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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_문화

후성유전학 - 먹는 것이 곧 나를 만든다.

by 성공의문 2012. 2. 14.

위키백과:후성유전적 유전자 발현의 기제


위키백과
 
: 후성유전학(後成遺傳學, epigenetics) 또는 후생유전학(後生遺傳學)은 DNA의 염기서열이 변화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유전자 발현의 조절인 후생유전적 유전자 발현 조절을 연구하는 유전학의 하위 학문이다. 이를 매개하는 분자적 수준의 이해는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CpG 염기서열 가운데 시토신 염기에 특이적으로 일어나는 DNA 메틸화와 히스톤의 변형에 의해 조절되는 크로마틴 구조의 변화에 두 가지의 기전이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성유전학

DNA정보의 ‘조립설명서’, 유전자결정론 의심서 출발
메틸기 등 음식속 대사물이 유전자 작동 방식에 영향
고등생물 진화의 부산물·환경적응 단기전략으로 해석
 
김영준 교수에게 듣는 후성유전학
최신의 첨단 과학은 각종 매체에 중요한 열쇳말로 자주 오르내리지만 정작 그 과학 지식의 알맹이는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과학의 ‘결과’는 사회와 더 가까워지지만 과학의 ‘내용’은 더 난해해져 멀어지기 때문이다. 여러 분야에서 두드러진 연구성과를 내고 있는 연구자들을 직접 찾아가 몇차례의 집중 인터뷰와 함께 실험실 현장 체험도 곁들이면서 그런 난해함의 의미를 풀어본다. 후성유전학, 대사공학, 현대기하학, 기후역학, 나노 반도체 등 8개 분야를 선정해 차례로 살펴본다.

우리는 생명현상을 보여주는 간결한 한 장의 그림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의 중심엔 늘 유전자가 있다. 또 유전자 정보를 복사해 단백질을 만드는 아르엔에이(RNA)가 있고, 그렇게 만들어진 단백질이 무궁무진한 생명 현상을 일으키고….

그런데 이런 선명한 그림을 조금 흐릿하게, 더 복잡하게 만드는 여러 연구성과가 최근 과학계에 나오고 있다. 유전체(게놈), 유전자, 디엔에이(DNA)와 상호작용하며 생명의 발현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로 후성유전물질(에피게놈), 마이크로아르엔에이, 장내 미생물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 가운데 후성유전학은 기존의 유전학이 다 설명하지 못하는 유전자의 생명현상을 설명하려는 연구 분야로서 빠르게 성장해왔다. 먹을거리나 생활환경이 몸 안에다 후성유전물질의 패턴을 만들고 그것이 유전자의 작동 방식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제시해온 후성유전학은 특히 “무엇을 먹느냐가 당신과 후손의 유전형질에 영향을 끼친다” “유전자 정보는 정상이어도 암에 걸릴 수 있으며 암도 치유될 수 있다” 등의 학설을 제기해 과학계 바깥에서도 눈길을 끌고 있다. 후성유전학자인 김영준 연세대 교수를 만나 이 분야의 연구 동향과 쟁점에 관해 물었다.

유전자결정론엔 없는 물음들

후성유전학은 디엔에이 정보만으로 생명현상을 충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몸을 이루는 10조개의 세포들에는 모두 같은 디엔에이 정보가 담겼는데도 어떤 세포는 피부세포로 살고, 어떤 세포는 신경세포로 산다. 또 일란성 쌍둥이도 다른 생활환경에서 산다면 디엔에이 정보가 같더라도 다른 질병에 걸릴 수 있다.

디엔에이 정보 자체가 생명현상에 직접 닿아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정보’가 ’생명현상’이 되는 과정에는 여러 개입하는 요소들이 있다는 건데, 후성유전물질은 그런 주요한 요소들 중 하나다.

-후성유전학이 2000년대 중반 이후 갑자기 떠오르고 최근엔 국제 공동연구 컨소시엄(에피게놈 프로젝트)까지 조직되고 있다던데요, 몇 년 새 부각되는 이유는 뭔가요?

“갑작스런 건 아니에요. 초기 관심은 50년, 100년 전부터 있었어요. 세포발생학을 하는 분들이 세포가 분열하며 어떤 세포는 머리가 되고 어떤 세포는 다리가 되고 하는 분화과정을 관찰하면서 ‘어떤 물질’이 분화에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왔지요. 1940년대 워딩톤이라는 미국 과학자는 세포분화를 관찰하면서 ‘세포의 운명’은 산 위에서 계곡 쪽으로 바위를 굴리는 것과 같다는 비유의 학설을 제시했어요. 이쪽 계곡으로 한번 구르기 시작한 바위는 다른 계곡으로 가기 힘들겠지요. 누군가 끌어올려 다시 굴리기 전에는 말이죠. 워딩턴은 유전학적 요인이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해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봤어요. 그걸 후성유전이라고 했지요.”

