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동학혁명가 집안의 후손이시군요.

by 성공의문 2012. 12. 17.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동학혁명가의 후손이셨네요.

그러하기에 동학에 대한 이해와 자부심이 크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또한 삶 속에서 그 정신을 충분히 실천하셨습니다. 


다른 나라 국가원수들을 만났을 때 '동학혁명에 대해서 아시느냐'고 자주 물었다는 일화도, 우리 역사와 선조에 대한 자긍심이 묻어나는 대목입니다.


밑에 글은 노무현님과 수운 최제우, 유시민님과 해월 최시형을 같은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글입니다. 

의미있는 시각이라 생각되어 옮겨왔습니다. 



---------------------------------------------



노응규(盧應奎, 1861년 3월 15일 ~ 1907년 1월 4일)는 조선말기의 문신, 유학자이며 구한말의 의병장이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의 종증조부이기도 하다. 동학 농민 운동에 가담하였고, 을미사변 당시에는 일본의 만행에 분개하여 의병을 일으킨 공로로 규장각 주사와 동궁시종관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그의 수하 의병들 중 일부는 진주와 안동에서 약탈과 난리를 일으켜 물의를 빚기도 했다. 본관은 광주(光州)으로 호는 신암(愼菴)이다.


출처: 위키백과


---------------------------------------------


유시민에게 길을 묻다.


수운 최제우의 개벽세상과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


수운 최제우가 만든 동학(東學)의 요체는 한마디로 '시천주(侍天主)' 사상이다. 시천주라는 말은〈동경대전>의 21자 주문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최제우가 종교체험을 할 때 상제(上帝)로부터 받은 '지기금지원위대강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至氣今至願爲大降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至)이 원문(주문)이다. 시천주 사상이란 하늘님을 모심(侍天主)이라고 하는 것은 곧 인간이 자신의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바로 이 <하늘님의 자유>를 가지신 하늘님을 모시고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하늘님을 모심(시천주)이라고 하는 것은 곧 가장 본질적인 자유를 자각하여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평등이 성취된 인간의 가장 본질적이고 존엄적인 자유사상이다. 


수운 최제우는 이 한울님이 바로 양반, 상민, 천민 등의 신분차등 없이 모든 사람이 자기 몸 안에 한울님을 모신 존재라는 인간 존엄의 신분평등 사상을 설파했다. 실제로 수운은 이를 몸소 실천하여 노비문서를 없애 모든 노비를 해방시켰다. 더 나아가 노비 중 한 여자(朱씨부인)를 수양딸로 삼기에 이른다. 이는 신분제가 공고했던 조선왕조 후기를 감안해보자면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혁명적 사건이며 동시에 기득권들에게는 좌빨(?) 수괴로 처단해야할 죄인 중에 죄인이 아닐 수 없었다.


수운은 150년 전 외세의 침탈과 조선왕조의 권력과 관권의 폐해, 먹물들의 삽질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을 목도하고 백성들에게 민중해방의 이정표를 제시하는데 그것은 후천개벽을 통한 ‘새로운 세상’이었다. 이 새로운 세상은 세상의 모순을 치유하는 수단이었으며 민중 각자가 ‘삶의 틀’을 바꿔나가는 참세상의 전형이자 실천적 규범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 도대체 동학이 무엇이었기에 민중들은 그렇게 폭발적 반응을 보이며 다투어 경주 용담으로 몰려갔을까? 민중들은 동학으로, 동학으로 다투어 달려갔다. 그리하여 경주 용담은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던” 세상을 안타깝게 여기는 조선 민중들의 귀의처가 되었고, 수운은 그런 민중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신인(神人)이자 진인(眞人)이 됐다. 그러나, 당시의 지배층들은 이 같은 민중들의 마음을 헤아릴 만한 안목이 없었다. 그들은 도리어 수운을 체포해 처형함으로써 민중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따지고 보면 여러 정황들이 수운이 살던 때와 지금이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강대국(청, 일, 척양)들의 틈바구니에서 허우적대던 조선 왕조, 매관매직이 성행하여 백성들의 등골을 빼먹고 사는 관리들의 부패상, 경도된 지방 호족들의 왜곡된 여론몰이 등 국제적, 정치적, 사회적인 모든 부면에서 성상과 인걸만 바뀌었을 뿐 그때나 지금이나 양상은 비슷했다.


수운과 노무현의 진단과 고민은 대체로 일치한다. 이 두 선각자가 꿈꿨던 세상이 곧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동학농민혁명에서 3.1운동으로 5.18광주항쟁에서 6.10항쟁으로 그리고 참여정부에서 촛불로 관통하며 기저에 흐르는 아젠다가 곧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동학의 민중 민주주의적 성격, 만민평등, 함께 살아가는 세상, 사람이 사는 세상. 구시대 질곡의 개혁 등, 동학적 가치관은 참여정부를 이끌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관과 일치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실제적으로 동학정신의 실천자였던 것이다. 참여정부(동귀일체), 평등사상(시천주), 통일지향성(동귀일체),탈권위주의(무위이화). 그가 지향한 가치는 바로 동학이 지향하는 가치와 일치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수운 선생의 모습을 본다.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수운의 향기가 난다.



