조상령의 지배를 많이 받는 사람들은 고향이나 고국을 떠나 다른 종족령이나 다른 조상령의 대기를 흡입하면 몹시 괴로워하고 허탈감에 빠지게 된다고 하지요. 이른바 향수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죠.

 

 

세계를 살펴보면 미개한 나라일수록 조상령이나 종족령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보된 국가일수록 개체성을 존중하고 개인에 대한 자유가 더 많이 보장되지요. 국가와 민족의 틀을 벗어나 전 세계를 하나의 형제로 생각하고 서로 나누고 돕는 사해동포주의의 이상은 우리를 영적인 해방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들 개체 자아의 의지는 사랑의 법칙을 따라 그 어떤 존재(조상령이든 종족령이든)의 지배도 받지 않고 의식적으로 흐르게 되니까요. 

[출처: http://blog.naver.com/eyeinhand/10182152665]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의 음악 마지막에 알프스를 넘어 탈출하던 장면,
희망과 꿈을 갖고 도전하면 역경을 이겨낼수있다는...


Climb Every Mountain Climb every mountain,
세상의 모든 산을 전부 올라가 보아.

search high and low.
그래서 어느 산이 높고 어느 산이 낮은지 알아내렴.

Follow every byway,
네가 알고있는 길, 혹은 모르는 샛길이라도

every path you know.
전부 돌아다녀봐.

Climb every mountain.
세상의 모든 산을 올라가보렴.

Ford every stream.
개울을 만났을 때도 가뿐히 건너는거야.

Follow every rainbow,
하늘에 무지개가 떠있다면 어서 쫓아가 봐.

till you find your dream!
네 꿈을 찾을 때까지!

A dream that will need
네가 평생토록 매일매일

all the love you can give,
모든 정열을 쏟아 부을 수 있는

every day of your life
그런 꿈을 말야!

for as long as you live. Climb every mountain.
세상의 모든 산을 올라가 보렴.

Ford every stream.
세상의 모든 시내를 건너가 보렴.

Follow every rainbow,
저 하늘의 무지개라도 쫒아가는거야.

till you find your dream!
그래서, 꼭, 네, 꿈을, 찾는거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동영상과 자막을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

Prison Break S4 카테고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동영상 파일과 자막을 함께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Heroes S3 카테고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