-최근에야 그 ‘어떤 물질’이 확인되면서 부각되고 있는 거군요.

“네. 지금까지 후성유전물질로는 히스톤이라는 단백질, 그리고 메틸기, 아세틸기라는 화학물질이 꼽히고 있어요. 그것들이 디엔에이 정보를 세포들이 쓸 수 있게 조직화하는 과정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지요.”

-생명현상을 큰 틀에서 설명하는 기존 유전학이 세밀한 부분에선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후성유전학이 주목받는 걸 텐데요, 그게 어떤 건가요?

“후성유전학의 관점에서 보면 디엔에이 정보는 레고블록과 같아요. 이런 저런 모양의 디엔에이 정보들이 있지만 그 정보가 곧바로 어떤 의미를 나타내진 않아요. 설명서를 보고서 배를 만들고 로봇을 만들고 하듯이, 후성유전물질이 그런 설명서 구실을 한다고 봅니다. 사람 세포들은 모두 같은 디엔에이 정보를 지니지만 2만 수천 가지 유전자 가운데 필요한 정보와 필요치 않은 정보를 가려 써야 하는데 그렇게 정보를 조직화하는 구실을 하는 게 후성유전물질이지요.”

유전물질이 사는 방식

세포핵 안의 후성유전물질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이중나선의 디엔에이 그림이야 익숙하지만, 후성유전물질은 너무 생소하다. 그런데 설명을 듣다 보면 우리가 흔히 아는 디엔에이의 모습은 다르게 그려져야 한다. ‘실패와 실’이 추가된 그림은 좀 더 복잡해진다.

-후성유전물질은 어떻게 존재합니까?

“음…, 디엔에이를 길게 펴면 2m가량 되지요. 이런 유전 정보를 어떻게 세포핵의 염색체 안에다 집어넣어야 가장 효율적일까요? 생명체는 히스톤이라는 단백질을 이용해요. 이 단백질을 실패로 생각해보죠. 디엔에이는 히스톤에 팽팽히 또는 느슨하게 감기고, 그런 히스톤 실패는 무수히 많아요. 그것들이 다시 이렇게 집합을 이루고 저렇게 집합을 이뤄 아주 조밀하게 뭉친 꾸러미가 되지요. 또 메틸기라는 화학물질이 디엔에이에 달라붙는데, 그 달라붙는 패턴에 따라 감기고 뭉치는 꾸러미의 모양이 달라지지요.”

-이런 모양이 유전자 발현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거죠?

“유전자 기능이 발현하려면 유전자 기능을 하는 디엔에이 부위에 유전자 발현을 일으키는 효소가 달라붙어 반응을 해야겠지요. 하지만 꾸러미의 깊숙한 곳에 팽팽히 감긴 유전자엔 효소가 접근할 수 없겠지요. 그러니 세포가 자주 쓰는 유전자 부위는 효소가 쉽게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에다 감아두겠지요. 겉에 더 드러나게 말이죠. 그런 차이들이 유전자 발현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같은 디엔에이 정보라 해도 어떻게 꾸려졌느냐에 따라 유전자 발현이 달라진다는 거군요.

“디엔에이 정보가 바뀌거나 다르지 않아도, 히스톤이나 메틸기에 의해 꾸려지는 방식이 달라지면 발현에도 차이가 생기는 거죠.”


먹는 것이 당신이다.

김 교수는 “유전자가 생명현상을 바로 결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먹을거리나 생활환경의 영향이 더 크다”고 강조한다. 후성유전학이 과학계 밖에서도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이 대목에 있다. 무엇보다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준다는 메틸기는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서 생겨나는 대사산물이다.

그래서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라는 속담 같은 말도 후성유전학에선 과학 원리로 받아들여진다.

-유럽의 후성유전학 사이트에 보니, “당신이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후손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더군요. 먹을거리가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 또 그런 영향이 후세대에 유전될 수 있다는 점이 후성유전학의 핵심적 메시지 가운데 하나인데…, 어떤 연구결과들이 있나요?

“자주 인용되는 사례로 이런 게 있어요. 2차 세계대전 때 네덜란드 사람들은 ‘봉쇄정책’ 탓에 잘 먹지 못했어요. 그때 태아였던 사람들과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을 비교했더니 당시 태아였던 사람들이 뚜렷이 키가 작았습니다. 그 사람들의 자녀도 키가 작았다고 하지요. 그건 후성유전물질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태아 시기에 제대로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역학조사일 뿐 아닌가요?