수운을 부활시킨 해월과 노무현을 부활시킬 유시민 


해월 최시형은 1827년 3월 경주 황오리에서 태어났다. 해월은 온몸으로 사람 사랑과 만민의 평등사상을 실천한 겨레의 스승이자 민중의 힘을 북돋우며 동학의 기틀을 다잡아낸 위대한 혁명가이며, 탁월한 종교사상가였다. 그는 스승 수운 최제우가 연 개벽의 길을 더욱 뚜렷이 했으며, 동학의 기틀을 잡았을 뿐만 아니라 동학농민운동을 이끈 강력한 지도자였다. 언제나 가장 낮은 곳에 엎드려 지내면서도 사후 가장 높은 평가의 자리를 차지했다.


해월은 33세 때(1861년, 철종12년) 친구들과 경주 용담정에 찾아간 게 동학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다. 이후 2년 만에 북도중주인(北道中主人)으로 임명됐고, 이어서 수운의 도통을 이어받아 35세의 나이로 동학의 2대 교주가 될 정도로 뛰어난 수행력과 인간됨됨이를 드러냈다. 이 때 수운의 나이 40세. 처형되기 직전이었다. 죽음을 예감하고 제자에게 자신의 모든 걸 전수한 것이다.


그는 우리 역사상 가장 긴 수배생활을 하며 평생을 도망다니면서 조직을 짜고 교세를 넓히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땅의 외진 골짜기마다 그의 발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가는 데마다 새끼를 꼬고, 짚신과 멍석을 짰고 나무를 심었다. 이를 통해 “도는 높은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생활하는 그 속에 있다”는 자신의 철학을 몸소 실천했다. 언제나 남을 위해 기도하고, 베푸는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그런 자세로 억눌린 백성들에게 평등과 인간존엄의 원리를 제시했다. 


또한 동학사상을 당대 현실의 대안으로 확실하게 인식시켜 근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민중운동으로 꼽히는 동학농민운동의 사상적, 조직적 기반을 다졌다.


해월 사상의 근간은 ‘사람의 곧 하늘’이란 말로 집약된다. “사람 섬기기를 하늘처럼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은 사람은 곧 평등하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당시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반상의 계급을 인정하지 않고, ‘상놈’이든 여성이든 누구나 ‘한울님’ 곧 삶의 주체자로서의 존엄성을 가진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당시 현실에서는 가히 개벽과도 같은 혁명적인 사상을 들어보였다.


“땅을 소중히 여기기를 어머니의 살같이 하라” “밥 한 그릇에 세상만사가 다 들어있다”고 평소 그가 강조했던 말은 곧 생태주의적 관점과 생명사상의 요체로서 최근 크게 대두되고 있는 환경문제를 풀어낼 사상의 기반으로 재평가되기도 한다. 또한 “새 세상이 되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니, 인위적으로 폭력을 행사해선 안된다”고 무저항 사상을 주장하기도 했다. 해월 사상의 위대성은 이처럼 논리적이거나 현학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민중 속에서 일하고 함께 도모하는 데서 구하고 드러낸 것에 있다.


1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 귀향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나와 같은 과에 속하는 정치인이 한사람 있는데 그가 바로 유시민이라며 애써 그를 무대에 세웠다. 자신의 뜻을 이을 정치인으로 대중 앞에서 유시민을 당당하게 선언한 셈이다. 절차야 어떻든 수많은 지지자 앞에서 ‘나와 똑 같은’이라고 했으니 당신(유시민)은 내 뜻을 상속하여 실천하라는 노 대통령의 준엄한 명령으로 봐야한다. 


이런 사실만 가지고 유시민을 해월과 병치시킨다는 것이 다소 무리한 비교일지는 모르겠으나 노무현의 유지를 실천할 정치인으로는 유시민이 가장 적자라는 점에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 사람이 없을 게다. 


흥미로운 사실은 해월과 유시민은 똑같은 경주 태생이다. 수운은 효수되기 1년 전에 많은 제자들 앞에서 해월에게 대통을 물려주는 요식을 거친다. 일종에 대통 전수식을 통해서 지지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하게 된다. 수운은 해월의 고향과 가까운 경상도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가 고향이다.  경주 용담서사는 동학의 창도지요 시대 담론의 시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의 실천적 운동은 되레 전라도에서 가장 왕성했다는 점은(동학 농민 운동)은 의미심장하게 시사하는 바이다.


자,

이제 나는 유시민에게 길을 묻는다.


*이랑


출처: http://blog.daum.net/tea4u/16318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