“쥐 실험에서도 입증됐어요. 똑같은 유전자 정보를 지닌, 새끼를 밴 실험쥐들한테 다른 음식을 주었어요. 그랬더니 태어난 새끼들의 건강상태가 달랐지요. 이젠 아기들한테 똑같은 음식을 주었는데 그 영향은 그 다음 세대까지 나타났어요. 또 디엔에이에 달라붙은 메틸기의 패턴을 비교하니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는 거예요. 이런 실험적 증거들이 많이 있습니다.”

-음식이 어떻게 관련이 있나요?

“메틸기의 예를 들어보죠. 우리 몸에는 메틸기를 디엔에이에 갖다 붙이는 효소도 있고 그걸 떼내는 효소도 있어요. 물론 어떤 때에 어떻게 그것이 작동하는지 메커니즘은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여러 연구를 종합해보면 우리 몸이 음식을 섭취해 대사산물로 메틸기를 만들고 그걸 효소들이 디엔에이에다 갖다 붙이기도 하고 떼기도 하니까 음식은 매우 중요한 연관 관계를 지닌다는 건 확실하죠. 아직 어떤 음식이 좋다, 나쁘다 이런 연구는 없지만요.”


진화의 길, 그리고 한 장의 그림?
당연히 생명체가 왜 이런 후성유전물질을 활용하는 쪽으로 진화했을까 궁금해졌다. 진화에 관해 디엔에이는 간결한 답을 주는데, 후성유전물질은 너무 복잡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후성유전물질은 한 사람의 생애에서 수시로 바뀔 수 있고, 또 세포마다 다른 후성유전물질의 패턴을 지니고 있으니까. 왜 생명체는 유기물을 최적으로 조직화하는 진화 과정에서 후성유전물질을 택했을까?

-후성유전학은 진화를 어떻게 설명되나요? 진화는 우연히 일어나는 유전자 돌연변이 중에서 자연의 환경 변화에 최적으로 적응하는 것들이 살아남으면서, 즉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으로 이뤄진다고 설명되는데, 그 중심엔 유전자가 있지요. 후성유전물질은 유전된다 해도 몇 세대 정도에서 그치니까…, 긴 시간 척도에 어울리는 진화와는 무관한 건가요?

“후성유전물질은 환경에 의해 변할 수 있는 가변적인 것입니다. 반면에 유전자 정보가 바뀌고 자연에서 선택되는 데엔 수만년, 수백만년 걸립니다. 매우 느린 과정이지요. 그러니까 후성유전물질은 이렇게 유전자 정보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몸이 변화된 환경에 재빨리 적응할 때 나타나는 거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 변화된 환경이 오래 지속되면 유전자 돌연변이가 선택돼 후성유전물질이 임시로 했던 구실을 대신하게 되겠지요.”

-환경에 적응하는 장기전략, 단기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겠군요.

“네. 후성유전물질은 다세포 동물이 출현하고 고등생물로 진화하며 디엔에이 염기서열의 길이도 엄청나게 커지면서, 그 정보를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후성유전학은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유전자 정보 자체가 덜 중요한 건 아니잖습니까?

“이렇게 생각해보죠. 모차르트의 ‘작은 별’은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나 피아노 거장까지 다 연주하는 곡이지요. 모차르트가 작곡한 곡이 없다면 연주는 애초부터 할 수 없겠지요. 그런데 아이가 연주하느냐 거장이 연주하느냐에 따라 감흥은 크게 달라지겠지요. 그러면 그 곡이 뛰어난 것은 모차르트 덕분입니까, 아니면 거장 덕분입니까? 작곡에 관해 말하자면 모차르트라고 답할 테고, 연주에 관해 말하자면 거장이라고 답하겠지요. 그런 차이와 비슷해요. 무엇을 얘기하느냐에 따라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얘기할 수 있겠지요.”

생명현상을 유전자를 중심으로 설명하는 한 장의 간결한 그림은 이제 밑그림이 되어, 그 위에 세밀한 덧칠들이 더해지고 있다. 유전자 정보가 단백질로 발현해 어떤 생명현상을 일으키기까지는 후성유전물질은 물론이고 다른 연구 대상인 마이크로 아르엔에이, 또 기생·공생하는 미생물들이 상호작용을 이루며 복잡하고 다양한 생명현상을 빚어낸다. 그러니 한 장의 간결한 그림으로 그것을 다 담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김영준 교수는
: 국내에선 아직 활발하지 않은 후성유전학 연구 분야를 이끄는 주요 연구자다. 특히 어느 유전자가 후성유전물질에 의해 조절될 것인지는 이미 유전자에 표지돼 있는 방식으로 유전자가 내재적으로 다양성을 유도할 수 있게 설계됐음을 규명해 주목받았다. △연세대 언더우드 특훈교수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 △국제 에피게놈 컨소시엄 국내준비위원